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0 94회
“인간의 허물과 하나님의 은혜”
2021년 10월 10일 주일예배
창세기 26 : 1 - 11 ; 로마서 5 : 20 - 21
오늘 말씀에는, 인간의 죄와, 이 죄를 넘어선 하나님의 은혜가 소개됩니다. 첫째, 우리 믿음의 조상인 이삭이 죄를 지은 사건이 나타납니다. 이삭이 그랄 지방에 거할 때, 자기 아내 리브가를 빼앗기고, 자신은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부부 사이가 아니라, 오누이 사이라고 말합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오촌지간이었기에 ‘누이’라고 말한 것은 일면 타당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람을 기만하는 거짓이며,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부부 사이를 부정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거짓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범했던 것과 동일한 잘못이란 점에서, 부모의 그릇된 언행이 답습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삭의 두려움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입니다. 하나님은 앞서 이삭에게 보호와 축복을 약속해 주셨음에도, 이삭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이방인을 두려워하여,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이삭의 이런 죄에도 불구하고 그를 은혜로 대하십니다. 리브가가 이삭의 처임을 알게 된 아비멜렉은 백성들에게 이삭이나 리브가를 범하는 자는 죽이겠다고 엄히 경계를 합니다. 이삭의 범죄에도 하나님은 그를 지켜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농사에 무려 백 배나 얻도록 축복하십니다. 벌받아야 마땅한 이삭을 축복하셔서 이런 사랑을 통해 이삭을 믿음의 사람답게 키워 가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이삭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삭이 그 해에 백 배나 얻고,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도 심히 많아지자,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이삭의 우물을 메워버리고, 이삭을 그곳에서 쫓아냈는데 이삭은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우물을 팝니다. 블레셋 목자들이 ‘이 물은 우리 것’이라며 빼앗자, 그 우물을 ‘다툼’이란 뜻의 ‘에섹’이라 부르고,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자, 이름을 ‘싯나’라 하고, 다시 다른 우물을 팠더니 이젠 다투지 않자,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며,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창26:22)고 말합니다.
물이 귀한 팔레스타인에서 이삭이 우물을 무려 세 번이나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잘못에도 불구하고 벌하지 않고 지켜주셨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백 배나 얻도록 축복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은 자기도 은혜의 사람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셨으니 나도 남을 용서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신 대로 나도 베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삭이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세 가지 요인이 나옵니다. 그 중 하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해 아무런 조건 없이 은혜 주실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경우입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33:19). 아무런 조건이나 공로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은혜로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다음은, 본인은 아무런 자격이나 공로가 없지만, 그의 부모나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로 인해 받는 은혜가 있습니다. 이삭의 경우 아브라함의 자녀된 그 이유 때문에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창26:24)고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는 본인이 하나님께 복 받을 일을 하여 복 받는 경우입니다. 가나안땅에 흉년이 들자, 하나님은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이 땅에 거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겠다’(창26:2-3)고 약속하셨는데, 이삭은 이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이삭이 그랄에 거하였더니”(창26:6). 이삭의 순종이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실을 깨닫고, 이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은혜를 깨닫지 못해 죽음과 심판의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우리와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혜 속에 살아갑니다.
둘째, 하나님께 은혜를 나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합니다.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종은 동료가 그 돈의 60만 분의 일인 1백 데나리온 빚을 갚지 않는다고 감옥에 가두자, 임금은 그 종을 감옥에 가둬버립니다. 우리는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사죄의 은총을 받았음을 잊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서도 너그럽게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죄나 실패보다 주님의 은혜가 더 크심을 믿고 소망을 잃지 말아야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5:20-21).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의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푸시기에 루터는 “율법은 두려움과 분노를 일으키지만 은혜는 소망과 자비를 가져온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쉽게 넘어지고 실패하지만, 주님은 이 때문에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은혜를 알고, 은혜 앞에 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이웃과 함께 이 은혜를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