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

빌립보서 3장 10~21절

설교요약 :

"부르심의 상을 위해 달려가노라"
2020년 12월 27일 송년주일
빌립보서 3 : 10 - 21 ; 이사야 43 : 18 - 21


힐리언스 선마을 이시형 박사는 노인들의 마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인의 마음은 어제는 그립고, 오늘은 외롭고, 내일은 두렵다." 그는 노일의 마음을 '그립고, 외롭고, 두렵고'란 세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한 해를 결산하는 이 송년주일에, 지난해를 돌아보고, 또 2021년 새해를 전망하며, 어떤 감회와 기대를 가지십니까?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세계 최초로 우주여행을 하고 왔을 때,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가 조용히 그를 불러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저 높은 하늘에 올라가 보니,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던가?" 무슨 생각이던지 가가린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 서기장 동무, 저 높은 하늘에 올라가 보니까 정말 하나님이 계신 듯 합디다". 그러자 흐루시초프가 당부합니다. "여보게, 절대로 사람들에게 자네가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보았다는 말을 하지 말게. 그 말이 알려지면 우리 공산당은 망하네." 그 다음엔 러시아 정교회 대주교가 가가린을 불러 "여보게, 자네가 하늘에 올라가 그곳에서 보니, 정말 하나님이 계시던가?"하고 흐루시초프와 똑같은 질문은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가가린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주교님, 제가 우주에서 아무리 하늘을 봐도 하나님은 안 계시던데요". 그러자 대주교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내가 자네에게 부탁하네. 제발 자네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못 봤다는 말을 하지 말게. 그 말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우리 정교회는 망한다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흐루시초프만큼의 믿음도 없는 분은 안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시면 나는 망한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면 나의 이 모습으로는 큰일난다'는 두려움도 없이 '하나님이 있든 없든 내게 아무 상관도 없다'며 하나님은 내게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않는 관념적인 신으로 여기지는 않으십니까? 성 어거스틴은 "세계역사는 하나님의 심판사요, 동시에 구원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A. J. 크로닌이 쓴 [천국의 열쇠]라는 소설에는 대조적인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성공과 출세를 추구하는 안젤모와, 존재와 사명을 추구하는 치셤입니다. 둘 다 신학을 마치고 사제가 되는데, 안젤모는 사제로서 명성과 인기를 추구하지만, 치셤은 중국 오지에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저자는 이 두 삶을 대조적으로 묘사하면서 독자들에게 일관성 있게 질문합니다. '둘 중 누가 천국의 문을 열며 살고 있는가?' '어떤 삶에 의해 천국 문이 열리는가?' 현실 속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자기 사명을 찾은 사람과, 형식적인 종교생활은 하지만,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로 인해 천국 문이 열릴 수도, 닫힐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는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를 따르며, 누구를 닮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언제나 정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한번 세운 목표에 대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이것을 이뤄내는 집념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박해할 때는 살인까지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지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저 멀리 다메섹까지 쫓아갔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을 가던 도중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다메섹 가까이 가던 중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비추자, 저가 땅에 엎드러집니다. 그때 하늘로부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하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 때 사울이 말하기를 "주여 누구시니이까?"(행9:5)라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는 대답을 듣고, 사울이 다시 묻습니다.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행22:10).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고 하심으로, 이로 인해 사울은 바울이 되어, 주님이 부여하신 푯대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는 새롭게 설정한 그의 인생의 목표를 향해 불굴의 투지로 달리는 경주자가 되었을 때, 그의 지난 과거와, 그리고 오늘의 현실, 나아가 내일의 의미를 믿음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이 해석에 의해 그는 경주자로서 최선을 다해서 달렸습니다. 이렇게 최선을 다했기에 그는 죽음 앞에서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아무 후회가 없는 참된 인생의 승리자로서의 확신에 찬 승리의 외침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대한 고백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함께 하늘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우리 각자에게 정해진 인생의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경주자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와, 경주의 자세를 배우고자 합니다.


첫째, 지난 과거에 대한 자세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3:13). 여기서 '잊어버린다'는 말은 단순한 망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의해서 더 이상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과거에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선 과거에 대한 냉정한 결산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자랑스러웠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냉정하게 돌아보면서 이런 것들은 잊어버리겠다고 말합니다. 신영복 교수는 그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말합니다. "낡은 것으로부터의 결별이 새로움의 한 조건이고 보면, 칼날 같은 추위가 낡은 것들을 가차없이 잘라 버리는 겨울의 한복판에 정월 초하루가 자리잡고 있는 까닭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결별이 없이는 새것을 맞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교훈은 소중히 간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난 과거를 청산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7-8). 바울은, '전에는 무척 자랑스럽게 여겨 그것을 위해 생을 바쳤는데, 이제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 미련 없이 버리겠다'는 포기를 결단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집착하여 열심히 추구하던 것이 아무리 소중해도,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방해되거나 본질을 흐리게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과감하게 포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난 날, 그에게는 자랑할 것들이 많았음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5-6). 그는 순수한 이스라엘의 혈통으로 태어나, 사울 왕의 집안인 왕족이었고, 그토록 율법에 열심을 품고 흠이 없었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솔로몬 다음으로 이스라엘의 최고의 현자인 가말리엘의 수제자로서, 바울이 기독교로 개종하자 가말리엘이 가슴을 치며 애석해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랑할 것이 많았던 사람이었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나서는 이런 것조차 주님을 따르는데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배설물로 간주해버렸습니다.


이솝우화에 보면, 나귀가 혼자 목장에서 풀을 뜯고 있는데 늑대가 나귀를 보고 뛰어오자, 나귀는 갑자가 발을 절름거리자, 늑대가 나귀에게 이유를 묻습니다. 나귀는 발에 가시가 들어갔다며 "나야 이제 곧 죽으면 그만이지만 늑대 어른께서 목에 가시가 걸리면 큰일이니까, 내 발의 가시를 뺀 후에 잡수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긴 늑대가 나귀 발굽을 쳐다보며 가시를 찾는데, 나귀는 이때 있는 힘을 다해 늑대의 주둥이를 차버리고 도망치자, 늑대의 이빨이 모두 나가버렸습니다. 늑대는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야. 아버지는 내게 요리하는 법만 가르쳐주었는데, 나는 지금 의사가 하는 일에 손댔으니 당연한 일이야." 주님이 내게 명하신 일을 외면하고 다른 일만 해오지 않았습니까?


중세의 경건주의자 진젠돌프 백작은 그의 귀족의 작위와 많은 재산과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가난한 사람 속에 뛰어들어 그들을 섬기며 경건생활에 몰두할 때, 한 친구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진젠돌프여, 그대의 야망은 무엇인가?" 그러자 진젠돌프는 "나의 야망은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진젠돌프는 소작농부가 밭에서 보화를 발견하고 자기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서 보화를 자기 것으로 삼았듯,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리스도께 헌신했습니다. 성도는 주님이 명하신 뜻에 따라, 그 일만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 오늘 현재에 대한 각오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2, 14). '달려간다'는 말은 몸을 앞으로 굽히고 온 힘을 다해 달려간다는 의미와, 굶주린 사냥개가 먹이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서 질주하는 모습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는 저 앞에 있는 목표를 바라보고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데오도어 루즈벨트가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밑에서 해군성 차관으로 있던 1898년, 미국과 스페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조국을 위해 싸우기 위해 가족과 주변의 만류에도 준장 자리를 사양하고 중령으로 전쟁에 나서며 말했습니다. "나는 사무실에 앉아 있지 않고 최전방에서 싸우고 싶다. 나는 어디에 배치되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원하는 직위를 얻기보다 원하지 않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데 익숙해졌다." 루즈벨트에겐 어떤 자리보다 실질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중요시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영웅이 되어 뉴욕주지사에 당선되었고, 1900년 매킨리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이 되었으며, 이듬해 매킨리 대통령 사망 직후, 26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세우는 기초를 닦았습니다. 그의 신조는 미래를 염려하지 않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그토록 전심전력하여 좇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12절에서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라고 했듯이,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께 사로잡혔습니다. 바울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됐지만 주님의 원하시는 목표엔 아직 미치지 못했기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구원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다가 현재 자선의 미성숙한 모습을 발견하고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내 모습이 이런 모습이 아닌데, 내가 이래서는 안 되는데, 좀더 성숙해야 하는데'하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신의 부족에 대한 성찰은 자신을 보다 성숙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이어지고, 이런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안타까움이야말로 보다 성숙한 자아 실현을 위한 도약을 하는데 있어서 위대한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임권택 감독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 전까지는 그저 3류 애정영화나 제작하던 감독이었는데, 어느 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영화감독으로서 이래서 되겠는가?'하는 자성이 일어나, 그때부터 혼을 쏟아 영화제작에 몰두하여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발돋움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십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모습의 전부입니까? 주일에 한번 교회 왔다가는 것으로 만족하십니까? 그것이 여러분이 도전해야할 인생의 가능성의 전부입니까? '이것이 전부가 아닌데. 내가 도달할 수 있는 더 나은 수준, 내가 달성할 수 있는 더 높은 인생의 목표가 있을 텐데.' 오늘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자기부정이 있어야합니다.


둘째, 주께서 예비하신 상을 받을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13절에서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을 위해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바울에게 뚜렷한 한 가지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것을 위해 땀과 시간을 드리고 남은 인생을 드릴 수 있는 새로운 푯대가 생겼는데, 그 '오직 한 일'이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14절)라고 밝힙니다. 주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그 상급 받을 수 있기 위해,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께로부터 '잘했다!' 칭찬 받는 인생으로 결산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 달린다고 말합니다.


어느 권사님 부부는 형제 중에 선교사가 있기에 누구보다 선교사의 고충을 알고, 보내는 후방선교사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기도하던 중, 하나님이 집을 개방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가까운 곳에 집과 선교사숙소로 쓸 수 있는 아파트를 달라고 기도했더니, 교통이 좋은 곳에 넓은 아파트를 얻게 해주셨습니다. 방 한 칸은 본인들이 쓰고 나머지는 예약된 선교사들에게 제공하여, 식사는 각자가 요리하도록 재료를 부족하지 않게 준비해놓습니다. 그들은 새벽기도로 하루를 열고 인쇄소를 경영하느라 늘 바빠 매일 밤 12시가 돼야 귀가합니다. 그들은 자기 교회 사역에도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의 얼굴엔 늘 은혜의 빛이 나는데, 바쁜 중에도 자기 집에 머무는 선교사님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님은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마10:40)이라며 상급을 약속하십니다.


셋째, 내일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 이 말은 곧 '나는 구원받고 주께서 주신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차 주께서 다시 오시면 그분께서 내 인격과 내 존재를 온전한 주님을 닮은 모습으로 완성시켜 주실 줄로 믿기에 나는 그 주님을 기다린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기다림의 이유를 분명히 말합니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21절). 바울은 주님 오시는 날 자기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변할 것을 희망할 뿐만 아니라, 자기 속 사람도 주님을 온전히 닮은 자로 세워질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닮게 되는 것은 주님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로서, 지금은 노력하고 있지만 완성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리를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아무리 노력해도 주님을 닮을 수가 없다면 왜 노력하느냐? 그 날 어차피 이루어질 것이라면 지금은 마음대로 살자.' 이런 생각을 하는 교리적 궤변론자들은 율법이 없는 것처럼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에 '무율법주의자'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신랄한 경고를 합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빌3:18). 주님이 저들을 구원하고자 십자가를 지셨건만 무율법주의자들은 그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원수처럼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9). 저들은 사실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이 재림하셔서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 비로소 우리의 인격은 완전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소망이라면, 완전한 모습으로 주님을 닮을 그 날을 위하여 지금부터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오스키니스의 [소명(召命)]이라는 책 첫 페이지에 어떤 부자사업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부유해 지기 위해서 사업에 몰두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상당한 돈을 벌었고 어느 정도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가 이제 연회장에서 만찬을 하며 연설을 하게 되었을 때, 그는 매우 진지한 태도로 이런 뼈아픈 고백을 합니다. "제가 부지런히 일하며 열심히 사업을 하여, 힘써 돈을 번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돈을 많이 벌면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게 될 것이고, 그러면 내가 하던 일들을 그들에게 다 위임하게 될 것이며, 그래서 내 인생은 편안한 삶을 누릴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상당히 돈을 모을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게 되었고, 내가 하던 많은 일들을 그들에게 위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인생을 살다 보니깐 도저히 이렇게 살아도 위임할 수 없는 것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일, 그리고 그 목표를 실현하는 일, 이 일만은 절대로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에게 뒤로 돌아갈 길은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또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푯대를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지난 날, 우리가 잘했든 잘못했든 과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면 교만하게 되고, 또 타성에 젖어 더 나은 발전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또 과거의 실패에 매이게 되면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을 불행에 빠뜨립니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지나간 것은 잊어버릴 것입니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기에, 주님 앞에 서게 될 그날을 푯대로 삼고 전진할 것입니다. 토니 라인케는 말합니다. "우리의 눈이 향하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가게 되어있고, 우리의 마음에 가는 곳에 우리의 눈이 머문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가장 큰 상급이 되면, 그분이 우리의 최고의 초점이 된다."


어윈 W. 루처는 [영원한 상급]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급을 주신다는 약속에 우리를 초대하신다. 어떤 상급을 주실 지는 그 분이 결정하신다. 그 분의 결정에 우리는 만족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함으로써 상을 받듯이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할 때 우리는 상급을 약속 받는다. 우리가 그 분의 인정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지기 위해 하는 노력은 잘못이 아니다. 모슬렘 지역의 선교사인 사무엘 줴머는 팔 일 사이에 네 살과 일곱 살 된 두 딸을 잃었다. 베란다의 가장 시원한 곳에서도 기온이 평균 41도까지 올랐고, 사역에는 열매가 거의 없으며, 좌절되는 일만 일어났다. 그러나 50년 후 그때를 돌아보며 그는 "그때의 순전했던 기쁨을 기억한다. 기꺼이 나는 그 모든 일을 다시 하겠다"라고 고백했다. 많은 선교사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기쁨이 모든 희생을 보상해준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파이퍼는 "당신이 가까이 있는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포기한다면 늘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백 배나 되는 사랑과 관심을 받게된다. 집에서 느낄 수 있는 아늑함을 포기한다면 어느 집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시냇가에서나 나무숲에서도 주님께 속한 위로와 안전을 백 배나 돌려 받는다"라고 말했다. 헌신에 주어지는 영원한 상급이 있다. 그 상급은 당신이 포기한 것보다 훨씬 큰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로 어제를 돌아보면, '여기까지 우리를 도와주신 에벤에셀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신 임마누엘의 삶'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내일은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예비해주시는 여호와이레의 소망'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말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주님의 자비를, 현재의 필요를 위해 주님의 사랑을, 미래를 위해 주님의 주권을 의지한다." 죄 용서에 대한 약속과, 매일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시공간과 피조물 돌보시는 주님의 성품과 약속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모든 것이 되십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18-21). 우리는 지난 과거에 더 이상 매이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바라보며, 힘차게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 날을 바라보며 충성을 다하며 살아갈 때, 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오늘도 '임마누엘'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고, 내일을 '여호와이레'로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0~21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관련영상
34:22
안양큰빛교회 설교동영상
2012.06.20.
38:25
안양큰빛교회 설교동영상
2012.07.04.
43:46
구리지구촌교회 주일설교
2012.09.09.
40:57
등촌제일교회 주일낮예배
2014.01.12.
36:20
등촌제일교회 주일낮예배
2013.12.22.
20:46
회현교회 금요 기도회
2014.05.09.
31:33
회현교회 금요 기도회
2014.04.25.
31:21
회현교회 금요 기도회
2014.05.02.
27:58
신촌아름다운교회 새벽예배
2015.04.10.
57:27
월산성결교회 주일예배
2014.09.28.

© Copyright 2011 - 2025 쉐마TV. All Rights Reserved
Serviced by 루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