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1 124회
"무엇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2020년 10월 11일 주일예배
잠언 4 : 20 - 27 ; 빌립보서 2 : 5 - 8
하버드대학 교수들이 30년 간 조사한 행복감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행복감을 느끼는 친구가 1마일(1.6km) 안에 살면 자신의 행복감이 25% 늘어나고, 행복감을 느끼는 이웃이 옆에 살면 34%, 행복감을 느끼는 형제, 자매가 근처에 살면 14% 행복감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행복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습니까? 혹시 이런 사람이 멀리 있어서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가까이 있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이루어 서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행여 체온이 올라갈까 봐 모두 염려하는데, 사실 체온이 내려가면 건강에 더 위험하답니다. 사람의 체온이 보통 37 면 면역력도 높지만, 36 만 되면 몸이 떨리면서 열을 내게 됩니다. 거기에 1 만 더 내려가면 암세포가 증식하게 되고, 34 면 물에 빠진 사람의 생사의 경계선 체온이요, 33 는 동사 직전에 환각증상이 나타나는 단계이며, 30 가 되면 의식을 잃게 되고, 27 는 숨이 멈춘 사람의 체온이랍니다. 체온이 1도 내려가면 면역력은 30%떨어질 뿐 아니라, 알레르기와 비만의 원인이 되고, 암세포가 종양으로 커지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주요 요인이랍니다. 현대인은 살과의 전쟁을 치르기에 운동할 때 먼저 체중계로 올라가는데, 이보다 먼저 챙겨야할 일은 체온 체크라고 합니다. 적절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충분한 영양과 적당한 수분 섭취와 적절한 수면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런데 우리 몸의 온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온도입니다. 체온은 온도계로 잴 수 있으나, 마음의 온도는 그의 말과 행동, 눈빛과 손길로 드러납니다. 마음이 따뜻한 한 사람 있으면 그 주변이 모두 따뜻해집니다. 사람의 마음을 차갑게 하는 요인은 '미움'인데, '미움'은 중노동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킬 뿐 아니라, 우리 몸에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온갖 병을 유발합니다. 어느 의사는 '암환자가 미움과 원망을 품고서 병 낫기를 바라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기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차가운 마음의 온도를 높일 수 있을까요? '폴 마이어'는 말합니다. "바람을 멈출 수는 없지만 풍차를 만들 수는 있다. 파도를 멈출 수는 없지만 배의 돛을 조종할 수는 있다. 상처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용서하는 법을 배울 수는 있다." 추운 방에 불을 때듯이 미워하는 마음에 뜨겁게 불을 지피면, 마음이 열리고 사람이 열리고 만사가 열리게 되어, 이웃과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줍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어디든 항상 5%의 미운 사람은 있는데, 문제는 어리석게도 5% 때문에 자신의 좋은 에너지 95%를 뺏기면서 세상과 인생을 탓합니다. '너를 만지면 손끝이 따뜻해 온 몸에 열기가 흘러 소리 없는 정이 내게로 흐른다'는 노랫말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어 이 차갑고 살벌한 세상을 따뜻하게 덥혀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의 마음은 첫째, 그의 인격과 존재를 나타냅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잠23:7). 사람은 그가 품은 마음으로 평가됩니다. '큰 사람'이란 몸의 크기가 아닌 품은 뜻과 도량이 넓은 사람을 말하고, '작은 사람'이란 그의 마음 씀씀이가 잘고 유치한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은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요, 악한 사람은 악한 마음을 품은 사람입니다.
둘째,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그의 소유나 권세보다, 마음가짐에 좌우됩니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한다"(잠14:30). "사람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음으로 행복해진다. 불행해지기를 원한다면 날마다 불평하면 된다.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날마다 감사로 채우면 된다"고 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면 천국이요, 미움과, 시기와 질투로 채우면 자신이 병들고, 세상을 어둡게 만들기 때문에 지옥이 됩니다.
셋째, 육체의 건강도 마음의 상태에 좌우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마음의 상태에 따라 건강하거나, 혹은 뼈를 마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플라시보(僞藥) 효과'란, 어떤 약 속에 특정한 성분이 없는데도 그것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여 환자에게 투여하는 약을 말합니다. 불면증환자에게 수면제 모양의 소화제를 주면 환자는 그 약을 먹고 편히 잠들고, 고열환자에게 증류수를 해열제라고 주사하면 열이 내린다고 합니다. 그의 믿음이 기적도 일으키고 병도 치료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앓는 질병의 70%이상이 정신적 요인으로 발생한다고 하는데, 육체의 건강도 마음에 달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넷째, 성공이나 실패도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내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로다"(시37:4). 세계적인 언론인 월터 크론카이트에게 누가 '당신의 성공 비결이 뭐냐?'고 묻자, 한마디로 "방송이 나를 위해 있으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이것은 나를 위해 있다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살면서 내가 책임을 지면 그만큼 존재의 영역이 커지는 것입니다.
오늘 잠언의 말씀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돈을 지키고, 건강을 지키고, 또 명예를 아주 소중히 지키지만, 정작 가장 소중한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파멸에 빠뜨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잠언서 기자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세대에 걸쳐 여러 성현들이 강조한 것은 극기(克己),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마음먹은 대로 자신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틴 루터는 "머리 위로 지나가는 새는 막을 수 없지만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슬쩍 머리를 스치는 생각을 막을 수 없지만 우리의 머리를 계속 맴돌며 어지럽히진 못하게 해야 합니다. 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5:26-27)고 경계합니다. 유대인들은 해가 지면 다음 날로 여겨 '해가 지도록'이란, 화를 다음날까지 끌고 가지 말라는 뜻으로, 화를 며칠 동안 풀지 않으면 마귀가 틈탄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에 분노와 미움 등 죄악 된 생각이 오래 머물길 좋아합니다. 마치 파리가 지저분한 곳을 좋아하듯, 마귀는 우리 마음이 더러워졌을 때를 기회로 여기고 우리에게 찾아와서 우리를 위로하고 달래 주는 척하며 유혹을 합니다.
어떤 바라문교도 한 사람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잘 고른 신성한 산양 한 마리를 어깨에 메고 제단을 향하여 갑니다. 그런데 이 모양을 본 세 명의 못된 사람이 '어떻게든 저걸 빼앗아야겠다'고 마음먹고, 한 사람이 바라문교도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을 겁니다. "성자여, 제물로는 양을 바쳐야지 어떻게 이 더러운 개를 제물로 드리려 하십니까?" 이 말을 들은 바라문 교도는 펄쩍 뜁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이건 깨끗한 산양이란 말이오." 그렇게 대답하고 길을 가는데 또 한 사람이 다가와서 묻습니다. "지금 그 더러운 개를 제물로 바치려고 하십니까?" 바라문 교도는 산양을 내려놓고는 "보십시오. 이것은 개가 아니라 산양이오"하고 말했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또 한 사람이 역시 같은 말로 묻습니다. "성자여, 정결한 양을 바쳐야지 어째서 더러운 개를 바치려고 합니까?" 바라문 교도는 찬찬히 산양을 살펴보았더니 정말 개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만 양을 내버리고 갔더랍니다. 세상 이야기에 귀를 막으십시오. 뭇사람의 이 소리 저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이 때로는 절대적으로 고독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있을 뿐입니다. '오직 홀로'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까? 첫째, 입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잠4:24). 입을 지키는 것, 바고 그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부러진 말'과 '비뚤어진 말'이란 '왜곡하고, 거역'하는 말들로 모두 선과는 반대되는 악의 개념으로서, 진리와 의를 왜곡하고 배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악한 생각이 들어도 그 말을 하지 맙시다. 아무리 내 마음에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어도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알 수 없는 것처럼, 미워하는 마음도 말을 하지 않는다면 미움은 거기서 머물게되고 맙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혀를 내밀어 보세요"하며, 환자의 입안을 보는 것으로 몸을 진단합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12:34)고 하신 말씀처럼, 영적 건강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엡4:29)고 했습니다. 마음이 더러워서 입이 더러워지지만, 입으로 더러운 말을 하여 마음이 더러워지기도 합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마10:32)라 하여 구원도 입으로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천국 백성은 '영광의 언어'를, 지옥으로 가는 사람은 '지옥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말하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90%는 파악됩니다. 성경에 예수 믿고 변화된 사람의 예가 30번도 더 나오는데, 그 달라진 것은 '말'이 변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이데거는 그가 쓰는 말과 언어가 그 사람을 지배한다며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습니다. 말이 변하면 생각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면 마음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면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면 습관이 변하고, 습관이 변하면 인생이 변합니다.
니체는 언어가 인생의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이 언어를 기본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인생이란 배의 키와 같습니다. 인생의 배는 환경이나 능력에 따라 크기가 다르고, 속도도 저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크고 호화로운 배도 가는 방향을 정하는 것은 오직 방향키 밖에 없습니다. 말은 바로 배의 키와 같아서, 하는 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도박하는 사람은 도박에 관한 말을 많이 하고, 사기꾼의 입은 항상 거짓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은 게티스버그 연설을 통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윈스턴 처칠은 연설을 통해 영국민들을 전쟁의 공포에서 구해냈습니다. 반면, 히틀러의 연설은 독일 국민을 역사상 가장 참혹한 세계 대전의 악역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 갈까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여러분, 무엇이 지혜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상인이 시장 바닥에서 지혜를 판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이 성공하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의 지혜가 바로 자기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지혜를 사기 위해 모여들었고, 어서 빨리 말해 달라고 재촉했습니다. 상인은 돈을 선불로 다 받아서 챙긴 다음 "말조심해!"하고는 가더랍니다. 말조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내가 말한 만큼의 운명을 살 수 있습니다. 저주하고 사는 사람은 저주스럽게 살아가고 축복하는 사람은 복된 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시34:12-13)라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하는 말속에 언제나 축복과 감사와 찬양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말은 그대로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치의 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기에 말은 신중히 조심해서 아껴가며 해야합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나무가 되듯, 내가 한 말이 뿌려져 나의 인생이 됩니다.
둘째, 눈을 지켜야 합니다. 25절에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라고 했습니다. 볼 수 있다고 아무 것이나 함부로 보지 맙시다. 얼핏 눈에 보이더라도 빨리 고개를 돌리면서, 되도록 추하고 더러운 것은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악한 행위도 보지 않아야 합니다. 눈은 마음의 창문이기에 눈으로 본 것이 마음에 들어와 우리 마음과 생활을 어지럽힙니다. 악인이 잘되는 것을 보며 부러워하지 맙시다. 권모술수와 죄악을 자꾸 보면 거기에 빠져들고 맙니다.
델마 톰슨이 전쟁 중 캘리포니아의 육군 교련소에 배속된 남편과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그녀의 기대와는 딴판으로, 모래 바람과, 무더위와 말도 통하지 않는 멕시코 인과 인디언과 함께 사는 것으로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그녀는 양친에게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이런 곳에서 사느니 차라리 감옥이 낫겠다고 푸념하며 곧 돌아가야겠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부친의 답장은 단 두 줄뿐이었습니다. "두 사나이가 감옥의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한사람은 진흙탕을, 다른 한 사람은 별을 보았다." 이 두 마디 말이 그녀에게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느낀 그녀는 그곳에서 무엇이든 좋은 점을 찾아내려고 결심하고, 자신의 감옥의 창에서 별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낯설던 인디언들은 친구가 되었고, 새로운 세계에 자극되고 감동되어 새로운 인생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보는 것에 의해 그 생각이 바꿔집니다. 추한 것만 보면, 마음에 추한 것이 자리잡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아름다운 것들이 마음속에 아로새겨 집입니다. 여러 해 전, 일본에서 어린아이를 유괴하여 살해한 엽기적인 사건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일본 전 경찰력을 동원하여 범인을 잡았는데, 범인은 내성적인 성격의 청년이었는데, 그의 집을 수색했더니, 그의 집 골방에서 수백 개의 음란 폭력 비디오 테이프가 발견되었습니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매일 본 것이 잔인한 살인과 음란한 내용의 영상물만 보았더니, 그가 그런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셋째, 발은 바른 길을 걸어야 합니다.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4:26-27).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악에서 떠나 바른 길을 가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스스로 길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 자유로 올바른 것을 선택하든지, 그릇된 길을 선택하든지 각자의 자유지만, 선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자유로 옳은 길을 선택하여 바르게 행해야 합니다.
이철환씨의 책 [연탄길]에 '먼 불빛'이란 제목의 실화가 있습니다. 아들 현대는 고등학교 때부터 늘 사고 치고 친구들과 패싸움하고 심지어 절도까지 하며 아버지가 아무리 타일러도 막무가내입니다. 언제 교도소로 들어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아들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마지막 충격요법으로 아들이 교도소에 가기 전에 자신이 먼저 교도소에 가서라도 자식의 교도소행을 막아보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귀금속 가게에 들어가 마음에 없는 도적질하는 체 하고 쉽게 붙잡혀 교도소에 간 후 면회 온 아들에게 말합니다. "아들아, 이 아버지를 용서해라.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 아버지가 이 모양이니 넌들 바른 길을 갈 수가 있었겠니. 그러나 한가지 부탁이 있다. 너는 꿈에라도 이런 곳을 기웃거려서는 안 된다. 교도소는 인간을 처참하게 만드는 곳이란다." 이런 아버지를 면회하고 나오는 길에 어머니는 아들 현태를 붙잡고 통곡으로 절규하며 폭탄선언을 합니다. "현태야, 할말이 있다. 네 아버진 도둑질 같은 거 하지 않았어. 정말이다. 이 엄마가 네 아버지를 안다. 네 아버지는 절대 그런 일 하실 분이 아니다. 너 때문에 일부러 그러신 거야. 교도소가 사람 있을 곳 아니라는 걸 네게 보여주려고, 생떼 같은 네 놈, 거기서 네 젊은 시절 다 보낼까봐, 네가 갈 그 곳에 미리 가셔서 네가 오는걸 막아 보시려고" 현태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아버지의 희생으로 아들 현태는 이 날부터 마음먹고 다시 태어나 새 인생을 시작합니다. 검정고시 치르고 전문대학에 진학하여 새 인생의 길을 걷습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이 말로 마무리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스스로 어둠이 되었다. 빛을 거부했던 아들의 어둠 속으로 들어와 끝내는 그르치고야 말 그의 인생 앞에 불빛 하나를 밝혀 주었다. 어둔 밤바다 같은 인생에서 표류할 때마다 두고두고 바라 볼 먼 불빛, 아버지, 아버지-."
우리가 마음을 악으로부터 지키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면서도, 서로 미워하며 정죄하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있진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하는지도 모릅니다. 간디가 말했습니다. "I like Christ. but, I don't like christian. because they are not like Christ." 우리가 그리스도인일진데 마땅히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한 용감한 젊은이가 나이 많고 지혜로운 추장에게 "추장님, 제게 쌍둥이 강아지가 있는데. 하나는 갈색이고 다른 하나는 얼룩이입니다. 나는 이 두 놈을 싸움 붙이려고 하는데, 추장님은 누가 이길지 알아 맞추실 수 있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추장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야 네가 밥을 많이 먹인 놈이 이기겠지." 우리는 선한 마음이 이기도록 입을 열어 찬송과 기도가 나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눈을 열어 주의 말씀의 기이한 법을 읽으며 주야로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할 때, 우리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참으로 복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발걸음은 부단히 주의 전을 향하여 모이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로스알데 힐이라는 작은 마을에 요한이라는 집배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젊을 때부터 마을 부근의 약 50마일의 거리를 매일 오가며 우편물을 배달해왔습니다. 어느 날 요한은 모래먼지가 뿌연 길을 바라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이 길을 오갔는데, 앞으로도 나는 계속 이 황폐한 거리를 오가며 남은 인생을 보내겠구나' 요한은 정해진 길을 왔다갔다하다가 그대로 인생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황막함을 느낀 것입니다. 풀, 꽃 한 송이 피어 있지 않은 황폐한 거리를 걸으며 요한은 깊은 시름에 잠겼습니다. 그러다 그는 무릎을 탁 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어차피 내게 주어진 일이라면 그것이 매일 반복된다고 해서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그래, 아름다운 마음으로 내 일을 하자!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름답게 만들면 되지 않은가!" 그는 다음날부터 주머니에 들꽃 씨앗을 넣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우편배달을 하는 짬짬이 그 꽃씨들을 거리에 뿌렸습니다. 그 일은 그가 50여 마일의 거리를 오가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고 요한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우편물을 배달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걸어다니는 길 양쪽에는 노랑, 빨강, 초록의 꽃들이 다투어 피어났고 그 꽃들은 지지 않았다. 해마다 이른봄에는 봄꽃들이 활짝 피어났고, 여름에는 여름에 피는 꽃들이, 가을이면 가을꽃들이 쉬지 않고 피어났던 것입니다. 그 꽃들을 바라보면 요한은 더 이상 자기의 인생이 황막하다고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50여 마일의 거리에 이어진 울긋불긋한 꽃길에서 휘파람을 불며 우편배달을 하는 그의 뒷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와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모든 것을 갖춰줬어도 불평하는 인간들을 보다 못한 천사들이 인간에게 행복을 회수하여 감출 곳을 의논했습니다. 한 천사는 "저기 저 바다 속 깊은 곳에 숨기자"고 하니 천사장은 "인간들의 머리는 비상하여 바다 속쯤이야 쉽게 찾을 거다"고 하자, 다른 천사가 "높은 산의 정상에 숨기자"고 하니, "제아무리 높은 산에 숨겨도 찾아낼 거다"며, 궁리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자. 저희 머리가 비상하고 탐구력이 강해도 자기 마음속에 행복이 숨겨져 있는 것을 깨닫기는 어려울 것이다." 참된 행복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합니다.
사기에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버리지 않아 그렇게 높은 것이며 하해는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아 그렇게 깊은 것이다"고 했는데, 우리 마음도 넓게 합시다. 노먼 빈센트 필은 '마음의 생각을 바꾸면 자기 세계도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가는 대로 행동이 가고 운명도 갑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0-23).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