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에 대한 보상

2019-03-03 74회

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님

마태복음 14장 22~33절

설교요약 :

"헌신에 대한 보상"
2018년 3월 3일 주일예배
마태복음 14 : 22 - 33 시편 101 : 6


생쥐 형제가 고양이에게 쫓기다가 마침내 구석에 몰린 위기의 순간, 한 마리가 뒤돌아 서서 "멍멍!"하고 짖었습니다. 고양이는 기절할 듯 놀라 달아나 버렸습니다. 생쥐 형제가 엄마 생쥐에게 달려가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자 엄마 생쥐는 대견한 듯 자식들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잘했다. 국제화 시대에 2개 국어는 기본이지."


그런데 '쥐가 고양이를 이길 수 있는가?'를 간디가 인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물론 고양이는 영국이고 쥐는 인도를 빗댄 말인데,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간디는 쥐가 고양이를 이기는 방법이 하나 있다며, 그것은 쥐가 쥐약을 먹고 고양이 앞에서 춤을 추면,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겠지만, 고양이도 쥐약 먹은 쥐를 먹기 때문에 죽는다는 말입니다. 쥐약은 희생입니다. 그는 수억의 인도 사람이 침 한 방울씩만 헌신하면 30만 영국 사람을 떠내려가게 하기에 충분한 강물이 될 거라고 외쳤습니다. 간디는 스스로 인도독립을 위해 자신을 불살라 투쟁하여, 1947년 끝내 인도의 독립을 이뤄냈습니다. 그런데 1948년 1월 30일, '나투람 고드세'라는 반이슬람 힌두교도에 의해 암살되자 세계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인도 전역에서 그를 따라서 자살한 사람이 100만 내지 200만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 비보를 듣고 세기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오는 세대의 사람들은, 이 분과 같은 위대한 한 인간이 살과 피를 지닌 구체적 사람의 몸을 가지고 지구 위를 걸었다는 사실이, 아마 쉽게 믿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기주의가 과학화돼가고, 희생은 거세돼 가는 세상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희생 없는 세상이 되면 어떤 보람도 가치도 생명력도 잃게 되고 맙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꼭 지옥에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죽었습니다. 천국에 갔더니 베드로가 "너 지옥 갈래? 천당 갈래?"하고 묻습니다. 자신보고 선택하라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습니까? 이왕 선택하게 할 바에는 자비를 베풀어서 한 번씩 구경하게 해달라고 했더니, 베드로가 보고오라고 해서, 천국에 갔더니 천사들이 앉아 노래를 부르고, 성도들이 흰옷을 입고 찬송을 부르는데, 한참 앉아있었는데 따분해서 못 있겠더랍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보니 카지노도 있고, 술집도 있고 아가씨도 많고 왁자지껄하고 아주 괜찮기에, 베드로에게 "저는 아무래도 지옥체질인 것 같아 지옥에 가겠습니다"고 말하자, 베드로가 그러면 지옥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옥에 갔더니, 뜨거운 곳에서 일을 하라고 하기에 전에 왔던 곳과 다르다고 하자, 천사가 "그 때는 관광비자로 왔고, 이번엔 영주권으로 왔기에 다르다"고 하더랍니다. 이런 유행가가 있습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천국은 아무나 가나' 천국도 체질이 되어야 갑니다. 믿음과 헌신을 모르는 사람은 천국체질이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우리의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여기서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과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여 매우 어렵게 말했는데, 6절 말씀은 믿음을 아주 쉽고 간결하게 설명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곧 하나님을 믿는 자는, 반드시 두 가지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하나님을 상주시는 하나님, 곧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약 스바냐서의 말씀입니다. "그 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습1:12).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배하시고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하나님은 자신들의 생활과 전혀 무관한 존재라고 무시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등불 들고 찾아다니며 철저히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부정하는 무신론자거나, 입으론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실제론 하나님을 외면하고 그분의 상벌에 관심 없이 살아가는 실천적 무신론자로서, 고상한 신앙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 고독한 환상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병에 걸립니다. 첫째는, 기도가 없습니다. 기대하는 바가 없으니 구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감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가 없다고 생각하니 감사할 리 없습니다. 모두 자기가 수고하고 애써서 얻은 것이요, 아무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가 없다고 생각하니 감사할 게 없고, 그래서 마음은 메마르고 감동과 기쁨이 없습니다. 셋째는, 충성과 헌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상을 믿지 않으니, 굳이 봉사하거나 헌신하려 하지 않습니다. 선한 일에 대한 열정이 없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비판만 무성할 뿐, 적극적인 봉사나 헌신이 없어, 하나님을 믿는다하나 실제로는 무신론자입니다.


오늘 말씀은 오병이어 기적 다음날 새벽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벳세다 들판에서 그 놀라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뒤, 무리들은 먼저 바다 건너편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제자들은 배 태워 게네사렛 땅으로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이 밤에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데 제 4경(새벽 3시- 6시)에 큰 풍랑을 만납니다. 애써 노를 저으며 풍랑을 헤쳐나가는데, 어두운 수면 위로 어떤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유령이다!"하며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낯익은 음성으로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마14:27)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14:28)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오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겁없이 배에서 내려 물위를 저벅저벅 걸어갔습니다. 저 앞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니 물위도 아랑곳없이 육지처럼 걸어갈 수 있었는데, 문득 눈을 들어 옆을 보니 출렁대는 파도가 금방이라도 자기를 삼킬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내가 이 물 속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로 여태 맨땅처럼 두 발로 딛고 걸어가던 베드로가 갑자기 몸이 물 속에 빠져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두려움 속에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가정과 직업까지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며 주께 헌신한 제자들에게 왜 이런 어려움이 찾아 왔는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도 다스리신다면, 왜 주께 헌신하고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나선 제자들에게 이런 위기가 찾아옵니까? 어제 낮에 예수님께 와서 오병이어 기적으로 빵을 얻어먹는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간 모두 집에 돌아가 편안히 잠들어 있을 텐데, 주님께 모든 걸 바쳐 충성하는 제자들은 왜 이 고생을 하여야 합니까? 이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은 그래도 배 위라는 안정이라도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열심 있고 헌신적이었던 베드로는 왜 바다 위를 걷다가 물 속에 빠져 가는 위기를 만나야 합니까? 주님께 헌신하여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적인 성공이나 출세는 없더라도, 적어도 이런 실패나 고난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없이 제 맘대로 죄짓고 못된 짓 하는 사람들은 배부르게 잘 사는 것 같은데, 도리어 믿음으로 살겠다고 애쓰는 사람들이 때로 가난과 질병과 실패로 고생하는 것을 보면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아무 책임 없이 교회만 왔다갔다하며 적당히 믿는 사람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사는 것 같은데, 직분과 책임을 맡아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하는 성도 중에는 어려운 일도 생기고, 자녀들이 입시에 떨어지기도 하고, 때로 병에 걸리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럴 땐, '하나님은 과연 계신가, 하나님은 무얼 하시나?'하는 생각에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주님을 위해 헌신을 하며, 봉사할 필요가 있습니까? 예수 믿고 주님께 충성하면, 내세에 천당을 가고 그곳에서 면류관을 받을 뿐, 이 땅에선 아무런 보상이 없이 실컷 고생만 해야하는 것이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보상일까요?


베드로가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막10:28)라며,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 데 대한 보상은 무엇이냐?'고 묻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주님은 분명히 현세에서도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에게 백 배나 갚아주시는 보상과 상급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현실 속에서 주께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보상은 무엇입니까? 첫째, 위기에서의 구원입니다. 베드로가 물 속에 빠져 들어갈 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부르짖자, 주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으시며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14:31)하시고 그를 물 속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풍랑과 싸우는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치고 거센 파도가 잔잔해졌습니다. 금방이라도 물에 잠길 듯했던 제자들을 주님이 저들을 구해주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는 자들을 위기와 역경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 어려움과 위기에서 저들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항로에도 이런저런 풍랑이 몰아닥쳐 금방이라도 우리를 삼킬 듯이 위기에 빠뜨리곤 합니다. 어떤 때는 질병의 풍랑이, 어느 땐 인간관계의 풍랑이, 또 어느 때는 직장이나 사업의 풍랑이 찾아와 우리 인생을 침몰시킬 듯이 곤경에 빠뜨립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베드로가 물에 빠져갈 때 주님께 부르짖어 외쳤듯이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고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으시며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시며, 우리를 그 위험한 풍랑에서 건져주십니다.


1942년 10월, 맥아더 장군의 중요한 연락책이었던 리컨베커 대위는 임무 수행 중 바다에서 배가 파선하여 20일간이나 뗏목을 타고 표류하였습니다. 리컨베커 대위와 7명의 부하들은 작열하는 태양과 한밤의 추위와 상어 떼들의 극성으로 시달렸습니다. 탈수와 기갈, 뜨거움과 상어의 공포로 하루 하루가 너무나도 견디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굶주림으로 거의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장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물이 침몰치 못하고,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불꽃이 사르지 못하게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사43:2)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과 기도의 능력을 믿고 계속 기도로 매달렸습니다. 하루 하루가 죽음 같은 공포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응답이 임했습니다. 하루는 갈매기가 날아와서 선장의 머리 위에 앉자, 그것을 낚아채어 그들은 며칠만에 그 갈매기를 가지고 요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기를 미끼로 삼아 낚시질을 하여 계속 끼니가 이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비가 처음으로 내렸습니다. 그래서 물도 마셨습니다. 불볕 더위도 누그러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확인하고 더욱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20일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신문 기자들이 "어떻게 그 엄청난 공포와 역경, 배고픔과 혹독한 더위, 무서움과 초조함을 이겨냈느냐?"고 묻자, 이 질문에 대한 선장의 대답은 딱 이 한 마디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처한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 할지라도, 헌신하는 성도가 주님께 기도하면 주님은 다가와 건져주십니다.


둘째,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십니다. 34절에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라고 했는데, 요한복음에는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요6:21)며, '저희의 가려던 곳'에 도달합니다. 시편 말씀입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시107:28-30). 세상 사람들도 자기를 위해 수고한 사람의 요구는 거절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헌신한 주님의 사람의 소원을 물리치시겠습니까? 주님은 "너희가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요15:20)고 말씀하셨는데 내 기도를 주께서 듣지 않으신다면, 내가 주님 말씀을 들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 아래서 우상을 만들고 춤추고 뛰놀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진노하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출33:3). 그러자 모세가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출33:15)라고 간구하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출33:14, 17).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의 죄를 보시고 저들을 진노하셔서 저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셨음에도, 하나님께 헌신하여 충성을 다한 모세가 기도하니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라"고 그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학생이 있었는데, 그 부모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교회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하나님께 보내는 편지]를 쓰게 하고 "하나님이 사시는 곳은 주소가 없어서 배달이 안되니 내가 가지고 있다가 하나님께 전해 드릴게"라며 보관했습니다. 2-3년 후 결혼하여 집 정리하다 아이들 편지 중에 백혈병을 앓다 죽은 아이가 쓴 편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너무 아파 죽을 것만 같아요. 그런데 저보다 우리 아빠가 더 불쌍해요. 저 때문에 속상해서 날마다 술을 먹어요. 저는 죽으면 천국 가지만 아빠는 예수님을 안 믿으니 천국도 못 가잖아요. 하나님! 우리 아빠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가게 해주세요." 교사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전했습니다. 죽은 아들의 편지를 눈물로 읽던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절규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아이는 지금 천국에서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겠지요. 아빠인 제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우리 아이 기도가 응답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예수 믿겠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소년의 기도도 들어주셨습니다.


셋째, 주님을 위해 헌신한 자들을 위해 주시는 가장 큰 보상은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31, 32절입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마14:31-32).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 떡이나 먹고 간 사람들은 이 놀라운 현장을 모르고 그냥 잠들어있었을 시간에, 주님은 당신을 위해 헌신한 제자들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비록 풍랑과 싸우며 고생했지만, 풍랑이 잔잔해지는 놀라운 기적과, 주님이 손잡아주시며 건져주시는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최대의 보상은 곧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손잡아주시는 것입니다. 곧 주님 자신을 주시는 축복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임종 직전 팔을 높이 들고 기쁨이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참으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레오날드 두비(Leonard Bubi) 신부에게 어느 기자가 "신부님도 죽음이 두렵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죽음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어 가는 것은 두렵습니다"(I don't fear death, I fear dying.) 구원받은 성도라면 죽음을 두려워할 건 없지만, 죽어갈 때 겪게될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순 없습니다. 누구나 '제발 오래 아프지 않고 죽을 수 있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추한 꼴 보이지 않고, 내 자존심을 지키며 눈을 감을 수 있다면...'라는 생각을 하게될 것입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특히 홀로 죽어야 한다는 고독의 두려움입니다. 이 길은 사랑하는 남편도 아내도 자식이나 부모도 죽음에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23:4)는 말씀대로,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은 함께 해 주십니다.


모슬렘 지역의 선교사인 사무엘 줴머는 8일 사이에 네 살과 일곱 살 된 두 딸을 잃었습니다. 베란다의 가장 시원한 곳도 기온이 평균 41도까지 올랐고, 사역에는 열매가 거의 없으며, 좌절되는 일만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50년 후 그때를 돌아보며 그는 "그때의 순전했던 기쁨을 기억한다. 기꺼이 나는 그 모든 일을 다시 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기쁨이 모든 희생을 보상해준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파이퍼는 "당신이 가까이 있는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포기한다면 늘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백 배나 되는 사랑과 관심을 받게된다. 집에서 느낄 수 있는 아늑함을 포기한다면 어느 집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시냇가에서나 나무숲에서도 주님께 속한 위로와 안전을 백 배나 돌려 받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헌신에는 영원한 상급이 있습니다. 그 상급은 포기한 것보다 훨씬 큰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헌신하는 자에게 이 땅에서도 백 배나 갚아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미국 남침례교회의 저명한 앙겔(Roy Angell)목사님이 자기 교회의 월터(Walter) 집사님에게 무슨 일이든 교회 일을 부탁하면 그는 언제나 "네, 목사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힘껏 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교회의 어떤 중요한 일을 수행할 책임자가 필요하여 그 일을 맡을 만한 사람들에게 부탁해보니 네 사람 모두 사정을 말하며 못하겠다고 피하더랍니다. 목사님은 하는 수 없이 이미 여러 가지의 일로 봉사하고 있는 월터 집사에게 그 일을 맡아줄 수 있겠는지 묻자 월터 집사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보겠습니다. 목사님, 그 일에 대해 설명해주세요"라고 말합니다. 이때 목사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집사님, 그 동안 내가 이 교회를 섬겨오면서 집사님에게 무슨 부탁을 해도 집사님은 한번도 거절하지 않고 항상 웃는 얼굴로 그것을 응낙하고 힘껏 봉사했는데, 혹시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러자 월터 집사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지난번 결혼식 주례를 해주신 제 딸아이가 12세 되었을 때, 열이 40도나 되게 심히 앓았을 때, 의사 선생님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월터씨,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따님의 목숨은 오직 하나님 손에 달려있습니다. 혹시 월터씨는 기도할 줄 아십니까?' 그래서 나는 '네, 할 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의 크레딧(하나님께 헌신해온 신용)이 조금 있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부는 베란다에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저희는 그 외동딸로 인해 누린 12년 간의 기쁨과 행복에 대해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주님의 뜻으로 이 딸을 데려가셔도 아무런 원망이 없다고 하며,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이 딸을 저희에게 더 맡겨주신다면 저희는 앞으로 주님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나 다 하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기도한 것은 어떤 흥정이 아니라, 주님께 저희 약속을 바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 언제나 그때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지키면서 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 후 저희 가정은 그렇게 살면서 대단한 기쁨과 보람을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뮤지컬 [Jesus Christ Superstar]에서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이렇게 부르짖는 대사가 나옵니다. "정말 내일 이렇게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야합니까? 이렇게 죽고 나면 내게 주시는 보상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억울하게, 이렇게 모순되게 이렇게 죽고 말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렇게 부르짖다가 마침내 "좋습니다. 내가 죽겠습니다"라며 복종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문제는 보상입니다. 고난과 희생, 헌신이란 힘든 것이지만, 충분한 보상만 확실하다면 어떤 희생도 가능합니다.


우리 주님께 헌신해나가면, 주님은 모든 위기에서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의 소원도 이뤄주시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시101:6). 주님께 헌신을 드려 주님의 구원과 보상과 임마누엘의 은총으로 살아갑시다.

마태복음 14장 22~3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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