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07 91회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교회"
2018년 1월 7일 신년주일
마태복음 6 : 25 - 34 ; 시편 96 : 10
프랑스 사람이 미국인과 얘기하면서 프랑스국기 색깔인 빨간색, 하얀색, 파란색을 가지고 조크를 했습니다. "우리 프랑스 국기는 세금을 상징한다네. 세금에 대해 말할 때는 열이 올라 빨갛게 되고, 세금고지서를 받으면 하얗게 질리고, 세금을 내고 나면 힘들어서 퍼렇게 멍든다네." 그러자 미국인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성조기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세금만 생각하면 현기증이 나서 별들만 보인다네."
그런데 1794년에 국기로 제정된 프랑스의 삼색기는 '자유, 평등, 박애'의 상징입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은 역사상 가장 극적인 혁명인데, 인류가 내건 최고의 정신으로 이후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념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프랑스혁명은 무신론적인 인본주의 혁명으로 당시 주일예배를 막기 위해 일주일을 10일로 바꾸기까지 했습니다. 시민과 군인들이 함께 동참했던 대혁명은 처음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념은 빛을 바랬습니다.
박애를 내세웠지만, 혁명 이후 수많은 피의 보복으로 혼란에 빠져들었고, 평등을 내걸었지만 세금을 내는 상공인들에게만 선거권을 주어 정치적 평등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자유를 내세웠는데, 혁명 이후 정부가 약화되자 유럽제국이 프랑스를 포위하고, 오스트리아가 쳐들어와 프랑스의 정치와 경제는 침체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장한 '자유'는 신의 권위에 도전하고 도덕을 무너뜨려 혼란을 일으키는 방종이었고, '평등'은 왕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함이었으며, '박애'는 혁명세력 간의 동지애로 조직원간의 의리를 추구하는 의미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가수 정수라가 부른 [아∼대한민국] 가사는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이라고 노래합니다. 노랫말처럼 대한민국은 선진국 진입의 바로미터인 OECD에 가입했고, 한강엔 유람선이 떠다니고 있고, 자가용은 필수품이 됐으며, 냉장고엔 언제나 먹을 음식이 많습니다. 주말이면 온가족이 공원과 야외로 놀러가고, 마음만 먹으면 산과 바다 혹은 외국에 여행할 수도 있습니다. 저녁이든 새벽이든 전화 한 통에 원하는 곳에 음식이 배달되고, TV를 보며 원하는 쇼핑도 마음대로 하는 세상이 되어 전에 비해 모든 것이 풍족해졌는데, 왜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해 자살공화국이 됐을까요?
사람의 보기에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하나님이 없는 사상과 제도는 결국 상처와 아픔만 남기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못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인이시기에,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셔야만 합니다. 우리를 복 주시는 그분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섭리하셔야,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1991년, 미래학적인 상상에 사로잡힌 여덟 명의 과학자들이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든, 모래 폭풍이 불어오든 편안하게 살기 위해 소노라 사막에 유리와 강철 돔으로 8층 짜리 건물을 세우고 들어가서 자급자족하며 살기 위해 2천억 원을 들여 12제곱 킬로미터나 되는 거대한 테라륨(terrarium)을 짓고 들어가 살기 시작했습니다. 우주식민지 모델을 만든다는 거창한 계획으로 그 안에다 씨를 뿌리고 먹고 살 양식을 키우며 사는 모습에, 적지 않은 이들이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애리조나 사막에 조성한 인공생태계는 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식물간에 생태적 균형이 깨지고, 산소 량이 급격히 감소해서 위험수위를 넘어섰으며, 연구원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생겼습니다. 개미의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대다수 벌레들을 소멸시킴으로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고, 거대한 돔은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들조차 이 땅에서 낙원을 이루려하여, 경제가 안정되고 생활이 편해지면서 천국을 망각하고 세상에 매몰됩니다. 1960년대까지는 우리 찬송이나 기도나 설교 속에 천당에 대한 소망이 많았는데, 조금 살만하게 되자 그만 영원한 본향을 잊고 세상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참된 소망은 장차 망하게 될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슬픔과 눈물을 씻어주실 영원한 천국입니다.
마이클 호튼의 책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Christless Christianity)는 '사탄이 한 도시를 완전히 장악하면 어떤 모습일까?'라고 질문하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술집은 모두 문을 닫을 것이고, 도색물은 자취를 감출 것이며, 사람들은 친절하고 상냥하게 서로를 대하고, 거리에선 악담도 고함도 사라질 것이며, 교회는 주일마다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예배에서 그리스도가 선포되지 않을 것이다. 편안한 도시, 사람들로 넘쳐나는 교회는 그리스도 없는 예배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옥입니다.
'천국'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국가의 3요소는 '국민, 국토, 주권'인데, 천국의 개념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통치'의 개념으로, 곧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곳이 천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실 때, 우리 안에 천국이 이뤄지고,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다스리실 때 가정이 천국이 되며, 우리 교회를 다스리실 때, 교회는 천국이 됩니다. 이성봉 목사님이 목포에서 부흥회 하다, 공산당에게 잡혀 "천당이 어디에 있는지 한번 보여봐라. 그러면 나도 믿겠다"고 조롱하자, "천당의 본점은 지금 못 보여줘도, 천당의 지점은 보여주겠다"며 당신 가슴을 가리켰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처음 외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회개'라는 말은 '정권교체'라는 정치적인 용어로서, '지금까지 섬겨오던 주인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왕권을 영접하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심으로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사회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가 동일시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6:25)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살기 위해 의식주 문제는 필수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은 우리 생존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살아가면서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 '어디 좀더 좋은 것 먹을 것이 없을까, 좀더 잘 마실 데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좀더 좋은 옷을 입을까?'만 생각한다면, 이런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온통 생각이 먹을 것, 마실 것, 먹을 것만 생각한다면 동물 이상일 수 없습니다.
이런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대해서는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2)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가 되시기에 우리의 모든 사정과 형편,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어린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그 아이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가 먹어야 할 것과 입어야 할 것을 내가 아는 것보다 그분이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내 필요도, 내 운명도 더 잘 알고 계시기에 염려하지 말 것입니다.
본문을 좀더 살펴보면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마6:32)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방인이란 믿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 나름의 구하는 것이 있고, 믿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 나름대로 구하는 것이 따로 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달라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물질적이요, 세속적인 것들을 추구하고 소원합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조차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구하면서, 이런 것들을 열심히 구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기도를 많이 하고 계십니까? 잘 하십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할 것은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그 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무언가 기도는 많이 하고 있는 듯 한데, 그렇게 애타게 구하고 있는 것이 항상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만 국한되어 있다면, 그 기도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기도에 대해 예수님은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을 구하고 있기에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아직도 이방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게 모든 것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는 이 믿음만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는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로 그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려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 뜻을 묻고 구해야합니다. 내 필요보다 하나님의 필요, 내 뜻보다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33절의 '구한다'는 말은 '찾는다, 힘쓴다, 노력한다' 혹은 '기도한다'는 뜻으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추구하는 인간의 총체적인 노력을 일컫는 말로서, '무엇을 얻기 위해 간절히 소원하고 또 열심히 힘쓰고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 물론 기도도 하고, 육체적으로 노력도 수고도 합니다. 여러분은 무얼 얻기 위해 애쓰며 노력하고 구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구하는 것에 대한 세 가지 교훈을 배웁니다. 첫째는 우리가 구하는 것에 우선순위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선순위(priority)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먹을 것도 필요하고, 마실 것과, 또 입을 것 등, 소위 의식주문제가 가장 절실하고 절대적인 문제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의식주문제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인생을 사는 목적이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의복' 입고, 또 '좋은 집'에서 살기 위해서 산다면 이처럼 허무할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육체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의입니다.
염려를 이기는 데는, 세 가지 'F'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첫째 F는 믿음(Faith)입니다. 문제의 해결보다 먼저 믿음이 중요합니다. 한가지 문제를 해결한다고 염려가 그치지 않고, 또 다른 문제가 생겨, 산 너머 산입니다. '문제의 해결'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궁극적 해결은 오직 믿음입니다. 둘째 F는 아버지(Father)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셋째 F는 'First'로서, '무엇이 먼저냐'입니다.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둘 때, 시시한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한방주치의로 일하던 김승학 집사의 간증입니다. - "김 선생, 나를 아버지라고 한번 불러줄 수 있겠소?" 나는 얼떨결에 아랍어로 아버지인 "아부야!"라고 왕자님을 부르자, 순간 왕자님이 나를 와락 껴안았다. "너는 오늘부터 내 아들이다. 양자로 사우디 국적도 받고, 왕자가 되는 거야! 재산도 나눠줄게!" 놀라운 제안이었다. 와! 이거 팔자 고쳤다. 내가 사우디 왕자가 되다니! 그러나 다음 순간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예수님은 어떻게 하지? 그래, 사우디 국적도 받고, 왕자가 되어 재산을 물려받은 후 한국에 돌아가 예수님을 믿으면... 아니야! 이건 아니잖아!' 순간 단순한 사실이 떠올랐다. 진시황제도, 나폴레옹도, 칭기즈칸도 모두 죽었다. 아무리 명성이 높고 권력이 하늘을 찔러도 이 땅에서 영원히 살순 없다. 나는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왕자로 살아갈 것이다. 사우디는 99.99%가 이슬람교도로 타종교는 절대 용납지 않는다. "만약 제가 왕자님께 기독교로 개종하자고 한다면 왕자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생각에 잠긴 왕자님이 말했다. "너는 진짜 크리스천이다!" "죄송합니다. 왕자님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지만, 종교만큼은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왕자의 아들이 될 뻔한 계기로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義)'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33절)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왕국으로,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곳을 말합니다. 이것은 시간이나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가 행사되는 곳이 바로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다스리시면 내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내 가정을 다스리시면 내 가정이 곧 천국이 됩니다. 우리 교회를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때, 우리 교회가 바로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이 요한계시록 21장의 천국이야기를 신나게 들려주고서 학생들에게 묻기를 "자, 이렇게 좋은 하늘나라에 '나도 가고 싶어요'하는 어린이는 손들어 봐요." 아이들은 "저요, 저요"하며 너, 나 할 것 없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맨 앞줄 작은 꼬마 혼자만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의아해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천국에 가고 싶지 않니?" 그러자 아이가 근심스런 낯으로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교회 끝나면 아무 데도 가지말고 곧장 집으로 오라고 하셨어요." 어린아이의 순진한 이야기이지만, 어찌 생각하면, 현세 지상주의, 가정 지상주의적 풍조가 만연한 현대인들의 한 단면을 꼬집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기도문에 있는 것과 같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진 것 같이, 우리의 희생을 통해 이 땅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여러분, 나의 평안과, 나의 안일을 위해봤자 별 것 아닙니다. 그것을 위해 근심해봤자 그대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 생각을 바꿔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참된 성도가 돼야 하겠습니다.
또 '그 의(義)', 곧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 앞에 옳은 것'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시는 기준'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의 이 기준에 이른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람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그 기준에 이른 사람이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모두 허물과 실수가 있었습니다. 인간으로 하나님의 요구기준에 이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한 분,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여기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그 기준에 맞게 살라'는 말씀이지만,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의 그 거룩한 기준에 이를 수 없기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라는 말씀이요, 달리 말해서 '하나님의 의의 표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라'는 말씀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보다도 더 우선적으로 우리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예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먼저 구하는 사람이 곧 그리스도인입니다. 중세에 성 버나드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데, 나는 어찌하여 여전히 쾌락만 즐기고 있는가?"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크신 희생으로 우리에게 천국을 이뤄주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땅의 것만 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께 믿음의 초점을 맞추고, 그 주님을 따라 이웃을 섬기며, 어떤 고난과 십자가도 마다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자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셋째,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다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절).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등 '이 모든 것'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이루어질 때 겸하여 이 모든 것, 먹고 마시고 입고 사는 이 모든 것이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그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이 모든 것도 빼앗기고, 무효가 됩니다. 돈이 축복일 수 없습니다. 그의 의가 이루어지고야 축복입니다. 건강이 축복일 수는 없습니다. 의를 위해 바로 살아갈 때만 축복입니다. 방탕하고 죄 짓는 자의 건강을 누가 복이라고 합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이루어질 때만 모든 번영과 영광과 축복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대륙을 찾아 떠난 배 가운데, 오직 신앙의 자유를 찾아 먼 항해를 떠난 유명한 May Flower호가 있었는가 하면, 일확천금을 꿈꾸며 노다지를 찾아 항해를 떠난 Master호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똑같이 배를 타고 신대륙을 향해 항해를 했지만, 목적과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높은 것을 찾았고, 다른 사람들은 낮은 것을 찾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영원한 것을 찾았고, 어떤 이는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신앙을 찾아간 사람들은 세계최강대국을 이뤘고, 노다지를 찾아 떠난 사람들은 황금도 얻지 못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타락한 인간의 특징은 자기중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만이 판단하시던 선과 악마저 인간 자신이 판단하겠다고 할 정도로 인간은 자기중심적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합니다. 하나님 없이 내 중심으로 살겠다는 것이 곧 인본주의입니다. 결국 죄인인 인간은 항상 자기만을 보려고 하며, 항상 자신의 육신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씁니다. 그렇기에 주위에 있는 이웃을 살필 여유가 없고, 더욱 위에 계신 하나님을 쳐다볼 여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저 현실이 만족스러우면 즐기고 부족하면 불평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진리이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C.S. 루이스는 말했습니다. "역사를 보면 금생을 위해 가장 많은 일을 한 사람들은 바로 내세를 가장 많이 생각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을 발로 회심시키려했던 사도들, 중세시대를 건설한 위인들, 그리고 노예제도를 폐지한 영국의 복음주의자들 모두는 이 땅에 그들의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천국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이생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은 그들 대부분이 내세에 관해 생각하기를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목표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세상을 '뒤집어엎을' 것입니다. 땅을 목표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그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깊이 마음에 담아야 할 금언입니다.
2018년도 우리교회 표어를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목표를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교회',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교회'로 세웠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언제나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을 먼저 생각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내 소원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케 되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고, 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믿음은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믿음이 좋은 믿음입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하던 한 선교사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돌아오면서 그곳에서 전도하여 예수를 믿게 된 한 흑인 소년을 데리고 왔습니다. 고층 빌딩에 데리고 올라가 이곳 저곳을 신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한참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아이는 창 밖의 한 곳을 멍하니 쳐다보며 그 눈에 눈물이 젖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 선교사는 이 아이가 도시의 크고 휘황찬란함에 감동되어 그런 줄 알고 "얘야 톰, 어떻니? 이 뉴욕이라는 도시가 참으로 크고 아름답지?"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톰이라는 이 소년이 대답하기를 "아니에요 선교사님, 저는 저 멀리 천국을 바라보고 있어요. 저 천국은 얼마나 더 크고 아름답고 좋은 곳인지 몰라요."라고 대답하는 말을 듣고 선교사는 그만 부끄러워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이 세 가지 질문이라고 합니다.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시96:10). 기울어지는 세상을 그리워하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순종하며 살아갑시다.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함으로, 심령과 가정과 삶 속에서 천국을 이루고 또 전하며,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하늘의 크신 은총 속에 날마다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십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