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8 140회
"어려운 일 당할 때"
2020년 6월 28일 주일예배
시편 50 : 7 - 15 ; 마태복음 26 : 26 - 27
서양 속담에 "사람은 달리다 보면 걷고 싶고, 걷다 보면 서고 싶고,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고, 자고 보면 죽고 싶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계속 편안해지기를 원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삶에 있어서는 편안함은 자꾸 달아나고 계속 어렵고 힘든 일들만 찾아오는 듯 싶습니다.
사람들이 쓰는 말 중에 "인생도처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이라 하여, 우리 인생 길에는 도처에 푸른 산이 있다는 낙관적인 말을 하지만, 이 말 보다는 "인생도처유고난"(人生到處有苦難)이란 말이 더 적절할 듯 싶습니다. 우리는 때로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에 왜 고통이 있는가'하는 문제로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질병이 있고, 가난이 있고, 또 죽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 아무런 역경이 없이 그저 태평무사하기만 한 것이 좋은 것일까요?
인도의 켈커타에는 마음놓고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이 없다고 합니다. 켈커타는 봄베이에 이어 인도 제2의 무역항인데, 이런 켈커타에 왜 마실만한 맑은 물이 없는 것일까요? 지리학자들은 그 이유를 간단히 설명합니다. 그것은 높은 산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켈커타에는 높은 산이 없어서, 하루 종일 기차를 타고 가야 저 멀리 히말라야 산이 보일 정도라고 합니다. 높은 산이 없다는 것은 깊은 골짜기가 없다는 말입니다. 높은 산이 없고 깊은 골짜기가 없으니 맑은 물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맑은 물은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있어야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켈커타의 호수나 강, 시냇물은 모두 흙탕물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위기의 높은 산이 없고, 실패의 깊은 골짜기가 없다면, 우리 인생을 생기로 적셔줄 생수는 사라지고, 나태와 무기력과 부패의 썩은 물만 넘쳐날 것입니다.
아놀드 토인비가 즐겨 쓴 이야기입니다. 런던 시민들은 신선한 청어를 좋아해서 북해에서 청어를 잡아오는데, 먼 곳에서 가져오다 보니 신선도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항상 신선하게 청어를 수송해오는데 그 비결은 청어들 틈에 커다란 숭어 한 마리를 넣어두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숭어가 청어를 잡아먹지 않느냐?'고 걱정했지만, 실제 잡아먹히는 것은 몇 마리 안 됐고, 청어들은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도망 다니는 운동효과로 런던까지 싱싱하게 살아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정하 시인의 [바람 속을 걷는 법]이란 시입니다. "바람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다.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은 높이 나는지," 우리는 고난이 없기만 바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겨나가야만 합니다.
본문 시편 말씀은 아삽의 시입니다. 15절에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는 말씀을 보면, 지금 이 시인은 어려운 환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때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에게도 원치 않는 고난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와, 삶의 안정을 깨뜨려 생활의 터전을 뒤집어 놓고, 온통 혼란과 역경에 빠뜨릴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이 재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주님은 헤쳐갈 길을 마련해주십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어려울 때 위기를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본문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4-15). 공동번역에는 "사람이 하느님에게 바칠 제물은 감사하는 마음이요, 사람이 지킬 것은 지존하신 분에게 서원한 것을 갚는 일이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나를 불러라. 구해 주리라. 너는 나에게 영광을 돌려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를 배웁니다. 먼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시50:14a), 우리가 환난 가운데서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할 일은, 이미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놀라고 두려워하며, 왜 이런 어려운 일이 내게 닥쳤나 하고 하나님께 원망부터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 드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첩경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서도 성만찬을 행하시며 감사하셨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마26:26-27). 이 기도가 부활의 영광을 덧입게 하였고, 제자들을 구원한 것입니다.
신앙인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가정법의 감사입니다. 영어로 'if'에 의한 감사로, '만일에 이렇게 되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래적인 생각으로, 조건적인 감사입니다. '내가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면 감사하겠다' '내가 하는 일이 잘되면 감사하겠다' '내가 원하는 소원이 이뤄지면 감사하겠다' 가만히 보면 이런 사람은 대체로 평생토록 제대로 감사 한번 못하고 맙니다. 그 소원이 이뤄지면 또 다른 소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더 큰 소원, 더 큰 욕망이 생기기에 평생 감사하지 못하는 조건부적인 감사입니다.
다음은 과거적인 감사입니다. 'because', '무엇 때문에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농사가 잘됐으니 감사하고, 이러니 감사하고, 저래서 감사하다'라는 생각입니다. 이만하면 괜찮은 편이지만 이것도 상대적입니다. 그 조건과 환경이 변하면 이제 그 감사가 무슨 말로 바꿔지겠습니까? 건강해서 감사했으면 병들면 어떻게 하고, 성공해서 감사했으면 실패하면 어떤 말하겠습니까? 상대적인 감사는 환경과 함께 그 마음도 변하기에, 변화무쌍한 세상에서는 사실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귀한 감사는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in spite of',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로서 감사의 엄청난 의미를 충족 받았기 때문에 환경변화와는 무관합니다. 일본의 다마키 여사는 나병환자들을 위해 요양원을 만들고 고름이 나는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그만 자신도 나병에 걸리자, 자신이 나병에 걸린 것을 알고 말했습니다. "이제 육의 눈이 가려지고 영의 눈이 열려 감사하다. 눈썹이 빠지면서 눈썹의 고마움을 알았다. 먼지가 자꾸 눈에 들어가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미처 몰랐다. 하나님은 내게 병을 주어 여러 가지 감사의 마음을 알게 하셨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드리되, 감사로 예배하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감사와 정성이 없이 형식적으로만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돈이 없어 우리에게 돈을 요구하시거나 배가 고파 제물을 요구하실 분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굳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다만 우리의 사랑과 감사와 정성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예배에 정성이 있어야 하고, 우리의 제물에 감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시편 기자는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100:4)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감사 중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사랑과 축복을 받고 이를 인해 드리는 감사가 있고,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받으십니다. 같은 헌금이라도 봉급을 받고 맨 처음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헌금과, 아무 정성 없이 다른 사람들 헌금하니까 안 할 수 없어, 주머니 뒤적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드리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8절은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고 말씀하십니다.
매튜 헨리가 교회에서 저녁예배를 인도하고 집에 오다 골목에서 강도를 만나 가진 돈을 뺐기고, 맞아 실신까지 했습니다. 새벽에 겨우 정신차리고 피투성이의 몸으로 겨우 집에 오니 초조하게 기다리던 가족들은 마음 아파서 울자, 목사님은 오히려 가족을 위로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한번도 강도를 만난 적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강도를 만난 것을 감사합니다. 돈은 잃었지만 그렇게 맞았는데도 죽지 않고 목숨을 건졌으니 감사합니다. 또한 저 역시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면 강도처럼 되었을 텐데,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비록 돈은 잃었으나 믿음과 영생을 잃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이런 기도문이 걸려있다고 합니다. "하나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독하고 외로운 것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되도록 틀어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의 교만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돈이 떨어지고 사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사게 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이 공부를 기대만큼 안하고, 아내가 미워지고, 어머니와 형제들이 짐스러워 질 때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의 우상이 되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허물을 느끼게 하고, 때로는 몸이 늙고, 아프게 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부정이 득세하는 세상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제게 잘못하고 저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게 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병들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을 더욱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함으로 행복의 문을 열어 가는 좋은날이 되길 축복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 서원을 갚으라'고 말씀합니다.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14절). 서원은 하나님을 향한 약속입니다. 성경은 서원한 것은 반드시 갚을 것을 가르칩니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전5:4-6).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께 서원을 지키지 않음으로 재난을 당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피난하는 길에 벧엘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께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28:21-22)라고 서원했는데, 하란에서 돌아오면서 형의 복수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해결했지만 바로 벧엘로 돌아가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고 세겜에서 이방인들 사이에서 머뭇거리다가 딸 디나가 세겜 추장의 아들로부터 강간을 당하는 우환을 당했습니다.
본문의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는 말씀은 '네 죄를 버리고 네 의무를 잘 이행하며, 약속한 것을 엄숙히 수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받은 어떤 긍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할 때, 우리는 그 긍휼을 얻으려고 그때 했던 서원을 틀림없이 갚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소원은 열납되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부자가 목이 돌아가 얼굴이 앞을 향하지 않고 언제나 옆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재산이 아무리 많은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노인이 찾아와서, 자기가 침을 놓으면 얼굴을 바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 부자는 정신이 바짝 나서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당신의 침술로 제 얼굴을 돌려놓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물론이지요." "정말이라면 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 제 목만 제대로 돌려주십시오." "더도 덜도 말고 오천 냥만 내시면 됩니다." "오천 냥이 아니라 오 만냥이라도 낼 테니 제 목만 제대로 돌려주십시오." 그 노인은 은 침을 꺼내 이곳저곳에 돌려가면서 놓았습니다. 그러자 참으로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부자의 목이 움직이더니 제 위치로 돌아와 정상적인 모습이 된 것입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오자 부자는 돈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천 냥을 깎으려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밑천도 들지 않았는데, 천 냥도 많은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뭐 밑천은 들지 않았지요. 그런데 온전히 고치기 위해서는 침을 한 대 더 맞아야 합니다."하고 부자에게 침을 한 대 더 놓자, 정상이었던 목이 도로 예전처럼 옆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노인은 "밑천도 들지 않았는데 제가 감히 돈을 어떻게 받을 수가 있겠는지요?"라고 말하고는 그대로 일어나 가버렸습니다. 이 부자는 인색한 마음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오천 냥의 돈은 아낄 수 있었지만, 몸은 고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사람과 약속도 이렇게 중요한데,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어렵던 때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어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본 식민치하 때 한 젊은이가 의대 입학시험을 보면서 하나님께 이런 서원을 했습니다. "이 학교에 입학시켜주시면 평생 불우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몸을 바치겠습니다." 졸업 후에 젊은이는 당시 가장 뛰어난 수술실력을 소유한 백인제 박사 밑에서 수련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서원대로 가난하고 병든 이웃을 위해 무료 진료소인 복음병원을 개설해 영세민 의료구호사업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29세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이기도 했던 이 사람은 정작 집 한 채 없이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다가 성탄절 새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장기려 장로입니다. 그는 북한에서 결혼했는데, 혼자 피난 내려와 주변에서 재혼하라는 권유를 수없이 받으면서도, '북한에 평생을 해로하기로 서약한 아내가 있는데 어떻게 다시 결혼할 수 있느냐?'며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서원을 생명처럼 지킨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님을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15절). 즉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재앙의 날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블레셋 시글락에 거하면서 전쟁터에 나갔다가 아말렉 사람들이 쳐들어와 불사르고,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탈취하여 달아나 버렸습니다. 다윗은 소리 높여 울다가, 잿더미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삼상30:8). 다윗은 아말렉을 뒤쫓아가 그들을 쳐부수고 빼앗겼던 것과 아말렉의 모든 소유물까지 탈취해 가지고 돌아오게 되는 승리를 거뒀던 것입니다.
인생의 갈림길은 '한숨을 쉬느냐, 심호흡을 하느냐'에서 갈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힘든 일은 찾아옵니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은 한숨짓고 어떤 사람은 심호흡을 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한숨도 숨이고 심호흡도 숨인데, 어떤 숨을 쉬어야 하겠습니까? 한숨쉬면 마음에 어두움이 자라납니다. '왜 나인가?' '내가 얼마나 운이 없어 이런 일을 당하게 되었나?' '도대체 언제까지인가?'하는 생각으로 한숨은 더 어두운 곳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나 기도의 심호흡은 우리 마음속의 먹구름을 걷어냅니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주님께 아룀으로 마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아폴로 13호를 달에 띄울 때 과학자들은 "이 아폴로 13호는 현대 과학의 총체로써 아주 완벽한 것이다. 이것이 고장날 확률은 100만 분의 1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자만 가운데서 드디어 인류 과학의 산물인 아폴로 13호는 달을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구를 떠나서 약 20만 마일쯤 벗어났을 때 이 아폴로 13호에 고장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산소통이 터져 버려 더 이상 우주여행을 계속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 로켓의 승무원들은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우주지휘소를 향해서 이 아폴로 13호가 고장이 났으니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돌아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우주지휘소에서는 창 밖을 내다보면 북극성이 보일 것이니 북극성을 기점으로 해서 돌아오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때 순간적으로 이 세 우주 비행사는 영원히 우주의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느꼈습니다. 그때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해서 모든 국회의원들과 전 국민이 오전 9시를 기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고 나자 아폴로 13호는 무사히 태평양에 떨어졌습니다. 구조된 우주비행사가 제일 처음 한 일은 대기하고 있던 군목과 손을 잡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 일이었습니다. 이는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함을 가르쳐 준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무엇보다도 기도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프루티스트로서 드라마 허준, 이산, 동이 등의 메인 연주와, 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한 송솔나무 집사님은 어렸을 적 아버지 회사 부도로,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미국 이모네 집에서 살았습니다. 학교에선 키도 작고 나이도 어리고, 운동도 못하는 동양아이인 그를 늘 괴롭혔고, 너무 맞아 귀가 찢어지고, 사물함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가 학교에서 아이들의 비난과 놀림을 피할 곳은 오직 화장실이었습니다. 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하나님께 따지듯 물었습니다. "하나님, 왜 내가 미국에 와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요? 왜 저는 키도 작고, 운동도, 공부도 못해서, 맨날 엄마에게 야단만 맞게 하시는 거냐구요!" 그가 울며 부르짖자 성령님이 처음으로 오시는 걸 느꼈습니다. "얘야~ 내가 여기 있잖아. 늘 너와 함께 하고 있잖아. 내가 너랑 친구해주면 되잖니?" 그 음성에 너무 서러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사람들은 내 이름도 부르지 않고 누나의 동생이라고만 해요.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실수로 태어난 거 아닌가요!" "그렇지 않단다. 나는 네 머리카락까지 세고 있는 네 하나님이란다. 내가 널 만들었단다." 그는 하나님을 친구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을 무작정 믿고 의지하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플루트소리가 들리기에 그 소리를 따라 밴드부실에 가니, 선생님이 플루트를 한번 불어보라 하여 한국에서 도레미파솔라시도 정도만 겨우 불었는데, 불현듯 한번도 불어보지 않은 애국가 멜로디가 생각나서 불자, 선생님이 놀라서 그 플루트를 주시며, 밴드부에 매일 나오라고 하여 그 날부터 플루트를 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 "줄리아드 프리스쿨 시험 치고싶어요"했더니, "아무나 줄리아드에 가는 줄 아니? 레슨비가 얼마나 비싼데, 우리 형편엔 불가능하다"며, 혼내셨습니다. 정식 레슨 없이, 시험 기회는 단 한번만 준다는 조건으로, 겨우 허락 받아 혼자 시험 보러가서 최선을 다해 연주했더니, 한 교수님은 낡고 싸구려 악기를 보며 웃었습니다. 일주일 뒤 통지를 받은 어머니는 그를 끌어안고 우셨습니다. "얘야, 네가 장학금을 받고 줄리아드에 붙었어." 그는 13세에 줄리아드에 들어가 세계적인 플루티스트가 되어,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눈물로 부르짖은 그의 기도가 그를 만들었습니다.
칼 힐티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궂은 날씨가 계속될 때가 아니라, 구름 한 점 없는 날이 계속 될 때'라면서, 궂은 날씨보다도 구름 한 점 없는 날이 계속 되면 생명이 살 수 없는 사막이 되고 만다고 경고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말합니다. "무지개를 보고싶은 자는 비를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무지개는 비가 내려야만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때때로 슬픔과 눈물의 비가 쏟아지지만, 감사하고, 서원을 지키고, 기도하면, 불원간 비는 그치고, 찬란한 무지개가 떠오를 것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4-15).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