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1 84회
"행복의 조건"
2018년 2월 11일 주일예배
창세기 33 : 1 - 11 ; 마태복음 5 : 9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래 가장 행복했던 세 여자는 누구일까요? 그 중 하나는 '하와'이고, 다른 하나는 '성모 마리아'랍니다. 하와는 시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이고, 성모 마리아는 며느리가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아이를 업고 있는 만삭의 여인'인데, 그 이유는 배부르고 등 따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과연 배부르고 등이 따뜻하기만 하면 정말 행복할까요?
여러분, '소확행(小確幸)'이란 말을 아십니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의 이 말은 서울대 소비트렌드연구소가 펴낸 '트렌드코리아 2018'에서 꼽은 키워드 중 하나로서,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게르한스섬의 오후'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먹거나, 서랍에 반듯하게 접어 쌓은 속옷, 정결한 면 냄새가 나는 하얀 셔츠를 입을 때의 기분 등을 소확행의 사례로 들며,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기가 부딪히는 일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렇다면 소확행은 크리스천들이 더 많이, 더 깊게 누릴 만합니다. 영혼구원과 섬김을 위한 공동체인 교회엔 특유의 소확행이 있습니다. 기도해온 일이 이뤄졌거나, 염려하던 일이 은혜로 깨달아졌을 때, '그래, 바로 이 맛이야!' 같은 특별한 행복을 누립니다.
어니스트 새클턴은 1914년 27명의 대원과 함께 세계최초로 남극대륙 횡단을 위해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항해하다 영하 30도의 남극에서 배가 빙벽에 갇힙니다. 그보다 1년 전 스테판슨이 이끄는 캐나다 탐험대도 북극을 탐험하다가 비슷한 문제를 겪었는데, 고립된 지 몇 달만에 11명의 대원들은 야수로 돌변해 서로 속이고 도둑질하고 싸우다 결국 다 죽고 말았지만, 새클턴의 27명 대원들은 634일만에 한 명의 낙오도 없이 모두 영국으로 귀환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한 대원이 일기에 '지금 이 순간이 참으로 행복하다'고 쓴 것입니다. 그것은 새클턴이 매일 "살아 있어 숨쉬고 있는 동안 결코 절망하지 마라! 그리고 절망하지 않는 우리는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며 격려함으로, 그들은 그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서로 배려하며 격려했기에, 절망하지 않고 도리어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새클턴은 비상식량마저 떨어져 마지막 남은 비스킷을 대원들에게 나눠주고 천막에서 막막한 심정에 잠 못 이루고 있는데, 자기가 특별히 신임하던 대원이 가만히 일어나 옆 사람 주머닐 뒤지자 비스킷 종이가 바스락거렸습니다. 순간 '아무리 배고프기로 동료의 비스킷을 훔치다니!'하는 생각에 절망과 배신감에 휩싸였습니다. 새클턴은 어둠 속에서 그가 하는 짓을 쏘아보는데, 다음 순간 그가 무얼 하는지 알고는 다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 대원은 훔치려던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얼마 남지 않은 비스킷을 나이 어린 대원의 호주머니에 몰래 넣어주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야곱처럼 복을 추구하는 데 그토록 철저하게, 피나는 노력을 다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야곱은 복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복을 배워갔던 순례자(pilgrim)입니다. 야곱은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겠다고, 주어진 복이 아니면 복을 강탈해서라도 받으려고 편법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야곱이 생각한 행복은 먼저는 연애라고 생각했습니다. 창세기 29장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창29:20). 한 여인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수일처럼 여기며 머슴살이를 했는데, 그의 장인 라반은 라헬 대신 그의 언니 레아를 아내로 주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항의하자, 라반이 말합니다.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창29:26-27). 그는 다시 7년을 더 머슴살이하여 도합 14년을 봉사할 만큼 참으로 화끈하게 연애했습니다.
여러분은 한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여 그를 얻기 위해 7년씩 두 번, 14년 동안을 머슴살이했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14년이면 청춘이 다 가는데 야곱은 '내가 이 여인만 얻으면 더할 것 없이 행복하겠다'는 마음에 '7년을 며칠같이' 두 번이나 머슴살이했습니다. '첫 사랑의 여성과 결혼하는 자만큼 운 좋은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야곱은 화끈하게 연애했습니다. '인간이 숨길 수 없는 세 가지는 기침과 가난과 연애'라는데, 누군가 뜨겁게 사랑하여 끝내 그 사랑을 이루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표류'라는 뜻의 [Cast away]라는 영화이야기입니다. 세계적인 택배업체 패덱스사의 직원 놀랜드는 약혼녀 켈리와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지내지 못하고 급한 회사의 명령으로 비행기를 타게 됩니다. 놀랜드가 타고 가던 패덱스사의 화물기는 남태평양 상공에서 악천후에 휘말려 바다에 추락하고, 놀랜드만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표류하여 생존을 위해 온갖 고생을 합니다. 그렇게 4년을 지내지만 사랑하는 애인 켈리가 선물해준 멈춰버린 시계 하나를 움켜쥐고 그녀를 생각하며 고통을 이겨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도에 떠내려온 알루미늄 판자로 뗏목을 만들어 바다를 헤쳐 나와, 운 좋게 화물선을 만나 구조됩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보니 자신은 사망 처리되어 있고 장례식까지 치러진 상태였습니다.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애인 켈리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았습니다. 주인공은 4년의 세월 무인도에서 고독과 싸우면서도 사랑 하나 때문에 버틸 수 있었으나, 이제 사랑을 잃어버린 허탈감 때문에 놀랜드는 방황합니다. 이제 살아갈 자신도 없고 살아갈 힘도 이유도 없습니다. 사랑의 힘은 무인도 생활도 이기게 해주었으나 사랑의 대상이 사라지자, 안정되고 화려한 생활도 아무 힘이 되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야곱은 많은 가족을 거느리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레아와 라헬, 그리고 빌하와 실바, 네 여인을 아내로 두었고, 거기에다 무려 12명의 아들과 디나라는 딸까지 두었습니다. 야곱 자신과, 네 명의 아내와, 열 세 명의 자녀를 합치면, 모두 열 여덟 명의 대 가족을 이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엔 '부귀다남'(富貴多男)을 복으로 여겼습니다. 야곱이 낳은 열두 명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12지파를 이루는데, 당시 자식은 곧 노동력이었고, 많은 자식을 둔 만큼 큰 세력으로 생각했기에, 야곱은 아내도 많이 두었고, 또 자식도 많이 낳았습니다.
프랑스 작가 끄리스띠앙 쟈끄의 장편소설 [람세스]에 보면, 람세스는 태양의 왕으로 불리는 이집트의 파라오로서, 고대 전쟁사에서 알렉산더와 더불어 불멸의 전략가로 꼽히는 실제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를 닮은 자식들을 많이 두는 것이 내부의 음모를 견제하고 외적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수많은 여자에게서 약 200여 명의 자손을 두었습니다. 그토록 위대한 전략가로 꼽히는 그도 두려움 때문에 그 많은 자식을 두었던 것입니다. 야곱도 자식을 많이 두어 자기 세력을 키우는 것이 행복이요, 이것이 성공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가하면 재산을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야곱이 모은 재산을 보면, 창세기 32장에서 형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형에게 주려고 따로 구별한 가축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창32:14-15). 이것이 형에게 줄 선물의 양이었다면, 자기 자신의 몫은 얼마나 더 많았겠습니까? 야곱은 20년 동안 하란에 거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많은 재산을 모았던 것입니다.
야곱은 무엇보다도 많은 재산이 있어야겠다고 여겨, 머슴살이를 하면서 지독하게 돈을 모았습니다. 요새는 돈이 있어야 나이가 들어서도 손자들이 반가워하지, 돈 없는 할아버지는 반가워하지 않는답니다. 넉넉히 돈을 쥐고있어야 일년에 한번이라도 아이들이 찾아오지 그렇지 않으면 효도 받기 어렵답니다. 돈이 그토록 소중하기에 그저 목숨을 걸고 돈을 모으려고 애를 씁니다. 야곱은 양떼의 이상한 교배법을 통해 많은 양떼를 가지게 되었고, 이로서 그는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과연 행복을 가져다 줄까요? 세계적인 거부 록펠러는 "나는 천만 불을 모아 보았으나 그것이 나에게 행복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도 "돈은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고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돈은 아무런 행복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돈은 많이 벌수록 더 큰돈을 벌려고 한다. 돈은 공허를 메우기보다는 차라리 또 하나의 공허를 낳는다"고 말했습니다.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이 물질만을 추구하는 삶은 가장 비참하고 가난한 삶입니다.
야곱은 이처럼 그가 원했던 재산, 자녀, 사랑도 다 가졌지만 두려움과 쫓기는 마음으로 불안하고 평안함이 없어, 바로 왕 앞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야곱은 화끈하게 연애했고, 자식 낳고, 돈벌면서 잘살아보려고 험악한 세월을 살았지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아냈지만, 결국은 에서의 증오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혈혈단신으로 저 멀리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에 가서 20년 세월을 보냅니다. 그곳에서 처자식도 얻고, 재산도 모아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형 에서가 자기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400명의 가병(家兵)을 이끌고 자기를 맞으러온다고 합니다. 야곱은 그 소식에 불안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창32:7-8). 가족과 재산을 둘로 나눠 한 쪽이라도 피해볼 계획을 세워봅니다.
그래도 불안하자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창32:11).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자, 형의 마음을 달래보려고 '암염소 이백, 숫염소가 이십, 암양 이백, 수양 이십, 젖 나는 약대 삼십과 그 새끼, 암소 사십에 황소가 열, 암나귀가 이십과 그 새끼나귀 열 마리' 많은 예물을 형에게 보냅니다. 그래도 형이 금방이라도 달려와 자기와 가족을 다 죽일 것만 같습니다. 그 순간 지금까지 행복의 요소라 여겼던 재산과,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12명의 자식도 이 위기를 타개하는 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가족과 재산은 모두 먼저 앞서 보내고 강변에 홀로 남았는데, 어떤 사람이 찾아와 씨름합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창32:24). 캄캄한 밤에 그가 야곱을 치자 환도 뼈가 위골 됩니다. 그때 야곱이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고 물으니,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창32:29)고 되묻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모르는 것처럼 살면서 마음속으론 '내가 이러다가 언젠가 한번은 되게 당하겠지'하며 불안했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급소인 환도뼈를 쳐버리십니다. 그때 이런 대화가 오갑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32:26). '하나님, 주님이 저를 축복해주시지 않으면, 주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저는 살 수 없습니다'하는 부르짖음입니다. 지금까지 자기 힘과 의지와 자기 집념으로 모든 것을 다 해왔는데, 이 순간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만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때 그 사람이 야곱에게 묻습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32:27-28). 그리고 나서 야곱을 축복합니다. 그러자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다는 뜻으로,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부르게 됩니다(창32:30).
여기서 야곱은 깨닫습니다. 첫째, 참된 행복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자기가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고, 자기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재산도 모았고, 사랑하는 여인도 얻었고, 많은 자식도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외삼촌 라반에게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는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자기를 맞으러 온다는 소식 앞에, 지금까지 자기가 애써서 이룬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비로소 자기 힘과 재주만으론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축복하시며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십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얻고 성취한 것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야곱은 드디어 형 에서와 조우하는데, 에서가 묻습니다.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창33:5a). 그때 야곱의 대답이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창33:5b). 야곱의 성격이나 지금까지 그의 태도로 보면, '내가 객지에서 고생하고 수고한 끝에 성공하여 이렇게 대가족을 이뤘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올 듯 했는데, 야곱은 이제 '하나님께서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야곱은 거듭 '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8절에선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고 말하고, 10절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라고 말하는가 하면, 11절에선 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창33:11). 지금까지 자기 집념과 의지로 살았던 야곱인데, 얍복강 나루에서 하나님을 뵙고 나서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은혜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릿고개는 사라진 지 오래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렀고 동계올림픽마저 치르게 되어, 이미 우리의 관심은 국가와 사회의 번영에서 가정과 나의 행복으로 옮겨졌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자기 만족과 자기 성취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반만년 역사이래 이런 일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국가와 사회적 번영을 위해 발버둥치던 시대에는 민주화와 인권, 노동자의 권익과 분배의 문제가 시대적인 극복의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와 내 가정에만 관심을 쏟는 오늘 이 시대는 그저 나와 내 가족만 행복하면 그뿐이라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이 그렇게 쉽게 인간의 손에 잡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생존보다 더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며, 더 높은 차원으로, 생존의 문제보다 더 해결하기 어려워, 더 큰 불만족과 공허에 빠지게 됩니다. 늘어난 자살자의 수와 행복지수를 살펴보면 이미 그 결론이 나와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육체적 욕망의 충족과 물질적 풍요에 있지 않습니다.
필립 얀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불행해 지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스스로 하나님을 추방하라. 하나님을 거절하라. 그리고 기도하기를 거절하라. 그러나 당신이 참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당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복귀시키라.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을 배우라." 우리는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실 때에만 참된 인생의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화평을 진정한 행복으로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형에게 예물도 보내고, 만일 형님이 쳐들어오면 이렇게 도망하려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그래도 형이 400명을 거느리고 자기를 맞으러오자, 두려워 얍복강변에서 홀로 남아 간절히 기도합니다. 전에는 '건강주세요, 물질주세요, 자녀주세요' 기도했지만, 지금은 오직 한 가지, '형님과 화평하게 해주세요'하며 오직 화해만을 위해 밤새 기도합니다. 제발 형제간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없기만을 구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형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형제가 원수 된지 20년 만에 처음 만나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원수가 아닌 형제로 만나 감격적으로 화해합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33:4). 그때 야곱은 너무 감격하여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창33:10)라며, 형의 얼굴이 마치 하나님의 얼굴과 같다고 말합니다.
에서의 모습을 성경은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다'(창25:25)고 하여, 그의 외모가 붉은 털이 나있는 모습으로 그의 야성적이고 동물적인 성향을 보여줍니다. 에서의 별명은 '에돔'으로 '붉다'는 뜻으로, 그는 붉고 짐승처럼 털이 많아 결코 좋은 인상이 아니었을 텐데, 이제 형을 만나 화해하고 보니 형의 모습이 하나님의 얼굴과 같다고 했습니다. 20년 동안 막혔던 담이 무너지고 하늘이 열리는 경험을 합니다. 증오가 용서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하던 마음이 이제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뀌면서 막혔던 담이 무너집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간 경영]이란 책에서 말합니다.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은 참으로 통쾌한 일이다. 그러나 진 사람의 고통만큼 그림자가 남는 것이다" 내가 이겨서 기뻐하는 동안 진 사람은 쓰라린 아픔을 겪습니다. 승리는 그만큼 그림자가 남기에, 참된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고, 좀 더 나아가서 화목하며 이기는 것입니다. 싸워서 빼앗아 얻는 것은 결코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더불어 행복하고, 같이 잘 살아야 그게 참된 행복이지 나 혼자만 잘 사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베스트셀러 [정상에서 만납시다]를 쓴 지그 지글러가 75세에 자기 삶을 돌아보며 쓴 자서전에서 말합니다. "모든 것은 감사뿐이었다. 감사 외에 다른 할 말이 없는 그런 일생이었다"며, 자신은 혼자 살아가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천사가 나를 늘 지켜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는 또 자기 부인과 자녀들에 대해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로 나를 참으로 행복하게 해준 귀한 동반자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참으로 좋은 사람들로서 내게 고마운 분들이어서, 감사 외에 달리 할 말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해 12월 광주광역시의 한 74세 노모가 3남 1녀 자식들에게 남긴 유서가 눈시울을 뜨겁게 했습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몸으로 네 자식을 헌신적으로 길러낸 나 모씨는 난소암으로 1년 가량 투병하다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길 때, 단 14줄의 짤막한 유서를 작성했습니다. 자식들에게 늘 넉넉하게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고, 자식들에게 받은 사랑을 고마워한 노모의 마음을 담은 유서가 공개됐을 때, 장례식장은 눈물바다로 변했습니다. [내 자식이었음을 고마웠네]라는 제목의 이런 글입니다. "자네들이 내 자식이었음을 고마웠네/자네들이 나를 돌보아줌이 고마웠네/자네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젖 물려 배부르면 나를 바라본 눈길이 참 행복했다네/지아비 잃어 세상 무너져 험한 세상 속을/버틸 수 있게 해줌도 자네들이었네/이제 병들어 하늘나라로 곱게 갈 수 있게/곁에 있어 줘서 참말로 고맙네/자네들이 있어서 잘 살았네/자네들이 있어서 열심히 살았네/딸아이야, 맏며느리 맏딸 노릇 버거웠지?/큰애야, 맏이 노릇 하느라 힘들었지?/둘째야, 일찍 어미 곁 떠나 홀로 서느라 힘들었지?/막내야, 어미젖이 시원치 않음에도 공부하느라 힘들었지?/고맙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 참으로 귀한 모습입니다.
이번 설에 좋은 마음으로 고향을 찾고, 가족친지들을 만나다가, 사소한 일로 가족 간에 서로 다투고 상처를 입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과는 다툴 일도 없는데 정작 가장 친밀해야 할 사람끼리 사소한 문제로 서로 갈등과 아픈 상처를 주고받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형제를 만나시겠습니까? 야곱은 20년을 원수로 지냈던 형을 만나기 앞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더니, 형의 모습이 하나님 뵙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코리 텐 붐은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반드시 건너야 할 다리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구약의 대표적인 복은 '평강'이고, 신약의 대표적인 복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형제와 화목하게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로 모든 사람과 화평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