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

요한복음 6장 5~13절

설교요약 :

"한 소년이 드린 헌신과 그 기적"
2020년 11월 15일 추수감사절
요한복음 6 : 5 - 13 ; 시편 116 : 12 - 14


신학교를 갓 졸업한 전도사님이 어느 시골교회에 부임하여 설교하는데, 경험이 없다보니 긴장이 되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떡 5천 개와 물고기 2천 마리로 다섯 명을 먹이셨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자, 나이 많은 장로님이 "그런 일은 나도 하겠다"고 말하자, 실수를 깨달은 전도사님은 당황하여 겨우 설교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이번엔 실수하지 말아야지'하고는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하고 설교했습니다. 예배 후, 장로님에게 "장로님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일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장로님이 대답하기를 "지난주에 떡 오천 개와 물고기 이천 마리를 가지고 다섯 명 먹이고 남은 것 있잖어?"라고 말하더랍니다. 어디서든 먹을 것이 남아 있다면 걱정 없지만, 먹을 것이 없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의 당선자인 조 바이든(Joe Biden)은 케네디 전 대통령과의 공통점은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두 사람만이 카톨릭신자이고, 그리고 둘 다 아일랜드에서 이민해온 가문이란 사실입니다. 2010년 통계에 의하면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3,467만 명으로, 독립국 아일랜드 인구의 7배를 넘는다고 하는데, 아일랜드계 이민자가 많은 이유는 1845년부터 1859년까지 5년 동안 감자대기근으로 250만 명이 굶어죽고, 기근을 피해 이민을 떠난 사람이 5백만 명이 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대기근은 우리나라에도 있었는데, 조선 현종 재위기간인 1670년(경술년)과 1671년(신해년)의 한국 역사상 전대미문의 대기근으로, 임진왜란 때부터 살아온 노인들이 '전쟁 때도 이것보다는 나았다'고 할 정도로 피해가 컸습니다. '경신대기근'의 결과는 파멸적으로, 조선 8도 전체가 흉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으며, 당시 조선인구의 1,200-1,400만 명 중에 90만에서 150만 명이 굶어죽었다고 전해집니다.


경복궁은 조선시대 왕궁 중에 가장 아름다운 궁전인데, 그 궁궐 안에 주춧돌도 없는 허름한 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지붕은 억새풀을 덮었고 방바닥은 아무것도 깔지 않아 평민이 사는 초가집보다 더 초라한데, 한때 이 집에 기거했던 분은 세종대왕이었습니다. 세종 재위 5년에 발생한 강원도 대기근으로 백성들이 굶주려 흙을 파먹자,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고통을 함께 하고자 이 집에서 몇 년간 거처했는데, 신하들이 방바닥에 지푸라기라도 깔면 크게 노하며 거친 흙바닥에서 주무셨습니다.


세상에는 곳곳에 이런 기근이 있으나, 참으로 부족한 것은 식량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세계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 계산할 때, 지구는 1백 20억 명을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세계 각처에서 생산되는 식량이 제대로 분배만 된다면 지구상에서는 기아로 죽을 이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은 '생명의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1장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1:4)라며 생명의 선언이 제시됩니다. 이것은 '생명의 이야기'이고 '빛의 이야기'인데, 그것이 어두움의 이야기와 함께 펼쳐집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두움과 굶주림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추시며, 그들의 궁핍의 자리에 찾아오셔서, 사랑과 능력으로 저들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요한복음에는 각 장마다 인간의 핍절한 상황이 소개되는데, 2장에는 흥겨워야할 잔칫집에 '포도주가 없는 문제', 3장에선 백성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확신이 없는 문제',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남편이 없는 문제', 5장에선 베데스다 연못에 38년 된 환자에게 '도와줄 사람 없는 문제', 6장에는 광야에 많은 군중이 모였지만 그곳에 '먹을 떡이 없는 문제', 7장은 예수님의 형제들까지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믿음 없는 문제', 8장은 간음한 여인과 종교지도자들의 '진실과 거룩함 없는 문제', 9장에는 날 때부터 보지 못하는 소경의 '시력 없는 문제', 10장에는 수전절에 모인 무리에게 '목자 없는 문제', 11장은 죽은 나사로의 '생명이 없는 문제'가 소개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인간의 결핍의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주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본문의 '5병 2어 기적'은 참으로 특별한 기적입니다. 첫째, 사람의 눈에 드러나는 물리적인 기적이었습니다. 9절에서, 주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큰 기적을 행했다 해도, 대체로 보면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일어난 경우로서, 신체 내부에서 병이 치료되었다거나, 사람들이 모르는 은밀한 가운데 일어난 기적이 대부분인데, 본문의 기적은 현장에 있던 사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물리적이고 백주 대낮에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둘째, 일만 여 명의 많은 군중이 동시에 체험한 기적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요6:10)라고 했는데, 마태복음에는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마14:21)고 하여,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합치면 일만 오천 명이 넘습니다.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기적을 보면, 한 두 사람이 체험한 기적이 대부분인데 오병이어의 기적은 일만 명이 넘는 사람이 동시에 체험한 매머드 기적으로,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이런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하고 엄청난 기적입니다.


셋째, 이 사건을 통해 성만찬의 진리가 계시된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6:27)라고 말씀하시고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며, 예수님 자신이 저희의 참된 양식임을 말씀하심으로, 이 사건은 단순히 육신의 양식만이 아니라, 성만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인간생존에 가장 기본인 먹는 문제로 곤경에 처한 상황이 나옵니다. 벳새다 들판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자, 예수님은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하고 물으십니다.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며 정확한 계산과 데이터로 그들을 먹이는 것이 불가능함을 아룁니다. 당시 1데나리온은 일용노동자나 군인의 하루 임금으로, 2백 데나리온은 안식일을 제외한 8개월 간의 임금에 해당되는 금액으로서, 당시 형편에는 이런 돈을 가지고 다닐 사람이 없었습니다. 빌립은 결론적으로는 이 무리들을 먹일 방법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그곳에 모였던 5천명이 배불리 먹고 열 두 바구니까지 남았습니다. 그러면 이런 놀라운 기적이 나타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는, 안드레의 긍정적인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으시자,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6:7)라는 부정적인 대답이었습니다. 그 의견은 매우 합리적이고 정확한 계산이지만, 한마디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6:9)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한 아이의 초라한 도시락을 가져와, 주님의 능력을 기대합니다. "이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라는 말은 빌립에 비해 비합리적이며 비계산적이지만, 절망적이지 않은 그의 믿음과 행동은 결국 큰 표적을 낳게 되었습니다.


조 디스펜자는 [당신도 초자연적이 될 수 있다]며 말합니다. "원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려면 '분명한 의도'와 '고양된 감정'이 필요하다. 분명한 의도란 당신이 창조하고 싶은 것을 분명히 해야한다는 뜻이다.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적은 다음, 그 의도에 사랑, 감사, 고무, 기쁨, 경탄 같은 고양된 감정을 덧붙여야한다. 의도한 일이 일어났을 때 느끼게 될 감정을 '미리' 느끼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우리 몸은 그 미래의 현실이 현재 순간에 이미 벌어지고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 핵심은 '고양된 감정'에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갖고 싶고,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릴 때 따라붙는 생각은 어떠합니까? '이뤄지면 좋겠다'는 마음이나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하는 조바심이 아닌,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느끼게 될 고양된 감정을 '미리' 감사로 나타낼 때,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이 아닌 느낌을 들으시고 기적을 행하십니다. "난 하면 안 되더라. 잘 되다가도 결국에는 안 되더라"며 하는 일에 대해 의심하고 불평하면 우리의 뇌세포는 실제 그렇게 되도록 마음과 행동을 조종한다고 합니다. 반대로 "난 하기만 하면 잘되더라. 난 잘될 수밖에 없다. 잘 되고 더 잘될 것이다"고 믿고 감사하면 뇌세포는 그렇게 되도록 마음과 행동을 조종해나간다고 합니다.


미국의 17대 대통령인 앤드류 존슨은 이러한 긍정의 힘을 발휘했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몹시 가난하여 학교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열 살에 양복점을 들어가 성실하게 일했고 돈을 벌고 결혼한 후에야 읽고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존슨은 정치에 뛰어들어 주지사, 상원의원이 된 후에 16대 미 대통령인 링컨을 보좌하는 부통령이 됩니다. 그리고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후 미국 17대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지만 상대편으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당했습니다.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대통령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다니 말이 됩니까?" 그러자 존슨은 언제나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이 한마디에 상황을 역전시켜버렸습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행복은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틀입니다. 긍정적인 생각 없이 우리는 어느 한순간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을 원합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행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서는, 밝음을 선택하지 않고서는 결코 행복해지거나 웃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한 어린아이가 자기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린 헌신입니다. 모두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있는데, 한 어린아이가 아마도 어머니가 도시락으로 싸주신 물고기 두 마리와 떡 5개를 주님께 드린 것이 5천 명을 먹인 기적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자기 몫을 포기하고 드린 한 어린이의 헌신이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였다면, 우리는 어떤 헌신을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도 이런 기적을 원한다면 우리도 이러한 희생의 씨앗이 심어야 합니다. 나의 마땅한 권리나 이익까지도 포기하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할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기적이 일어나 하나님께 많은 것을 받기를 소원하지만, 참된 기적은 먼저 내 심령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내 자신을 드려 헌신하는 기적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23년 전에 한양교회는 빌딩 지하에 150평쯤 빌려서 성전으로 꾸며 예배드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10억 5천만 원을 챙겨서 이곳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시로서 기적이었습니다. 그 당시 한양교회도 길거리에 있던 2층과 3층의 조그만 공간을 빌려 쓰고 있다가 지하이긴 하지만 150평 건물로 옮기면서 내부 인테리어를 하는 등, 당시로서 상당한 재정적 부담이 있었던 터이기에 전혀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눈사람을 만들 때 처음 주먹으로 뭉쳐진 한 줌의 눈 뭉치처럼, 당시 부목사였던 박동국 목사님이 자기 주택부금을 들었던 돈 200만원과, 제 막내 동생 손세앙 집사가 한양교회에 나오다가 대전으로 이사가서 금은방을 하다 잘되지 않아 그것을 정리하면서 2천만 원을 건축헌금으로 보내준 것이 종자돈이 되어 거기에, 성도들의 작정헌금을 모아 6억 4천만 원을 마련하고, 은행 대부 4억 1천만 원을 얻어서, 10억 5천만 원을 마련하여 이곳으로 옮겨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체 액수에 비하면, 2천 2백 만원이 큰돈은 아니었지만, 필경은 오늘날의 동문교회를 이룬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하나님께서 이미 내게 주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새로운 은혜를 내려주실 것이다. 묵은 은혜에 감사가 없이 새로운 은혜 받기는 어렵다. 저 불평가로 불리는 사람이 평생 만족을 느낄 수 없는 것은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감사입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요6:11). 여기 '축사하셨다'고 했는데, '축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카리스테사스'로서 '감사'라는 뜻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이 장면은 기막힌 상황으로,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앞에 놓고 어떻게 감사기도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감사 기도하셨습니다. 4복음서가 다같이 이 기적을 증거하며 모두 '축사하셨다'는 말씀밖에는 다른 말이 없습니다. 이 말은 유대인들이 식사 때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일반적 감사기도였습니다. "하나님,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대략 그런 내용의 감사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상황에서 감사가 쉽지 않음은 먼저, 이 음식의 양입니다. 모인 군중은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하고 남자 어른만 5천명인데, 지금 가진 음식은 한 사람 분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그리고 음식의 질입니다. 유대인은 보통 밀가루 빵이 주식이고,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이나 가축의 사료로 쓰입니다. 그리고 물고기도 보통 물고기는 헬라어로 '익투스'인데, 본문엔 '옵사리온'이란 작은 물고기로, 어부들이 이런 물고기는 해변에 버리면 가난한 사람들이 주어다 먹는 물고기입니다.


예수님은 이 하찮은 보리떡과 작은 물고기를 가지고도 감사하셨습니다. 이렇게 작은 것을 가지고도 감사드리자, 5천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안드레의 긍정적인 자세, 이름 없는 한 소년이 가져온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 그리고 예수님의 감사가 어우러져 일만 명이 넘는 수많은 군중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과 감사가 있습니까? 두 눈이 보이지 않고 말도 하지 못했던 헬렌켈러가 죽음을 앞두고 "난 정말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다. 내 인생에서 행복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고 말했는데, 반면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쥔 나폴레옹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복한 날은 엿새를 넘지 않았다"고 투덜거렸습니다. 행복은 여유로운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의 자세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를 구원하시고 오늘까지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시56:12-13). 환란 많은 세상에서 오늘까지 내 생명을 파멸에 처하지 않게 하시고, 지켜 보호해주신 그 은혜를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둘째, 내 가족과 주위에 사랑하는 이웃이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독한 자로 가속 중에 처하게 하신다"(시68:6). 이 외롭고 삭막한 세상에서 서로 의지하고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을 주시고, 또 우리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고 서로 교제하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이웃이 있음도 우리가 크게 감사해야 합니다. 이 시간 아무도 없는 텅 빈곳에서 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거나, 직장에서 돌아와 아무도 없는 텅 빈집에 들어가 홀로 거해야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고 황량하겠습니까? 내게 귀한 가족과 좋은 이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셋째, 현실 속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116:12).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고 하나, 아직도 누리고 있는 것은 크고도 많습니다. 물질을 잃었지만 건강을 얻었고, 건강을 잃었지만 진실을 얻었고, 명예를 잃었지만 믿음을 얻었습니다. 모든 것들을 다 잃었다 해도 우리는 천국을 얻었습니다. 이 모든 은혜를 생각하면 불평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그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찬송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프랑스에 93살 할아버지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병원에 이송되었습니다. 그는 24시간 산소공급을 받고서 상태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때 의사선생님이 할아버지께 50만 프랑의 의료계산서를 보여주자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할아버지를 달래면서 계산서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라고 달랬더니,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지불하게 될 금액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치료비를 모두 낼 수 있습니다. 제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24시간의 산소공급을 받으면서 50만 프랑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산소를 93년 동안 마시면서 돈을 지불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면 제가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 아십니까?" 의사선생님도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고 합니다. [홍당무]를 쓴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는 몸이 약해서 아침마다 이런 감사를 드렸습니다. "눈이 보인다. 귀가 즐겁다./몸이 움직인다. 기분도 괜찮다. 고맙다./인생은 참 아름답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내 발로 대지를 걸어다니는 것만도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명약은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스트레스로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한스 셀리의 말입니다.


지난해 6월 11일 오후 6시 40분쯤 퇴근길 승객이 잔뜩 타고 있던 서울 지하철 4호선 사당행 열차가 동작대교를 반쯤 건넜을 때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다음 역은 동작, 동작역입니다"하는 녹음된 음성 대신 승무원의 육성이 들렸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 힘들고 지치고 속상한 게 있다면 열차에 모두 놓고 내리세요. 제가 다 싣고 가겠습니다." 힘겨운 일상에 하루를 보낸 이들에게 얼굴 모를 승무원의 한마디는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 열차에 22살 신 모씨가 타고 있었는데, 차창 밖으로 멍하니 한강을 바라보다 방송을 들은 그는 전화를 꺼내 서울교통공사에 감사문자를 보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하철에서 울 뻔했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2019년 말,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은 어느 아파트 게시판을 찍은 거였습니다. 관리사무소에서 [택배 배송 때 소음을 유발하는 수레 사용을 금지한다]고 안내문에다 이어진 사진 몇 장에는 주민들이 써 붙인 포스트잇이 담겼습니다. "저는 괜찮던데요? 수레 소음 상관없습니다." "10층은 수레 오케이. 계속 사용해주세요." "1804호입니다. 배송하느라 고생 많으시네요. 저희도 괜찮습니다." "초등 4학년이에요. 무거운 상자 들고 다니시면 힘들 것 같아요. 수레, 시끄럽지 않아요." 시간이 갈수록 포스트잇은 늘어났고 나중엔 수레 금지 안내문을 뒤덮어버렸습니다. 충북 청주의 택시기사는 2018년 4월 밤중에 젊은 남성이 속초로 가자고 하기에 시외로 빠져나가는 동안 남자는 전화를 몇 통 하는데, 부모와 또 여자친구와 통화하는 걸 들으니 그는 소방관이었습니다. 강원도에 큰불이 났는데, 본부에서 긴급 문자를 받았고 휴무지만 서둘러 합류하려 인사도 못하고 간다고 했습니다. 당시 산불현장에는 전국의 소방인력이 집결했는데, 어둠을 뚫고 강원도로 줄지어 달려가는 소방차행렬이 각지에서 목격됐는데, 이렇게 택시를 잡아타고 달려간 이도 있었습니다. 속초에 도착했을 때 택시기사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고작 이것뿐'이라며 요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 없다는 소방관을 '다치지나 말라'면서 떠밀듯 내려주고 빈차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직 세상은 살만한 세상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감사만 잃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재앙으로 원망도 불평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또한 감사한 일입니다. 내가 아직 이만큼 건강하고, 내 가족과, 우리 교우 중에 아무도 감염되지 않은 것만도 참으로 감사합니다. 모든 불평 내려놓고 여기까지 우리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이미 받은 은혜를 묵상하고, 앞으로 베푸실 은총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합시다. 오늘 비록 조금 어렵더라도, 받은바 은혜를 생각해보면, 주님은 우리를 얼마나 축복하셨고, 또 앞으로 주실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116:12-14).

요한복음 6장 5~13절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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