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

마태복음 18장 1~10절

설교요약 :

"어린이를 이렇게 영접하라"
2020년 5월 3일 어린이주일
마태복음 18 : 1 - 10 : 잠언 23 : 13 - 14


1970년대 우리가 소중하게 여겼던 것 3가지는 '시계, 자전거, 재봉틀'이었습니다. 1980년대는 '컬러TV, 냉장고, 세탁기'였고, 요즘은 3M이라 하여 '마이카, 마이홈, 마이폰'을 소중히 여깁니다. 어린이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인형, 포켓몬, 파워레인저', 학생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핸드폰, 노스페이스, 게임' 청년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스펙, 이성친구, 인스타그램', 장년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집 평수, 자동차 배기량, 골프채', 노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할망구, 영감, 틀니'라고 합니다. 그렇게 소중히 여겼던 것들을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을 그렇게 원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겨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미국의 앵커우먼 오프라 윈프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이미 수천 번도 넘게 말했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한 번 더 말하고 싶다. 세상에서 부모가 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우리나라는 70년대 연간 100만 명씩 태어나던 아이들이 2019년에는 약 30만 명대로 줄었습니다. 인구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은 2.1명인데,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92명으로 1명 미만인 나라는 OECD국가를 통틀어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합계출산율'이란 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출생아 수를 말합니다. 그리고 인구 1천 명당 혼인건수를 나타내는 조혼인율은 2011년에 6.6이었는데, 2019년에는 4.7로서 매년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



감소하여 노동자 한 명이 부양할 사람이 늘어나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해야할 인구인 '총부양비'는 2017년 36.7명에서 2038년 70명, 2056년에는 100명을 넘어서게 됩니다. 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되었을까요? '결혼·출산마저 포기한 2030' 세대의 주장입니다. "결혼을 꼭 해야하나요? 취업도 못했는데 결혼은 언감생심이죠." 한 정치인은 '일자리가 없고 주거가 안정되지 않은 청년들에게 아이 낳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라고 말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는 취업과 생활안정에 대한 불안과, 또 이 시대정신인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안일함을 찾으려하는 개인주의 때문으로 보입니다.


어린이가 줄었기에 사회적 관심을 더 높여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해 OECD 27국 어린이 행복도가 10점 만점에 평균 7.6점인데, 우리 아이들의 행복도는 6.6점으로 OECD 최하위입니다. 2014년부터 아이의 출입을 막는 '노키즈존'(No Kids Zone)카페가 생겨 서울 망원동, 연남동 매장 55곳 중 20곳이 노키즈존이라고 합니다. 이런 곳을 찾는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맞벌이 부부인 딩크족들이라는데, 이 사회가 어린아이를 기피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마18:1)하고 묻자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십니다. 초대교회 전승에 의하면 이 아이는 훗날 안디옥의 감독이자 순교자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 아이를 안고 축복하시며 어린이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보이며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주님은 서로 '누가 크냐?'며, 모두 높은 자리 차지하려고 다투던 제자들에게, 어린이를 통해 천국시민의 자격을 가르치십니다. '어린이처럼 되라'는 말은 유치하다는 'childish'가 아니라 'childlike'로서,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 순수함과 그 깨끗한 믿음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시민이 되기 위해 어린이로부터 배워야할 모습은 무엇일까요?


첫째, 어린이의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4). 주님은 어린이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세를 지적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누가 크고 작으냐의 문제로 다투자, 이 문제보다 보다 근본적인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의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제자들이 천국의 실상에 대해 바로 알고 있었다면, 서로 크기 경쟁을 하지 않았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어린이의 특성을 무엇보다 '겸손함'임을 지적하시는데, 그 겸손은 상대적인 차원을 넘어, 절대자 하나님 앞에 선 유한한 인생의 겸비 의식임을 깨우쳐주셨습니다. 겸손이란 독일말로 'Demut'라고 하는데, 이 말은, '힘'을 뜻하여, 겸손한 자가 힘이 있습니다.


앙드레 지드는 "겸손을 생활철학으로 삼으라. 겸손은 천국 문을 여는 열쇠이고, 교만은 지옥의 문을 여는 열쇠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의 요건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다"라고 말했고, 수도사 안토니오도 말했습니다. "영안으로 세상을 보니 마귀가 온 땅에 그물을 편 것을 보고 두려워 탄식하기를 '누가 능히 이 그물을 벗어나겠는가?'하니 천사가 '겸손한 자만이 능히 이 마귀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겸손이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교만이다." 우리는 어린 아이의 그 겸손을 배워야합니다.


어린이는 스스로 자기 한계를 알고 부모의 사랑과 그 보호 가운데 살아가기에 그 앞에서 겸손할 줄 압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자기 중심적이며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겸손할 줄을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은 자기는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과, 자신은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순종할 줄 압니다. 그런데 점점 자라다가 스스로 알고 있고, 또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만심이 생겨 교만해집니다. 어린이가 자기보다 큰 부모나 어른을 알기에 겸손하다면, 우리는 우리보다 크신 하나님을 알고, 또 자신의 한계를 깨달아 겸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러시아의 니콜라이 황제가 하루는 평민으로 가장하여 백성들을 시찰하였습니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지나가는 군인에게 길을 물었더니, 그 군인이 어찌나 교만하게 굴던지 괘씸하게 생각한 황제가 입을 열었습니다. "군인이신가 본데, 계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러자 군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신이 나서 "어디 자네가 맞춰보지 그래" 내심 아니꼬웠지만 꾹 참고 황제가 말했습니다. "상사이신가요?" "아니" "그럼 소위이신가 보죠?" "아니, 내가 그렇게 밖에 안보이나?" "중위이신가요?" "아니야" "그럼 혹시 대위이신가요?" "맞았네. 내가 대위일세." 대위는 무슨 큰 벼슬이라도 한 듯, 배를 내밀며 자랑스럽게 웃었습니다. 이때 대위는 황제에게 "자네도 군인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예" "일등병인가?" "아닙니다" "상병인가?" "아닙니다" "소위, 중위, 대위?" "아닙니다" 갑자기 대위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소령, 소장, 대장, 원수까지 이를 동안 황제는 계속 '아니'라는 대답만 거듭했습니다. 드디어 원수 위에 황제의 계급만이 남았을 때, 대위는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이때 니콜라이 황제는 "이보게 대위, 계급이야 어떻든 우리는 다 마찬가지일세. 대위나 황제가 하나님 아래서 다 똑같은 인간이 아니가?"하면서 대위를 위로하며 일으켜 주었다고 합니다. 거드름 피우고 교만하면 무릎을 꿇게 되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더 큰 자입니까? 어린아이처럼 겸손한 자가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둘째, 어린이에게 그 순수한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베드로는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고 말했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아직 세속에 때묻지 않았기에 그 생각이 맑고 투명합니다. 어른들은 생각이 복잡하고 사람들을 의심하며, 겉과 속이 다르지만, 어린이들은 누구를 의심할 줄 모르고 모든 것을 그대로 믿고 또 좋은 쪽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어린이의 장점이요 어른이 배워야할 점입니다. 사랑과 정열의 시인 하이네의 집을 방문한 친구가 서재에 십여 명의 아이들이 와글거리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자네에겐 아이가 없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된 건가?" "동네에서 빌려온 아이들이야.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듣고 그들의 얼굴을 봐야 미래를 생각할 수 있어 가끔 어린이 파티를 하는 걸세"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어린아이는 순수하기에 잘 속일 줄 몰라 거짓말을 했다가도 금방 들통납니다. 어떤 어린 학생이 수업을 빼먹고 낚시하러 가고 싶어 아버지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학교에 전화했습니다.“우리 애가 아파서 오늘 하루 결석해야 되겠습니다.”선생님이 이 전화를 받고 "잘 알겠습니다. 전화 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는 그 목소리가 아무래도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그런데 실례하지만 전화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그 아이가 "예, 우리 아버지입니다"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어린아이는 이처럼 누구를 속일 줄 모르고, 쉽게 그 속에 담긴 생각이 드러납니다.


셋째, 어린이의 마음은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시편에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시131:2)라고 노래합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믿기에 아무런 근심 없이 그 품안에 편안히 안겨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은 부모님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생각하여 의심할 줄 모르고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그 누구이든 복음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이웃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이런 겸손과 순수함과 신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이런 어린이 마음이 있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른들은 경쟁사회에 살면서 이웃을 믿지 못하도록 길들여져 있습니다. 생각이 복잡한 그 깊은 원인은 자기가 살기 위한 이기심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의 본질입니다. 이런 교만과 복잡함으로 이웃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누구도 믿지 못하기에 하나님도 믿기 힘듭니다. 우리가 진실로 천국 문을 두드리려면 이런 어린이의 겸손함, 단순성 무엇보다 믿음을 배워야합니다. 그래서 회개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죄를 회개하고 어린이처럼 단순히 주님을 의지할 때 그의 마음에 천국이 열립니다.


어느 시골교회에서 가을을 맞이하여 소풍을 가기로 했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들뜬 마음으로 맛있는 것을 많이 마련하여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을 보니 구름이 잔뜩 끼어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기도를 했으니까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소풍을 떠났습니다. 마음을 떠나 오곡이 무르익은 들판을 지나려는데 갑자기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빗방울이 굵어져 비를 피하느라고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대 선생님이 가방에서 우산을 급히 꺼내 펴면서 우산이 없는 아이들을 우산 아래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우산을 펴든 선생님을 쳐다만 볼 뿐 우산 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비를 맞고 서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선생님이 밉다며 울면서 빗속으로 뛰어 갔습니다. 선생님은 뒤늦게 서야, 출발할 때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아이들과 기도했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린이는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그 말씀에 잘 순종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커지면 이젠 자기 생각이 옳다며 누가 뭐래도 그 말을 듣고 믿으려 하지도 않고, 또 순종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의 그 순진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부족한 부모이지만 절대 신뢰하기 때문에 결코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계속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그런가 하면 어린이에 대한 부모나 어른의 책임이 있습니다. 첫째는 어린아이를 영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18:5). 너희 자녀지만 내 이름으로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자녀 사랑이 없는 것도 문제요,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자녀사랑의 질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는, 자녀 사랑의 근본 동기에 대하여 철저히 회개해야합니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내가 자녀를 왜 사랑하는가', 그 사랑의 동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합니다. 다음은, 자녀 사랑에 대한 신령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교회에 고아로 성격이 난폭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학교 교사가 그를 불쌍히 여기고 옷 한 벌을 선물했더니, 이 소년은 옷을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교사는 그 후에 두 차례나 옷을 다시 사주었는데, 그 옷마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저 아이는 구제불능입니다. 더 이상 사랑을 쏟을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교사는 이 소년에게 "네가 옷을 버리는 것은 용서한다. 그러나 교회 출석은 계속한다고 약속해다오"라며 변함 없는 사랑과 관심을 쏟았습니다. 결국 이 말썽꾸러기 소년이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로버트 모리슨 목사로서 중국 선교사로 헌신하며 [영중(英中) 사전]을 집필한 역사적인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둘째, 어린이를 실족케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18:6-7). '실족케 하다'인 '스칸달리조'는 '넘어지게 하여 죄짓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어린이를 타락하게 하여 죄짓도록 실족케 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10절에 '그들의 천사들'이란 말은 어린이에겐 수호천사가 있다는 뜻입니다. 어린이들은 스스로 자기를 지킬 수 없기에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저들을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저들을 보호하되, 보다 적극적으로 본을 보여 저들을 실족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짓는 죄보다 더 무서운 죄는 다른 사람을 죄짓게 만드는 죄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복음전하지 않아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죄가 가장 큰 죄입니다. 어떤 교인은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교회에 보내지 않았는데, 대학입시에 그 아들이 떨어져 온 가족이 시험에 들자, 목사님은 그 성도에게 "아들이 대학에 못 들어간 것이 이렇게 섭섭한 일이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대학입시는 다른 길이라도 있지만, 천국을 못 가면 지옥밖에 없습니다.


몇 해 전 서울 강남에 유명한 한의사의 아들이 미국유학을 갔다 돌아와 부모를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이 '공공의 적'의 모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한의사는 재산이 많은 안수집사였는데, 그의 외아들이 도대체 공부를 하지 않고, 고3이 되었는데 교회에 간다고 하니까 "고등학교 3학년이 무슨 교회냐?"고 호통쳤습니다. 그러자 더욱 공부를 하지 않다가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전문대학에 보냈다가 돈이 많아 미국에 보냈습니다. 미국에 보냈더니 얼마나 방탕하게 지내던지 그곳에서 수천만 원의 빚을 지자, 안 되겠다 싶어 미국에 간지 얼마 안 돼서 한국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랬더니 한국에 돌아와 결국 부모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셋째, 어린이를 바르고 강하게 가르치라고 말씀합니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잠23:13-14). 성경은 부모는 자녀에게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b)고 하십니다. 자녀를 위해선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그를 바르게 가르치라고 하십니다. 어린이의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하기에 악에 물들기 쉬워,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이 시대 어린이에 대한 문제로 무관심이상 또 하나의 큰 문제는 과잉보호입니다. 과잉보호는 자녀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칫 자녀를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아이의 요구는 무조건 들어주고 저들이 하고싶은 것은 무엇이든 하도록 버려 두는 것은 자라가며 중대한 행동장애나 정신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어떤 어린아이는 자기 부모자랑을 하면서 "부모님이 너무 잘 해주시는데, 부모님이 도망갈까 걱정이라"고 말하더랍니다. 이런 과보호가 또한 어린아이들을 실족케 할 수 있습니다.


시인 콜리지를 존경하던 사람이 찾아와 어린이에 대해 말했습니다. "저는 어린이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일찍부터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배워 그들이 지닌 잠재력을 완전하게 키워나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러자 콜리지는 "우리 꽃을 보러 갈까요?"하더니 꽃이 만발한 정원에 갔습니다. 방문객은 정원을 둘러보고 말합니다. "아니! 여기는 왜 잡초들밖에 없지요?" "여기도 예전엔 꽃이 가득했으나 금년엔 손질을 안하고 일부러 내버려뒀다오. 자기들 자라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고, 정원이 어떤 꼴이 되는지 보려했지요. 그러자 이 꼴이 되었답니다." 어린아이들도 그대로 내버려둬서는 안됩니다.


맥아더 장군의 아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이러한 아들을 주시옵소서… 아들에게 평탄한 길을 주지 마옵시고 쉬운 길을 걷도록 하지 마옵소서. 역경과 환난을 주옵소서. 그리고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과연 장군다운 기백이 담긴 기도입니다. 평탄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역경과 순경, 폭풍과 고요함, 밤과 낮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다.


미국과 뉴질랜드 사이를 왕복하던 여객선 젠센호가 폭풍을 만나 백일 동안이나 바다에서 표류하였습니다. 무전기가 고장나 다른 배로부터 도움을 받을 방법도 없었고, 식량은 떨어져가고 있었습니다. 탑승자들은 속히 육지에 도달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육지는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살 수 있는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기에 모든 사람은 자포자기와 실의에 빠져 죽음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는 선장 부인과 태어난 지 6개월밖에 안 되는 갓난아이가 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아이가 폭풍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은커녕 부담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갓난아기가 모든 사람에게 밝게 웃어주자, 죽음의 공포에 빠졌던 사람들이 아기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마음에 희망이 싹텄습니다. 사람들은 방실대며 웃는 아이를 보며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저 아이만은 살려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선실을 뒤덮고 있던 무거운 공포와 절망이 놀랍게 그 아기의 웃음으로 인해 용기와 인내심으로 활기를 띠면서 사라졌습니다. 젠센호가 마침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선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배의 선장은 실제 내가 아니라 이 갓난아기였습니다. 이 아기의 해맑게 웃는 얼굴이 선원과 승객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고, 이 웃음은 폭풍보다 더 위력이 있었습니다." 아무 희망을 찾을 수 없던 폭풍 속에서 그 갓난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저 아이만은 살려야겠다는 소망이 젠센호 사람들을 살려낸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에 풍랑은 그치지 않고 있어, 이런 시대에 어린이는 부담만 될 뿐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져가지만, 우리는 어린이의 그 천진한 눈빛 속에서 오늘을 살아갈 용기와, 내일을 바라볼 희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1866년 미국에서 시작된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날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로서 최고의 사명은 자녀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기르는 일입니다. 만일 이 일에 실패한다면 다른 어떤 일을 잘했더라도 부모로서는 처절한 실패입니다. [어느 아버지의 기도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나는 땅에 있는 아버지입니다./나에게 아버지의 특권과 책임을 주심을 감사하나이다./나의 자녀들이 필요로 할 때, 기꺼이 그들 곁에 머물게 하옵소서/그러나 나의 자녀들이 스스로 서야 할 때, 그들의 곁에서 떠나 기도하게 하옵소서."


'지금도 어린아이가 태어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직도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신 증거'라고 말합니다.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요, 우리의 내일입니다. 내일 없는 오늘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를 영접한 어린이와, 어린아이와 같이 된 어른들이 함께 있는 곳에 주님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3-4). 어린이의 그 순수함을 배우며, 또한 그들을 말씀으로 양육합시다.

마태복음 18장 1~10절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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