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8 78회
"어떤 처지에도 감사하십시오"
2018년 11월 18일 추수감사주일
데살로니가전서 5 : 16 - 24 ; 시편 116 : 12 - 14
어떤 사람이 의사를 찾아와서 말합니다. "선생님의 치료 덕분에 제가 얼마나 큰 혜택을 받았는지 감사해서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의사가 그 사람을 쳐다보더니 말합니다. "당신은 제 환자가 아닌데요."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잘 압니다. 제 삼촌이 선생님의 환자였지요. 저는 그의 상속자랍니다." 별것을 다 감사합니다.
이시형 박사의 글입니다. "정신의학에서 '스트레스의 대가'인 내분비학자 한스 셀리(Hans Seyle)는 캐나다 분으로, 1958년 스트레스연구로 노벨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이분이 고별강연을 하버드대학에서 했는데, 제가 마침 그때 그 대학에 있어서 아주 감동적인 강연을 들었습니다. 강당에 백발의 노교수들이 빽빽이 들어섰는데 강연이 끝나자 기립박수도 받았습니다. 강연이 끝나 내려가는데 웬 학생이 길을 막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스트레스 홍수시대를 살고 있는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비결을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러자 이분은 딱 한 마디를 대답했습니다. 'Appreciation!' '감사하며 살라'는 그 말 한 마디에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여러분, 감사만큼 강력한 스트레스 정화제가 없고, 감사만큼 강력한 치유제도 없습니다. 종교인이 장수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은 범사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작고 하찮은 일에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이 자세가 종교인이 장수하는 비결로 의학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미움, 시기, 질투가 없습니다. 뇌 과학적으로는 이런 순간 건강체를 만드는 세로토닌이 펑펑 쏟아진다고 말하는데 감사라는 것이 인간을 그저 편안하게 하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신대륙을 찾아간 청교도들에겐 '7가지 감사조건'이 있었습니다. "첫째,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지만 그 배라도 주심을 감사. 둘째, 평균 시속 2마일로 항해했으나 117일간 계속 전진할 수 있었음을 감사. 셋째, 항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남을 감사. 넷째, 폭풍에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 다섯째, 여자들 몇 명이 심한 파도 속에 휩쓸렸지만 모두 구출됨을 감사. 여섯째, 인디언들의 방해로 상륙할 곳을 찾지 못해 한 달 동안 바다에서 표류했지만 결국 호의적인 원주민이 사는 곳에 상륙하게 해주셔서 감사. 일곱째, 고통스러운 3개월 반의 항해 도중 단 한 명도 돌아가자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음을 감사." 이런 일들은 별로 감사할 일들이 아니었으나, 저들은 믿음으로 감사했습니다. 저들은 천신만고 끝에 신대륙에 도착하여 이듬해 인디언에게 얻은 씨앗으로 지은 첫 농사의 결실로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린 것이 지금의 추수감사절 유래가 되었습니다. 1931년 경제대공황 때 뉴욕에 지은 당시 세계 최고층이었던 102층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그때 살아남은 청교도 102명을 기념한 건물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우리 신앙생활에도 나름의 원리와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그리고 이에 대한 성도의 감사가 있으며, 이 감사로 인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 순서는 언제나 일정한데, 어느 때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선택하셔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성도는 이 은혜를 깨닫고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몸으로 주께 봉사하며, 물질로 주님께 헌신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셔서 우리 심령을 윤택하게 하시고, 생활을 풍성하고, 삶을 복되게 하십니다.
본문 18절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감사해야 할 이유'와 '감사의 범위', 그리고 '감사의 조건'을 깨닫게됩니다. 첫째,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어떤 이는 교회에 다닌 지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 하나님의 뜻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계속 자기 생각, 자기 욕망에만 메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이 처음 외쳤던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인데, '회개'란 말은 정치적인 용어로, '정권교체'를 뜻합니다. 지금까지 나 자신이 내 인생의 주인이었고, 내 의지대로 살아온 삶을 청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들이는 결단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로 시작합니다. 내 소원을 이루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케 되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고, 또 하나님의 뜻이 이루기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무얼 원하시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이것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내가 잘살고 못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먼저 추상적인 하나님의 뜻은 진리, 정의, 사랑, 화평, 공의, 희생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선'이라는 보편적인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은, 경제적인 것,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 등 복잡한 문제로서 한 마디로 단정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문제는 나 자신이 오늘 이 시간에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물을 때는 대답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간에 무엇을 위해 나왔으며, 무엇을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이런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순간 순간 나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분명합니다. "감사하라!"는 말씀이 명령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십계명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감사는 내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나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고, 또 이렇게 순종하는 자에게 성경은 축복을 약속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신명기 28장의 축복에 대한 조건을 1절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이라 하여 하나님 명령을 지킬 것을 전제하고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신28:1-5)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복을 주십니다.
한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젊었을 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다고 울며불며 고백했더니 하나님께서는 먼저 어떤 사람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문제만큼은 절대로 건드리지 마시라'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것 외에는 어떤 일이든 다 하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을 평생토록 더욱 집요하게 간섭하셨습니다. 저는 환갑이 넘어서야 겨우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막혔던 일들이 봇물처럼 터져서 하는 일마다 대박이 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이제 막 일이 시작된 것 같은데 시간이 없습니다. 젊었을 때 빨리 '순종'하고 그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둘째, 감사의 범위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a). 이 '범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엔 판티'(en panti)라 하는데, 이에 대해 영어 성경은 3가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곧 '어떤 처지에서든지', '모든 일에',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라는 세 가지 표현입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모든 형편과, 부딪치게 되는 모든 일,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망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어떤 일에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감사드려야 할 구체적인 상황들은 어떤 상황들입니까? 먼저, 우리가 얻은 좋은 일들로, 무엇보다 우리가 예수 믿어 구원받은 일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감사로서 '잘 살고 못 살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이 그리스도께서 대신 당하신 그 은총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이유나 조건이 있을 수 없고, 내 생명이 실패와 고통 중에서 그대로 끝나도 그저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그 얼굴이 천사처럼 밝아지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죽어갈 수 있었습니다.
군 복무중인 청년의 이런 글이 인터넷에 올랐습니다. - 쉬는 시간에 고참들하고 네 잎 클로버 찾으러 수풀로 들어갔는데, 쭈그리고 앉았다가 막 일어나려는데 곁에서 외치는 소리가 "야, 일어나지마? 지뢰야! 꼼짝하면 너 죽어. 그대로 앉아 있으란 말이야." 깜짝 놀라 아래를 보니까 발 밑에 폭탄 모양의 쇠붙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 이것이 지뢰구나.' 자신도, 고참도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고참은 급히 상황실에 연락했습니다. 금새 사이렌이 울리며 부대가 비상 걸렸습니다. 폭탄 제거 반원들이 도착하여 지뢰로 보이는 것을 제거하여 손에 들더니 "야, 임마! 이거 소시지 깡통이잖아." 녹슨 깡통이었던 것입니다. 완전군장을 하고 무더위에 하루종일 연병장 뺑뺑이 돌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때 같았으면 투덜거렸을 텐데, 그 날은 히죽히죽 웃으면서 기분 좋게 돌았습니다. 왜요? 살았다는 감격 때문입니다. -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모두 죽을 목숨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것도 영원히 죽을 목숨이 주님의 십자가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도 사소한 일로 불평을 하고 감사치 않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이요, 구원받은 은혜와 그 감격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대로 죽어도 감사밖에 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은총을 입었습니다.
다음으로는 현실에서 겪는 좋은 일들입니다. 병에 걸렸다 건강이 회복되거나, 또는 자녀가 좋은 학교에 진학하게 되는 일, 그런가 하면 하는 일들이 잘 풀려져 나가는 것 등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형통한 일들을 인하여 감사 드려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고 악해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좋은 일들도 제법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무더운 여름에 소낙비를 주시듯, 때로 우리 삶에 기쁘고 좋은 일들도 주십니다.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이 엄청난 수고요, 희생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큰 기쁨과 보람도 맛보곤 합니다. 평생 부부로 사는 것이 대단한 희생과 인내가 요구되지만, 그 속에서도 위로와 사랑과 기쁨을 나누게 됩니다. 한 평생을 살면서 나름대로 이런저런 좋은 일들을 우리는 경험하며 기뻐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좋은 일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는데 인색하거나 잠시는 감사한 생각이 들다가도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좋지 못한 버릇이 있습니다.
소설 [빙점]의 작가인 미우라 이야코는 수필집에서 '은혜에 익숙해지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고 하면서 그녀는 "하나님! 아무쪼록 은혜에 익숙하지 않도록 인도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자기 남편에 대해 이런 말을 합니다. "처음에는 병약한 나와 결혼해준 남편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런데 결혼생활에 익숙해진 지금 나는 처음의 그 고마움을 다 잊어버리고, 남편에게 화를 내거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버릇없는 여편네가 돼버리고 말았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그렇습니다. 은혜에 익숙해지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곧 감사하는 마음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일상적이거나 당연한 일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삶의 일상성 때문에 감사나 감격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에 새벽이 밝았기에 내일도 새벽이 밝아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내 생명이 붙어 있기 때문에 내일도 당연히 이 땅에서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아침에 건강하게 집을 나갔던 가족이 저녁에 불귀의 객이 되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병원 영안실에 실려갔다는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듣는 일이 요즘과 같이 사고가 많은 세상에서는 새삼스런 이야기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 일상성 때문에 우리는 감사나 감격을 잃어버린 채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공병호의 [에스프레소, 그 행복한 사치]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 "타인의 도움 없이 양말을 신고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일을 하는 것, 비바람을 막아주는 따뜻한 집과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직장과 사랑스런 가족이 있다는 것, 책 한 권을 살 수 있는 여유와 한 끼의 식사, 그리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이런 소소한 일상이 가져다주는 행복에 대해 깊이 감사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조금만 겸손히 생각하면 우리는 참으로 감사해야할 일이 많고,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언가 조금이라도 더 소유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지금 주어진 것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를 챙길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뿐 아니라, 원치 않는 역경이나 불행한 일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당시 데살로니가교회는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살전3:4).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 믿으면 핍박을 받게 될 것을 미리 예언했는데 막상 예수 믿고 나니 엄청난 환란과 핍박이 그들에게 닥친 것입니다. 여기서 핍박이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을 다 포기해야 됨을 말합니다. 이런 종교적인 박해뿐만 아니라, 우리는 현실 속에서 이런저런 질병과 사고와 원치 않는 고통으로 불행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할 때도, 그 안에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은혜가 있음을 믿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일본의 테레사 수녀로 불리는 다마키 여사는 평생을 한센씨병 환자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요양원을 만들고 고름이 나는 환자들의 피부를 치료하다가 그만 자신도 한센씨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한센씨병에 걸린 것을 알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제 육의 눈이 가려지고 영의 눈이 열려 감사하다. 눈썹이 빠지면서 눈썹의 고마움을 알았다. 먼지가 자꾸 눈에 들어가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다. 하나님은 내게 병을 주어 여러 가지 감사의 마음을 알게 하셨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고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이런 감사를 통해 고난을 축복으로 바꾸게 됩니다.
셋째, 이렇게 범사에 감사할 근거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사실은, 로마서 8장 28절에 의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그가 진정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며,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b). 내 생각에 좋은 일이라 여겨지는 것이나, 혹은 나쁜 일이라고 여겨지는 일이나, 무엇이든지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입니다.
송명희 자매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온 몸이 비비 꼬여서, 말 한마디를 하려고 하면 죽다 살아나는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해야 할 정도로 일급 장애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쓴 시 가운데 '나'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못하나/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공평하신 하나님이/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공평하신 하나님이/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까? 뇌성마비로서 남이 가진 것의 90%를 못 가진 자매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마음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그러자 남이 갖지 못한 것 내게 있고, 내가 가진 것과 남이 없는 것을 비교하면서 오히려 '주님, 나는 세상 사람이 가지고 즐기는 것 없어도 예수님 한 분, 주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을 눈으로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며 예수님 때문에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세 한 수도사가 수도원의 자기 일지에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감옥과 수도원은 환경 자체로는 매우 유사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감옥을 지옥으로 만들고 수도원을 천국으로 만드는가? 감옥에서는 하루가 불평으로 시작되는 반면, 우리들 수도원의 하루는 감사로 시작된다. 그러나 만약 수도원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감사를 잃어버리면 이 수도원이 지옥일 수 있다. 반대로, 만약 감옥에서 감사를 발견할 수 있다면, 감옥이 바로 천국이 될 수가 있다." 오늘, 우리는 감사를 통해 천국으로 만들고있습니까? 아니면, 불평으로 지옥을 만들고있습니까?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두 곳인데, 하나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잘되고 성공하는 사람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이 감사합니다. '행복은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원하는 마음'으로, 감사는 겸손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지난 9월 1일자 국민일보에 실린 전정희 논설위원의 [울지마 죽지마 사랑할거야]란 제목의 칼럼입니다. "3차 항암제 투여가 끝나고 딸은 완전히 녹초가 됐다. 주치의가 강력한 수면 진통제를 놓아주었다. 약에 취해 자다 깨다를 반복하던 딸은 급기야 두 눈의 초점이 흐려진 채 흐느적거리더니 몸을 가누지 못했다.…나는 그대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딸을 부축해서 변기에 앉히고 밖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가느다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노래 '대니 보이'였다." 여고 2년생 서연이는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었다. '범생이' 서연이는 총명하고 배려심이 많았다. 교회는 아이를 위해 중보기도했다. 학생들도 응원하며, 무균실 창 밖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서연아 사랑한다 힘내라' 서연에게 문자가 전달됐다. '서연이 보고 있어. 깜깜한 새벽부터 플래시 켜고 다들 한바탕 난리를 쳤다. 너무 추워서 얼어죽는 줄 알았어' 서연이는 10여년 전 하나님 품에 안겼다. 서연이 엄마는 서연이를 위한 이웃의 기도에 감사해 [울지마 죽지마 사랑할거야]란 책을 남겼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마음에서, 단 하루 사이에 모든 용기를 잃고, 작은 고통에도 그저 하루라도 빨리 편안하게 하늘나라에 가기만을 소망하게 된 내 모습… 이렇게 아프기 전에, 마음껏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알았어야 했는데….'(2007. 2. 6. 서연이 일기).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고백이 "사랑하세요 그리고 감사하세요"이다. '단 하루 사이에 모든 용기를 잃었다'는 서연이 얘기는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깨닫게 한다. 그러나 손끝에 박힌 가시 하나가 괴롭힐 때 우리가 무심코 찾는 분이 하나님이다. 서연이가 부른 '대니 보이'의 2절은 이렇다. '그대 고운 목소리를 들으면/내 묻힌 무덤 따뜻하리라/그대 항상 나를 사랑하여주면/그대 올 때까지 나 잘 자리라.' 오늘도 삶이 고달픈가. 사랑할 일이다. 감사할 일이다.
박용석 씨의 [감사뿐입니다]란 시입니다. "내가 부족할 때에도/부족함 중에도 주님이 모자람이 없도록 하셨사오니 감사합니다/내가 풍족할 때에도 풍족함 중에도/주님을 바라보게 하셨사오니 감사합니다//내가 아무 것도 없을 때에도/없는 것을 주님께 모두 다 아뢸 수 있게 하셨사오니 감사합니다/내게 모든 것이 다 있을 때에도/주님이 모든 것을 다 주셨음을 알게 하셨사오니 감사합니다//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에도/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주님이 다하게 하셨사오니 감사합니다/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때에도/주님이 모든 능력 다 주시었으니 감사합니다//감사뿐입니다." 깨닫고 보면, 부족함도 풍족함도, 할 수 있음이나 없음까지도 감사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116:12-14). 주님의 뜻을 헤아려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더 크신 은혜로 날마다 천국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는 행복한 삶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