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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복된 열매

동문교회 손세용 목사님 | 2019-02-10 즐겨찾기에 추가

조회수 : 14 | 추천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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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복된 열매"
2019년 2월 10일 주일예배
사도행전 18 : 1 - 4 , 24 - 26 ; 잠언 25 : 13


어느 교회에서 대학부를 지도하는 총각 전도사님이 대학부 학생들과 식사하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말했습니다. "전도사님, 결혼 배우자 선호 2등이 목회자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데요." 결혼이 늦어져 초조해하던 전도사님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물었습니다. "그래? 의외인데. 그러면 1등은 무슨 직업인데?" 그러자 그 여학생이 깔깔 웃으며 말했습니다. "1등은 평신도래요." 여러분은 1등이라서 좋으시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누리는 가장 큰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좋은 사람 만나는 일일 겁니다. 좋은 부모와 스승을 만나고, 좋은 친구, 좋은 배우자 만나는 것보다 더 큰복이 없습니다. 조안 리는 [스물 셋의 사랑, 마흔 아홉의 성공]에서 말합니다. "내가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게 무언지 아오? 그 세월을 함께 한 좋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 세월 전체가 빛을 발하지는 못했으리라는 생각이오. 업적이나 재산이라는 것 별것 아니오. 좋은 사람을 만나고 그를 알고 지내는 것이야말로 우리들 인생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최대의 축복이라오." 그런데 이보다 더 큰복은, 나 자신이 좋은 사람되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사람되어 내 가족이 행복하고, 친구가 나로 인해 잘되고, 내 주변 사람이 나로 인하여 복 받게 되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걸고 욕심낼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이렇게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성도로서 가장 귀한 복은, 좋은 교회 만나고, 좋은 믿음의 지도자와 형제들을 만나 복되고 보람 있는 신앙생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복은 내가 교회의 좋은 일꾼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고, 교회에 힘이 되고 덕을 세우며, 성도들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훌륭한 일꾼이 되는 일입니다.


고 장영희 교수는 자신의 책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여류작가 앤 타일러의 [바너비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주인공 바너비는 명문가인데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 심부름센터 직원으로 삶이 곤고하고 절망에 빠져들던 어느 날, 막연히 자기도 천사를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데, 기적처럼 기차역에서 소피아라는 여섯 살 연상의 은행 여직원을 만나 그녀가 그의 인생의 천사가 되는 내용입니다. 장 교수는 그냥 웃어넘기리라 기대하며 "당신은 천사를 만나본적 있느냐?"고 작가에게 물었더니 정색하며 대답합니다. "물론이지요. 이제껏 살아오며 저는 수많은 천사를 만났습니다. 오늘 만난 당신도 나의 천사가 될 수 있고, 나 역시 당신의 천사일 수 있지요.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천사가 될 수 있어요" 장 교수는 그 말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나 자신을 넘어 서로가 서로에게 천사가 되어주는 일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사도행전 18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한 한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입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을 도와 고린도 교회와 에베소 교회를 세웠고, 후에 로마 교회까지도 세운 사람들로서, 신약 성경에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들이 이처럼 위대한 그리스도의 일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었고, 좋은 성도였으며, 그래서 좋은 일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에게 권면하는 말 가운데 "좋은 목사가 되기 전에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좋은 신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목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야말로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었고, 좋은 성도였으며, 그래서 좋은 사역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좋은 모습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첫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2절에 보면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행18:2)라고 했습니다. 아굴라는 소아시아 북부 흑해 근처의 본도 출신으로, '독수리'라는 뜻의 로마식 이름을 가진 유대인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아굴라는 유대인 노예였다가 자유민이 되어 로마의 명문가정의 브리스길라를 만나 결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유대인 말살정책으로 로마에 있던 모든 유대인들에게 추방령을 내려, 그는 불가불 로마를 떠나게 됩니다.


이때 그의 부인 브리스길라는 본래 로마 시민이었기에 그대로 로마에 머물 수 있었지만, 남편을 따라 고린도로 갑니다. 그때 아굴라에게는 천막 만드는 기술이 있었고, 브리스길라에겐 돈과 연줄이 있어, 이들이 천막제조와 가죽 수공을 하는 상사(商社)를 운영했습니다. 브리스길라가 자기 집안의 명성이나 능력으로 보면, 당시 로마사회에서 천시했던 유대인인 남편을 좇아 고린도에 간다는 것은 남편에 대한 애정과 신의가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로마에선 성 모럴의 부재로 얼마나 이혼이 심했던지 '이혼하기 위해 결혼하고, 재혼하기 위해 이혼한다'는 말이 나돌 만큼 가정의 붕괴가 심각했는데, 이들 부부는 서로 국적과 신분이 달랐지만 끝까지 서로 사랑하며 신의를 지키고 운명까지도 함께 한 아름다운 부부였습니다. 이들은 본도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고린도로,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에베소에서 다시 로마로 네 번 이상 주거를 옮겨 다녔습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끝까지 함께 하며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더욱 굳건히 하면서 부부의 신의와 정절을 지켰습니다.


신약성경엔 이 부부에 대한 언급이 여섯 번 나오는데, 그 중 네 번은 아내인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먼저 언급됩니다. 보통 남편 이름을 먼저 기록하는 법인데, 부인 이름이 먼저 나온 것은 아마도 그녀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두드러질 정도로 활동적이었고 더 능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칫 남편들이 아내를 시기하여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거나, 은근히 압력을 주며 괴롭히기가 쉬운데, 이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 속에서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아굴라는 아내를 신뢰하여 아내의 활동적인 사역에 아낌없이 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한 문서에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우리 중에 가장 으뜸 되는 부부의 이상형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칭찬할 만한 아름다운 부부였던 것입니다.


인도의 힌두교 신자였던 여인이 성경을 읽다가 복음을 깨닫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그녀의 남편은 심한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사역하던 한 선교사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남편이 화를 내고 야단을 치며 핍박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 여자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그 날 음식을 더 맛있게 요리합니다. 만일 불평을 쏟아 놓으면 저는 집안을 더 깨끗하게 청소합니다. 그리고 욕을 하면 오히려 더 부드럽게 대합니다. 때리면 더 다가가서 때린 손이 아프지 않았냐고 위로해 줍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기에 더 훌륭한 아내와 엄마가 된 것을 증명하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선교사의 권고를 들어도 끄떡 않던 그녀의 남편은 결국 아내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굴라 부부도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로 끝까지 함께 했던 진정 아름다운 부부였습니다.


둘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말씀을 잘 배우고 가르치는 좋은 성도였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고린도에서 천막 사업을 하다 바울을 만났습니다. 그때 바울은 아덴에서 선교에 실패한 후, 고린도에 왔는데, 그때 외부로부터 지원마저 끊겨 생계와 선교비 마련을 위해 아굴라의 집에 고용되어 장막을 깁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함께 고린도교회를 세웁니다. 11절에 보면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행18:11)고 한대로, 이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로부터 성경을 배운 것입니다.


이때 성경을 철저히 배웠기에 저들은 말씀을 아볼로에게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24절 이하 말씀입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행18:24-25).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가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들어보니 논리적이고 웅변적이었으나, 아직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대하여 증거한 것만 알고 있을 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등 복음의 핵심에 대해선 모르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이 점만 알면 하나님께 아주 귀하게 쓰임 받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행18:26). 그들은 아볼로를 불러다 말씀을 가르쳐 복음의 핵심을 깨닫게 하여 그를 온전한 설교자가 되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이처럼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웠고, 또 잘 가르쳤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죄는 '모르면서도 배우려 하지 않고, 배우고서도 남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고, 아는 것을 행치 않는 죄가 있다'고 하는데, 이들 부부는 자기들이 먼저 사도 바울을 통해 열심히 복음에 대하여 배웠고, 자기들이 배운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배우셨습니까? 세상 학문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16년을 배우고도 모자라 대학원이다, 박사과정까지 공부하기도 하고, 제도권 교육만으론 부족하다고 과외며, 학원 등을 다니며 그렇게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는 얼마나 시간을 내어 공부하고,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위해서는 얼마나 헌신하십니까? 말씀을 배우지 않는 것도 잘못이지만,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전도자 무디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100사람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성경을 읽고 있으면 나머지 99사람은 그리스도인을 읽는다." 이 말은 예수 믿는 한 사람이 예수 믿지 않는 99명 가운데서 매일 성경 말씀을 읽으면 믿지 않는 99명은 성경 읽는 그 사람을 통해서 작은 예수를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믿는 사람이 성경을 읽고 배우면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디는 스스로 성경을 열심히 읽어 백만 명을 그리스도께 인도했습니다.


중국 지하교회 지도자 중에 예순 넘은 할머니 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끌려 들어가 매맞은 것만도 세 번이나 된다고 합니다. 죽도록 매를 맞고도 밖으로 나오면 또다시 집집을 돌아다니며 전도하고 격려하고 성경 말씀을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이쯤 되자 공산당원들도 지쳐 가지고 나중에는 다시 할머니를 불러놓고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한번 더 매맞으면 죽고 말 것이니 웬만하면 이제는 좀 그만하십시오." 그러자 이 할머니는 눈썹 하나 까딱 않고 이렇게 대꾸했다고 합니다. "내 나이 예순이 넘었소이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일반이오. 끌려가 죽지요 뭐." 그리고는 또 다시 전도하러 다니며 말씀을 전하는 일에 충성을 다하더랍니다.


셋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사도 바울에게 훌륭한 동역자였습니다. 그들은 고린도에서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자 자기 집을 드려 교회를 시작했고, 바울이 고린도 사역을 마치고 에베소로 가자, 이를 도우려고 같이 갑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행18:18). 이들은 에베소 사역을 위해 고린도의 자기 사업을 정리하여 에베소로 이주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거환경이나 자녀교육, 혹은 재산증식을 위해 이사를 하는데, 자기의 신앙과 복음사역을 위해 이사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이뿐 아니라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고전16:19)라는 말씀을 보면, 에베소교회가 이들 집에서 이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오늘 우리 교회가 개인 집으로 옮겨야 할 형편이 된다면 누가 자기 집을 쉽게 개방할 수 있을까요? 때로 집에 손님이 찾아와 며칠 묵어 가는 것도 불편한데, 밤낮으로 교인들이 자기 집을 드나드는 일은 보통의 헌신으론 안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자기 삶을 온전히 내어놓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또 로마서에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롬16:3)는 말씀을 보면, 이들은 다시 로마에 와있습니다. 이들은 에베소에서 바울을 돕다가, 유대인을 박해했던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자, 로마의 복음화를 꿈꾸던 바울의 뜻에 따라 로마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저의(브리스가와 아굴라)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롬16:5)고 하여, 로마에서도 그들 집이 교회인 것을 보면, 로마에서도 이들은 자기 집을 주님께 드려 교회로 삼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자세는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4) 이 말은 '사형 집행자의 도끼 밑에 자기 목을 내어놓다'는 뜻인데, 아마도 에베소에서 데메드리오와 유대인들의 폭동으로 바울이 죽을 위기였을 때,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울을 지키려했던 사도행전 19장의 사건을 염두에 둔 내용으로 보여집니다. 이들은 바울이 위험 가운데 있을 때, 그와 함께 죽으려는 일사 각오로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바울을 위해 자기들의 목숨까지 내놓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이 자신을 도우려고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함께 해준 것에 대해 말로 다할 수 없이 감사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충성한 것은, 단지 어떤 개인이나 교회 조직에 헌신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이고,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중요한 방편이었기에, 이들은 교회 조직이나 인간에 대한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교회와 그 종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했고, 그것을 곧 주님을 향한 충성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트루먼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고향에서 농사지었는데, 동네 장로교목사와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느 몹시 춥고 눈오는 날, 이 목사는 떠돌이 노인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조객은 한 명도 없고 시체와 인부와 목사만 묘지로 가는데, 85세의 트루먼이 지팡이를 집고 차에서 내려 목사와 함께 묘지를 향해 말없이 걸었습니다. 목사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대통령, 이 추운 날에 어쩌려고 나왔습니까?" 노 대통령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당신과 나는 친구가 아니오? 당신이 혼자 장례를 치르는데 내가 도와줄 일은 함께 걷기라도 하는 일이 아니겠소." 만년의 트루먼은 건강도 좋지 않았으나 친구를 위한 최선인, 어려운 길에 함께 동행해 주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당시의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울 혼자의 힘이 아니라 수많은 성도들의 아름다운 헌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아굴라 부부가 바울을 위해 쏟은 헌신을 보면, 먼저는 바울이 가장 어려울 때 그를 영접하여 도운 것입니다. 이들은 고린도에서 처음 바울을 만났는데, 바울은 이때 아덴에서 선교의 실패 후로서, 가장 어렵고 힘든 때였기에,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2:3)고 말했습니다. 이때는 다른 곳에서 선교의 지원도 끊겨 스스로 장막을 깁는 일을 해야할 만큼 어려웠고, 그리고 고린도교회에선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영접하여 자기 집에 거하게 하며, 교회를 세웠고, 바울을 위로하고 도와주며 이곳에서의 선교에 큰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바칠 만큼 바울을 사랑하고 바울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4)는 말씀대로 자기들의 목숨까지도 내놓고, 바울과 그의 사역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고 받들고 섬겼습니다. 이런 성도들이 주변에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 바쳐 복음을 전하다가 끝내 로마에서 순교까지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이들은 바울이 죽을 때까지 그를 위해 헌신과 지원을 다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하기 전 마지막으로 쓴 디모데후서에서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딤후4:19)고 말합니다. 그런데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딤후4:10)며, 많은 사람들이 떠나버린 외로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기와 함께 해 준 아굴라 부부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당부합니다. 끝까지 사랑하며 함께 일한 저들을 잊지 못해, 죽음 직전 저들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시인 정채봉의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라는 제목의 이런 시가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나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와 같은 만남이다.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닿았을 때는 던져 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와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스유엔(史源)의 [상경(商經)]에 보면 사람을 얻는 법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한다. 눈은 먼 곳에 두되 가까이에 있는 인연에 충실하다 보면 장차 드넓은 천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사람을 얻는 일이 세상을 얻는 일인데, 사도 바울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사람이 있어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지난해 한동대 김영길 명예총장의 부인 김영애 권사님에게 재미교포인 두 할머니가 찾아와 말하더랍니다. "저희는 사촌인데 1975년 미국으로 함께 이민 갔습니다. 전화 한 통 겨우 할 수 있는 동전이 전부였어요. 마중 나온 지인은 우리를 봉제공장으로 안내했어요. 봉제공장에서 도시락 하나로 하루 끼니를 해결하고 종일 물로 허기를 달래며, 오후엔 간식으로 나오는 눈썹만큼 얇은 멜론 한 조각을 껍질째 다 먹었지요. 일한 만큼 월급을 많이 받으니까 하루에 2∼3시간 자고 죽기 살기로 일만 했어요. 그러다 이듬해 결국 과로로 쓰러져 입원했어요. 그때가 40대 초반이었는데 영양실조로 병이 난거지요. 동생은 미용학교에서 기술을 배워 미용실을 냈지요. 우리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미국에서 집도 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렇게 살다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이 '넌 재봉틀만 돌리다 왔구나'하실 것 같았어요. 그 날로 우리 자매는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하고, 말이 통하는 조국에 가서 섬기기로 했어요." 두 분은 한국의 한 요양기관에서 18년 동안 자비량으로 봉사하다, 이제 미국에 돌아가 정부지원 노인복지아파트에서 살기로 하고, 평생 피땀 흘려 모은 전 재산을 기증하려고 온 것입니다. "저희가 살던 미국 집을 팔아 오래 전 서울에 아파트를 샀었는데, 그 아파트와 평생 모은 돈 6억5천만 원과 29만5천 달러, 이 전 재산을 한동대에 기부하겠습니다. 저희의 눈물과 땀을 한동에 심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싹 틔우시고 가지를 무성케 하셔서 많은 젊은 청년들에게 열매 맺게 하시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이 또 있을까요." 이런 분들의 헌신으로 이 땅에 천국이 세워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들처럼 충성된 좋은 분들이 있어, 우리 교회가 건강하게 선교와 봉사와 교육의 사명을 감당해가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14명이 직장과 가정 일을 내려놓고, 적지 않은 비용까지 감당하며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는 찾아가기조차 힘들어 사흘동안 가야하고, 또 가서는 잠자리도, 먹는 것도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데도 15년째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금식하며 매일 교회에 나와 중보기도로 동참한 분들도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어떤 분은 주일에 1부, 2부 예배와 오후찬양예배 등 모든 예배에 참석하여 찬양대와 교사로 봉사하고, 교회 주방의 궂은 일을 손 마를 새 없이 봉사하고, 꽃꽂이를 위해 수고하며, 주중에도 몇 번씩 교회에 나와 어려운 가정들을 심방하고, 또 모든 애경사에 참석합니다. 또 새벽마다 교회를 위해 기도로 봉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엊그저께 홀로 사는 분이 교회 영상장비 구입에 보태라고 무명으로 3백만 원을 가져와 제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아굴라 부부처럼 모두 좋은 사람들을 통해 이 땅에 천국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도 모두 좋은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며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2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