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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자세

동문교회 손세용 목사님 | 2019-11-03 즐겨찾기에 추가

조회수 : 13 | 추천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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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자세"
2019년 11월 3일 주일예배
베드로전서 4 : 1 - 11 ; 전도서 3 : 11 - 13

어느 유대인 부자가 병들어 죽게되자 죽음이 불안하여 랍비를 불러 1만 달러를 기증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아직도 뭔가 부족하여 신부님을 불러 1만 달러를 기증하니 마음이 조금 편한 듯 했으나, 아직도 불안하여 목사님을 불러 1만 달러를 기증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하여 남은 유산을 자식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드디어 임종이 다가오자 그는 내세에서도 돈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세 분의 성직자에게 각각 자신이 기증한 돈의 20%를 장례식 날 관에 넣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장례식 날 신부님이 2천 달러를 고인의 관에 넣고, 목사님도 2천 달러를 관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랍비는 관에 들어 있는 4천 달러를 꺼내 자기 주머니에 넣고는, 고인 이름으로 6천 달러 짜리 수표를 써서 관에 넣더랍니다. 이 이야기는 유대인의 돈에 대한 촌철살인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죽은 후에 무슨 돈이 필요하겠습니까? 돈이 필요한 것은 결국 이 땅인데, 유대인들은 관에서까지 돈을 꺼낼 만큼 철저하게 돈을 모아 그 돈으로 기금을 만들어 유대인 중에 주린 자가 없게 하고, 배우려는 자에겐 박사과정까지 편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혜가 있습니다.


올해 브랜드가치 2342억 4100만 $로 세계 1위 기업인 애플컴퓨터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가 2005년 6월 12일 스탠포드대 졸업식에서, 그가 17세 때 읽고서 인생의 전환점을 이뤘던 경구를 소개했습니다.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그는 이 글에 감동 받고, 그 후 50살이 되기까지 33년 동안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고 합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그리고 이 질문에 '아니다'는 대답이 나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과연 종말 앞에 후회 없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미국의 한 대형호텔에 화재가 났는데, 미처 대피하지 못한 200여 명의 투숙객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가까스로 구조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한 연구소가 그 때 구조된 사람들을 일일이 추적하여 사건 이후 어떤 삶을 살고있는지 조사했습니다. 그 호텔에 투숙할 정도면 사회적으로 높은 명망과 재력의 소유자들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들 대부분이 완전히 다른 새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장애자를 돕거나, 말기 암 환자와 친구가 되거나, 거리의 노숙자들에게 빵을 나누어주고, 또 빈민 지역에 들어가 무료진료 활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화재현장이라는 그 생지옥에서 이미 죽음이라는 종말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조된 이후의 삶은 덤으로, 선물로 얻은 것임을 깨닫고서 그들은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어쩌면 세상 '끝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의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며,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종말은 두 가지인데, 먼저 개인적인 종말로서, 우리가 그 언젠가는 육신이 죽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종말과, 또 하나는 우주적인 종말로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심으로 우주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종말을 향해 걸어가고 있고, 또 세상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향해 다가가고 있기에, 우리는 종말을 목표로 하루 하루를 카운트다운하며 살아야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세 가지 시제를 말씀합니다. 첫째, '지나간 때'입니다. 3절에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고 하여,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을 말합니다. 흘러간 시냇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듯이, 이미 지나간 시간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고칠 수 없기에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만 하나님께 맡기고 이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에 대해선 미련을 갖지 말아야합니다.


둘째, 앞으로 다가올 마지막 시간입니다. 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라 했고, 5절에는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고 한 마지막 심판의 시간입니다. 이것이 개인적으론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9:27)는 말씀대로 죽음의 시간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맞게 될 '만물의 마지막'이란 우주적인 종말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 종말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기에, 우리가 지금 30대든 70대든 모두 언젠가 이 땅을 떠나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모든 것은 심은 대로 거두게 되겠기에, 그 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설 것인가를 생각하며 대비해야만 합니다.


셋째, '오늘'이라는 현재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본문 2절에서 말씀한 '육체의 남은 때'입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마지막 날을 바라보며 '오늘'이라는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갑니다. 이것은 심판 날까지 우리에게 남겨진 유예기간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나 아직 '현재'라는 남은 기간이 있습니다. 이번 대입 수험생이 11월 14일에 수능시험을 치르지만, 아직 열흘 가량 시간이 있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아직 '육체의 남은 때'라는 유예기간이 있습니다. 이 남은 시간은 아직 '우리가 고칠 수 있는 시간'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에 의해서 오늘의 내가 있듯이, 바로 오늘의 시간에 의해서 나의 영원한 운명은 결정되고 말 것입니다. 세계적인 죽음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여사라 부른다. 30년 이상 죽음에 대해 연구해왔기에 나를 죽음의 전문가로 여긴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었다." 존 핵가이는 "어제는 현금으로 바꾼 수표이고, 내일은 약속어음이다. 오늘은 손안에 있는 현금이니 그것을 투자하라"고 말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종말에 대해 재미있는 비유를 이야기했습니다. 관객이 초만원을 이룬 어느 극장 뒤쪽에서 그만 화재가 났습니다. 그런데 관객들은 재미있는 연극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극장 주인은 불난 사실을 갑자기 알릴 경우에 벌어질 큰 혼잡을 예상하고 화재가 난 사실을 차분하게 알리려고 배우들 중에 가장 인기 있는 배우를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가서 관객이 당황하지 않도록 잘 설명하고 모두 질서 있게 이 극장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잘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배우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무대 위에 서서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극장 뒤편에서 불이 났는데 모두 질서를 지켜 잘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랬더니 관객들은 이것이 연극인 줄 알고 모두들 박수를 쳐대며 아주 재미있어합니다. 당황한 배우가 이것은 연극이 아니라 사실이라며, 곧 불길이 번져올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관객들은 더 열심히 박수만 칩니다. 아무도 믿어주지를 않습니다. 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극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서로가 먼저 빠져나가려고 아우성칩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여러분, "말세다, 말세다!"하니까 무슨 픽션인 줄 아십니까? 이것은 농담이나 연극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말세는 우리에게 임박한 현실입니다. 먼 훗날의 이야기로 들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가볍게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세상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 가지를 권면합니다. 첫째, 무엇보다 정신차리고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7절)라고 권고합니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에 매일 것이 아니고, 현재에 집착할 일도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과 시선을 '하나님 앞에 사실대로 고하게 될 그 날'에 두고 하나님을 만나 뵐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내 마음을 저 결정적 미래에 두고, 저 앞에 있을 심판을 내다보며,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통해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정신을 차리고'라고 했는데, 영어 성경에는 'keep cool any pressure'라 하여 '어떤 압력 하에서도 냉정하고, 어떤 상황 하에서도 정신을 차리라'는 말입니다. 한 성서학자는 정신 차린 상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가를 분별할 수 있는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위기가 닥치면, 우리는 당황하여 어떤 일을 먼저 해야할지 모르고 허둥대는 수가 많은데,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이 평안을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종말 앞에서 우리가 무엇보다 힘써야할 것은 '기도'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밤새 기도하시며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하셨는데,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졸기만 하다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이런 실패를 했던 베드로는 "깨어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은 육체의 욕망을 절제하며, 기도에 합당한 몸가짐으로 정결하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죽음에 직면한 어느 권사님은 늠름했습니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6개월 가량 더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하릴없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았지만, 그 이상의 치료는 거부했습니다. 몇 백만 원을 호가하는 아주 좋은 신약이 있으니 써보라고 권유했지만 그마저 사절하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했고 새벽예배에도 꾸준히 참석했습니다. 예상 기한을 겨우 두 달 더 넘겼지만, 전신에 퍼진 암세포가 단말마적 기승을 부리던 말년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극이었습니다. 죽기 하루 전날 문병을 갔을 때에도 만신창이 몸으로 미소지으며 애써 승리의 V자까지 보였습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파괴될지언정 결코 패배 당하지 않는다"는 명언은 순전히 이 권사님을 두고 한 말 같았습니다.


유안진 교수의 [저녁기도]입니다. "주님/날이 저물면/나는 왜/눈물이 나지요//먼 하늘을 바라보면/나는 왜/울고 싶을까요/천애고아처럼//여우도 굴이 있고/공중에 나는 새도/깃들일 곳이 있다셨지요//그렇지만/삼복에도 손발이 시린//고독한 내 혼은/어느 추녀 아래 신을 벗지요//인생이 아무리/사랑이 더욱 아무리/헛것이라 해도//아직은/아깝고 안타까운 이름들/어쩌면 내/눈감을 수 있을까요?//막달라 마리아/당신의 여인은/날이 저물면/왜 자꾸 눈물나지요" 인생의 저녁엔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8절에서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뜨겁게'라는 말은 헬라어로 '엑테네'로서 '잡아늘인다'는 뜻인데, 이 말의 의미는 경마를 할 때, 말이 힘을 다해 열심히 달리는데도 기수가 더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하는 '주마가편'과 같습니다. 서둘러서 더 열심히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8절)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랑의 눈으로 남을 볼 때는 남의 잘못도 허물로 보이지 않고 머리끝서 발끝까지 다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러나 어느 땐가 사랑이 식어지면 웃는 것도 미워 보이기 시작하고, 보이지 않던 허물이 하나둘 드러나서 점점 더 크게 보입니다. 상대방이 변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졌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허물이 안보일 때까지 사랑하라', '모든 죄를 덮을 만큼 사랑하라', '허물이 기억되지 않을 때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훗날 후회하지 않도록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쉰 살이 넘었거든 이젠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좋지 않는 말은 아예 하지도 말 것입니다. 예순 살이 넘었거든 좋지 않은 것은 듣지도 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입을 열겠거든 덕담이나 할 것이요, 다른 사람이 듣기 좋은 소리나 할 것입니다. 그런 말만하며 살아도 시간이 모자라 남의 허물을 살필 겨를이 없습니다. 마지막이 가까웠으면 모든 허물을 덮을 만큼 더욱 더 열심히 사랑할 것입니다.


불치의 병을 앓게 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미래를 약속한 연인이 있었습니다. 남자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는, 두 사람 앞에 놓인 가혹한 운명을 탓하며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슬픔도 잠시, 사랑에 대한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던 그녀는 이내 아픔을 털고, 현실과 당당히 맞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녀는 다니던 직장을 사직하고 그를 간호하는 데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병실에 함께 있던 환자들은 하나둘 떠나갔습니다. 회복해서 나간 사람도 있었지만,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병세가 악화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한 달이라는 시한부를 판정 받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알려져서 그 둘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몰려왔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은 이어졌고, 인터뷰 중간에 신문에 실을 사진을 찍자고 하자, 여자는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가 그녀를 잠시 밖으로 내보내고 기자에게 말합니다. "죄송하지만, 사진은 찍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의아한 기자들은 왜냐고 물었습니다. 남자가 대답합니다. "제 여자 친구는 나중에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겠어요? 전 그녀가 저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행여 저와 찍은 사진 때문에 사람들이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게 되면, 그래서 저와 사귀었던 명확한 과거가 드러나게 되면, 그녀가 행복을 찾는 데 방해가 될 거예요." 고통스러운 죽음을 앞두고서도 남겨질 연인을 도리어 걱정하고,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셋째,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서로 봉사하라"(10절)는 말씀은, 내 시간은 다 되었으니 남은 시간은 이제 남을 위해 살아라, 그동안 자신을 기쁘게 하며 살았으니 이제는 남을 기쁘게 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봉사'란 헬라어로 '디아코니아'로 '예배'라는 의미도 있는데, 예배를 영어로 'worthship service'라고 표현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누구에게 봉사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됩니다.


오늘 말씀은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하라'고 당부합니다. 우리는 봉사하려 해도, 가진 것이나, 은사와 재능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지만, 새로운 은사나 능력, 또 많은 재물을 구할 것이 없이,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봉사할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돈은 없어도 교회 모든 집회에 참석하여 자리를 채우는 것만으로 큰 봉사를 하는 분이 있고, 모든 애경사에 참석하여 위로해주거나 축하해줌으로 큰 봉사를 합니다. 또 어떤 분은 낙심한 성도를 찾아 권면하고 위로해주기도 하고, 어려운 이웃이나 나라와 민족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중보기도로도 훌륭한 봉사를 합니다.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내가 지닌 것은 내 것이 아니라, 봉사하도록 하나님께 맡겨주신 것이기에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봉사는 일방적이기 쉽습니다. 한쪽은 언제나 봉사하고, 상대방은 항상 봉사를 받기만 하는 경우가 있으나, 우리는 '서로' 봉사하며 서로가 섬겨야 합니다. 서로서로 봉사하되 원망 없이 할 것입니다. 언제나 받았으니 고마운 마음으로 감사하고, 줄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섬긴다는 것 자체를 감사할 것입니다. 우리가 봉사할 수 있는 시간도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봉사하고자 해도 봉사할 수 없는 때가 찾아옵니다. 영국의 부호인 비콘필드(Beaconfield) 백작은 "젊어선 실수만 하고, 장년 때는 욕심을 위한 싸움만 하고, 이제 늙어서 남은 것은 후회뿐이로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후회를 하지 않도록 바로 지금 봉사해야 합니다.


요한 웨슬리가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을 때, 어떤 여자가 다가오더니 웨슬리에게 이상한 질문을 합니다. "만일 내일 아침에 목사님이 죽게 되어 있다면 남은 시간에 목사님은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웨슬리는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서 대답합니다. "여기에 적혀 있는 원래의 계획대로 일할 것입니다." '하던 일을 그대로 할 것이다' 참으로 귀한 자세입니다. 이렇게 살았기에 웨슬레는 그의 생애 50년 간 4만 2천 번 설교를 하였고, 2백 권 이상의 책을 썼으며, 약 40만Km의 전도여행을 하였습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오늘이 내 생애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후회 없이 해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이 나의 마지막날이라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이대로 괜찮은 것입니까? 우리는 날마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날이라 해도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이 하루 하루를 섬기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지난 해 별세하신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책 [93세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새로운 도전]에 실린 글입니다. - 내 누이 캐서린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 몇 년을 요양원에서 보냈다. 누이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건강이 나빴지만, 그런 몸으로도 그곳의 모든 노인과 친해졌고, 그들의 하소연에 참을성 있게 귀를 기울여 주었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 대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나누었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말년에도 그리스도께서 누이를 놀랍게 사용하신 것이다. 주일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양로원 노인들을 찾아가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해주는 86세 노부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남을 섬기는 이 시간을 매일 손꼽아 기다린다. 또 어느 96세의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 하루는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다가 기도수첩을 폈지요. 수첩에 기록된 이들을 위해 기도해주려면 시간이 모자라겠더라고요." 주님은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힘겨워진다. 하지만 노년에는 노년 나름의 특별한 기쁨이 있다. 가족과 함께 하는 기쁨, 버거운 책임에서 벗어난 기쁨,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소소한 것들을 즐기는 기쁨 등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노년은 매일의 삶을 주님 손에 맡기며 그분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절이다. 그리스도, 그분이야말로 인생 최대의 기쁨이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고 사랑하고 봉사하는 일을 먼 훗날로 미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점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온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재산을 악착같이 움켜쥐고 살다가 빈손으로 죽어 가는 사람도 물론 어리석지만, 훗날에 좋은 일을 하겠다고 오늘에 외면하는 사람도 잘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살아 있고, 지금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선을 행하고, 그리고서 남은 것도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세계 정복을 꿈꾸었던 프랑스 영웅 나폴레옹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로마제국의 카이자르에 버금가는 군사전략가이자 정치가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지중해 코르시카섬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한 뒤 수학과 군사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프랑스 민중혁명 이후 권력을 장악하고 제1제정 체제의 제 1총통이 되어 유럽전역으로 영토를 확장해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워털루전쟁에서 패한 뒤 유배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고독하게 생을 마감하기 전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 행복했던 때는 단 6일 밖에 없었다." 나폴레옹보다 1세기 후에 태어난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 되었을 때, 심한 열병으로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고,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의 장애를 안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일곱 살 때 가정교사 설리번을 만나 불행을 희망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세계최초로 대학교육을 받은 시각장애인이 됐고, 평생 시각장애인 복지사업과 구제에 나서 '빛의 천사'로 칭송 받으며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내 인생은 참으로 행복한 나날이었다"는 참으로 귀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작자 미상의 [어쩌면 오늘일지도]란 글입니다. "평생에 세 번 온다는 행운이 오는 날, 어쩌면 오늘일지도/내게도 첫사랑은 시작되겠지, 어쩌면 오늘일지도/훗날 후회하지 않으려면 무언가 시작해야 하는 날, 어쩌면 오늘일지도/열매를 거두기 위해 나무를 심어야 하는 날, 어쩌면 오늘일지도/보고 싶은 반가운 친구가 찾아오는 날, 어쩌면 오늘일지도/맺힌 것을 풀어야 하는 날, 어쩌면 오늘일지도/우리 주님 오시는 날, 어쩌면 오늘일지도/내 인생의 마지막 날, 어쩌면 오늘일지도..."


닷새 후면 '입동'입니다. 머잖아 모든 나뭇잎들이 뚝뚝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가 드러나듯, 우리도 벌거벗은 듯 하나님 앞에 서게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다"(전3:11-12). 우리가 영원을 바라보면 선을 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