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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 훈련에 힘쓰십시오

동문교회 손세용 목사님 | 2019-09-01 즐겨찾기에 추가

조회수 : 6 | 추천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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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 훈련에 힘쓰십시오"
2019년 9월 1일 주일예배
디모데전서 4 : 6 - 16 ; 잠 17 : 3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목장풍경을 그리라고 하자 아이들이 모두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데 한 아이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백지였습니다.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아니! 넌 뭘 그린 거니?"라고 묻자, 그 아이가 대답합니다. "풀을 뜯는 소의 그림이에요." "풀은 어디 있니?" "소가 다 먹었어요." "그럼 소는?" 아이가 선생님의 질문에 황당해하며 대답합니다. "선생님도 참~ 소가 풀을 다 먹었는데 왜 여기 있겠어요?" 말로만 그림을 그려선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동차 서비스회사의 서울 본사에 근무하던 사람이 경기도 고양시의 부품창고로 좌천되자, 기분도 달랠 겸 오리를 키우려고 창고 옆에 작은 연못을 만들고 청둥오리를 사다 물에 넣었습니다. 다음날 보니 오리가 물 속에 죽어있어 깜짝 놀라 오리를 이리저리 살폈지만 짐승에게 물린 흔적이 없었습니다. 수영이 '전문'인 오리가 물에 빠져죽었다고는 상상할 수 없어 오리를 산 데 가서 따졌더니 자초지종을 들은 주인은 그것도 몰랐느냐는 듯이 말합니다. "그 오리는 양계장에서 부화해서 키운 오리기에 수영할 줄 모르고, 어릴 때부터 물에 넣지 않아 깃털에 기름이 분비되지 않아 물에 잘 뜨지도 못합니다." 물에 빠져죽은 오리 얘기는 영적인 교훈을 줍니다. 물갈퀴 있다고 모든 오리가 수영할 수 있지 않듯, 교회 다닌다고 모두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리의 진면목은 양계장이 아닌 물에서 드러나듯, 진정한 믿음은 위기와 유혹 앞에서 드러납니다. 성경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을 삼지 않거나,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 교제가 없다면, 헤엄칠 줄 모르는 오리나 다를 바 없습니다.


벨기에 왕가의 흥망성쇠를 다룬 토머스 커스틴의 [세 명의 에드워드]라는 책의 주인공은 '뚱뚱보'라는 별명을 가진 레이놀드 왕자입니다. 그는 차기 왕권을 물려받았는데 부왕이 갑자기 죽자 그의 동생 에드워드가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습니다. 에드워드는 형을 창문이 있는 감옥에 가두고 결코 죽이지 않겠다며 "형님이 원하면 언제든 창문으로 나갈 수 있고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레이놀드가 뚱뚱하여 체중을 많이 감량해야만 창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에드워드는 신하에게 말합니다. "형이 몸무게를 줄여 저 창문으로 나온다면 나는 기꺼이 왕위를 양보하겠다. 그러나 나오지 못한다면 자기 몸무게조차 조절 못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기겠는가?" 그리고 매일 산해진미를 넣어주자 레이놀드는 끝내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고 십여 년 갇혀 지내다 에드워드가 전쟁에서 전사한 후에야 자유인이 됐지만, 뚱뚱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얼마 후에 죽고 말았습니다. 레이놀드의 비극은 왕위를 빼앗긴 데 있지 않고 식탐을 이기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절제와 경건의 훈련 없이 자신의 욕망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천국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7-8)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먼저, 육체의 연단에 유익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당시 이원론적인 사상으로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구별하여, "인간의 육체는 심히 부끄러운 것이고, 죄된 것이므로 육체의 활동을 억제함으로써만 영혼의 순결을 지킬 수 있다"고 철학자들은 주장하여, 우리 영혼이 더욱 거룩해지기 위해선 이 더러운 육체를 억압함으로써만 깨끗하고 순결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육체를 결코 정죄하지 않습니다. 로마서에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7:18)고 하여, 육체를 정죄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으나, 바울이 지적하는 것은 우리 '몸'(body)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영적 욕구를 가로막는 부패한 죄의 성향을 말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의 몸을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殿)'이라고 하여, 우리의 육체를 학대하거나 혹사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은 우리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전인격체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영혼의 문제는 육체의 문제일 수 있고, 육체의 문제는 영혼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의 질병 가운데 최소한 50% 이상은 정신적인 요인으로 인해 유발되고, 반대로 몸이 피곤하거나 병들면 사람의 정신도 쇠약해질 수 있기에 그리스도인은 적당한 식사와, 적절한 운동과 휴식으로, 성령이 거하시는 몸을 소중히 관리하는 것이 신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건강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위치만 니의 책 [정상적인 그리스도의 사역자]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실 때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내가 심히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어 기도하라." 그러나 예수께서 돌아와 보시니, 제자들이 다 골아 떨어져있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지만 거듭 잠자는 제자들을 보시고, 주님은 "너희가 잠시동안도 깨어있을 수 없었더냐?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워치만 니는 말합니다. "그렇다. 마음만 원해서는 안 된다. 원하는 몸이 있어야한다. 아무리 기도하길 원해도, 기도할 수 없는 몸을 가진 사람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예수께서 '깨어 있으라'하실 때, 언제든지 깨어 있을 수 있는 연단된 몸이 필요하다." 그렇습니다. 우리 육체는 영적인 생활에도 영향을 끼치기에, 마음만 원해선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깨어 있으라 하시면 밤새라도 깨어 있을 수 있는 건강한 몸과, 금식하라하시면 며칠이라도 금식할 수 있는 훈련된 몸이어야 하지 '육신이 약해서'란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체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건강 그 자체가 목적이 되거나 육체를 우상으로 여겨선 안됩니다. 우리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 육체의 향락을 위해서가 아닌, 의의 병기가 되도록 우리 몸을 건강하게 관리해야합니다. 육체의 건강이 건전한 삶을 위해 필요하지 죄짓는 도구가 돼선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육체의 연단보다도 더 중요한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소개합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7b-8). 우리 육체가 중요하지만, 나이 들면 우리의 몸은 점점 노쇠해지고 병약해지다 끝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 가서 영원히 삽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땅에서 7-80년 살다 사라질 육체를 위해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애를 쓰고 있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영혼을 위한 경건의 훈련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경건의 훈련은 영원한 생명을 위한 노력입니다. 바울은 "경건에 이르기를 연단하라"고 강조합니다. 이 '경건'이란 말은 헬라어로 '유세베이아'로서, '유'는 '선하다', '기뻐하다'라는 뜻과, 또 '복'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또 '세베이아'는 '놀랍다, 두렵다'는 말로서 '경건'이란 '선한 두려움', '복된 두려움'을 뜻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조심하는 자세입니다.


한 수도사가 스승에게 묻습니다. "악한 생각이 저를 죽이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스승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떼고자 할 때 자기 젖에다 쓴 것을 바른다. 그러면 아이가 여느 때처럼 와서 젖을 빨다가 그 쓴맛 때문에 달아나 버린다. 자네도 쓴 것을 사용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쓴 것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스승은 "그것은 죽음과 다가올 심판에 대한 기억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를 생각하며 참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은 '경건에 이르기를 연단하라'며,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는 자세인 '경건'도 '연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연단'이란 헬라어 '굼나조'는 '벌거벗고 운동한다'는 뜻으로, 이 '굼나조'란 말에서 '체육'이란 영어 '짐내스틱'(gymnastic)이나, '체육관'을 뜻하는 '짐나지움'(gymnasium)이 유래됐습니다. 운동선수가 시합에서 이기려고 피나는 훈련을 하듯, 영적으로도 그렇게 훈련하여 경건을 이뤄야합니다. 경건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지 않고, 운동처럼 끊임없는 훈련을 쌓아가야 합니다.


사람을 믿고 신임 받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듯, 하나님을 믿는 데에도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능력이기에 믿어야 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사무엘 E. 키서의 시입니다. "신앙은 단순히 밤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신앙은 단순히 있을 수 있는 영광을 기다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신앙은 단순히 죄로 가득 찬 기쁨을 미워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신앙은 과감한 노력이요, 장렬한 모험이요, 어떤 상황 아래서도 봉사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할 수 있습니까? 첫째, 버려야할 것을 버려야 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란, 나이든 여인들의 뜻 없이 떠드는 잡담이나 꾸며낸 신화를 말합니다. 경건훈련을 위해선 덕이 되지 않는 잡담이나, 남을 헐뜯는 좋지 못한 언어나, 잘못된 습관과 오락 등, 해로운 것을 버리는 결단이 요구됩니다.


우리는 육체의 건강을 위해, 나태나 게으름, 지나친 폭식, 잘못된 음주습관, 흡연 등, 버려야 할 것이 많듯이, 우리의 경건의 훈련을 위해서도 잘못된 오락이나, 방종, 이기심, 지나친 향락, 우상숭배, 등을 버려야합니다. 우리의 경건생활에 해로운 것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에게 좋은 것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내 신앙의 경건의 척도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는,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고서 버리고 포기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를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버린 것에 상응하여, 우리가 믿음생활을 통해 새롭게 얻은 것도 이에 비례하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는 세계적으로 위대한 어머니의 반열에 오르는 훌륭한 여성입니다. 그녀는 어느 날,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딸을 교육하기 위하여 이런 방법을 썼습니다. 어머니는 딸에게 탄 숯을 한 아름 안아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딸은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이 숯들은 뜨겁지 않아. 델 염려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딸이 "그렇지만 손이 더러워지잖아요?" 그때 수산나 웨슬리는 이런 교훈을 주었습니다. "바로 그 점이다. 사람의 행동에는 화상까지는 입지 않지만, 손과 가슴을 더럽게 하는 행위도 있어." 우리는 '이 정도는 그다지 큰 잘못이 아닐 거야'하며 늘 마음의 줄을 느슨하게 풀어놓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내게 직접 해를 끼치진 않더라도 내 삶을 더럽힐 것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수고하고 힘써야합니다. 10절에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버리는 이유는 보다 나은 것을 얻기 위함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무언가 포기하고 버리기는 했는데, 새로 가치 있는 일을 찾아 힘쓰지 않으면, 귀신을 쫓아낸 집처럼, 다시 일곱 귀신이 들어올 위험이 있습니다. 좋지 못한 오락과, 방탕한 생활의 일락에 빠지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가치 있는 일을 위해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훈련소에서 땀을 적게 흘리는 사람은 전쟁터에서 피를 많이 흘린다"고 말합니다.


찰리 패독이란 유명한 육상선수가 학교를 방문하여 강연했습니다. 강연 중에 패독은 제시 오웬즈라는 소년에게 "너는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린 제시는 패독을 바라보면서 "아저씨와 같은 유명한 육상 선수가 될래요."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패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꿈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그것을 이룰 수가 없단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반드시 사다리를 놓아야 해. 첫 번째 계단은 인내이고, 두 번째 계단은 헌신이며, 세 번째 계단은 훈련이고, 네 번째 계단은 기도란다. 이것들을 모두 지킬 때 네 꿈은 이뤄진단다." 이 말을 들은 제시 오웬즈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인내의 계단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자신의 사다리를 타올랐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올림픽에서 네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살아있는 가장 빠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꿈을 이루려면 그 꿈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인내와 헌신과 훈련이라는 사다리를 힘써 노력하며 한 계단씩 올라가야 합니다.


셋째, 훈련을 계속 지속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일을 계속하라"고 합니다. 꾸준히 계속해야 훈련이 되지, 조금 하다가 그만두고, 그만두었다가 다시 하는 식으로는 훈련이 되지 않습니다. 실천하기를 계속하며 훈련하라는 말씀입니다. 폴란드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루빈스타인(Arthur Rubinstein)은, "하루 연습을 쉬면 내가 알고, 이틀 연습을 쉬면 내 친구가 알고, 사흘 연습을 쉬면 온 청중이 안다"고 말했습니다. 연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로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한 주 신앙생활을 쉬면 내가 나의 믿음 떨어진 것을 알고, 두 주 신앙생활을 쉬면 가까이 지내는 교우가 나의 믿음 떨어진 것을 알고, 세 주 신앙생활을 쉬면 온 교회 교우들이 나의 믿음 떨어진 것을 안다." 운동선수가 연습을 게을리 하면 최상의 컨디션을 낼 수 없듯이, 믿는 사람이 신앙의 훈련을 게을리 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영역에서 경건의 훈련이 필요할까요?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4:12b). 첫째는 언어의 영역입니다. 우리의 경건 훈련은 언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은 경건 생활의 초입에 언어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우리는 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받습니까? 무심코 내뱉은 말이 형제의 가슴에 주었던 상처와, 말로 가져왔던 모든 부정적인 일들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말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소서"(시141:3).


토리 목사님은, 이 말을 그의 신앙고백처럼 말했습니다. "나는 성령이 충만하지 않을 때는 입을 열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주님 앞에 먼저 성령충만을 구했고, 성령충만하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입을 열었습니다. 만약 자신에게 성령의 지배가 떠나면 자신도 육적인 사람처럼 말할 수 있기에,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토리는 성령충만과 성령의 지배를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시했고, 특히 그의 언어 문제에서 성령의 다스리심을 구했음을 그는 고백하였습니다.


둘째, 행실의 영역입니다. 행실은 우리말을 뒷받침하는 삶의 태도와 습관을 말합니다. 우리는 말과 행실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위선자라고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딛1:16).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행위로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자기 행동과 생활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을 실천적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19:8)고 말씀했습니다.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아는 것같이, 그 사람의 행위를 보고 그의 마음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은 한 청년이 난곡동에 위치한 조그만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그는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지저분한 변소를 청소하고, 신발을 정돈하고, 방도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처음엔 사람들이 '회사의 청소부가 깨끗하게 정리하는가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 회사에는 청소부가 없다는 것을 알고, 누가 이런 일을 하는가 지켜보다가, 이 직원이 소리 없이 청소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소문이 나더니 결국 사장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동료들은 그 친구가 주일이면 성경 찬송가를 들고 나가는 것을 보고 자연히 신자임을 알았습니다. 그 후 그의 전도를 받는 사람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결국은 사장까지 믿게 되더니, 그 청년이 나가는 교회의 목사님을 모셔다가 직원 예배까지 드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셋째, 직분의 영역입니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딤전4:14). '은사'란 사도들로부터 안수 받고 주어진 교회의 직분을 말하는데, 하나님께 받은 직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가 무엇이든, 그 은사를 활용해서 주님과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봉사 없이 신앙이나 인격이 성장한 사람을 주변에서 목격하신 일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이는 주일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또 헌금하고, 봉사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세상에 나가면 훨씬 더 재미있고 신나는 일들이 많은데,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따분하게 교회에 나와 쓸데없는 일을 위해 나의 소중한 것들을 허비해야 하는가?' 교회에 깊이 관계할수록, 여러 가지 신경 쓰이고 힘든 일이 있을 수 있으나, 이런 어려움에 부딪히고, 힘든 일을 해결하기 위해 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고민하고,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짐을 지는 노력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인격적인 성장이 이뤄지고, 또 이 구체적인 헌신으로 내 은사가 사용되는, 그 보람을 통해 우리 믿음이 자라 갑니다. 몸의 기능은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될 수밖에 없듯,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도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건의 훈련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은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딤전4:9-10).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둔다'고 했는데, 우리의 영적인 관심이 쇠퇴하는 이유는 우리 소망을 하나님께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망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에 두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여겨, 우리는 경건이 아닌 세상적인 향락과 가치를 추구하는 세속적인 사람들로 전락하게됩니다.


크롬웰은 1599년 독실한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철저한 신앙훈련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그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편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편에서 일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일과 성경 읽는 일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단다." 후에 그는 반 국왕파인 청교도들로 구성된 군대의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크롬웰은 전쟁터에서도 틈만 나면 기도하고 쉴 때는 성경을 읽곤 했는데, 어느 날 전쟁터 한복판에서 그는 총에 맞아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말에서 떨어지면서 '이제 마지막이로구나!'하고 생각했으나 그에게 아무이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참 이상한 일이구나'하며 자신의 몸을 살펴보니 총탄이 상의 호주머니에 넣어둔 성경에 박혀있는데, 총알이 박힌 자리는 구약 전도서 12장 1절 부분이었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그가 통치하던 시절에는 군인들은 규율을 지켰고 상인들은 약속을 지켰으며 노동자들은 부지런하여, 별 볼 일 없던 영국을 강대국으로 발전시키는 기초를 닦았습니다.


포리스트 카터의 책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 나오는 미 동부 인디언 체로키족 5살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산꼭대기까지 데리고 가겠다"고 했으나 깨워주겠다고는 하시진 않았다. "남자란 아침이 되면 모름지기 제 힘으로 일어나야 하는 거야." 그러나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셨다. 방벽에 쿵 부딪히기도 하고, 유난스레 큰소리로 할머니에게 말을 걸기도 하셨다. 덕분에 먼저 밖에 나간 나는 개들과 함께 어둠 속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릴 수 있었다. "아니, 벌써 나와 있었구나!" 할아버지는 놀랍다는 얼굴로 말했고, "예, 할아버지." 내 목소리에는 뿌듯한 자랑이 묻어있었다. - 어둠 속에서 자랑스럽게 서있는 손자처럼 우리도 주님 앞에 이렇게 자랑스럽게 서야하게 않겠습니까?


잠언의 말씀입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17:3). 금과 은을 연단하듯 우리 언어와 행실과 맡은 직분을 통하여 경건의 훈련을 쌓아가도록 합시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이루어나가고, 그리고 성도들과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나갈 때, 우리는 주님을 닮은 경건한 영혼으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