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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축복해주신 예수님 - 주일 2부 예배

동문교회 손세용 목사님 | 2019-05-05 즐겨찾기에 추가

조회수 : 2 | 추천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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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축복해주신 예수님"
2019년 5월 5일 주일예배
마가복음 10 : 13 - 16 ; 시편 127 : 3

어느 교회에서 어린이주일을 맞아 평소 재미있게 설교하는 교육전도사 대신 담임목사님이 설교를 하니, 아이들이 떠들고 난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겨우 설교를 마치고 손을 들어 축도를 하니 한 아이가 옆에 있는 친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그에게 묻습니다. "목사님이 왜 손을 들고 기도하니?" 그러자 친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목사님이 설교 잘못했다고 지금 하나님 앞에서 손들고 벌을 서고 있는 거야!" 저도 오늘 설교 못했다고 축도하면서 손들고 벌받을 것 같습니다.^^


핀란드 헬싱키대학이 2002년 세계 185개국 국민의 IQ를 조사한 결과, 이스라엘 국민의 평균 IQ는 95(26위)인데, 홍콩 1위, 한국은 106으로 세계 2위였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공부하여 핀란드학생보다 2배 이상 더 공부하는데 국제학업성취도비교평가에서는 핀란드에 자주 뒤집니다. 한국 교사의 수준이나 교육열은 세계 최고인데, 노벨상은 평화상 1명인데, 유대인은 2백명 가량으로 전체 수상자의 30%입니다. 하버드대 학생 중 유대인이 30%인데 한국인은 1%도 안됩니다.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 간부 중 유대인은 41.5%지만, 한국인은 0.3%입니다. 미국 억만장자 40%가 유대인, 세계 30대 기업 중 12개 기업은 유대인이 세웠답니다. 미국 국민총소득의 15%를 유대인이 벌어들이고, 세계 5대 메이저식량회사 중 3개가 유대인 소유이며, 세계 7대 메이저석유회사 중 6개가 유대인 소유입니다. 유대인 재벌인 로스차일드와 록펠러 가문이 소유한 체이스 맨해튼 은행은 단독으로 세계경제공황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랍니다. 미국 대학교수 중 25-35%, 뉴욕 중고등학교 교사의 50%, 뉴욕 의사의 과반, 미국 변호사 20%가 유대인이랍니다. 세계적 언론인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NBC, CBS, ABC 방송을 장악하고있습니다. 2천년간 나라도 없이 떠돌아다니고, 전 세계 인구의 0.2%, 미국 인구의 2%에 불과한데 어떻게 세계경제와, 정치, 경제, 문화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민족이 됐을까요?


무엇보다도 유대인은 조기 말씀교육에 있습니다. 그들은 거실에 TV 대신 책장과 책상이 있어 책을 보고 어릴 적부터 토라를 암송하고, 탈무드를 토론하면서 자라는 것이 성공비결이랍니다. 4살부터 13살까지 토라를 외워야 말씀의 아들이 되어 미쯔바라는 성인식을 해줍니다. 13세가 되면 마을사람들이 회당의 성인식에서, 200$ 정도씩 부조하여, 약 5-6만$의 증권계좌를 개설, 사회진출 할 때는 1-2억 원을 마련해줍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이 첫 번째 성공이고, 유대인으로 태어나 말씀의 아들 되는 것이 두 번째 성공이며, 자식을 낳아 말씀의 아들로 세우는 것이 세 번째 성공이랍니다. 이처럼 그들은 자녀에게 신앙을 계승하여 세계에서 뛰어난 민족이 되었는데, 우리는 자식에게조차 믿음을 물려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어린이에 대해 이렇게 교훈하십니다. 첫째, 어린이를 예수님께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10:13-14). 예수님이 어느 마을을 지나가시는데,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축복해주시도록 데리고 나왔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을에 훌륭한 스승이 찾아오면 아이들을 데려다가 그 모습을 보여주며, 그로부터 축복을 받게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예수님이 지금 어린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복을 빌고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을 꾸짖고 물리쳤습니다. 이뿐 아니라 제자들은 눈앞에 가시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시고,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를 축복하는 것은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린이에게 복을 빌어준다고 당장 눈앞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그 변화는 이삼십 년 뒤에나 나타나게 됩니다. 어린이에 관한 한 눈에 띄게 당장 얻는 효과는 없기에, 우리는 어린이에 대해 소홀하거나,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실망하시고 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4절). 이렇듯 제자들을 꾸짖으시고는 당신 곁에 모인 어린아이들을 차례차례 모두 안아주시고, 안수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 일이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쳐보면 장난하고 돌아다니며 가르치는 내용을 귀담아 듣는 것 같지만, 질문해보면 줄줄 대답을 잘합니다. 반면 어른들은 고개도 끄덕이고 간혹 '아멘'하며 잘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물어보면 아무 것도 모릅니다. 유대인들은 퇴근하면 대부분 집에서 아이가 잘 때까지 아이들과 대화하며 잠을 잘 때 아이들에게 말씀을 읽어주기에, 아이들은 4세쯤 되면 1,000개 이상의 어휘를 소화한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하브루타'라는 토라와 탈무드를 가지고 토론하며 실제적인 지식이 축적되고 창의력이 발달되며, 논리력이 향상된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임신했을 때 태아에게 책을 읽어주고, 식사 땐 아버지와 자녀가 토론하고, 잠들기 전에 어머니가 동화를 들려주고, 스스로 묻고 답하며,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이 토론하고, 학생들끼리 둘씩 짝을 지어 서로 토라와 탈무드의 구절을 놓고 심각하게 논쟁하며 창의력, 암기력, 문제해결능력, 읽기 능력, 쓰기 능력, 판단능력을 향상합니다. 유대인은 아기가 그 뜻을 이해하든 못하든 구약성경의 이야기부터 들려줍니다.


유명한 D.L.무디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전도훈련을 받고 나가서 전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도를 하고 돌아와서 전도 보고를 하는데 무디가 이런 보고를 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오늘 두 사람 반을 전도했습니다." '두 사람 반'이라는 말에, 사회자가 "어째서 두 사람 반입니까? 아! 알겠습니다. 어른 두 사람 전도하고 어린이 한 명을 전도하셨군요"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때 무디는 사회자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거꾸로 얘기하셨습니다. 저는 어린이 두 명을 전도했고 어른 한 명을 전도했습니다. 어른은 인생을 벌써 절반 이상 산 사람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말하면 반(半)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아직 일생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무한한 일생이 그 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에 어린이를 구원한다는 것은 그의 온전한 일생을 구원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실제적인 이야기입니까? 어쩌면 어른보다 어린아이가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어린아이들을 돌아보는 것이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아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가로막았지만, 예수님께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어릴 때는 학교에나 열심히 다녀서, 좋은 대학을 들어가고, 그리고 좋은 직장을 취직하고 나면, 그때 가서나 교회에 나와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모님들이 계신 듯 합니다. 그러나 어릴 때, 감수성이 예민하고 모든 가르침에 대하여 의심 없이 받아들일 때, 예수님께 인도하지 않았다가, 다 큰 다음에 교회에 나가라고 하면, 이미 고정관념이 굳어버린 그때에 쉽게 교회에 다닐 것 같습니까?


"당신은 언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코리아갤럽에 의뢰해서 조사한 '한국인의 신앙의식 조사보고서'가 있습니다. 먼저 '9세 미만에 예수님을 받아들였다'는 대답이 5.3%입니다. 그런데 '10살부터 14살까지에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대답은 12%정도이고, '15세부터 19세 사이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대답은 무려 26%나 되는 것을 보면, '중고등부 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20세부터 24세 사이에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대답은 13%, '25세부터 29세까지'가 10.7%, 그 다음 '30세부터 39세 사이'가 두 번째로 많은 18.3%인데, 아마 결혼 후 예수 믿는 아내에게 끌려나온 남자들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40세 넘어 믿은 사람들은 14.6%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우리 중 절반은 19세 이전에 믿었고, 39세 전에 믿은 사람이 85.3%로서, 40세가 넘으면 믿기가 힘들다는 결론입니다. 이걸 보면 어린이를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어릴 적에 아버지 서재에서 보니, 책상 위에 주둥이가 좁은 유리병 속에 사과가 들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유리병을 잘라 맞추어 놓은 것도 아니고, 사과도 멀쩡한데, 어떻게 저렇게 좁은 주둥이 속에 사과를 집어넣었을까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해 봄에 그 비결을 알아냈습니다. 봄철 사과나무에 꽃이 피어 작은 사과가 맺히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가 유리병을 가져다가 작은 사과가 맺힌 가지를 유리병 속에 집어넣은 후 그 병을 가지에 매달아 놓은 것이었습니다. 아직 사과가 크기 전에 병 속에 넣으니, 사과는 바람에 나뭇가지에 긁히지도 않고, 벌레가 파먹지도 않고, 그 안에서 탐스럽게 익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어릴 때부터 믿음으로 기르지 않으면 나중엔 사과가 깨지기 전에는 유리병 속에 집어넣을 수 없듯, 자녀들도 무엇으로든 깨어지지 않고는 믿음의 세계로 들어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라야 합니다. 유명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대체로 경건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어린이로부터 배워야한다고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막10:15). 여기 어린이와 같아야한다는 말씀은 '어린이처럼 유치해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 '어린이 같이'라는 말은 영어로 '유치하다'는 뜻의 'childish'가 아니라 '어린이와 같으라'는 뜻의 'childlike'입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어린이와 같으라'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일'에 있어서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받든다'는 말은 헬라어로 '덱세타이'라는 단어인데, 다른 말로 번역하면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다시 번역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믿음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그 하나는 겸손히 회개하는 자세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자백하는 태도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들이 잘 회개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른들이 잘 회개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어린이입니다. 어른은 사고가 경직이 되어, 자기의 어떤 경험을 통해 인생을 보는 시야가 굳어지기에 어떤 일정한 나이가 지나면 교정이 거의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교육이 힘듭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무엇을 잘못했을 때, 그것을 지적하면 쉽게 '네, 제가 잘못 했어요'하고 자기 잘못을 쉽게 인정하기에 잘못을 고치기가 쉽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왜 회개하지 않습니까? "내가 무얼 잘못했어? 이 정도 잘못 안 하는 사람 어디 있어?"라고 생각하기에 회개하지 않습니다.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은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자기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고 뉘우칠 줄 알아야 그 잘못을 고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고 하여 이 '돌이켜야 한다'는 말을 강조하셨습니다. 회개 없이 하나님의 나라 갈 수 없는데 회개하는 일은 어린아이일수록 더 잘 하기에, 어린아이가 천국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천국에 가는 믿음은 어린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요한복음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1:12)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영접하는 자'와 '믿는 자'를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기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곧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믿는 것이 곧 영접하는 것이요, 영접하는 것이 곧 믿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여러분, 어른과 어린이 중 누가 더 잘 믿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어린이입니다. 간혹 어린이에게 유괴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도 어린이는 사람들을 잘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의심부터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는 쉽게 믿고, 잘 받아들이며, 잘 의지합니다. 자녀들은 늘 부모님을 믿고 의지하기에, 부모가 아무 가진 것이 없어도, '우리 부모님은 분명히 금송아지라도 가지고 계실 거야'하는 생각을 하며, 부모님을 의지하기에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런 신뢰하는 자세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금은 중견 인기작가가 된 L모씨가 가난한 청년시절에 겪은 체험입니다. L씨는 그 날 밤도 선배로부터 받은 번역물을 가방에 넣고 무허가 여인숙에 들어갔습니다. 요금이 독방이 300원, 합숙이 200원인데 합숙요금을 지불하니 남은 돈은 300원 뿐이었습니다. 책상 위에 원고지를 놓고 한두 시간 작업했을까, 남루한 차림의 소년이 신문뭉치를 끼고 들어왔습니다. 그는 낯선 불량소년과 하룻밤 지새야한다는 생각에 남은 돈 300원이 걱정되어, 소년이 손 씻으러 방을 나가자 재빨리 300원을 속셔츠 주머니에 감추자 다소 안심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년은 옷을 벗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데 천 원이 넘었습니다. 녀석이 그 돈을 어떻게 간수할까 지켜보는데, 소년은 돈을 웃옷 주머니에 넣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원인 모를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봐, 돈을 그렇게 간수해도 되는 거야?" "그럼 어디에 둬요?" "누가 가져가면 어떡할래?" "이 방에 나와 아저씨뿐인데 누가 있기에요?" "그래 이런 생활한지 얼마나 되지?" "고아원에서 나온 후 3년 됐어요." 고아원을 나온 데다 이런 삶을 3년이나 했으면 꽤 닳고 불량해졌을 텐데 실로 순진무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년이 숨소리를 내며 잠들자 그는 참지 못하고 그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얘, 얘, 나는 말이다. 네가 의심스러워서 돈 300원을 감추고 책은 이렇게 베개를 삼았단다. 나를 용서해 줄 수 있겠니?"하며 그 소년을 바라보자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다움 미소가 피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아저씨가 저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러나 제가 아저씨를 의심하는 것은 잘못이에요." 그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소년의 자그마한 몸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을 쏟았습니다.


셋째, 어린이들은 축복 속에 자라게 해야한다고 하십니다.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막10:16). 여러분은 복을 구하고, 복을 내리는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유대인들은 복을 비는 것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마을에 특별히 존경받는 랍비나 어떤 훌륭한 분이 오면, 어린이를 데리고 가서 "저 어른을 쳐다보아라. 얼마나 훌륭한 분이냐?"라고 말하면서, 자녀들로 그런 분들에 대해 존경심을 갖도록 가르치면서, 그분에게 다가가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어 복을 빌어 줄 것을 간청하는 아름다운 풍속이 있어왔습니다.


우리는 어린이에게 어른에 대한 존경심을 갖도록 가르쳐야합니다. 요즘 어린이에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하는데, 왜 그렇습니까? 평소 존경하는 사람을 본 일도 없고, 들어본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곤 사람들을 비방하는 소리뿐이니, 자녀가 누구를 존경할 수 있겠습니까? 자녀의 생각 속에 존경이란 말의 개념조차 없으니 어떻게 바로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도로시 L. 놀테의 [아이들은 삶 속에서 배운다]는 글입니다. "만일 아이가 비판 속에서 자라면/그 아이는 비난하는 것을 배운다.//만일 아이가 적대감 속에서 자라면/그 아이는 싸우는 것을 배운다.//만일 아이가 두려움 속에서 자라면/그 아이는 걱정부터 배운다.//만일 아이가 동정을 받고 자라면/그 아이는 자신에 대해 슬퍼하는 걸 배운다.//만일 아이가 기이한 행동을 하는 부모 속에서 자라면/그 아이는 부끄러움을 배운다.//만일 아이가 질투 속에서 자라면/그 아이는 시기심을 배운다.//만일 아이가 수치심 속에서 자라면/그 아이는 죄책감부터 배운다.//그러나 만일 아이가 참을성 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면/그 아이는 인내심을 배운다.//만일 아이가 격려 속에서 자라면/그 아이는 자신감을 배운다.//만일 아이가 칭찬 속에서 자라면/그 아이는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만일 아이가 무엇이든지 허용되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면/그 아이는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만일 아이가 인정을 받으며 자라면/그 아이는 분명한 삶의 목표를 배운다.//만일 아이가 나누는 걸 보고 자라면/그 아이는 자비로운 마음을 배울 것이다.//또 만일 아이가 정직함과 공정함 속에서 자라면/그 아이는 진리와 정의가 무엇인가를 배운다.//만일 아이가 다정한 분위기 속에서 자라면/그 아이는 세상이 살아갈 만한 멋진 곳임을 배운다.//그리고 만일 아이가 평화로움 속에서 자라면/그 아이는 마음의 평화를 배울 것이다.//당신의 아이들은 지금 어떤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는가?"


카네기재단은 '출발점'(start point)이란 육아교육 세미나에서 출생에서 3세까지 영아교육문제에 대한 결론은 부모를 대치할 여하한 환경도 없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뇌는 3세까지 가장 빨리 발달하는데, 이 귀한 시기에 부모의 세심한 양육과 풍부한 사랑, 행복한 분위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똑같은 재능을 가진 다섯 명의 한국인 유학생과 다섯 명의 유대인 유학생이 같은 조건에서 공부한다면 어느 쪽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까요? 단연 유대인입니다. 그 이유는 기부문화 때문입니다. 한국인 중 두세 명은 유학생활 중 돈이 떨어져, 돈을 벌어 학비를 대느라 공부에 지장이 생기거나 심하면 중단하게 됩니다. 반면 유대인은 돈이 없어도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박사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돈이 없어 공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유대인은 공부를 돕기 위한 기금이 언제나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힐렐고등교육 기금은 고등교육을 원하는 모든 유대인에게 장학금이 제공된다고 합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당신은 무엇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느냐?'하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1. 좋은 부모가 되는 것 95% 2. 행복한 결혼 생활 90% 3. 좋은 친구를 갖는 것 83% 4. 자기 분야에서 정상이 되는 것 80% 5. 권력 또는 영향력을 소유하는 것 16% 6. 부자가 되는 것 12% 7. 명예를 얻는 것 8%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당신은 지금 무슨 일에 가장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있습니까?'였고,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돈 버는 일에 95% 2. 명예를 얻기 위해 90% 3. 권력과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일에 83% 4. 행복한 결혼생활에 20% 5.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10% 6.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일에 7%로 나온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자기가 성공이라고 여겼던 일과는 완전히 반대로 시간을 투자하며 살고 있는 것이 이 시대 부모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녀에게 다른 것은 다 해주었더라도, 믿음을 전해주지 못했다면 부모로서 실패임을 알아야합니다.


1968년 김득렬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서울시내 초등학교 5학년 아동 중 교회에 나가봤거나 나가고 있는 아동이 전체의 80%나 됐다고 합니다. 이렇게 50년 전에 뿌린 씨앗이 지금 5, 60대가 되어 한국교회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린이에게 복음의 씨를 뿌리지 않으면 2-30년 후에는 한국교회는 텅텅 비고 말 것입니다. 어느 개척교회에서 교회학교 어린이들까지 나와 40일 새벽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새벽기도시간에 졸다 깨어 보니 아침 7시였습니다. 급히 집으로 뛰어가다 길에 쓰러져 있던 할머니를 발견하고 병원에 데려가 목숨을 구했습니다. 할머니와 아들이 학교에 찾아와 보답을 약속하자, 어린이가 말합니다. "저는 컴퓨터와 자전거와 장난감도 있어요. 제게 선물하려거든 우리 교회 성전을 건축하게 도와주세요." 이들은 상당한 액수를 헌금하여, 성전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인 시편 127편 3절을 새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자식은 주께서 주신 선물이요, 태 안에 들어 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보상이다." 진정 우리 자녀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상급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정은 복된 가정입니다. 자녀를 하늘의 상급으로 받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