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1 134회
“너희는 나를 주님이라 부르는데”
2022년 8월 21일 주일예배
누가복음 6 : 46 - 49 ; 시편 16 : 1 - 3
인간이 그리스도께 범하는 세 가지 죄가 있다면 첫째,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스스로 자신이 주인으로 처신하는 일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인간은 스스로 자기 생명을 창조한 자존자가 아니라 피조물입니다. 내 자신의 선택으로 오늘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대상을 주인으로 섬기는 일입니다. “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 도다”(사44:16-17). 한 토막 나무 중에 얼마로는 고기를 구워먹고, 또 얼마를 가지고는 불을 지펴서 몸을 따뜻하게 하면서, 다른 토막으로는 우상을 만들어 그것에 절하면서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며, 어리석게 우상을 자기 주인으로 섬기는 우상숭배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셋째,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부르면서 실제론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일입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6:46).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입으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데, 실제로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지 않고, 또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분명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주님이시라면, 우리는 그분의 종입니다. 종에게는 세 가지가 없습니다. 하나는 자유가 없습니다. 오직 주인의 명령에 절대 순종할 의무만 있습니다. 다음은 소유가 없습니다. 종이 가진 모든 것은 주인의 것을 맡아 관리하고 있을 뿐, 주인이 가져오라 하면 언제든지 ‘예, 여기 있습니다’하고 주인에게 드릴뿐입니다. 그리고 명예가 없습니다. 주인이 야단치면 야단 맞고, 욕하면 욕을 먹을 뿐입니다. 아무리 잘한 것이 있더라도 주인이 칭찬하면 감사할 뿐이요, 그것을 자기 공로로 내세울 수 없고, 모든 공로는 주인께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눅6:47)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나아와’, ‘듣고’, ‘행하는’ 이 세 동사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원리’를 증거합니다. 첫째, ‘나아와’는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영접하는 것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요1:12)가 주어집니다. 둘째, ‘듣고’는 주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으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10:17)고 했습니다. 셋째, ‘행하는’은 주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으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께 나와, 그 말씀을 듣고, 들은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입니다. 주님께 나와 말씀을 듣긴 하지만, 그 말씀을 지켜 준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눅6:48)라는 말씀에서 주초를 튼튼하게 세운 집은 어떤 풍랑에도 견뎌내듯이, 주님 말씀을 매일 삶 속에서 실천하면, 모든 난관을 극복하는 지혜와 용기로 어떤 환난도 끝내 믿음으로 승리한다고 말씀합니다. 지적 호기심이 아닌, 말씀을 삶의 원칙으로 듣고 행하는 자는 인생을 반석 위에 터 닦고 집 짓는 슬기로운 인생의 건축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우리 주님의 종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까요? 첫째, 주님께 대한 충성입니다.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고 말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면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 주님의 뜻을 이루려는 충성심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복종하는 자세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 감정과 혈기를 자제하고, 주님께 복종해야합니다. 자신을 희생하여 주인을 섬기는 일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일은 자기 감정을 누르고, 주인 명령에 복종하는 일입니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해, 주님께 복종하지 못하면 주께서 귀히 쓰는 종이 못됩니다. 우리가 주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스스로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처할 수 있겠습니까?
셋째, 말이 아닌 실천으로 주님의 뜻을 행하는 종이 되어야합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맡은 종이 그 돈을 땅에 묻었다 가져와서 구구한 변명을 하자(마25:24-25) 주인이 말만 많고 행동이 없던 이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하고 ‘무익한 종’으로 간주하여 쫓아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필요할 때만 편리하게 불러낼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지는 않으십니까? 이런 자세로 신앙생활 한다면, 마지막 심판대에서 이런 무서운 책망의 말씀을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님은 엄히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행함이 없어 죽은 믿음이 되지 않도록, 마음 깊이 새길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