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9 125회
"이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
2019년 12월 29일 송년주일
누가복음 16 : 1 - 9 ; 시편 90 : 10 - 12
여러분, 누가 "기도할 때 담배 피우면 안 되느냐?"라고 물으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대다수는 '안 된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바꿔서 "담배 피울 때라도 기도하면 안 되느냐?"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어쩌면 "담배 피울 때라도 기도하는 것은 좋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밤에 술집 나가는 여자가 낮에 대학에 다니면 "어머, 대견해라!"라고 말한다는데, 낮에 대학 다니는 여자가 밤에 술집 나가면 "나쁜 년!"하고 욕을 한답니다. 같은 사실인데도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반응합니다.
지난 10년 전에 중에 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난 서강대 영문학과 장영희 교수의 베스트셀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란 책에 보면 장영희 교수는 미국 보스턴 미술관을 한국에서 온 여동생, 조카들과 함께 방문했던 경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행은 미술관을 방문한 추억을 남기기 위해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점잖게 생긴 중년남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마침 그는 자신이 가진 카메라와 같은 모델을 가지고 있어서 부탁을 하자 흔쾌히 승낙을 했다고 합니다. '김치~~예, 완벽합니다. 한번 만 더, 예~ 한번만 더 찍겠습니다.' 아주 능숙하게 세 차례에 걸쳐 촬영을 마친 그 분에게 장 교수 일행은 감사를 하고 헤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며칠 후 필름을 현상해 본 장 교수는 깜짝 놀랐습니다. 첫 번째 사진은 가족 모두의 머리를 짤라 놓았고, 두 번째 것은 동생의 발만 크게 확대해 놓았고, 세 번째 것은 가슴만 확대해 놓은 괴기한 사진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장 교수는 사진 찍은 사람의 인간성 자체에 대한 회의와 불쾌감으로 열이 뻗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옆에서 열심히 사진을 함께 들여다보던 장 교수의 초등학교 1학년 조카 건우라는 아이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와, 이모! 이 사진들 짱 멋있다. 그때 그 미술관에서 본 추상화 같다. 우리가 미술관 앞에서 찍으니까 이렇게 찍어주신 모양이지. 완전 예술품이다. 예술품!" 그리고 보니 자신을 방금 전까지 불쾌하게 한 사진들이 전위 예술품으로 보이고, 아니 샤갈의 그림처럼 보이더라고 합니다. 이런 현상을 '관점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어떤 나쁜 일에도 우리는 지혜와 인생의 교훈을 배울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신문곤은 [생각을 뒤집으면 인생이 즐겁다]는 책에서 말합니다. "작은 일에 짜증을 낸다는 것은 작은 일이 생각나지 않을 만한 정말 힘든 일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 중병에 걸렸다면 과연 작은 일에 신경 쓸까요? 작은 일에 신경 쓰는 자신을 자책하지 말고, 큰 고통이 없음을 감사하세요." 똑같은 상황도 관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기에, 모든 일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올 한 해도 벌써 다 지나갔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지난 1년을 되짚어 반성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난해하고 오해하기 쉬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비유의 해석 원리를 알고 조금만 겸손히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오묘한 말씀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비유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유가 가리키는 초점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 비유가 시사하는 초점을 분명히 하고, 그 초점에 의해 풀이하면 그 비유의 내용이 쉽게 해석이 됩니다. 본 비유의 주제는 지혜 있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악한 세상에 나가 살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십니다. 이를 위해 주님은 선한 것만 예를 들지 않고, 악한 사람들의 예까지 들면서 지혜를 배울 것을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선한 것만 보며 살 수 없고, 때론 추하고 악한 일들도 보면서, 그것으로부터도 교훈과 경계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주인이 듣고 청지기를 불러다 말합니다. "네가 내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이제는 너를 내 청지기로 둘 수 없으니 네가 맡은 일을 다 청산해라." 그러자 이 청지기는 속으로 '주인이 내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하니 어쩌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창피하구나.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가 청지기 자리에서 물러날 때 나를 자기 집에 맞아 줄 사람들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놓고 말합니다.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우리 주인에게 진 빛이 얼마요?" 그러자, "기름 백 말입니다"하니, 청지기가 "이 문서에다 오십 말이라고 적으시오"하고는 빚을 절반이나 깎아버립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당신의 빚은 얼마요?"하고 물으니 '밀 백 섬'이라고 하자, "여기에 팔십 섬이라고 적으시오"라며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하는 것을 주인이 알고는, 오히려 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결론은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롭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청지기'를 헬라어로는 '오이코 네모'라고 하는데 '오이코'는 '집'이라는 말이고, '네모'는 '분배한다, 관리한다, 담당한다'는 뜻인데, 청지기를 우리말로는 '집사'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스튜어드'(steward)라고 부릅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이나 집안살림을 맡아 관리하도록 위탁받은 '고용인'이나 '대리인'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에게는 종이요, 종들에게는 주인입니다. 주인으로 위임받은 권한으로 주인노릇 하는 자가 청지기입니다. 주인을 대할 때는 충성을 다해야하는 타율적인 복종의 위치로서, 주인의 뜻을 온전히 받들어 시행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주어진 권한 안에서 그 휘하에 있는 종들을 다스리고, 주인의 재산을 알아서 관리하는 상당한 자율권도 있습니다. 이렇듯 청지기는 자율과 타율의 그 긴장 속에서 일하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주어진 한계 안에서 자유롭게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초점은 도덕이나 정의를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혜' 임을 알아야 합니다. 8절에서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16:8)며, 예수님은 그가 선하다거나, 그 악이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런 청지기로부터도 지혜는 배워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청지기를 칭찬한 이는 '주인'이지 '주님'이 아닙니다. 주인 눈으로 보니 이 청지기 하는 짓이 못되고 고약하지만, 해고당한 뒤를 대비하여 앞날을 대비한 것이 지혜롭다는 것이지, 이 청지기처럼 하라고 그의 모든 행위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청지기의 태도를 통해서 배워야할 지혜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 그는 청지기라는 자신의 위치와 자기 잘못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눅16:2). 주인이 그 청지기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은 것을 알고 그에게 말합니다. "내게 들리는 너에 대한 소문이 어찌된 일이냐? 네 하던 일을 정산하자." 그러자 이 청지기는 주인의 말을 듣고는 그 말을 그대로 수용합니다. 이것은 자신은 주인에게 고용된 청지기라는 자기 위치를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잘못도 변명하지 않고 인정하였습니다.
사람은 빌려온 물건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수가 있습니다. 잠언에 보면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 하리라"(잠29:21)고 했습니다. 이 청지기도 주인으로부터 자율권을 받아 자기 마음대로 집안 살림을 맡아서, 그 집안 일을 제 마음대로 관장하다 보니까, 자기가 그 집의 주인이나 된 것으로 착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인이 그를 불러 "네 보던 일을 셈하라"고 말하니까, 그는 주인 말에 대해 전혀 항의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립니다. 결산하자면 결산해야 하고, 책임을 물으면 책임지겠다며 구구한 변명이 없었습니다. 이 점이 이 청지기가 가졌던 지혜로운 태도였습니다.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는 농사가 잘되어 곡식을 저장할 곳이 부족하자, 곳간을 새로 지어 그 곡식을 쌓아놓으리라 생각하고 말합니다.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눅12:19). 그때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12:20)고 책망하십니다. 이 농부는 농사 잘 짓는 기술이나, 그걸 보관할 줄 아는 재주나, 인생을 즐길 지혜도 있었으나, 그의 결정적인 문제는 생명이 자기 것이 아님을 몰랐던 것입니다. 먼저 풍성한 추수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서 인생을 설계했어야 했는데, 그의 계획 속에 하나님을 배제하는 어리석음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 잘못도 알았습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이 '네가 하던 일을 셈하라. 네가 청지기의 일을 계속하지 못하리라'는 말에, 그는 생각합니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눅16:3). 그러며 그는 주인이 지적하는 그의 잘못을 애써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소문은 잘못된 것이고, 그것은 누구 때문입니다"라고 변명하지 않고, "기회를 다시 달라"고 애걸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주인이 네가 잘못했으니 청지기 일을 그만두라고 하자 "예, 알았습니다"며 그대로 따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고, 아무 변명 없이, 주인의 책망을 '사실이 그렇습니다'며,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합니다.
내가 당하는 모든 일을 억울하고 부당하게 여기기보다는, 모든 것이 내가 뿌린 씨앗을 거두는 것으로 당연한 결과이고, 하나님은 언제나 정당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파스칼은 말했습니다. "당신을 섬기라고 제게 건강을 주셨지만 저는 세상을 위해 그것을 다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당신은 저를 일깨워주시려고 제게 병을 주셨습니다. 이제 깊이 생각하면서 참회의 기도를 드립니다." 얼마나 귀한 깨달음입니까? 영국의 시인 밀턴은 40세에 실명했습니다. 게다가 사랑하던 아내까지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비참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 주님, 이러한 고통을 통하여 제 영혼이 수그러짐은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섬기게 함이니이다. 이제 이 고난이 제게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핀' 등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었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1870년 장편소설 [도금시대]에서 정부의 부패상과 자본가들의 거대한 영향력을 폭로하자, 전 미국 언론이 주목했습니다. 어느 날 마크 트웨인은 국회의원의 도덕성을 묻는 질문에 깊은 생각 없이 "미국 국회의 어떤 의원은 개자식이다"라고 말했더니 며칠 후 한 일간 신문이 마크 트웨인이 했던 말을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그 기사로 국회는 벌집 쑤신 것처럼 들끓었고, 의원들은 일제히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의 근거를 밝히거나 잘못을 사과하지 않으면 법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대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다가 며칠 후 '뉴욕 타임즈'에 이런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며칠 전 나는 한 모임에서 '미국 국회의 어떤 의원은 개자식이다'라고 말했다. 그 후 어떤 의원들은 '내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계속 협박을 해왔다. 나는 재차 고려해보았는데 그 모임에서 내가 한 말은 그리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에 맞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오늘 특별히 성명을 발표하여 나의 말을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미국 국회의 어떤 의원은 개자식이 아니다.'" 마크 트웨인의 비판을 가만히 수용했더라면 조용히 넘어갔을 것을, 이를 반박하려다가 더 큰 망신만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용기입니다.
둘째,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마지막이 있음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3절입니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눅16:3). 지금까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한으로 내 것처럼 행세했는데, 주인이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고 말하자, 그는 '이것이 내 것이 아니구나, 이 모든 것을 결산해야 하는구나'하고 인정했습니다. 지금까진 내 마음대로 살았는데, 이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때가 온 것을 알고, 자기가 행한 일을 결산해야한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지금까진 주인의 것이 마치 제 것처럼 마음대로 흥청망청 낭비했으나 이제 그 모든 것이 끝난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행한 일을 결산해야할 때가 눈앞에 닥친 것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총명할지라도 얼마 안 가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처럼 챙기는 건강도 지금은 혈기왕성하여 힘이 넘쳐나도 언제까지 이 젊음이 유지될 것입니까? 머잖아 머리는 백발이 되고, 등골은 굽어지고, 팔다리는 휘청거리는 노년의 때가 도래합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12:1-2).
헬라의 어느 장군은 큰 성을 점령하고 높은 언덕에 올라가 자기가 점령한 성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다음에는 누가 이 성을 점령할 것이냐?" 내가 점령한 이 성을 언젠가는 다른 사람이 점령할 것입니다. 내가 살던 집도 언젠가 또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건강도, 지위도, 재물도 다 한계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언젠가 빼앗기고 사라질 것입니다. 이 사람은 종말을 아는 지혜가 있었기에 주인의 처분에 대해 아무 이의 없이 그대로 깨끗하게 받아들입니다.
1995년 1월 17일, 일본 고베에 진도 7.2의 엄청난 지진이 발생하여, 사망자가 6,370명에 달했고, 건물 10만 채가 파손되었습니다. 일본의 자존심이던 한신 고가 고속도로가 붕괴되었고, 총 피해 규모는 1,400조 원에 이르렀습니다. 각 방송사는 생방송으로 그 처절한 현장을 중계했는데, 그 중에 특히 눈에 띄는 장면은, 망연자실해 있는 70세가 넘은 한 노인과의 인터뷰였습니다. 그 노인은 어린 시절부터 평생동안 빌딩하나 세우기 위해 먹을 것, 입을 것을 아끼며 60년 동안 수고하여, 지진이 일어나기 하루 전날 드디어 12층 건물을 완공했습니다. 그 건물은 자기 평생을 두고 수고한 결과였기에 주변 사람들을 초청하여 축하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지진이 덮쳐 그 건물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미처 보험도 들지 않았기에 그의 손에는 한 줌의 먼지만 남았습니다. 그는 이런 종말이 찾아오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직 건설만 생각했지 파괴가 올 줄은 몰랐기에, 이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아, 그의 인생도 함께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셋째, 그는 마지막 기회를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주인이 '네 하던 일을 셈하라. 이 일을 계속하지 못하리라'고 말하자, 이 청지기는 생각합니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눅16:4). 그리고는 자기가 지금 할 일을 찾아냅니다. 그는 빚진 자들을 불러다가 고쳐 쓰면서 자기가 해고된 뒤 저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아직 자기에게 무언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저들에게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물론 이 행위는 도덕적으로 잘못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는 교훈은 이 청지기의 도덕성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기회를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어느 사장이 전 직원 회식 때, 한 사원에게 수표와 현금과, 카드도 있는 지갑을 주면서 결제하게 하고, 또 "병원에 입원해있는 직원에게 네가 알아서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도와주고 오라"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그 사원은 평생 사장을 따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갑 정도가 아닌 전 재산을 아무런 각서나 공증도 받지 않은 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이 청지기는 전 재산을 맡길 만큼 자신을 신뢰해준 주인의 뜻을 저버리고 그 재산을 제 마음대로 써버렸습니다. 주인이 맡긴 돈을 '자기 것'으로 생각했기에 마구 써버린 것입니다. 결국 주인이 진노하여 해고의 위기에 처하자, 그는 다른 이들의 빚을 줄여줍니다. 그가 자기에게 맡겨진 것을 '주인 것'으로 인정하기 시작하자, 이웃에게 유익한 일을 하게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 것인데, 이것을 제 것처럼 마구 쓰면 벌이 오지만, 하나님 것을 하나님 것처럼 쓰면 상급이 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 것처럼 써야 합니다. '하나님 것을 하나님 것처럼 생각하고 쓰는 사람'이 선한 청지기입니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헨리 이야기]라는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영화는 미국 상류층에 속한 '헨리 터너'라는 변호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이 변론하게된 사건은 어떤 수를 써서든 지 이겨내는 실력 있는 변호사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헨리 변호사를 찾았습니다. 하루는 그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다가 권총을 든 강도를 만나 총에 맞고 쓰러졌습니다. 생명은 구했지만 그는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헨리는 과거의 기억을 찾기 위해 옛날 동료들을 만나고, 변론 기록물들을 찾아가며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재판 기록들을 살펴보던 중,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맙니다. 그가 승소한 모든 사건들은 승리를 위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그는 재판에 패소한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헨리의 회심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죽음의 순간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찾아옵니다. 그때를 내다보고 하루 하루를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종말론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종말 앞에서 지혜입니다.
몇 해 전 삼성생명의 모 이사의 글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분은 평소대로 정기검진을 받다가 임파선 암에 걸렸다는 충격적인 통지를 받고 '내가 이제 죽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종양이 물 혹으로 밝혀져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는 병원에서 종양제거수술을 위한 3박 4일간 정신적 죽음의 문턱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이별 연습'이란 제목의 일기를 썼는데, 후배들에게 부끄럽고, 엄살이라고 놀림 당할까봐 묻어두려 했으나, 깨달은 것이 너무 많아 이메일로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앞으로 이렇게 살겠다는 다짐을 소개했습니다. "첫째 금연, 둘째 사랑할 시간과 능력이 있을 때 충분히 사랑하자, 셋째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
여러분, 무엇이 참된 지혜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분은 '지혜란 모든 사물과 사건을 하나님의 견지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간단합니다. 부부간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던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모든 문제가 눈 녹듯이 녹아버렸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미국의 현대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입니다. "하나님이시여, 고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고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냉정함을 주옵소서! 그리고 고칠 수 없는 것과 고칠 수 있는 것을 분별할 지혜를 주옵소서!" 참으로 지혜로운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쳐야할 것이라면 과감히 고칠 수 있는 용기와, 고쳐서 안 되는 것이라면 그대로 수용할 줄 아는 겸허함과, 이것을 바르게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갖는 것이 인생을 후회 없이 사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D.L 무디가 시카고 대전도 집회를 할 때, 첫째 날 저녁에 성령께서 감동하기를 오늘밤에 "영혼구원에 대한 설교를 해라, 종말에 대한 설교를 하라"는 메시지가 들렸습니다. 순서지를 보니 다음 날 저녁이 자신이 설교해야할 시간인데 성령께서는 '내일은 네 날이 아니라며 그 날 저녁에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꾹 누르고 '내일 저녁에 하지'하고 예정대로 했는데, 그 밤에 그 유명한 시카고 대화재가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타죽고 전 시내가 불탔습니다. 무디는 죄인의 심정으로 두고두고 후회했습니다. "내일은 내 날이 아니다." 모든 일에 시한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송년의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생각합시다. 지난 일은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이제 남은 인생은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0-12). 우리에게 남은 시간의 한계를 알고, 그 기회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쓸 줄 아는 참된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