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헌신의 동기

2020-03-08 192회

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

요한복음 12장 1~8절

설교요약 :

"신앙인의 헌신의 동기"
2020년 3월 8일 주일예배
요한복음 12 : 1 - 8 ; 신명기 6 : 4 - 5


궁금증에 대한 이런 재미있는 글이 있습니다. "참으로 조물주는 신통방통하다. 어떻게 인간들이 안경을 만들어 걸 줄 알고 귀를 거기에 달아놓았을까? 언제는 동네 사람들이 내게 통반장 다 해먹으라고 하더니, 왜 통장 한번 시켜달라는데 왜 저렇게 안 된다고 난리일까?, 여자친구에게 키스했더니 입술 도둑 맞았다고 흘겨본다. 다시 입술을 돌려주고 싶은데 순순히 받아줄까?, 요즘 속셈학원이 많은데 도대체 뭘 가르치겠다는 속셈일까?" 사람의 속셈과 행동의 동기가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노벨 문학상 작가 알베르 까뮈의 소설 [전락](轉落)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어떤 장님 한 사람을 맞은편 인도에까지 이르도록 도와준 다음 헤어지면서 그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있더란 말입니다. 그렇게 모자를 쑥 쳐들며 인사하는 동작은 분명 그 장님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님은 그걸 볼 수 없으니까요. 그럼 누구한테 한 것일까요? 관객한테지요. 역할을 끝내고 퇴장하면서 인사를 한다, 이거 괜찮지요?" 눈먼 장님을 도와주고 모자를 벗어 정중히 인사하는 이 사람은 결국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행을 과시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지적은 뜨끔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위선이나 연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세계적인 문화재입니다. 수십만의 노예가 동원되었을 테고, 공사비는 천문학적인 숫자였을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일을 한 동기는 남을 위한 동기는 전혀 없이, 왕 자신의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영구보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세금을 짜내고 강제노동을 통해 만든 피라미드는 세월이 갈수록 조금씩 부스러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모든 행위는 그 결과보다 동기에 의하여 평가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 여자가 맷돌질하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둠 당할 것'(마24:41)이라고 하셨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는 것을 '시'(視)라 하여, 시를 하면 맷돌질하는 두 여자는 똑같아 보입니다. '시'보다 좀 더 자세히 보는 것을 '관'(觀)이라 하는데, '관'을 하면 맷돌질하는 것은 같지만, 왜 하는지 그 동기가 다르다면 두 여자가 다를 수 있습니다. '관'보다 더 자세히 보는 것을 '찰'(察)이라고 하는데, '찰'을 하면 두 여자가 맷돌질하는 동기는 같아도, 한 여자는 기꺼이 맷돌질하는데(安), 다른 여자는 투덜거리면서 한다면, 두 여자도 다르다고 이현주 목사는 말했습니다.


인간의 행동동기 심리는 사람들의 선행의 동기로 다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두려움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숙제하거나 손발 씻는 것들은 선생님한테 혼나지 않고 벌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시키는 대로하지 않다가 벌받지 않으려고 손발도 씻고, 숙제도 합니다. 이런 태도는 어른도 그렇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당산나무에 가서 빌거나, 성황당에 절하는 것도, 천재지변 등 자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두려워하는 마음을 유치하다고 비난해선 안 됩니다. 도리어 범죄하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심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경외심으로, 성경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을 강조합니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시33:8). 경건한 마음은 악을 멀리하게 하며, 선하게 살고자 하는 동기가 됩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이런 마음일 있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


둘째는 보상받으려는 마음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착한 일을 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선생님이나 부모님으로부터 칭찬과 상을 받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어른들도 칭찬과 보상을 얻으려고 선한 일도 하고, 자신을 희생을 하기도 합니다. 종교적으로는 복 받으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믿음에 열심을 내어 충성하기도 합니다. 이것도 역시 유치한 것만은 아닙니다.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당신께 헌신하고 충성한 자들에게 복 주시고, 상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무엘하 6장에 보면,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되자, 바알레유다로 가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옵니다.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가 뛰자 웃사가 손으로 법궤를 붙들자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저를 치심으로 그가 즉사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법궤를 모셔오는 것을 포기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방치합니다. 그런데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의 집에 큰복을 주셨다는 소식에, 다윗은 즉시 달려가 법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셔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이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법궤를 모셔온 것입니다.


셋째는, 사랑에 의한 행동의 동기입니다. 구약에 보면, 히브리인 노예는 6년 동안 주인을 섬긴 후엔 자유를 주어 내보내게 했는데, 이런 예외 조항이 나옵니다.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출21:5-6). 종이 자유를 얻어 주인집에서 나가면 벌받거나, 혹은 계속 일하면 상을 준다는 조건이 아니라, 자신이 '상전과 처자를 사랑'하여, 스스로 원하여 그 집의 영원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엠 알 디한(M.R. Dehaan) 선교사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봉건시대 어떤 하녀가 엄격한 주인으로부터 이런 지시를 받았습니다. '기상 시간은 반드시 아침 6시 이전에 일어나야 하고, 7시까지는 집안 모든 청소를 완료하고, 8시까지는 주인의 식사준비를 끝내고, 9시까지는 주인의 자녀들의 모든 뒷바라지를 끝낼 것' 이 일을 제대로 못하면 매로 때리거나 팔아버린다고 위협하여, 그녀는 늘 불안하였고 항상 피곤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주인이 이 하녀를 사랑하여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 여인은 더 이상 그 엄격한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을 남편으로 삼고 사랑하게되니까, 자기가 전에 억지로 하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는데도, 사랑하며 일했더니 전혀 피곤한 줄 모르고 기쁘게 일하고 있더랍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6일 전에 베다니에서 귀한 잔치를 받으십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잔치는 남의 잔치에 예수님이 손님으로 참석하셨는데, 이 잔치는 예수님을 위한 잔치였습니다. 이 잔치를 베푼 곳을 마태와 마가복음에는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막14:3, 마26:6)라고 하여, 나병환자 시몬의 집으로, 시몬이 문둥병을 고쳐주신 데 대한 감사로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 얼마 전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도 초대받아 예수님 곁에 앉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잔치는 무엇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의 잔치로 사랑과 정성이 가득했고, 중심에서 우러난 아름다운 잔치였습니다.


이 잔치에서 마리아 예수님께 드린 헌신은 첫째,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발로였습니다. 1절입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요12:1). 마르다, 마리아는 부모를 잃고 가정에 기둥 같던 오빠 나사로를 의지하고 살았는데, 오빠가 덜컥 죽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제 아무 희망도 기대도 없이 눈물로 나날을 보내는데 오빠가 죽은 지 나흘 후, 예수님이 오셔서 저희를 위로하시고는 무덤에 가셔서 죽어 냄새나던 오빠를 살려주셨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하여, 어떻게 이 은혜를 보답할까 하다가,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을 위해 잔치하자, 옥합을 깨어 예수님께 비싼 향유를 부어드립니다. 이것은 칭찬이나,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오직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발로였습니다.


6.25 직후 나병 환자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사업가가 미국에서 파견 나온 간호사 선교사가 나병환자의 고름 상처를 짜고 간호하고 있는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사업가는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백만 불 짜리 가치가 있는 사진입니다. 누가 나에게 백만 불을 주어도 나는 이 일을 못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간호사는 사업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일을 못합니다." 사업가가 당황하면서 그렇다면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간호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를 강권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향해 보여주신 조건 없는 그 놀라운 사랑 때문이지요." 마리아도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으로 그 값비싼 향유를 드렸습니다.


둘째, 마리아는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린 전적인 헌신이었습니다. 3절입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12:3). 마리아가 예수님께 드린 나드 한 근을, 가룟 유다는 3백 데나리온이라고 합니다(요12:5). 1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으로, 3백 데나리온이면 한 사람의 일년 임금입니다. 나드 향은 인도, 네팔, 부탄 등 해발 3,500-4,500미터 고원에서 자라는 식물뿌리의 진액을 추출한 향유로서, 여인들의 화장용이나, 사람들에게 향기를 맡게 하고, 시신의 냄새를 억제하기 위해 장례식에도 쓰였습니다.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는 이 향유의 원료가 되는 뿌리 453그램이 100데나리온이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또 자신의 소중한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렸습니다. 당시 손님의 발을 씻는 일은 노예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예수님의 종으로 자청한 것입니다. 머리는 사람의 몸에서 맨 위에 있는 소중한 부분이며, 특히 이스라엘 여자들은 머리털을 마치 면류관처럼 소중하게 생각했기에, 머리로 발을 씻긴다는 것은 최고의 존경의 표현이며, 사랑의 고백이었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만일, 향유만 붙고 머리털로 발을 씻기는 일이 없었다면, 향유란 돈으로 살 수 있기에, 돈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었지만, 머리털로 발을 씻긴다는 것은 돈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드리는 희생이요 헌신이었습니다.


영국정부는 중국에서 아프리카까지 전후 33회나 전쟁터를 누비며 혁혁한 공을 세워 나라에 크게 이바지한 고든(Gorden, C. G.) 장군을 치하하려고 그의 동상과 기념비를 세우려고 했으나 장군은 이를 수락하지 않자, 작위를 수여하고 포상금을 주려고 했어도 이마저 거절합니다. 영국정부는 어떻게든 기념하려고, 조그마한 금메달에 그 공을 기록하여 증정했습니다. 후에 장군이 세상을 떠나 유품을 정리하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그 메달이 보이지 않아, 애써 수소문했더니 가슴 뭉클한 사연이 숨어 있었습니다. 맨체스터에 대흉년이 들자, 장군은 그 메달을 녹여 팔아서 굶주린 사람들을 구제했던 것입니다. 장군의 일기에는 그 일에 대해 단지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던 선물을 그리스도께 바쳤다." 고든 장군은 왕되신 그리스도께 자기의 최고의 보배를 바침으로 누구도 모르는 자신만의 행복을 누렸습니다. 마리아에게도 이런 남모르는 행복과 기쁨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셋째, 비난 속에서도 주님께 드린 헌신이었습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요12:4-5).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부어드리자, 가룟 유다가 비난합니다. "아니, 그 비싼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줄 것이지, 이게 무슨 짓이야? 삼 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거액을 이렇게 한순간에 날려버리다니..." 그의 주장은 언뜻 타당하게 들리지만, 그가 예수님을 은 30냥에 원수들에게 판 것을 보면, 그의 관심은 가난한 자가 아니라, 바로 돈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회계로서 주님을 섬기는 제자였으나,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팔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께 소중한 재산인 향유를 부어드린 것도 모자라, 자기 머리를 풀어 그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닦아드립니다. 이는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는 행동이었으나, 주변의 이런 시선조차 생각지 못하고 어떻게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까만 생각했던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사에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지만, 지나친 신중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선행도 비난 없는 선행이 없고, 어떤 의거도 반대 없는 의거가 없기에, 때론 비판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게재된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제목은 'Anyway', '어쨌든'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무분별하고 터무니없고 이기적이다. 그러나 어쨌든 너는 사랑하라. 당신이 선을 행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혹시나 배후에 이기적인 동기가 있어서 선을 행한다고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선을 행하라. 당신이 성공하면 가짜 친구들이 나타나고 적들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성공하라. 정직과 성실이 당신을 유약하게 할지라도 어쨌든 정직하고 성실하라. 오늘 당신이 행한 선이 내일 잊혀진다 하여도 어쨌든 선을 행하라. 위대한 사람이 변변치 못한 생각을 지닌 소인들에 의해서 넘어지는 것을 볼지라도 어쨌든 크게 생각하라. 사람들은 패자의 편을 드는 것 같아도 실상은 승자를 추종한다. 그러나 어쨌든 너는 패자를 위하여 싸워라. 몇 년 걸려 지은 것이 하룻밤 사이에 파괴되는 것을 본다 할지라도 어쨌든 너는 건설하라. 당신이 가진 것 중에서 최상의 것을 세상에 주어라."


이런 마리아의 예수님을 향한 헌신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첫째, 이 일은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린 최상의 헌신이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리자, 이것을 보고 가룟 유다가 시비를 걸고 나옵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요12:5).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요12:7)며 이 일은 예수님 자신을 위해 가장 귀한 일을 한 것이라고 칭찬해주셨습니다.


마리아는 소박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감사하여 자기 가장 소중한 재산인 향유를 부어드렸는데, 예수님은 이 일이 당신의 장례를 위한 일이니 말리지 말라고 비약해 말씀하십니다. 사실, 마리아는 그것까지는 생각지 못하고, 그저 소박한 마음으로 주님께 향유를 부어드렸는데, 주님은 그토록 크게 받으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서로 높은 자리 차지하려고 팽팽하게 신경전 벌이던 때,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부어드림으로 기쁨을 드렸고, 주님의 죽음에 대비한 장례를 준비함으로 가시밭에 핀 한 떨기 백합화처럼, 십자가의 가시밭길에 주님께 드린 유일한 사랑의 향기였습니다.


둘째,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12:3). 마리아가 이런 헌신을 바쳤을 때, 그 향기는 주님뿐만 아니라,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 맡았고,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사랑과 헌신의 향기는 내가 사랑하는 그분께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신선한 감동을 줍니다. 참된 사랑은 누가 보아도 아름답고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헌신으로 향기가 온 집에 가득하여 주님과, 그 집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감화를 주었고, 그 가정에 큰 은혜가 넘쳤습니다.


셋째,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이 일은 마리아 자신에게도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본문과 병행 구절인 마태와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마26:13, 막14:9). 이 때문인지, 이 사건은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서 읽히며, 마리아의 아름다운 헌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그 이름이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바친 것은 향유 한 근이었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의 인정과 더불어 오고 오는 모든 성도들에게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으로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엔 예수님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그 향유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임을 알고 감격하며 그 은혜를 평생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선행은 마땅히 이런 일을 해야한다는 도덕적인 당위로만 행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행위는 믿지 않는 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선행은 오래가지 못하며 자기 이름을 선전하는 수준의 선행으로 끝나버립니다. 이것은 성경이 경계하는 율법주의적 선행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의 선행은 주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체험한 가슴에서 솟아난 자발적인 감격의 충동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헌신은 주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발로여야 합니다.


미국 워싱턴 지역에서 한국 자녀들을 입양한 미국인 가정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연 적이 있었습니다. 입양 부모회 회장이 되신 분은 미국 교회 목회자이셨습니다. 이 분은 자기 자녀가 셋이나 되는데도 한국 아이를 셋이나 입양하신 분이었습니다. 그것만도 놀라운 일인데 거기다가 그 입양한 세 아이 중 둘이나 결함이 있어, 정상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한국 목사님이 "이렇게 아픈 한국 아이들을 입양한 동기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정색을 하며 반문하기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당신과 내가 죄인인줄 알면서도, 정상이 아닌 줄 알면서도, 우리를 그의 자녀로 입양한 것이 아닙니까?"라고 반문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자신과 아내의 헌신은 하나님이 이미 주신 은혜에 대한 지극히 작은 보답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1979년에 더스틴 호프만과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가 상영되었습니다. 테드 크레이머는 어느 날 아내 조안나가 갑자기 집을 나가자, 일곱 살 난 아들을 혼자 키우게 됩니다. 전에는 아내가 다 해주던 일을 이제 남편 혼자 해야 되니까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는 아들을 양육하는 것과 자신의 직장생활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을 나갔던 아내가 불쑥 나타나서 아들을 자기가 키우겠다고 주장하여 아들의 양육권을 놓고 법정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남편의 변호사가 "아무래도 당신이 불리하여 당신 아내가 승소할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아들을 양육하고 싶습니까?"라고 묻더니, 백지 위에다 가운데에 줄을 긋고 말합니다. "왼쪽에는 아들을 키우면서 얻는 이득을 적고, 오른쪽에는 아들을 키우면서 얻는 손해를 기록하십시오. 그리고 정말로 당신이 양육권을 고수할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하시오." 그래서 남편은 아들을 재워놓고 변호사의 말대로 백지에 줄을 긋고 먼저 손해가 되는 부분을 적어나가는데, 손해 되는 게 많습니다. 직장생활이나, 개인생활에도 지장이 되고, 친구도 제대로 만날 수 없는 등, 많은 희생이 따릅니다. 그리고 이제 반대쪽에 아들을 키우면서 얻는 이득을 기록하려는데,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뭘 적어야 할지를 모르겠기에 백지를 책상 위에 놓고, 아들방 문을 열고 잠자고 있는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아들을 꼭 껴안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는 너를 정말로 많이많이 사랑한단다." 비교는 끝났습니다. 사랑 앞에서 무슨 손해나 이득을 따지겠습니까? 직장생활에 지장이 되고 개인생활에 지장이 되어도 아들을 사랑하는 것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속성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어떤 것이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희생과 수고를 감수하고서라도 주님께 오직 충성으로 보답해야 하지 않을까요?


에리히 프롬은 '성숙한 사랑'에 대해 말했습니다. 유치한 사람은 그 사랑의 동기가 'I love you, because I need you, 내가 너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사랑한다'며, 자기의 필요가 사랑의 근거인데, 성숙한 사람은 'I need you, because I love you.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너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4-5).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기에, 그분께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이웃을 사랑하여 헌신하는 자들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통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며, 이웃을 섬김으로, 자신을 복되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과 이웃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8절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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