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움켜쥐지 말라

2018-12-16 72회

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님

신명기 15장 7~11절

설교요약 :

"손을 움켜쥐지 말라"
2018년 12월 16일 주일예배
신명기 15 : 7 - 11 갈라디아서 2 : 10


한 거지가 놀부 아내에게 "마님, 한푼만 줍쇼"하고 구걸하자 놀부 아내는 똥개를 가리키며 "네가 이 똥개에게 아버지라고 한번 부르면 내가 동전 한 닢을 주지"라고 말합니다. "한번 부르면 한 닢이면 열 번 부르면요?" "그럼 열 닢 주지." 사람들이 몰려들자, 거지는 고개를 꾸벅이며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하고 열 번을 부르자, 놀부 아내는 배꼽 빠져라 웃고는 약속대로 동전 열 닢을 주니, 거지가 인사합니다. "감사해요, 어머니!" 졸지에 똥개 아내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마음 곱게 써야합니다.


장쓰안의 [평상심]이란 책에는 인도의 열대림에서 특이한 방법으로 원숭이 잡는 법이 소개됩니다. 작은 나무상자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견과류를 넣은 뒤, 상자에 손을 넣을 작은 구멍을 뚫어놓으면 견과를 움켜쥔 원숭이는 구멍에서 손을 빼지 못하고 사냥꾼에게 잡힙니다. 손에 잡은 것은 놓지 않는 원숭이의 습성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원숭이를 비웃을 일이 아닙니다. 우리도 때때로 똑같은 어리석음을 저지릅니다. 움켜쥔 손을 결코 펴지 않아 나락으로 구르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제자인 데이빗 캐슬러와 함께 죽음 직전에 있던 수백 명과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쓴 [인생수업]은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썼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 한 여성이 어느 금요일 오후, 차를 몰고 시 외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주말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에 가까워갈 무렵 갑자기 앞에 있는 차들이 비상등을 깜빡이며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고가 났구나'하며 그녀도 비상등을 켜고 속력을 줄였습니다. 그런데 백미러로 뒤를 보니 트럭 한 대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오고 있는데, 졸거나 이 상황을 보지 못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달리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순간 죽음이 생각나는데, 그 순간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순간 나는 운전대를 움켜쥐고 있던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의식적으로 꽉 잡았던 것이 아니라 내가 그때까지 살아온 방식이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았고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양손으로 운전대를 놓아버렸다. 삶과 죽음에 순순히 나 자신을 맡겼다. 뒤이어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트럭이 달려와 뒤에서 강하게 부딪혔습니다. 얼마 후, 사방이 고요해지고 그녀는 눈을 떴습니다. 차는 다 망가졌지만 기적적으로 그녀는 무사했습니다. 경찰관이 "온 몸에 힘을 뺀 것이 당신을 살렸다"고 말했습니다. 핸들을 꽉 주었으면 근육이 긴장하여 오히려 심한 부상을 입었을 텐데, 손을 놓고 힘을 뺀 것이 그녀를 살렸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는 손을 움켜쥐고 살아왔으나 손에서 힘을 뺌으로, 진정 평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귀중한 진리를 배웠습니다.


신명기 15장은 안식년에 대한 규례로서, 오늘 본문은 특별히 구제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을 통해 구제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을 받게 됩니다. 첫째, 구제는 반드시 실천해야할 신앙인의 덕목이라고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신15:7-8). 여기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완악하다'는 히브리어 [야마츠]는 '요새화 하다, 완강하게 하다, 딱딱하게 하다'는 뜻으로,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동정심을 고의적으로 억제하는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또 '손을 움켜쥔다'는 말씀도 '이웃에게 동정의 손길을 베풀기를 거절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마음이 강퍅케 된 결과로서의 행동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처럼 가난한 자가 도움을 요청할 때, 마음을 강퍅케 하여 손을 움켜쥐지 말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꾸어주라고 말씀합니다.


한 사막에 조그만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맑은 샘물과 우거진 야자수가 있었습니다. 노인은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샘물을 퍼주며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그네들은 물을 얻어먹고 노인에게 몇 푼의 동전을 건네줬습니다. 노인은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금고에 동전이 쌓여가면서 욕심이 생겼습니다. 노인은 이제 돈을 모으는 것에 몰입하여 샘물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나그네에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노인은 샘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잎이 무성한 야자수가 샘물을 흡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야자수를 몽땅 잘라버렸습니다. 야자수가 만들어낸 그늘이 없어지더니 결국 샘물은 말라버렸습니다. 노인은 뜨거운 햇볕을 견디지 못한 채 죽고 말았습니다. 과욕은 죽음을 낳습니다. 인간은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8절과, 10, 11절은 어려운 이를 돕는 일은 '반드시' 행할 것을 강조합니다.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성경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권면도 있지만, 이 구제의 문제는 '반드시' 행해야할 의무로서, 강제규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선교에 힘썼던 사도 바울도 구제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갈2:10).


둘째, 그래서 구제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이를 돕는 문제는 권장사항으로 실천하면 좋지만, 설사 이것을 실천하지 않아도 죄가 되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 법에선 선을 행치 않는 것을 죄로 다스리지 않지만, 성경은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4:17)고 말씀합니다. 본문에서도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신15:9)며 궁핍한 형제를 돕지 않는 것을 죄로 규정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지 않아 그가 하나님께 호소하면 너는 죗값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지내온 일생을 회고하면서 대체로 다음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입니다. 가난하게 산 사람이든 부유하게 산 사람이든 죽을 때가 되면 '좀 더 주면서 살 수 있었는데... 이렇게 긁어모으고, 움켜쥐어 봐도 별 것도 아닌데 왜 좀 더 나누지 못하고 베풀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이 크게 후회된다고 합니다. 둘째는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입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 데 없는 말을 하고, 혈기부리며 과격했던가?'하고 후회한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여겼지만, 지나고 보니 참지 못한 것이 후회되더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빡빡하고 재미없게 살았던가?'하며, 삶을 여유 있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하게된다고 합니다.


셋째, 구제에는 하나님의 보상이 있음을 약속합니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15:10). 여기 '아끼다'는 히브리어 [라아]는 '상하게 하다, 괴롭히다, 상처 입히다'는 뜻으로, 이 말은 구제하면서 손해본다고 언짢아하는 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일일뿐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것임을 뜻하는 말입니다. 진정한 구제는 하나님의 진노가 두려워서(9절)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쁨으로 즐겨 구제할 때,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보상을 약속하십니다. 잠언에도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했습니다.


성경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고 약속했고, 잠언서는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11:25)고 말씀했습니다.


마닐라에 사는 열살 된 소년이 그토록 갖고 싶은 자전거를 사려고 돈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 아빠가 얘기하는데, 다른 나라에선 식량이 없어 수많은 어린이들이 죽어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소년은 다음날 돼지저금통을 깨뜨려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만큼 빵을 사서 그 지역의 YMCA에 가서 굶주린 어린이들에게 전해달라고 말했습니다. YMCA 간사는 회원들을 긴급 소집하여 소년이 가져온 빵에 대해 의논하여 그 빵을 경매에 붙여 상당한 돈을 보냈습니다. 뉴욕에 사는 한 부인이 이 일을 듣고 소년에게 돈과 함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자전거 없이 지내는 소년을 보고 있을 수 없어 이 돈을 보내니 자전거를 사기 바란다." 열살 된 소년에게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에게 빚지는 일이 없다는 걸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에게 사랑과 구제를 실천해야 합니까? 11절에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11절)에게 도움의 손길을 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 '곤란한 자'란 갑자기 재난을 당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고, '궁핍한 자'란 생활이 가난하여 늘 어렵게 사는 사람입니다. 초대교회는 구제를 제도와 조직을 갖추어 시행하였습니다. 쿠파(Kuppah) 즉 '광주리 기금'을 통해, 영구히 구호가 필요한 사람은 하루 두 끼씩, 일 주일에 14끼의 식사를 제공했고, 일시적으로 원조가 필요한 사람은 위급을 면할 만큼 지원하기 위해, 탐후이(Tamhui)라는 '쟁반 기금'을 거두어 특별지원을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는, 이 구제 문제로 인해 헬라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가 문제를 잘 해결하여 이런 일을 전담할 수 있는 집사 제도가 세워지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도, 평상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이 일상화해야 하고, 또, 갑자기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때에 맞게 돕는 손길을 펼쳐야 합니다. 우리 주변엔 이런저런 사정으로 스스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내 쓸 것을 아껴 이웃을 돕고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참된 사랑은 내가 쓰고 남은 것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쓸 것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인이 어느 날, 가진 돈 만 원을 들고 동네 구멍가게로 분유를 사러갔습니다. 분유를 들고 계산대로 가져가니 가게 주인은 만 육천 원이라고 합니다. 힘없이 돌아서는 아이 엄마를 보고 가게주인은 분유통을 제자리로 가져가 올려놓다가 분유통을 슬며시 떨어뜨립니다. 그러고는 아이 엄마를 불러 '찌그러진 분유는 반값'이라고 알려줍니다. 아이 엄마한데 만 원을 받고서 분유와 함께 거스름 돈 2,000원을 내줍니다. 아이엄마는 감사한 마음으로 분유를 얻었고 가게 주인은 8천 원에 행복을 얻었습니다. 여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주인의 마음에서 작은 천국을 봅니다. 천국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부자'는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눌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먼저는 저들을 돕는 일에 변명과 핑계가 없어야 합니다. 본문 9절에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고 궁핍한 형제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는 말은 안식년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족이 자기에게 지은 빚을 탕감해주는 율법 때문에, 안식년이 다가오면 돈을 돌려 받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어려운 사람이 찾아와 사정을 해도 빌려주지 않는 사례를 두고 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칫, 어려운 이들을 보면 '저 사람이 어렵다고 하지만, 가짜일지도 몰라. 저런 사람을 돕는 일은 저 사람을 평생 거지생활 하도록 조장하는 일이야!'라며 그럴듯한 논리로 저들을 돕는 일을 회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설사 그들이 속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지, 나는 일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일입니다.


남을 돕지 않는 가장 많은 핑계는 자신도 여유 없다는 주장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막의 수도사들은 4세기 말부터 하루 한 끼 식사가 일반적인 관습이었습니다. 한 노 수도사는 "하루 한 끼 식사하면 수도승이다. 하루 두 끼 식사하면 육적인 인간이다. 하루 세 끼 식사하면 짐승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한 끼 양은, 이집트에서 수도사들은 주식인 마른 빵 두 개를 소금물에 담가 한 리브라(약 340g)에다 채소와 과일을 곁들였는데, 부족하면 빵을 세 개, 혹은 여섯 개까지 먹기도 했습니다. 이집트 농부들은 다섯 리브라, 즉 하루 평균 10개의 빵을 먹었다고 하니 수도사들은 훨씬 적게 먹었습니다. 하루 한 끼를 먹고살면 야위고 초췌했겠지만, 풍성한 나눔과 소통으로 이를 보완했습니다. 손님이 찾아오거나, 자신이 이웃 수도사를 방문하는 경우에는 금식을 중단하고 기름, 콩, 올리브, 과일 등 음식의 질을 높여 융숭하게 대접했는데, 이런 방문이 일주일에 절반은 되었다니 영양상태가 그리 나쁘진 않았을 것입니다. 수도원의 기본원칙은 혼자 먹든 함께 먹든 반드시 포만감을 피해 약간 배고플 정도로 먹는 것이었습니다. 테오돌은 "음식을 부족하게 먹는 것은 수도사의 육신을 정화한다"고 했고, 요한 클리마쿠스는 식욕에 굴복하고 위를 키우는 것은 음란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건강과 영성뿐 아니라, 이웃을 돕기 위해서도 절제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인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8절). 이웃의 어려움을 보면서, 마지못해 도움의 손길을 펼치긴 하는데, 내게 아까운 것은 차마 주지 못하고, 내게 쓸모 없는 것들을 쓰레기 처리하듯 내놓은 일들이 많다고 합니다. 간혹 아파트 단지에서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해 옷을 모아달라고 하면, 입지 못할 넝마와 같은 것들을 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런 것들이 수재민들에게 전달됐을 때, 그들이 모욕감을 느끼게 되는 일들이 많다고 합니다. 내게 소중한 것을 내놓지 않으면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6. 25 한국 전쟁 후에 국제 선명회(월드 비전)에서 지원하여 대구 동산병원 안에 고아를 위해서 병원을 지을 때, 그 때에 병원 낙성식에 국제 선명회 총재이신 피얼스 박사께서 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미국 사람들은 돈이 많아서, 큰 부자가 헌금을 많이 해서 이렇게 지은 줄 아십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내가 이 병원을 지으려 할 때에 꼭 필요하다고 라디오 방송을 몇 번했는데, 그 다음에 내가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어떤 부인이 돈 50불을 편지 속에 넣어보내면서 '나는 항상 병중에 사는 반신불수가 된 사람인데 내가 라디오를 통해서 당신의 음성을 듣고 어떻게든지 그 병원을 도와줄 마음이 간절하지만 다른 돈이 없어서 이 라디오를 팔아서 그 값 50불을 보냅니다.' 이런 정성 어린 헌금이 모여서 이 병원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희생이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고 구제는 언제나 해야할 일입니다. 본문 11절에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누구를 돕는 일은 어제 했다고 해서 오늘은 안 해도 된다거나, 내일 하기 위해서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뤄서도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는 언제나 이 땅에 그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가 이들을 위해서 선을 행하는 일도 언제나 지속돼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대체로 보면 사람들이 내일 형편이 좀더 나아지면 하리라고 미루면서 오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27:1). 오늘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 다시는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잃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약 20년 전에 괌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님이 고국에서 목사님들이 왔다고 오렌지를 한 상자 가져와 목사님들께 나눠주었습니다. 목사님들은 그 오렌지를 다음에 먹거나, 혹은 집에 가져가려고 많은 사람이 가방에 넣어 아껴두었는데, 괌에서 사이판으로 넘어가면서, 괌에 있는 공항에서 사이판에는 농산물 반입이 일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가방에 넣어 가져가던 오렌지를 꺼내 나눠주며 "오렌지가 맛있으니 많이 먹으라"며 갑자기 오렌지 인심이 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괌에서 사이판에 갈 때만 오렌지를 못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천당에 갈 때도 아무 것도 못 가져가는데, 사람들은 왜 그것을 모르고 움켜쥐기에만 급급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빌리 그래함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개의 손을 주셨다. 하나가 받기 위한 손이라면, 다른 하나는 주기 위한 손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두 손은 어떻게 쓰이고 있습니까?


미국에 작자 미상의 [The Cold Within]이란 시가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내부의 추위'지만 '우리 속에 살기(殺氣)'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여섯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춥고 어두운 곳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모두 나무 지팡이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들 앞의 모닥불이 사그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지팡이를 의식한 한 여자가 자기 것을 꽉 움켜쥐었습니다. 그 가운데 흑인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지팡이를 태워 흑인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말은 교회 나가 있을 때나 실천하지 거길 벗어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자작나무 지팡이를 태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는 남루한 옷을 걸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누더기 옷을 더욱 추스르며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흥, 저 게으름뱅이 부자들을 위해 왜 내가 희생해야 해? 어림없지.' 네 번째는 부자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모은 재산에 대해서만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축내지 않고 잘 지키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사람인 흑인은 불기가 사라져 가는 것과는 반대로 복수의 감정이 더욱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이 기회에 어떻게든지 백인들에게 앙갚음을 하리라 별렀습니다. 여섯 번째 사람은 다른 사람들 것은 놔두고 자기 것만 태우는 일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모두 각자 지팡이를 단단히 움켜쥔 채 얼어죽었습니다. 그리고 시는 이렇게 끝납니다. "그들은 바깥의 추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차가움에 얼어죽었다." 맹목적인 증오, 차별, 근거 없는 편견, 언행 불일치의 신앙심, 빈부의 갈등, 이기심 등이 남만 죽인 게 아니라 자기 목숨까지 빼앗은 것으로, 우리 사회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마케팅전문가 조 비테일이 자기 경험을 통해 [함께 사는 세상의 시작, 나눔]을 썼습니다. 그는 아내가 오랫동안 암 투병하다 세상을 떠나자, 두 아이를 기르며 빚 갚기 위해 시간제 직장을 다녔습니다. 하루는 단돈 4달러를 들고 가족이 먹을 우유와 빵을 사러 가다가 잔디밭에서 '먹을 것이 없다'는 피켓을 써 놓은 30대 초반의 부부와 어린아이를 보았습니다. 너무 안쓰러운 마음에 자기도 어렵지만 2달러를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돈이 없다는 불안과 걱정은커녕 한없는 행복을 느끼게되면서, 그 후로 자신의 삶에 놀라운 축복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는 세상에서 부자로 살았던 사람들을 연구해보니, 성공한 삶에는 반드시 나눔과 섬김의 삶이 있었음을 발견하고,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선교와 구제는 초대교회 때부터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몰라 죽어 가는 영혼에겐 복음을 전하고, 먹을 것이 없어 주린 이웃에겐 먹을 것을 주어야합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11:25).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신명기 15장 7~11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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