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14 93회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2018년 1월 14일 주일예배
창세기 12 : 1- 9 ; 갈라디아서 3 : 7 - 9
연말연시가 되면 여러 모임과 회식이 있고, 이런 자리에선 빠지지 않는 것이 단합을 위해서나, 혹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건배사'를 외치곤 합니다. 올해의 건배사에는 어떤 것이 있나 검색해 보니, '올해(현재)는 스튜핏! 올~해(미래)는 그레잇'이라는 건배사가 인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신나게, 발랄하게'라는 뜻의 '새신발!', '뚝심있게, 배짱있게, 기운차게'라고 해서 '뚝배기!',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해합니다'라는 뜻의 '고사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나온 건배사지만, '당당하게 살자, 신명나게 살자, 멋지게 살자, 져주면서 살자'라는 '당신 멋져!'와 '재미있게 살자, 건강하게 살자, 축복하며 살자'라는 '재건축!'이 참 좋았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글 [행복해진다는 것]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이야. 인간은 선을 행하며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서 조화를 찾아 사랑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보리죽을 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리고 언제나 좋은 세상이라네.
헤르만 헤세 그의 작품 가운데 [어거스터스]란 단편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모가 있었는데 다행스럽게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의 이름을 어거스터스라고 지었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전 한 신비한 노인이 밤중에 산모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들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그 아이를 위해 내가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습니다. 소원이 무엇입니까?" 어거스터스의 어머니는 곰곰이 생각하다 "이 아이가 자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져, 아이는 자라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선생님의 사랑도 받고, 친구의 사랑도 받고, 이웃의 사랑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은 행복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을 받을 줄만 알았지 베풀지 못하니까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거스터스는 노인이 되었을 때,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외롭고 비참한 삶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신비한 노인이 다시 나타나 어거스터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삶에 만족합니까?" 어거스터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도 한 가진 소원을 이루어주겠습니다.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오늘 말씀은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소명에 대한 기록입니다. 하나님은 비옥한 땅 메소포타미아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편히 살던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1절)고 하시며 귀한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는 말씀은 세 가지 축복의 약속입니다. 그 첫째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고 창대하게 하겠다는 축복입니다. 여기 '큰 민족'이란 단지 숫자적으로 많은 인구만 아니라, 영적으로 위대한 민족을 가리키는 '이스라엘'에 적합한 명칭입니다. 이 약속에 따라, 오늘날 중동에 있는 이스라엘 국가뿐만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이 된 크리스천이 전 세계에 십 수억을 헤아리는 엄청난 민족으로 성장했고, 이뿐 아니라 가장 영향력 있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은 전 세계에 1천 3백만 명으로, 60억 세계인구의 0.2%정도인데도 이들 유대인은 노벨상에서 경제학상 65%, 의학상 23%, 물리학상 22%, 화학상 12%, 문학상 8%의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유대인은 미국 인구의 3.2%에 불과하지만 부호 상위 400가족 중 24%, 최상위 40가족인 경우는 42%를 차지합니다. 노벨상의 전체 수상자 가운데 32%가 유대인입니다. 세계적 위인 중에는 과학자 아인슈타인, 뉴턴, 오펜하이머, 철학자 프로이드, 마르크스, 마틴 부버, 에리히 프롬, 음악가로 바그너, 쇼팽, 멘델스존, 레너드 번스타인, 정치가로 키신저,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미테랑, 화가 마크 샤갈,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 하이네, 토마스만, 기업가, 록펠러, 빌게이츠. 영화계는 스티븐 스필버그, 우디 앨런, 더스틴 호프만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지 수 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기독교 문화권뿐만 아니라, 유대교와 심지어는 회교권에서조차 아브라함을 존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이 창대케 된 가장 큰 축복은, 무엇보다도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1:1). 이뿐만 아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약2:23)라는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황송하게도 하나님의 친구라는 별명까지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지키고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3절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3절). 먼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겠다'고 보장해 주십니다. 창세기 20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애굽왕 바로 앞에서처럼 블레셋의 아비멜렉 앞에서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했다가 아내를 빼앗길 뻔했던 밤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꿈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창20:7) 그러자 아비멜렉이 깜짝 놀라 사라를 양과 소와 노비와 은 천 개까지 주어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내며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너 보기에 좋은 대로 거하라"고 너그럽게 대하매, 아브라함이 그를 위해 기도하자, 하나님은 자식을 낳지 못하던 아비멜렉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여 자식을 낳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겠다'며 아브라함을 지켜주실 것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미워하는 자들의 적대심으로부터 아브라함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바로 왕에게, 그리고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아내 사라를 빼앗길 뻔했을 때, 아브라함의 편을 들어 바로와 아비멜렉을 막아 사라를 지켜주셨고,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해 메소포타미아 연합군과 싸울 때, 아브라함을 저들을 이기도록 도와주셨습니다.(창14장).
북아프리카에 사는 이슬람 여학생 하와 아메드가 어느 날 기숙사에서 기독교 소책자를 읽고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하자, 이슬람 율법사인 그녀의 아버지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오빠들과 같이 그녀를 옷 벗기고 의자에 묶어 전기로 죽이려고 하자 그녀는 성경책을 자기 무릎에 놓아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비록 묶였지만 성경책이 있어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전기코드는 꼽혀졌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네 차례나 전기선을 바꾸며 시도했지만 전기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는 "더 이상 내 딸이 아니다"며 발가벗긴 채 거리로 내쫓았습니다. 그녀는 너무 부끄러워 친구 집으로 달아나자 친구는 옷과 머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다음날 그 친구는 이웃에게 자기 친구가 발가벗은 채 거리를 달렸을 때 어떻게 생각했는지 묻자, 그 이웃들은 의아해 하며 '왜 하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달려가는지 궁금하여 서로 물어보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죽음과 부끄러움에서 그녀를 보호하셨습니다. 그녀는 한 기독교 단체에서 전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셋째, 아브라함은 세상을 복되게 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복이 된다는 말은 가득 찬 잔이 넘쳐 다른 사람에게 흘러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한 개인만 이기적으로 누리도록 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나누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주면,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자본주의가 서서히 붕괴되어 가는데, 사람들이 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질적으로 좋은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이런 나눔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긴장하며 사회와 가정에 있어서, 관계가 무너져 가기에 많은 사람들은 고독하고, 깊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치유의 통로가 될 수 있고, 스스로 다른 이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도록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록펠러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에 미국의 최대 부자가 되었고, 53세에 세계 최대 갑부가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55세에 그는 불치병으로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최후 검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갈 때, 병원 로비에 실린 액자의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전율이 생기고 눈물이 났습니다. 선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가운데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조금 후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입원비 문제로 다투는 소리였습니다. 병원측은 병원비가 없어 입원이 안 된다고 하고, 환자 어머니는 입원시켜 달라고 울면서 사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곧 비서를 시켜 병원비를 지불하고 누가 지불했는지 모르게 했습니다. 얼마 후 은밀히 도운 소녀가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자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록펠러는 얼마나 기뻤던지 나중에는 자서전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저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 때 그는 나눔의 삶을 작정합니다. 그와 동시에 신기하게 그의 병도 사라졌습니다. 그 뒤 그는 98세까지 살며 선한 일에 힘썼습니다. 나중에 그는 회고합니다.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 어떻게 이처럼 복을 받게 되었습니까? 먼저, 값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브라함에게 복이 주어졌습니다. 본문 2절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여기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아브람을 축복하십니다. 이때 아브람이 어떤 선을 행했다던가, 무슨 공로를 세웠다는 아무런 전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그를 무조건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이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으로 인간의 행위와 무관하게 베푸시는 은사입니다. 그래서 축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살핀다면 복 받을 사람이 어디 있는가. 우리가 복된 사람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서 복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이다." 축복이란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비롯됩니다.
한 청년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면서 행복의 조건들을 종이에 적어 보았습니다. 물질, 건강, 학력, 권력, 결혼, 사랑..., 이런 것만 있으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 목록을 적은 종이를 들고 목사님을 찾았습니다. "목사님, 제 생각에 이것들만 있으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한번 봐주시겠어요?" 청년이 적은 목록을 한참 들여다보던 목사님은 행복의 조건들 위에 빨간 줄을 그었습니다. "형제가 적은 행복의 조건들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것들이군. 행복의 조건은 한 가지면 된다네. 그것은 마음의 평안이라네." 그로부터 청년은 행복의 조건인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먼저 열심히 돈을 모았으나 재산이 늘어나고 돈을 벌수록 더 벌고 싶은 욕심과, 번 돈을 지키기 위한 번민만 커질 뿐 마음의 평안은 얻을 수 없었습니다. 또 몸에 좋은 음식들을 찾아다니며 먹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공허했습니다. 이번엔 많은 돈을 주고 중매회사를 통해 최고의 신부를 골라 결혼했으나 그 기쁨도 한 달이 채 가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얻어도 그 과정에서 생긴 수많은 정적들로 인해 오히려 마음은 불편했습니다. 어느 것에서도 평안을 경험하지 못한 그는 이제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중년이 되어 다시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모든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목사님은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마음의 평안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그것은 예수님을 믿을 때 거저 주어지는 아름다운 하늘의 선물이라네."
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복된 자가 되었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말씀에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다"(창12:4)고 했습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히11:8)고 하여, 전혀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여 고향과 친척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결코 관념적인 믿음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구체적인 순종이었습니다. 참 믿음은 언제나 행동을 낳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모르는' 미지의 땅을 향해 믿음으로 출발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인생을 걸고 떠났던 것입니다.
우리를 각자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 아브라함은 떠났습니다. 어떤 분은 "왜 하필이면 친척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까?"라고 질문하지만 하나님께서 '떠나라, 버리라'고 명령하실 때는 언제나 적절한 대안을 준비하시고서 그렇게 명령하십니다. 빼앗아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리고 떠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익하고, 더 큰 축복이요, 더욱 커다란 영광임을 알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복된 자가 됩니다.
스펄전 목사가 미국에서 자기가 돌보는 런던의 고아들을 위해 300파운드라는 거금을 모금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그 돈을 조지 뮬러 목사에게 갖다주라고 하시자 "주님 이 돈은 우리 고아들에게 필요한 돈인데 우리 아이들은 어쩌라고요"해도, 하나님은 계속 가져다주라고 하시자 결국 "주님, 순종하겠습니다"하고 그 돈을 들고 가보니 '뮬러' 목사가 300파운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놀라 기뻐했는데, 스펄전 목사가 사무실에 돌아오니 책상 위에 편지가 하나 와있는데, 1200파운드의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 내가 순종하니 주님은 더 큰 것으로 주시는군요!"하며 감격하여 감사를 드렸답니다.
그리고, 성실한 예배생활을 통해 복을 받았습니다. 본문 7절과 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창12:7-8).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들어섰을 때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주변에는 믿지 않는 이방인들인 가나안 족속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지만,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축복 받은 자신의 정체와 사명을 새롭게 확인해나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예배가 성실해야 합니다. 아브람이 애굽에 갔다가 아내를 빼앗길 뻔한 시험을 받은 것은 애굽에선 예배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든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약속을 다짐받아야 합니다.
어린 헬렌 켈러가 좌절을 이기고 일어나 교육의 놀라운 진보를 보이자, 헬렌의 부모가 눈물 흘리며 학교 교장 앞에서 설리번 선생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때 설리번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행복한 것은 저 자신입니다. 제가 헬렌에게 도움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 저의 보람이고, 저의 행복이며, 저를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설리번은 헬렌을 돕는 것을 자기 자랑이 아닌 자기 인생의 가치로 생각했고 헬렌은 스승에게서 이런 이웃 사랑의 실천을 배웠습니다. 1888년 4월 16일은 8살 된 헬렌 켈러가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던 날, 설리번 선생의 부탁으로 교회학교 학생들은 처음 교회에 나오는 헬렌을 위해 축하파티를 열어주고, 반 아이들 모두가 헬렌에게 키스하며 안아주었습니다. 헬렌은 신앙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교회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황제로 유럽을 호령했던 나폴레옹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복한 날은 엿새를 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헬렌 켈러는 시각과 청각을 잃었지만 예배하며 살았더니 "내 인생에서 행복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며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복되도록 세상을 축복하며 복음전해야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우리가 하늘의 축복을 받는 첩경은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전도를 지나치게 '정복의 개념'으로 여겨, 사람들에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며 공격적으로 다가가기보다, 우리가 받은 축복을 나누는 친절한 자세로 다가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마10:12). 전도하러 어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이 복 받을 자격이 있든 없든 무조건 복을 빌라고 하셨습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D.L. 무디의 전도의 성공비결은 축복이었다고 합니다. 무디는 어디를 가든지 먼저 축복했다고 합니다. 어린이를 만나도 축복하고, 술주정뱅이를 만나도 축복했고, 깡패를 만나도 축복했더니, 이렇게 축복하는 대로 사람들이 변화되더랍니다. 어린아이에게 축복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되고, 술주정뱅이를 축복하니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고, 깡패에게 축복했더니 변하여 교회에 충성하는 일꾼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디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포했더니 그것이 부흥의 비결이더라"고 고백했습니다.
도미노 피자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의 구단주로 있던 타마스 모네간은 다른 사업가처럼 사업을 확장하여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땀흘리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인생의 절정에 이른 어느 날 갑자기 회의가 생겼습니다. "내가 사업을 이렇게 확장하지만 도대체 인생이란 뭘까?" 그는 당시 27에이커의 땅에 미국에서 한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멋진 dream house을 거의 절반쯤 짓고 있었는데, 그의 크리스천 친구가 C.S. 루이스의 책을 주어 읽다가 큰 충격과 은혜를 받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내가 미국서 제일 멋있는 집을 짓고 거기 들어가서 산다고 하자. 그 다음엔 So what? 그래서 내가 그런 집에서 산다고 해서 어쨌단 말이냐?" 그러자 자기가 짓고 있던 드림 하우스가 아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는 갑자기 건축을 중단하고 설계를 변경했습니다. 그것을 이웃 사람들을 돕고 섬기기 위한 복지재단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팔고 더 적은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그것이 굉장한 뉴스가 되어 시카고트리뷴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비로소 세상에 태어나, 아 이것이 행복이로구나 하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소유가 줄 수 없는 행복을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깨닫고 변화되면서 진정한 인생의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계산, 잠 못 자며 고생하고, 뼈를 깎는 인내와 모든 근검 절약하는 인간의 수고와 노력도 하나님의 축복 없인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7, 9).
우리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축복을 받았기에,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세상에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처럼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에밀 디킨슨의 시입니다. "만일 내가 한 사람의 상심을 건질 수 있다면 내가 사는 것은 헛되지 않으리. 만일 내가 한 사람의 괴로움을 덜어 줄 수 있다면, 그 고통을 시원하게 해 줄 수 있다면, 한 마리의 허덕이는 안락새를 구하여 그 둥지 속으로 돌려보내 줄 수 있다면, 내가 사는 삶은 헛되지 않으리."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