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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첫사랑을 잃지 마십시오

동문교회 손세용 목사님 | 2019-08-04 즐겨찾기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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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첫사랑을 잃지 마십시오"
요한계시록 2 : 1 - 7 ; 예레미야 2 : 1 - 3


새내기 신부가 신랑에게 물었습니다. "자기 결혼 전에 사귀던 여자 있었어? 솔직히 말해봐!" "응 있었어." "저..정말? 사..사랑했어?" "응. 뜨겁게 사랑했지." "뽀뽀도 해봤어?" "해봤지." 얼굴이 노래진 아내가 눈을 치켜 뜨고, 손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긴장하여 묻습니다. "그 여자 지금도 사랑해?" "그럼, 사랑하지! 첫사랑인데.." 울상이 된 아내가 마지막으로 소리를 빽 질렀습니다. "그럼 그년하고 결혼하지 그랬어!" 가까스로 웃음을 참던 신랑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년하고 결혼했잖아." 첫사랑과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헤어진 첫사랑 애인이 다른 사람과 잘살고 있다고 하면 배가 아프답니다. 그런데 잘살지 못한다면 가슴이 아프답니다. 그리고 첫사랑 애인이 다시 만나자고 하면 골치가 아프다고 합니다.


[라이프]지에 실린 [사랑의 과학]에 의하면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처음 만나서 사랑을 시작할 때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진실이긴 한데, 문제는 그 마음이 얼마나 가느냐가 문제랍니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연구해보았더니 일반적으로 18개월이 가고, 가장 오래 간 사람이 3년 가더랍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이처럼 시간이 가면 변하지만, 그러나 남녀가 서로에 대한 성실과 책임을 다한다면 뜨거운 감정은 식을지라도 신뢰는 더욱 쌓여가며 평생을 해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에는 유명한 삶은 개구리 요리가 있다고 합니다. 이 요리는 손님이 앉아 있는 식탁 위에 버너와 냄비를 가져다놓고 직접 보는 앞에서 개구리를 산 채로 냄비에 넣고 조리하는데, 이때 물이 너무 뜨거우면 개구리가 펄쩍 튀어나오기 때문에 맨 처음에는 물을 개구리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로 맞춰놓으면 개구리는 따뜻한 물에 기분 좋은 듯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데, 그러면 이 때부터 매우 약한 불로 물을 데우기 시작합니다. 아주 느린 속도로 서서히 가열하기 때문에 개구리는 자기가 삶아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기분 좋게 잠을 자면서 죽어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20세기 미국의 예언자로 불리는 에이든 토저 목사님(A.W. Tozer)은 종교가 타락하는 세 단계를 설명했습니다. 첫째 단계가 기계적 상태입니다. 아무 느낌 없이 종교적 활동을 반복합니다. 오랫동안 출석했기 때문에, 너무나 많이 드려왔던 예배며 찬양이기 때문에 새로운 감격과 기쁨이 없이 기계적으로 종교적 행위만 반복하는 단계입니다. 다음 단계가 습관적 상태입니다. 아무 느낌 없이 종교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지금 자기 영혼 죽어가고 공동체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분별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부패의 단계입니다. 이 상태는 양심이 화인 맞아 죄에 대한 두려움을 모르며 성령의 능력도 모르고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잊은 채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으며, 생각 없이 죄악을 반복하는 상태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요한이 귀양살이하던 밧모섬에서 기도 중에 하늘의 계시를 받고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고 하여 에베소교회 지도자와 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며, 교회의 주의 종들을 붙드시고, 교회 안에 임재하시고 활동하시는 것을 볼 때, 교회란 목사와 교인이 모인 인간집단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이 당신의 종들을 붙드시고, 교회 안에 계시며, 교회를 다스리신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주님은 에베소교회를 향해 칭찬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2:2-3). 주님은 먼저 에베소교회에게 칭찬부터 하십니다. 그것은 에베소교회의 적극적 행위인 '수고'를 아신다는 것과, 소극적으로는 '인내'를 아신다는 칭찬입니다. 그 칭찬의 구체적인 내용은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2절)으로서, 교회를 거짓된 자들로부터 참된 진리를 수호한 것입니다. 이 '거짓된 자들'을 6절에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한다"고 하여, 무율법주의 성향을 지닌 니골라당이란 이단입니다. 당시 에베소시민의 최고 자부심은 자신들이 아데미신전이 있는 도시에서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데미란 미의 여신 '알테미스'로서, 로마에선 '다이아나'로 불렸는데, 이 알테미스 신전에선 음행이 종교의식으로 행해졌습니다. 이런 우상숭배의 영향으로 생겨난 니골라당이 교회 안에 부도덕과 우상숭배를 조장하여 교회가 순결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게 되자, 에베소교회는 그 거짓된 자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복음의 진리를 수호한 것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에베소교회에 대한 책망이 나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 에베소교회가 첫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하십니다. 이 '처음 사랑'이란, 에베소 교인들이 가졌던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교회 안에 있던 거짓 사도들을 분별하느라 형제를 의심하고 엄하게 대하면서, 형제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다는 것과,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품었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불가분의 관계로서(막12:29-31), 참된 기독교 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형제사랑을 모두 포함하기에, 둘 다 타당성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이단을 분별하여 축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비판이 체질이 되고, 습관이 돼선 안 됩니다. 에베소교회는 정의감이 강하고 비판정신과, 개혁적인 교회로서 이단을 단호히 척결했습니다. 이 일은 매우 잘 했으나 그러면서 사랑을 잃었습니다. 사랑 없는 개혁과 비판은 결국 상처뿐인 분열로, 교회를 시들게 했습니다. 슈바이처는 '기독교의 가장 큰 이단은 바로 사랑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윌리엄 바클레이는 지적했습니다. "이단 색출은 사랑을 죽였다. 모든 잘못된 사람들을 제거하려는 열성이 차갑고 엄격한 정통 보수를 초래했다." 죄를 용납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죄인들을 비판하고 제거하는 데만 집중하면 교회를 냉랭하고 경직되게 합니다. 에베소교회는 주님과 친밀한 교제보다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않고 이단을 비판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쏟다가 주님께 대한 첫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성 어거스틴이 말합니다. "그대들은 진리를 한번 강조할 때 사랑은 두 번 강조하시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통해서만 진리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오." 세상은 먼저 진리에 대해 관심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실로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사랑을 먼저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사랑을 통해서만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어서 5절에서 에베소교회를 향한 세 가지 권면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5a). 첫째,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죄의 원인을 생각하되,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생각하라는 명령입니다. '생각하고'란 헬라어 '므네모뉴에'는 '계속 생각하고 회상하라'는 말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잃어버린 첫사랑을 왜 잃게 됐는지 생각해야했습니다. 자기 건강을 끊임없이 살피는 이가 건강하듯, 계속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해야합니다.


[첫 마음]이란 정채봉님의 시입니다. -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를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 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지리라.


둘째,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여기 '회개하라'는 말씀은 점진적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하라는 것입니다. '죄를 청산하라'고 하면 '차차 정리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치고 죄를 정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 꾀 많은 학생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죽기 직전에 회개해도 천국에 갈 수 있지요?" "그러네." "그럼 죽기 단 몇 분 전에만 회개해도 되겠네요?" "그렇지." 학생이 안심하자,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자네는 죽을 시간을 정확히 알고있나?" 학생이 머리를 긁자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지금 바로 회개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네." 토마스 아퀴나스는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은 그에게 회개할 내일도 주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셋째,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십니다. 에베소교회가 회복할 처음 행위는 먼저, 주님께 대한 충성된 믿음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계2:2)을 칭찬합니다. 에베소교회는 이단을 색출하고, 니골라당을 미워할 만큼 진리수호에 힘썼는데, 이 믿음이 점차 식어지고, 진리를 위해 싸우려는 생각조차 사라졌습니다. 주님은 그 충성된 믿음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데오도르 에프 목사는 '에베소교회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 말씀에 대한 헌신이 너무도 철저하여 사단이 예수 그리스도와 에베소 교인들 사이를 나눌 수 없었으나, 사단이 주님께 대한 헌신과 주님을 위한 사역을 혼돈하게 만들어서 주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 없이, 주님을 위한 일에만 힘쓰면 도리어 주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교회 나오는 이유는 예배를 통해 주님을 만나는 것인데, 성가대, 교사, 차량봉사, 예배안내로 너무 바빠 예배를 놓칩니다. 교제 없이 봉사만 하면 결국 주님과 멀어집니다. 마치 남편이 열심히 돈벌고, 아내도 열심히 살림하는데, 부부가 서로 함께 하지 못하면 작은 일에도 다투고 갈라섭니다.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듣기 어려운 말이 '순교'나, '환란', '핍박'과 같은 말입니다. 옛날 목숨을 건 순교신앙은 사라지고, 쉽고 편하게 믿으려는 안일주의가 점차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땀흘려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은 기피하고, 부담 없이 믿으려고 합니다. 어느 교회에선 교우들이 함께 식사하기 위한 주방봉사도 "우리가 헌금하는데, 왜 주방 일까지 해야 하느냐?"고 하여, 일꾼을 사서 주방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어떤 고난 중에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던 그 충성된 믿음을 회복해야합니다. 일제 때는 예수를 믿으려면 굶을 각오와, 죽을 각오를 해야 했다는데, 이 시대에서도 이런 일사각오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다음은 천국에 대한 소망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과 함께 천사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1:7).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그 재림의 소망이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 극심한 박해를 이겨내게 했고, 죽음을 무릅쓰면서도 신앙을 지켜낸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성도들간에 재산조차 아끼지 않고 유무상통 했던 것도, 주님이 곧 오시는데, 재산이 무슨 소용 있느냐는 임박한 재림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교회에서 '천당'에 대한 설교나 기도를 잘 듣지 못합니다. 세속주의와 안일주의에 빠지는 이유가 바로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희미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망에 불탈 때, 세상의 향락을 멀리하고 천국에 대한 기대로 믿음의 순결을 지키며 주님께 충성을 다하게 됩니다. 2천년 교회사를 살펴보면, 교회가 깨끗한 도덕성과 영성을 지키며 놀랍게 부흥되던 때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가 뜨겁게 타올랐던 때입니다. 곧 주님이 오신다는 기대로 경건하게 주님을 닮는 거룩한 생활을 하며, 주님께 충성을 다하면서, 다가오는 천국을 대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순수하고 뜨거웠던 사랑을 회복해야합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 왜 사랑을 잃었습니까? 뜨거운 기도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밤을 지새우며 주님과 사랑에 그토록 행복해했던 기도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엔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을 잃었습니다. 세상 죄악이 관영한데 회개 눈물은 없고 비판만 무성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사랑을 잃었습니다. 냉철한 두뇌로 가슴까지 차가워졌고, 많이 들어 귀와 입은 큰데 손은 말랐고, 경외심이 없습니다. 매너는 세련됐는데, 속 깊은 정성은 사라졌습니다.


요즘 듣기 어려운 말이 '주일성수'라는 말입니다. 전엔 비 오면 교회출석이 줄었습니다. 승용차가 없던 때라 먼길에서 교회에 나올라치면 온몸이 비에 젖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 오면 목사님은 '오늘 교회 못나와 시험받는 사람 있겠다'고 걱정했으나, 요즘은 반대로, 날씨 좋으면 '오늘 교회 빠지고 놀러나가는 사람들이 많겠다'고 걱정합니다. 예전엔 비 와서 거둬놓은 농사가 다 젖어도 주일은 으레 교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주일은 '주무시는 날'이나 '주로 가족끼리 노는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교회는 옛날 그 영광스러운 모습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잃어버리고, 사람들의 친교기관처럼 돼버렸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되려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거리가 됐습니다. 해리 L리더 목사는 [다시 불길로 타오르게 하라]는 책에서 미국교회 3가지 문제를 진단합니다. 첫째, 미국교회의 95%가 100명 미만 출석이고, 둘째, 80-85%가 정체나 쇠퇴했으며, 셋째, 해마다 3500-4000개 교회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출석을 아예 포기한 '가나안'교인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첫사랑을 회복해야합니다. 어느 부부가 아기를 낳았는데 몇 년 못 가서 아이가 죽고 말았습니다. 이 부부는 마음이 아파 서로 말도 잊고 살다가, 결혼 10년 만에 결국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둘이 살림을 정리하는데, 옷장에서 죽은 아이의 사진이 나왔습니다. 두 사람은 사진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다 생각이 10년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뜨겁게 연애하고 결혼하여 이 아이를 낳았고 함께 기뻐하다가 아이가 죽자 같이 슬퍼하며 서로 위로하던 때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보따리를 풀고 새롭게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어서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불행하게 이 경고가 현실화되어, 그 화려했던 에베소는 폐허되어 고고학자들이 발굴해 관광도시가 돼버렸습니다. 이 도시 입구엔 누가의 무덤이 쓸쓸히 자리할 뿐, 사랑이 식어져 주의 사역을 감당할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 말씀을 우리를 향한 음성으로 받을 때 우리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입니다.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렘2:1-3).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린 죄에 대한 책망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끝내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당했습니다.


어떤 분이 한때 1만 명 내지 2만 명까지 모여 성령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영광에 불타던 런던의 메트로폴리탄 테버나클처치를 여러 해 전에 가봤더니 주일에 백 명도 모이지 않더랍니다. [스펄전의 전기]에 보면 사람들이 그 교회를 방문하면 목사님은 항상 방문객을 본당이 아니라 교회 아래층 기도실로 데려갔는데, 거기에는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았답니다. 목사님은 그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제 목회의 비밀은 바로 여기 기도하는 이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나의 힘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 교회의 발전소입니다. 저들의 기도 때문에 오늘 우리의 교회는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단순히 스펄전 목사님의 탁월한 설교만을 하나님이 쓰신 것이 아니라, 그 기도하는 성도들을 통해서 그들은 한때 그 교회의 황금기를 누리고 영국을 변화시키는 변혁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펄전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제일 먼저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바로 기도하는 운동들이 없어지기 시작하더라고 합니다. 만약 기도하는 성도들이 계속 기도로 교회를 지켰더라면, 그 교회는 지금도 놀랍게 영국과 세계 속에서 사역을 계속했을 텐데 기도가 사라지자, 하나님은 영광을 그 교회에서 거둬 가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약속의 말씀을 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2:7). 범죄한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나 다시는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수 없었는데 계시록 22장에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길이 다시 열리면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낙원에서 생명나무 과실을 먹는 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과 영원히 교제하는 영생과,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과도 영원히 교제를 누릴 것입니다.


어느 날 스펄전 목사가 울고 있자 부인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왜 울고 있어요? 힘든 일이 있거나 무슨 슬픈 소식이라도 들었어요?" 스펄전은 울음을 그치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우는 이유는 말이오. 오늘은 내가 주님을 생각해도 아무 감정이 없단 말이오. 이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오. 내가 아무 감격이 없이 메말라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주님을 바라보라고 말할 수 있겠소?"


로마의 도미시안 황제가 죽은 후(AD 96년) 사도 요한은 밧모섬의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에베소교회로 돌아왔을 때, 그의 18번 설교는 "소자들아, 서로 사랑하라"였다고 합니다. 그의 불편한 몸을 제자들이 부축하여 설교단 의자에 앉히며 "선생님, 오늘은 우리에게 새로운 말씀을 들려주십시오"하면 그는 노구에 두 손을 들고 "소자들아 내가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이 일어나자 수많은 성도들이 말씀을 배우기 위해 수백 리를 걸어 평양으로 모여들 때, 쌀과 밥짓는 솥까지 짊어지고 와 밥을 해먹으면서 말씀을 배웠습니다. 한해 1,400개 사경회가 전국에서 열리며 약 9만 명이 경비를 자신들이 부담하여 모여 성경공부를 했고, 어떤 때는 1,800명이나 되는 많은 이들이 사경회에 참석하는 바람에 성도들 집에서 숙소를 찾을 수 없어 불신자들 가정에서도 숙박하여 그 가정이 회심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새벽에 시작한 기도회는 2∼3일씩 계속되기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통회 자복하였습니다. 지난 1960, 70년대만 하더라도, 여름 방학철에는 천막집회나 산상집회가 열렸고, 거기에는 별다른 냉방시설이 없는데도 천막에 가득히 모여 밤새 말씀 듣고 찬양하며 부르짖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냉방시설이 잘 갖춰진 기도원도 텅텅 비고 있습니다.


오래 전 중국 지하교회 한 성도가 신앙의 자유를 찾아 튜브에 몸을 싣고 홍콩으로 망명했습니다. 자유진영의 교회들을 돌아보다가 어느 날, 다시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되돌아가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성도는 돌아가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자유세계는 의식주와 생활의 염려는 없으나 이런 상태의 신앙생활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또 내가 내세의 영광을 위해서는 다시 기근의 땅 중국으로 가야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지하교회 시절의 그 뜨거웠던 믿음과 목숨을 건 철저한 신앙생활이 그립습니다." 참된 믿음이 무언지 생각하게 합니다.


C.S. 루이스는 '지옥에 가는 길은 결코 벼랑이 아니라 밋밋한 내리막길이라서 사람들은 그 길을 기분 좋게 걸어간다'고 했는데, 쉽고 편한 길만 찾으면 위험합니다. 그동안 바쁘게 달려오며 우리는 그만 십자가의 사랑을 잃었습니다. 마음은 싸늘해졌고, 몸엔 기름기가 껴졌습니다. 다시 십자가 앞에서 순수했던 처음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