mainNavigation

스마트앱 이용방법

교회채널열기

홈페이지 제작센터


덕이 되는 말을 하십시오

동문교회 손세용 목사님 | 2019-02-03 즐겨찾기에 추가

조회수 : 19 | 추천수 : 0

페이지 링크주소 : https://www.shematv.com/tv/7248

<video id="5c5669e932c88" width="480" height="320" poster="/phpthumb/phpThumb.php?src=/thumbs/dongmoonch/7248_1.jpg&fltr[]=wmi|x|80|||0" crossorigin controls autobuffer preload="auto"><source src="/media_servers/media1/dongmoonch/5c5669e932c88.mp4"/></video>

태그 :

"덕이 되는 말을 하십시오"
2019년 2월 3일 주일예배
에베소서 4 : 25 - 32 ; 잠언 15 : 1 - 4


설날, 어느 가정에서 아버지가 설음식을 많이 드셔서인지 속이 답답하다며 자리에 눕자, 큰아들이 동생에게 빨리 소화제를 사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명절 연휴라서 약국들이 문을 닫아서인지, 기다려도 동생이 오지 않자 형은 오지 않는 동생에게 "이 새끼가 죽었나 살았나?"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너 이놈, 뭐라 했어? 네 아비보고 '이 새끼 죽었나 살았나'라니, 이런 후레자식 있나?"하며 냅다 뺨을 후려치는 것이었습니다. 어른 앞에선 동생 욕도 삼가야합니다.


10년 전, 한글날 563돌을 맞아 MBC에서 '말의 힘'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을 보여 주었습니다. 햅쌀로 지은 밥을 유리병에 담아 아나운서들이 2병씩 나눠 갖고, 한 병에는 '고맙습니다'가 쓰인 종이를 붙이고 고운 말로 매일 말을 걸었고, 다른 병에는 '짜증나'를 적어놓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4주 후에 뚜껑을 열었더니 '고맙습니다'란 병에선 하얀 곰팡이가 구수한 냄새를 피운 반면, '짜증나'란 병에선 거무스름한 곰팡이가 심한 악취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언어에 노출된 것만으로 육체가 영향을 받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30개의 단어카드를 가지고, 5분 안에 3개의 문장을 만든 후 걸음걸이를 측정했습니다. 노인을 연상시키는 단어에 노출된 사람은 실험 후에 일정 거리를 걷는 속도가 2초 32가 늦어졌고, 젊은이를 연상시키는 단어에 노출된 사람은 실험 후 2초 46이 빨라졌습니다.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 중 어떤 말을 더 기억하는지도 실험했습니다. 피실험자에게 15개의 좋은 말과 15개의 나쁜 말을 보여준 결과, 66%가 나쁜 말을 더 많이 기억하였습니다. 막말은 감정을 주관하는 뇌의 번영계를 활성화시켜 오래 남는다고 합니다. 말은 태양 에너지처럼 생명의 에너지가 있어, 사람의 사고체계를 지배합니다. 말하는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듣는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기도 합니다. 말은 감정의 열쇠가 되어, 인생을 즐겁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며, 용기를 주기도 하고 낙심하게도 합니다.


통일 독일 전의 이야기입니다. 한 무리의 베를린 사람들이 쓰레기 더미를 서베를린 쪽으로 쏟아 부었습니다. 서베를린 사람들은 쓰레기를 다시 동쪽에 가져다버릴까 생각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대신 트럭 한 대에 통조림과 쉽게 부패하지 않을 식량을 채워 동베를린 쪽에 싣고 가 산뜻하게 쌓은 뒤 이런 표지판을 세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준다" 우리의 마음도 좋은 생각이 가득한 사람은 좋은 말을 쏟고, 나쁜 생각을 품은 사람은 나쁜 말을 합니다. 자기가 쏟아낸 말이 쌓여 복이 되기도 하고 화가 되기도 합니다. 험한 말을 내뱉으면, 주변은 물론 자신도 피해를 입게 되기에, 할 수 있는 대로 덕스러운 말을 해야 합니다. 탈무드는 "물고기는 언제나 입으로 낚인다. 인간도 역시 입으로 걸린다"고 경고하였습니다.


모레는 우리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인데, 한민족은 예부터 덕담으로 새해 첫 날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명절에 자칫 덕스럽지 못한 말로 즐거운 명절에 가족 간에 서로 씻지 못할 상처를 주곤 합니다. '누구는 대기업에 취직했다더라', '아직도 취직 못했니?', '결혼은 언제 하니?' 이런 말들이 구직자나 미혼남녀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어, 이런 말 듣지 않으려고 아예 고향을 찾지 않는 젊은이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자칫 고부간에도 사소한 말로 서로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명절 때 시어머니에게 듣기 좋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올 명절에는 오지 않아도 된다' '친정어머니 기다리시겠다. 빨리 친정에 가봐라', 남편 몰래 용돈 주며 '아가 수고했다. 옷이라도 사 입어라' 이런 말들을 듣고 싶어하고, '듣기 싫은 말'로는 마음이 친정에 가 있는 며느리에게 '이따가 시누이 오는데 보고 가라', 며느리가 고생한 건 전혀 알아주지 않고 '요즘 명절은 참 간소해졌다. 우리 때는 더 힘들었어'라는 말, 음식 준비할 때 사사건건 훈수를 두는 말로 '전은 한 번 뒤집는 거야' '사과는 얇게 깎아야지'라며 잔소리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시어머니가 듣기 좋은 말'로는 '앞으로 자주 찾아뵐게요', '용돈 필요하시죠?' 등이고, '듣기 싫은 말'은 '차 막히니 빨리 갈게요'라며 모처럼 왔다가 바로 간다는 소리, '왜 그렇게 늙으셨어요?'하며 부모의 점점 늙고 약해지는 모습을 들춰내는 말이라고 합니다.


부부 사이에 듣기 좋은 말과 싫은 말이 있다고 하는데, 아내가 듣기 좋은 말은 '빨리 처갓집에 가자' '내가 어디 주물러 줄까?'라는 말이고, 듣기 싫은 말은 '술상 좀 차려와' '우리 엄마만 고생하네'하고 남편이 엄마 편들 때라고 합니다. 남편이 듣기 좋은 말은 '운전하기 힘드시죠?'하는 격려의 말, '친정 챙겨줘서 고마워요'라는 감사의 말인데, 듣기 싫은 말로는 '차 막히는데 왜 이리로 왔어?'하는 잔소리, '보너스 얼마나 나왔어?'라며 남편을 돈 버는 기계로만 보는 말이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고(요1:1),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계시하시려고 말씀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 성령님은 말씀 가운데 임하십니다(행10:44). 성경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욜2:32)고 했고,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고 하여, 구원도 말로 받습니다. 하나님과 교제의 채널은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인 '기도'입니다.


우리는 말에 대한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말은 인간에게 부여된 가장 큰 특권 중에 하나입니다.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말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지으신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2:19)하여, 아담의 이것들을 부르는 말이 곧 이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입으로 하는 찬양도 말이요 저주도 말이고, 감사도 말이요 원망도 말입니다. 모두 말로 이뤄지기에 말은 곧 그 사람됨의 표현입니다. 에머슨은 "한마디의 말로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초상화를 그린다"고 말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신앙적인 견지에서 '축복과 저주도 말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은 사람에게 하지만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믿고,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말한다고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축복의 말을 사람에게 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드린다는 말이 아닙니다. 원래 축복이란 말과 송축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바라크]라는 같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쓰일 때는 '송축한다, 찬양한다'는 뜻이고, 사람에게는 '축복한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호가 존귀하게 여김을 받으시도록 하나님의 이름에 복된 말을 하는 것, 즉 송축하는 말을 하나님께 계속하여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말은 씨가 되어 그대로 이뤄집니다. 민수기 1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이 고달프자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하나님을 원망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민14:27-29)라며, 너희가 죽고 싶다고 말했으니 죽여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은 기도적인 의미가 있어서, 사람에게 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들으시기에 그대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말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6-37) '무익한 말'의 원문의 뜻은 '쓸데없이 무책임하게 하는 말'입니다. 쉽게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한 말도 심판 날에 심문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영원히 사함 받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이것 역시 말로 짓는 죄입니다.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도 말로 범하는 것이기에,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프랑스 드골 장군이 프랑스를 탈환했을 때, 프랑스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제일 먼저 나치에 협조했던 인물들을 색출하여 재판에 세웠습니다. 그 중 죄질이 무거운 인물에게는 과감히 사형선고를 내렸는데, 그 중에 '브라지야크'라는 천재 작가가 포함되었습니다. 브라지야크는 탁월한 천재성으로 나치에게 협력하여 유태인을 탄압하는 신문을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프랑스 지식인들은 브라지야크를 살려야 한다는 의견과, 죄는 엄벌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갈렸습니다. 그때 현대철학의 대가 '보부아르'는 사형을 지지하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아야 한다. 그의 말은 나치의 독가스보다 더 살인적이었다." 결국 브라지야크는 프랑스정부의 강력한 역사청산의지로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물리적 폭력으로 생긴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말로 생긴 상처는 마음에 박혀 지워지지 않기에 더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J.위클리프는 "혀는 뼈가 없지만 뼈를 부수뜨릴 수 있다"고 말했는데,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들이 하나님 앞에 그대로 쌓여 심판 받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라고 말씀합니다. 한 마디 말에 의해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합니다. 어느 임금님이 신하가 큰 실수를 하자 그만 격노하여 그에게 사형을 내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주변에서 "사형은 너무 심하니 형을 감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진언했습니다. 그러나 임금으로서 한 번 내린 명령을 취소하면 왕의 권위가 서지 않으니, 사형을 취소하는 대신 그 동안 그 신하가 충성한 것을 감안하여 그가 죽을 방법은 선택하도록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그 말은 들은 신하는 곰곰이 생각하여 "어떻게 죽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임금님, 늙어서 죽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임금님은 기가 막혔지만, 죽는 방법은 원하는 대로 허락하겠다고 약속했기에 그대로 살려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 한마디 잘해서 살아났습니다. 사람은 말한 만큼의 운명을 살기에 저주하고 사는 사람은 저주스럽게 살아가고, 축복하는 사람은 복된 생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말에 축복과 감사와 찬양만 담겨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언어생활에 대한 세 가지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 거짓말을 버리고 참된 말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엡4:25)고 하십니다. 우리의 말에는 진실과 정직을 요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거짓말 한 번 한 것으로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이 베드로를 속인 것이 아니라 자기 양심을 속였고, 하나님을 속인 것입니다. 십계명 중에 '살인하지 말라'는 말이 중요하듯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말의 중요함도 함께 알아야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예상되더라도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 대교구장직에서 은퇴할 때, 기자들이 '몇 개국 어나 구사할 수 있느냐?'고 묻자 "한국말, 일본말, 미국말, 불란서 말, 독일 말 그리고 거짓말, 참말을 한다"라고 대답하여 사람들을 웃겼습니다. 재치 있는 조크이면서, 성직자도 때로 거짓말 할 때가 있다는 솔직한 고백이어서 사람들의 호감을 갖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도 그냥 우스개처럼 말하고 들을 말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는 거짓말했다는 사실이 진정한 아픔과 참회 속에 고백되어야 할 말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시34:12-13)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자칫 과장이나 장담도 거짓에 치우치기 쉽습니다. 배수량이 46,328톤으로 당시로선 최대형이고 최신 선박기술로 건조된 초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승객들을 유치할 때 '하나님도 가라앉힐 수 없는 배'라고 자랑했으나 2,500명을 태우고 처녀항해를 하다가 빙산과 충돌하여 1,795명이 죽고 겨우 705명만 살아난 사상 최대의 해난사고를 유발했습니다. 지나친 과장은 거짓에 치우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더러운 말을 금하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라고 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여기 '더러운 말'이란 '부패한' 혹은 '썩은'이란 뜻으로 단순히 좋지 않은 말이 아니라, 악의가 있는 험담과 중상모략으로, 남을 해치고 분쟁을 일으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선한 말'은 도덕적으로 진실하고 옳은 말로서, 말을 잘 선별 사용하여 교회와 성도간에 덕을 세울 것을 당부하십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1,2,4). 부드러운 말은 격분한 사람의 분노가 감소되고,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그 슬픔이 감해지는데, 과격한 말은 좋은 기분을 상하게 하고 찬물을 끼얹습니다.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이지만,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을 늘어놓는 그 사람과, 험담을 듣는 사람, 그리고 험담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까지 모두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첨예하게 대립된 분위기에서 격앙된 감정의 표출을 억제하고 재치와 유머로 분위기를 수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국하원에서 한 장관이 반대당 의원으로부터 정책과 무관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귀하는 수의사라고 들었는데 가축이나 상대할 일이지 국정을 맡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고 인신공격하자, 이 수의사 출신의 장관은 "말씀하신 대로 나는 수의사입니다. 한데 귀 의원의 안색이 좋지 않으신데, 내가 좀 봐드릴까요?"라고 응수하여 장내에 폭소가 터져 파국을 수습했다고 합니다.


너무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하지 못했고, 누군가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사람 앞에 선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어려웠기에 친구도 없었고, 가족과도 친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이렇게 소심한 모습으로 평생 살 수 없다며 큰 결심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반드시 미소를 머금고 한 가지 이상 칭찬을 하자' 물론 처음에는 매우 힘들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금방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으나, 굳은 결심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칭찬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좋은 말을 하는 소년에게 사람들은 찾아왔고, 많은 대화를 통해 소년은 훗날 달변가가 되고 또 극작가가 되어, 영국에서 가장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작가로 알려진 '버나드 쇼'가 되었다고 합니다.


셋째, 악한 분노의 말을 금하고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31절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고 말씀합니다. 여기 '악독'이란 '과거에 당한 손해나 모욕에 대한 원한을 버리지 않고 마음속에 품어두고 이웃과 화해하기를 거부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노함'이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분노로서 급격한 감정의 폭발'을 의미하고, '분냄'이란 '통렬하고 악독한 적의가 마음에 자리잡아서 습관적으로 표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또 '떠드는 것'은 분노를 자제 못하고 소리지르는 것이며, '비방'은 상대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비방하는 것' 등은 상대방에게 복수하거나, 해칠 목적으로 쏟아내는 파괴적인 언어를 의미하는 것들로, 이런 것을 악한 생각과 함께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말하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거의 90%는 파악되기에, 예수 믿고 변화된 모습은 '말'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며, 그가 쓰는 말과 언어가 그 사람을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소련의 장수학자 구리아닌은 '단명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대화를 석권하거나 남을 헐뜯기 좋아하는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말이 변하면 생각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면 마음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면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면 습관이 변하고, 습관이 변하면 인생이 변합니다. 예수 믿고도 '말'이 변하지 않았다면 그의 믿음은 헛것입니다.


그리고 29절은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은혜를 끼치는 말'은 어떤 말일까요? 본문 32절은 이렇게 부연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여기 '인자'와 '불쌍히 여기는 것'이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성품으로, '타인의 필요를 생각하고 관심을 갖는 마음'입니다. 이런 행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서로'에게 나타내야 할 덕목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 안에서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의 말을 해야합니다.


앤 그루델이라는 미국의 심리학자는 언청이로 태어나 늘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언청이 수술은 불가능했기에 그녀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부모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도 앤을 멀리했고, 친구들도 그런 앤을 피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세상 모두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교실을 칸막이로 막고 저편의 선생님 말을 듣고 따라하는 청각테스트가 있었습니다. 앤의 순서에 선생님은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앤, 나는 정말 네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어." 그 말에 앤은 너무 감동을 받고 그 말을 반복하는 대신 "정말이세요?"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럼, 그렇고 말고. 나는 정말 네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어." 이 말이 앤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어, 그 후 앤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아트 부치왈드의 [사랑 심기]라는 글입니다. 뉴욕에서 친구와 함께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친구는 택시기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운전을 아주 점잖게 잘하시는군요." 택시기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입을 뗐다. "선생, 혹시 도닦는 사람이오?" "아닙니다. 그저 추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꽉 막힌 교통체증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운전하시는 것이 감탄스러워 드린 말씀입니다." "아, 그래요?" 그 말을 남기고 택시는 가버렸다. 택시가 떠난 후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느냐고 친구에게 물었다. "뉴욕에 사랑을 심기 위한 내 노력의 일환이라네. 이런 식으로 해야 뉴욕을 구할 수 있네." 혼자서 거대한 도시 뉴욕을 구하겠다니? 그러나 친구는 말했다. "나 혼자가 아니네. 아까 그 기사가 하루에 20명의 승객을 태운다고 생각해보게. 그 기사가 기분이 좋으면 20명의 승객들에게 친절히 대하겠지. 그러면 20명의 승객들도 기분이 좋아져서 회사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 친절히 대할 테고, 그런 식으로 하면 적어도 천 명의 사람들에게 전파되지 않겠나? 그 정도면 적은 숫자가 아니지." 알고 보니 친구는 매일 각각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열 명에게 기분 좋은 말을 한 마디씩 해주고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열 명 중에서 단 세 명만 기분이 좋아져도, 결과적으론 3천 명 이상이 친절한 마음을 갖게 되는 셈이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나?" "효과가 없더라도 내가 손해볼 건 없지 않은가? 수고한다고 한마디하는 것이 돈 드는 일도 아니고, 시간이 드는 일도 아니니 말이야. 쇠귀에 경 읽기면 어떤가? 내일 또 다른 운전기사에게 덕담 한마디하면 되는 거지." 중요한 것은 스스로 실망하지 않는 것이라며, 공사장 인부에게도 '멋진 건물을 짓고있습니다'며 인사했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따뜻한 윙크를 건넸다. 메마른 도시에 사랑을 심는 일은, 그렇게 의외로 단순한 일일지도 모른다. 누가 그 일을 시작하느냐,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미우라 아야코는 '세상에 남기는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오늘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에서 저는 문득 잠에서 깨어난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일생을 마친 다음에 남는 것은 우리가 모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에게 준 것이다. 재미있는 일이야. 악착스레 모은 돈이나 재산은 그 누구의 마음에도 남지 않지만 숨은 적선, 진실한 충고, 따뜻한 격려의 말 같은 것은 언제까지나 남게 되니 말이야." 우린 무얼 남길까요?


복음을 전해야 할 거룩한 입술로 더러운 말을 해선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거짓을 멀리하고 모든 이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는 말을 해야합니다. 찬송함으로 찬송하는 마음이 일어나듯, 덕스럽고 따뜻한 말로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이제는 변화된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웃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사랑의 말을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