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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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용 목사님

야고보서 4장 13~17절

설교요약 :

"나그네 길 인생의 자세"
2018년 10월 15일 주일예배
야고보서 4 : 13 - 17 ; 잠언 27 : 1


아인슈타인이 기차여행 중에 차장이 승차권을 검사하자 주머니에서 기차표를 찾았지만 차표가 없었습니다. 허둥대며 차표를 찾는 아인슈타인에게 차장이 말합니다. "선생님이 누구인지 제가 압니다. 틀림없이 표를 사셨을 테니 걱정 마세요." 그러자 아인슈타인이 고맙다고 하면서 계속 좌석 아래를 살피며 차표를 찾자, 차장이 "박사님, 걱정하실 것 없다니까요. 전 선생님이 누구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거듭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인슈타인이 말합니다. "내가 누군지는 나도 알아요. 그런데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지를 모르겠단 말이요."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지난 두 주간 안식년 휴가로 브라질 여행을 길 잃어버리지 않고 잘 다녀왔습니다.


브라질은 제가 가장 가깝게 사귀고 있는 친구 중의 하나인 목만수 선교사님이 30년 가까이 신학교 교수사역과 빈민사역을 하고 있는 곳으로, 진작부터 한번 다녀가라는 초청이 있었지만, 너무 먼 곳이라서 엄두를 못 내다가 모처럼 이번 기회에 혼자 다녀왔습니다. 처음 가본 브라질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고, 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었으며, 경로사상에 매우 투철했습니다. 상파울로에서는 선교사님 댁에 머물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승용차가 없었기에 여러 곳을 걸어다니며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그곳도 우리나라처럼 노인은 '이도스'라고 하여 지하철이 공짜였습니다. 그런데 노인의 기준이 60세 이상으로, 외국인인 저도 늘 공짜로 다녔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전철 안에 경로석이 3분의 1이나 차지하고 있어, 제가 그곳에서 수십 번 전철을 이용했지만 좌석에 앉지 못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공항에서도 노인은 맨 먼저 탑승하도록 특혜를 주어 브라질은 노인천국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제는 몹시 침체하여 서민들은 월 300헤알, 우리 돈으로 90만원 정도의 월급으로 한 가족이 생활할 만큼 빈곤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곳곳에 걸인과 홈리스들이 많았고, 강도와 살인사건이 끊이지 않는 치안이 몹시 불안했습니다. 제가 선교사님 집에서 잠은 자는데, 한밤중에 인근에서 총성이 들렸고, 그곳에서 저를 초대해준 한 교민 집사님은 얼마 전에 강도에게 납치되어 심하게 구타당하고 가진 것을 모두 빼앗겼다고 합니다. 목 만수 선교사님도 전에는 승용차가 있었는데, 차를 도둑맞고 나서 지금은 아예 걸어다니며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이 산에서는 속세가 생각나고, 속세에 나가면 절이 생각난다'고, 저도 막상 교회를 떠나니 한시도, 교회와 성도들이 생각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어딘가를 떠날 수 있는 것은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돌아올 가정이 있고, 섬길 수 있는 교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말씀에서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서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는 우리 인생을 비유하기를 '나그네 길'(창47:9)이라고도 비유했고, '꿈'(시73:20)으로 비유하기도 했으며, '잠깐 자는 것'(시90:5)으로, '쇠하는 꽃'(욥14:2)으로, 그리고 '마르는 풀'(시37:2)로, 또 '그림자'(전6:12) 등으로 비유하며, 인생의 짧고 무상함과 덧없음을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잠언서는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27:1)고 말씀합니다.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날아가듯이 살아갑니다. 엊그제가 봄이었는데, 벌써 가을이 깊어져 올해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이런 덧없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후회가 없도록 인생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결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특별히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의 어리석고 악함을 책망합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3-14). 여기서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에 대한 책망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이 사람은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겠다는 일 년간의 계획을 제법 치밀하고, 그럴싸하게 세웠습니다. 첫째, '어떤 도시에 가서', 행선지가 분명합니다. 둘째, '일 년을 머물며', 체류 기간도 확실합니다. 셋째, '장사하여', 할 일이 뚜렷합니다. 넷째, '이익을 보리라', 목적도 확고합니다. 다섯째, 이 계획은 도둑질하거나, 강도짓 하겠다는 못할 짓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겠다는 성실성도 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1세기 당시 유대 상인을 연상시키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의 땅이 좁고 또 외세의 지배 하에 있었기에 일찍부터 외국으로 진출하여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무역하는 일에 눈이 떴습니다. 유대인들은 뛰어난 상술로 당시 유럽과 북아프리카 등지에 신도시가 건설되면 이런 곳에 찾아가 외국의 진기한 물건들을 팔곤 하여 곳곳에서 환영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세 종류의 장사꾼이 있다고 말합니다. 3류 장사는 어떤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그 필요한 물건을 파는 장사꾼이고, 2류 장사는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을 팔 수 있는 장사꾼이며, 1류 장사는 아무 필요 없는 사람에게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물건을 파는 장사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도 전기 담요를 팔아먹고, 알래스카의 에스키모들에게 냉장고를 팔아먹는 사람이 바로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에겐 자기 할 일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그리고 그 일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과 계획도 있었지만, 주님은 그에게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16절)며 책망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정적인 잘못은 이 사람의 모든 계획 속에 하나님이 전혀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삶의 계획 속에 하나님의 뜻은 완전히 무시된 채 모든 것이 자기의 뜻대로 되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가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인생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내 생명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내가 내 삶을 선택하여 오늘 이 시대,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시대, 한국이라는 이 역사 속에 보내셔서 우리는 이 현실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의 몇 가지 오류가 지적됩니다. 첫째, 내일을 알지 못하는 인생이 됩니다. 본문 14절 말씀입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약4:14a).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큰 어리석음 가운데 하나가 종말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조차 애써 잊으려 합니다. 그래서 이 종말에 대한 아무런 대비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항상 종말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어느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암에 걸려 그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가족도 선생님도 그 사실을 아는데, 정작 본인은 모릅니다. 추운 겨울철 마지막 학기말 시험을 치르는데, 이 학생은 자기가 곧 죽는다는 걸 모르고 차가운 손을 불어가며 시험을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메입니다. '이제 두 달 후면 세상을 떠날텐데, 그걸 모르고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고 저렇게 안간힘으로 애쓰는구나'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그 학생뿐입니까? 종말을 모르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옛날, 로마나 헬라사람 가운데 지혜로운 사람들은 만나면 서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고 인사했다고 합니다. '메멘토'는 '리멤버'(remember)라는 말이요 '모리'는 '죽음'(to die)이란 뜻으로 '리멤버 투 다이'(remember to die),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도 당신도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삽시다'하는 인사입니다. 혹 누구와 싸우십니까? 둘 다 머잖아 죽을 것임을 잊지 말고 화해가 가장 좋은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맙시다. 우리는 머잖아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잊지 말고, '메멘토 모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 안개와 같이 허무한 인생이 됩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b). 여기 '안개'란 헬라어로 '아트미스'인데 '증기' 혹은 '호흡'을 나타내어, '너희 생명이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는 말씀은, 하나님 없는 인생이 이처럼 허무하고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가 온 종일 세상을 뒤덮을 듯 해도, 태양이 떠서 기온이 상승하면 이내 안개는 사라집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대단한 것 같아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이내 스러지는 풀과 같고, 태양 앞에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안개처럼 미약한 존재입니다.


언젠가 타임지에는 한 기업가의 인생이 한 페이지 전체에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리스토틀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로서 타임지는 그를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재계 거물들 가운데 하나'로 평하였습니다. 오나시스는 겨우 17세의 나이에 고국 그리스를 떠나 한 몫 잡아보려고 3등 선실에 몸을 싣고 아르헨티나로 갔습니다. 단돈 100달러로 시작한 사업이 4년 후 그가 21세에는 백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그는 냉정하고 단호한 사업가로 평판을 날리며, 부와 그 부가 가져다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자가용 제트 비행기뿐 아니라, 제주도와 같은 섬을 열 개나 소유하고, 이 섬에 그림, 보화, 대리석 집 등, 세계에서 제일 좋은 최고의 것들로 섬을 꾸몄습니다. 그의 딸의 이름을 딴 호화유람선 크리스티나 호는 수 백 명의 요리사가 동원되어 한없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가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자 미망인인 재클린을 탐내어 그 호화 여객선에 데려다 돈으로 유혹하여 1968년 끝내 아내로 삼았습니다. 타임지는 오나시스의 말을 직접 인용하였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중요한 것이 돈 밖에 더 있습니까? 지금은 돈 있는 사람들이 왕족이고 귀족이라구요." 그러나 아들 알렉산더가 비행기사고로 죽자 그의 인생은 하룻밤 사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습니다. 프랭크 브래이드(Frank Brady)는 그의 책 [오나시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의 죽음과 함께 그 삶도 죽었다." 바다의 선박이 바람에 부딪히듯이 세계적인 영광, 세계적인 부가 일순간 풍랑에 좌초되어 자녀도 혈통도 행복도 그렇게 찾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그처럼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오나시스는 계속 신경장애로 고생하다 2년 후 딸 크리스티나 혼자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히 죽어갔습니다. 그에겐 부는 있었지만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었던 것입니다.


셋째, 이제 허탄한 것을 자랑하는 악한 인생이 됩니다. 본문 1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4:16). 우리는 우리 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삶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다스리십니다. 본문 15절 이하에서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약4:15)고 하여, 주의 뜻을 헤아려 그 뜻 가운데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인생의 도리입니다. 무슨 일이나 어떤 계획을 세우기 전에 생각해야 할 전제는 "주의 뜻이면, 주께서 허락하시면"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허탄한 일을 도모하며 자랑하는 것은 다 악에 치우칠 뿐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군사적인 천재로 일컫는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하기로 계획하자, 가까운 군신 한 사람이 충고를 합니다. "제발, 이번만은 러시아 침략을 취소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만하면 족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폴레옹은 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그 신하는 "폐하시여! 사람이 계획을 세우지만, 하나님이 그 일을 성취시키십니다"며 말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나는 계획도 세우고 성취도 한다"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폴레옹은 바로 이 러시아 침공에 실패함으로 그의 몰락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히 인정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일이 내가 정한 시간에 내가 생각한대로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무지를 알고 온유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으시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고는 내가 했어도 결국은 하나님의 지혜와 기회와 능력을 주셨음을 기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한 번밖에 없는 우리 인생을 어떻게 후회 없이 보람 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첫째, 우리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본문 15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약4:15). 모든 일이 주님께서 허락하셔야만 되기에, 주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칼뱅의 삶의 모토는 '하나님 앞에서(CORAM DEO)'로서, 언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그 뜻을 따랐습니다. 우리는 내일의 계획과, 인생의 계획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세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앞으로 그가 나아갈 길에 대해 언제나 주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로마교회를 향해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롬15:32)고 했고, 고린도교회에겐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고전4:19)라고 했고, 또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고전16:7)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토록 원했던 일들도 주님의 허락을 받고, 주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 주님의 허락을 구했던 것입니다.


지난 2001년 6월, 미국의 오클라호마 주 청사를 폭발물로 습격해서 168명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던 티모시 맥베이는 독극물 주사로 사형을 당하기 직전에도 "자기는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 뉘우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에 '할 말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영국의 윌리엄 어네스티 헨리의 "나는 내 운명의 주인, 그리고 내 영혼의 선장"이란 시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언뜻 들으면 굉장히 멋있는 내용 같은데, 이 시는 바로, 하나님 없는 세속적 인본주의의 모토로서, 철저하게 반 기독교적인 것입니다. 세속적 인본주의의 사고는 우리의 생각의 틀 안에서 하나님을 추방하고 있습니다. 이 티모시 맥베이는 이런 세속적 인본주의 사상에 물들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도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필립 얀시가 [크리스천 인 투데이]라는 잡지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이 티모스 맥베이 사건의 불행은 단순히 인생을 잘못 살아왔던 한 청년의 비극이 아니라 바로 세속적 인본주의에 고무된, 그 이단사상의 피해자로 우리는 이 사람을 보아야 한다. 당신이 불행해 지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신을 추방하라. 그러나 당신이 참으로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하나님을 당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복귀시키고 그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을 배우라." 우리는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우리의 생명에 내일, 즉 종말이 있음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약4:14). 많은 사람들이 내일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 같아도, 뜨거운 태양 빛에 안개가 사라지듯 잠시 후 이 땅에서 그 자취를 감출 날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 그 자체를 사실대로 인정해야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람은 태어나서 이 땅에 살다가 죽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나와 내 가족도 그럴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은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그 입장에서 죽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주일을 지키는 것도 일종의 죽는 연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주일이면 모든 일을 올스톱하고 교회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주일성수는 세상일을 중단하는 훈련이기에 그래서 죽는 연습하는 셈입니다. 평소 주일이면 하던 모든 일을 중단하고 교회 나오는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시면 평소대로 "예! 지금 가겠습니다"하고 즉시 주님 앞에 가면 되기에 죽기도 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 이런 훈련이 안 된 사람은 이것저것 준비하고 챙겨야할 것이 많아 죽기도 힘들 것입니다.


셋째, 주어진 생명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본문 17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4:17). 사람들은 선을 행할 수 있는 기회도, 지식도, 능력도, 돈도 있는데 하지 않고 연기합니다. 어느 곳에 가서 돈을 벌고 나서 하겠다고 말하자, 성경은 엄하게 심판하십니다. "네 생명이 무엇이냐?" 기회를 놓쳐선 안 됩니다. 핑계 대며 미루면 하나님께 죄가 됩니다. 도둑질이나 살인만 죄가 아니라, 게으름도 시간과 은사를 남용하는 죄입니다. 한 달란트 맡았던 자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도둑질한 일이 없이, 단지 땅에 묻었다 그대로 내놓았는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무섭게 책망 받았습니다. 내게 주신 은사를 다하여, 오늘 해야 할 선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오늘 행해야만 합니다.


찬송가작사자 엘라이저 캐슬은 성공적인 의사요 평신도지도자로서 네브라스카의 한 침례교회에서 모범적으로 봉사하던 분입니다. 그는 특히 전도에 특별한 사명을 느끼며 많은 환자들을 전도하고 언제나 자신의 삶의 이유는 복음전도라고 고백하는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돈버는 것보다도 전도하시는 것이 그렇게도 좋으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렇고 말구요.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가 아닙니까? 나그네 인생에서 영혼구원보다 더 가치 있고 고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도는 천사도 흠모하는 일인데요." 곁에 있던 부인이 '천사도 흠모하는 일'이란 말에 감동 받고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그 말을 시로 쓰면 자신이 작곡하겠다고 하여, 찬송가 508장이 탄생합니다. 그런데 그가 60세가 넘어서자 자신의 전 시간을 드려 복음을 전하고픈 마음에 목회에 헌신합니다. 더 이상 돈을 못 벌고 인간적인 대접도 못 받았지만 너무 기뻐서 콜로라도 덴버의 한 작은 침례교회에 부임하면서 취임예배에서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캐슬이 이 교회에 부임한지 얼마 안 되어 부인이 그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 안되고 의사하셨으면 부인이 그렇게 빨리 가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후회가 안되십니까?" 캐슬이 대답합니다. "제 아내는 찬송을 작곡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그네 인생 길에 행복한 전도자의 곁에 머뭄이 저의 큰 행복이에요. 혹시 제가 먼저 천국에 먼저 간다면 저는 변함 없이 당신의 하늘의 응원자가 되어 함께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이에요." 그리고 그는 부인 장례식에서 회중들에게 이 찬송을 불러줄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머잖아 가리니 이 세상 있을 때 주 예수 위하여 우리가 힘써 일하세.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세상 널리 전하세" 이것이 바로 천국순례자의 모습입니다.


존 핵가이는 말했습니다. "어제는 현금으로 바꾼 수표이고, 내일은 약속어음이다. 오늘은 손안에 있는 것은 현금이니 그것을 투자하라" 그렇기에 오늘 주어진 삶 속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어느 어머니가 너무 열심히 일하자 아들이 보다 못해 묻습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십니까?" 어머니는 "촛불이 하나밖에 없는데 자꾸만 타 들어가니 꺼지기 전에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기도]입니다. "마음에 슬픔을 느끼며 잠자리에 들고 똑같은 슬픔을 느끼며 잠을 깬다. 나는 모든 걸 견딜 수 없다. 비를 맞으며 여기저기를 걸어다녔다. 아버지여, 생명의 근원이시여, 우주의 영이여, 생명의 원천이여, 날 도와주소서. 내 인생의 마지막 며칠, 마지막 몇 시간이라도 당신에게 봉사하며 당신만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날 도와주소서."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최선을 다해 충성하여,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시며, 칭찬과 면류관을 받아쓰게 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야고보서 4장 13~17절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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