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모를 고난 앞에서

2020-03-01 229회

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

사도행전 12장 1~12절

설교요약 :

"뜻 모를 고난 앞에서"
2020년 3월 1일 주일예배
사도행전 12 : 1 - 12 ; 예레미야 29 : 11 - 13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 국회가 모여서 당시 중요한 국사를 심의하고 있는데 처칠 수상이 앞의 의자에다가 머리를 파묻고 졸았습니다. 그러자 국회의장이 냅다 소리쳤습니다. "국가의 수상이 나라의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는데 어떻게 졸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처칠이 눈을 뜨면서 하는 말이 "졸다니요? 나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자, 의장이 "아니, 하필이면 이런 때 여기서 기도하십니까?"며 비난하니, 처칠이 벌떡 일어나서 냅다 호령했습니다. "아니, 이럴 때 기도하지 않으면 언제 기도하란 말입니까? 나라의 중요한 일들이 의논되고 있는 이때야말로 정말로 기도해야할 때가 아닙니까?" 지금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기도해야할 때입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고민은,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뜻과 다를 때가 있다는데 있습니다. 전에 우리교회에 등록했던 탈북자 중에 한 어머니는 먼저 나와서 열심히 일하여 돈을 모아 북한 주민을 탈출시키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에게 딸을 데려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으로 데리고 나와 보트 두 대로 태국으로 넘어오는데, 그 중 한 대가 태국 국경수비대에 발각되어 총격을 받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이 어머니는 혹시 딸을 태운 보트가 총격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여 불안에 떨었는데 다행히 딸은 무사히 태국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교회에 등록한 또 다른 분은 아들을 북한에서 데려오려고 돈을 써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에게 부탁했는데, 소식이 오기를 데리러간 사람과 함께 북한에서 나오다가 그만 북한군에게 잡혀 끌려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경우, 두 어머니 모두 사랑하는 자식을 저 지옥 같은 북한에서 끌어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며, 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절히 매달렸는데, 한 어머니는 사랑하는 딸을 데려올 수 있었고, 다른 한 어머니는 온갖 노력을 다하고 기도했지만, 사랑하는 아들이 북한을 탈출하다가 북한군에게 붙잡혀 끌려갔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런 경우 쉽게 '한 사람은 운이 좋았고, 또 다른 사람은 운이 없었다'고 말해버리면 간단하지만, 신앙인으로선 어떻게 해석해야하겠습니까?


폭발물 사고 현장에서 죽은 네 명의 동료와는 달리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한 병사에게 어느 목사님이 "하나님의 은혜군요"라고 말했더니 그 사람이 자기도 그렇게 느끼긴 하지만 그렇게 말할 용기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그러면 나머지 네 명의 친구들에게는 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은 할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같은 자리에서도 한 사람은 산 자로, 다른 사람은 죽은 자로 남는 일은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죽음의 위험이 많은 세상에서 나날을 살아갑니다.


오늘 말씀에 베드로의 투옥과 출옥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미 스데반이 순교로 인해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큰 핍박이 일어나 그들은 이방 땅으로 흩어졌는데, 오늘 말씀에는 히브리파 유대인에 대한 핍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행12:1-4). 예수님의 특별한 총애를 받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중에, 헤롯은 먼저 야고보를 칼로 죽였더니, 이것을 유대인들이 기뻐하자, 헤롯은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이것은 열두 제자에 대한 직접적인 박해로서, 히브리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이요, 교회에 대한 철저한 말살정책이었습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열두 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로 희생되는데, 베드로는 같은 위기 중에 살아납니다. 하나님은 왜 베드로는 천사를 동원해서까지 살리시면서, 야고보는 죽도록 내버려두셨을까요?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로서,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요한과 야고보는 주님의 나라가 이뤄지는 날 자기들을 주님의 보좌 좌우 편에 앉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막10:38)고 물으시자 그들이 "할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저들은 그 잔이 순교인 줄 모르고 대답했지만, 예수님은 야고보가 최초로 순교할 것을 내다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고보의 죽음을 막으실 수도 있으셨지만 그대로 허용하셨는데, 그 깊은 뜻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런데 야고보의 순교 후에 베드로에게도 죽음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베드로와 당시 교회가 보여주었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오는 뜻 모를 고난에 대처하는 믿음의 자세를 배우고자 합니다. 우리에게도 베드로처럼 죽음을 절박하게 느끼게 될 순간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대처해야할까요? 많은 성도들이 편안할 땐 하나님을 믿는 듯 하다가, 막상 위기가 닥치면 어떻게 처신해야할 줄 몰라 당황하여 잘못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생각대로 안되면 그만 불신앙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뜻을 모르는 고난과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첫째, 기도해야 합니다. 5절 말씀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기도해서 베드로가 살아났다고 쉽게 단정한다면, 그러면 야고보가 잡혔을 때는 기도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될 것입니다. 야고보가 잡혔을 때도 틀림없이 기도했을 텐데, 그럼에도 야고보는 순교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대로만 응답하시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보다 높고 크십니다.


스데반이 죽음 앞에서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죽음에서 그를 구해내지 않으시고 대신, 그로 하여금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메시야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시고, 그가 기도하자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7:56)하며 신비한 환상을 보았고,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7:59)하며 그 영혼을 주님께 맡기고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하듯, 원수를 용서하며 거룩한 죽음을 맞을 용기를 주셨습니다. 스데반의 순교하게 하셨고, 베드로는 더 살아서 일해야할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시인은 '우리가 당하는 생애의 모든 고난은 작은 죽음'이라며,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을 통해 장차 다가올 죽음을 준비시키기 위한 작은 죽음의 사건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폭풍우처럼 몰려오는 삶의 위기 앞에 우리는 "주여, 이 위기와 고난에도 믿음으로 행하길 원합니다"하며 기도해야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의 삶 속에 이뤄지도록, 먼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치 못한 방법과 능력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왜정시대 평안북도에 최 전도사님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일본순사들은 어떻게든 교회를 없애기 위한 구실을 찾는데, 그때 마침 전도사님의 사모님이 당시 무서운 전염병인 장질부사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소문에 일본 순사가 즉각 달려와 교회 주변을 새끼줄 쳐놓고는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겠다고 합니다. 전도사님은 큰일났습니다. 다음 주일부터 교인들이 교회에 나올 수 없게 되자, 이 전도사님이 "이 병은 전염병이 아니고 감기입니다"며 둘러댔습니다. 그러자 순사가 "뭐, 감기? 감기라면 하루 이틀이면 낫겠구먼. 그러면 좋다. 다음 주까지 두고봐서 감기로 나으면 이대로 내버려두겠지만, 만약 전염병이라면 이 예배당에 병균에 오염됐을 테니 이 예배당을 불살라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최 전도사님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순사가 돌아가자, 전도사님은 예배당에 엎드려 하나님께 유명한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내 아내가 잘못되면 하나님 손해보십니다. 하나님, 바꿔놓고 생각하십시오." 참으로 솔직하고 단순한 기도로, 깨끗한 소속감입니다. 얼마를 그렇게 강단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데, 뒤에서 누가 깨웁니다. 돌이켜 보니 아들이 "아빠, 식사하시래요"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앓아 누워 꼼짝 못하고 있을 텐데 무슨 식사인가?'하고 의아해서 예배당에 달린 사택으로 가보니 언제 아내가 일어났는지, 깨끗이 몸을 씻고 단장하고 밥을 지어서 상을 차려놓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온전히 하나님께 소속되어 기도할 때, 모든 책임까지 하나님께 돌릴 수 있고, 하나님의 보호아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깨끗한 소속감과 충성심에 하나님도 감동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유래되어 한국교회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 바꿔놓고 생각해보십시오"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기도는 승리의 비밀입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나는 것이나,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거룩한 환상을 보고 성도답게 영광스럽게 죽을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도 기도의 응답입니다. 내가 기도한 그대로 응답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을 의지하고 맡겨야 합니다.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행12:6).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서 내일이면 끌려가 죽을 상황인데도 하나님을 믿고 편안히 잠자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일이면 칼로 목이 베어질 상황에서 편히 잠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교도소에서는 사형수에게 사형의 날짜를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형수에게 언제 사형이 집행된다는 결정적인 날짜가 알려지면, 대부분의 죄수들은 발버둥치고 발광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는 내일이면 죽게 될 이 절박한 상황에서도 편안히 잠을 자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과 그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는 그런 상황에서 잠잘 수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베드로는 마음이 조석으로 변할 만큼 아주 감정적인 사람인데, 죽음을 앞두고 편안히 잠들 수 있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 자기 운명을 맡긴 믿음 때문입니다. 생사를 하나님께 맡긴 채,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전폭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앞에 맡겨버렸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편안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우리가 어떤 위기와 고난 앞에서 두려움과 긴장과 스트레스로 잠 못 이루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맡기면, 어떤 상황에서도 편안히 잠잘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내 생명이 주님 것이오니 살든지 죽든지 주님 뜻대로 하시고, 오직 주님의 영광만 나타내소서"하며, 주님께 맡기면 우리는 편히 잠들 수 있습니다. 아직도 모든 것이 내 것이라서, 내가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하기에 근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한 서러움으로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속으로 말하며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않자, 제사장 엘리는 그녀가 취한 줄 알고,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고 야단칩니다. 그러자 한나는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삼상1:15-16)라며 원통한 사정을 아뢰자, 엘리가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삼상1:17)며 그녀에게 하나님의 응답을 약속합니다. 그러자 한나는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삼상1:17-18)고 했습니다. 엘리의 약속을 받고서는 조금도 의심치 않고 가서 먹고 근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 계획과 몸부림이 지금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내 삶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운명은 하나님 손에 있으니, 하나님께 다 맡기겠습니다." 주님을 믿고 그분께 맡길 때에만 주께서 자기의 문제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베드로는 죽음 앞에서 두 명의 군사들 틈에서 온 몸을 쇠사슬로 결박당하고서도 편히 잠잘 수가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이처럼 평안히 잠들 수 있었던 그 믿음의 단서를 5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행12:5)했습니다. 12절에는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고도 했습니다. 여기서 기도했더니 천사를 보내서 나오게 하였다기보다는, '기도했더니 베드로는 감옥에서 편안히 자더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잠자는 베드로의 그 모습에 아름다움이 있고, 거기에 참된 믿음이 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그가 감옥에 들어가 있으니까 잠잘 수 있었지, 그가 이 핍박을 피해서 도망했다면 어느 골방에 들어가서도 잠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입니다.


1986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유대인 엘리 위젤은 제2차 대전 중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생존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목전에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이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가족의 죽음 이상으로 그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가지 사건을 회고했습니다. 불과 13살 정도 된 한 소년이 옥에서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전체 수인들이 집합된 자리에서 교수대에 목이 매달려 죽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것입니다. 반시간 이상 목 졸린 채 허공에 매달려 몸부림치며 혀를 내밀고 눈에서 피를 흘리며 서서히 죽어가던 이 소년을 보며 엘리 위젤은 피눈물나는 외마디 절규를 토해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런데 그때 자기 안에서 이렇게 들려오는 한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나는 저 소년과 함께 저 교수대에 매달려 있다." 수년 후 엘리 위젤이 살아남아 파리에 가서 유명한 작가 프랑수아 모리악(Francois Mauriac)을 만나서 그때 체험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자, 모리악은 조용히 엘리 위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나타난 그분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고싶소. 2천년 전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고통을 대신 짊어지신 그분은 지금도 우리가 당하는 그 고통 속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지요."


근래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1906-1945) 목사님이 쓴 시 [선한 능력으로]가 가스펠로 만들어져 많이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 찬양의 가사는 본 회퍼 목사님이 1944년 12월 겨울 옥중에서 쓴 마지막 시로서, 4개월 후에 목사님은 히틀러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투옥 중에 2차 대전 종전을 한 달여 앞두고 1945년 4월 9일 39세 나이에 교수형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본회퍼 목사님이 작사하고, 지그프리트 피에츠가 작곡한 [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감싸여]을 보겠습니다.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 / 2. 지나간 허물 어둠의 날들이 무겁게 내 영혼 짓눌러도 / 오 주여 우릴 외면치 마시고 약속의 구원을 이루소서. // 3. 주께서 밝히신 작은 촛불이 어둠을 헤치고 타오르네. / 그 빛에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온누리에 비추게 하소서. // 4. 이 고요함이 깊이 번져갈 때 저 가슴 벅찬 노래 들리네. / 다시 하나가 되게 이끄소서 당신의 빛이 빛나는 이 밤/ (후렴)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셋째,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 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 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행12:8-9). 베드로와 교회는 그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신뢰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그의 옆구리를 치며 깨우는데, 베드로는 천사에게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천사가 말하는 순간마다 즉각 순종합니다. 베드로가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를 어디로 인도합니까?'라며 자꾸 질문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베드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을 믿었기에,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종하며 반응하였던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폭격기가 연일 런던을 폭격하자, 캔터베리대성당 주변에도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캔터베리 대주교가 처칠 수상에게 전화로 야단칩니다. "아니, 어떻게 나라를 지키기에 하나님의 성전 주변에도 폭탄이 떨어지게 하느냐?" 그러자 처칠 수상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대주교님, 지금 모든 영국군 병사들과 국민이 나라를 지키려고 피 흘려 싸우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전에 폭탄이 떨어진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신뢰한다면, 오늘 이 순간 일어나는 우리의 모든 사건이 이성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순종의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그러면 베드로처럼 나중에 그 이유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믿음은 보지 못하는 바를 믿고, 그 결과로 믿는 바를 보게 된다"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내 이성의 판단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만 합니다.


[더취 쉬츠의 소망]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쉐리'라는 여성이 여행 중 한 도시를 방문합니다. 그녀는 우연히 하늘을 보다가 아름다운 석양에 감탄하며, 그 장관을 혼자만 보기가 아까워 가까운 가게에 들어가 여자 점원에게 말했습니다. "좀 나와 보세요." 점원은 당황하며 따라 나왔습니다. 쉐리가 말합니다. "저 석양 좀 보세요.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이 하늘을 만드셨어요. 이 세상은 모든 게 좋아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죠." 점원은 물끄러미 석양을 바라보다 곧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 4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쉐리는 남편과 이혼하고, 아무런 소망이 없이 살아가면서 그녀의 삶은 감옥이었고 무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쉐리는 무심코 잡지를 보는데, 거기에 한 여인의 이야기가 실려있었습니다. 그 여인도 결혼에 실패해 절망 중에 낯선 도시로 이사하여 가게점원으로 일하며 죽지 못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여자가 밖으로 나오라고 하며 석양을 보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한 말을 통해 그녀는 잊고 있던 하나님을 다시 되찾고, 하나님은 그녀를 고통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쉐리는 자기 이야기임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쉐리는 다시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쉐리도 고통에서 건져주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도는 주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믿고 그 분께 안겨야할 것입니다.


철학자 루소는 예수 믿는 사람을 향해 말했습니다. "도대체 교회를 보면 이상해. 모두가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충성 딜레마에 빠져 하나님나라만 찾고 있어. 하나님나라만 저렇게 찾고 충성하다가 어떻게 그들이 세상나라의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겠는가?"하고 빈정거리자, C.S. 루이스가 대답했습니다. "하늘을 겨냥하라. 그러면 땅은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땅을 겨냥하라. 그러면 어느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얻으면 세상도 얻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잃으면 세상도 잃고 맙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1-13).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다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믿음으로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역사하셨습니다. 우리 앞에 닥치는 뜻 모를 위기나 고난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기도하며 그 뜻을 따라 순종함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나가십시다.

사도행전 12장 1~12절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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