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0 175회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 하나니”
2021년 6월 20일 주일예배
야고보서 5 : 7 - 11 ; 전도서 7 : 8 - 9
믿음 있다고 하면서 인내가 따르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소용이 없습니다. 또 인내는 자신의 인격에 속하는 것으로 어떤 밑천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내에 관한 한 ‘무엇 때문에 못했다’라는 변명을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에는 ‘인내’, 혹은 ‘참으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헬라어로 ‘인내’는 ‘쉬퍼모네’와 ‘마크로두미아’ 두 단어가 있는데, ‘쉬퍼모네’는 어려운 상황을 참는다는 말로서, 가난이나, 질병 등, 어려운 형편을 참을 때 쓰는 말입니다. ‘마크로두미아’는 성경에만 나오는 단어로 ‘기독교적인 인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 ‘결코 변하지 않는 견고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태도와 상관없는 나의 변함없는 자세를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지만,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람들로부터 받는 시기와 질투, 혹은 오해와 질시 등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우리에게 칭찬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비난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인내에 대한 몇 가지 특징을 말씀합니다. 첫째, 종말적 믿음의 인내입니다.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7절),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8절),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9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모두 인내의 한계가 바로 주님의 재림에 있음을 말씀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신원해주실 때까지 참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모두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을 믿고, 그것에 근거해서 참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인내의 본질입니다. 기독교의 인내는 ‘주님의 재림’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살아가며 억울하고 서러웠던 사정을 주님께 아뢰며 그 품에 안겨서, 엉엉 울 수 있는 그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인내하고 견뎌내야 하겠습니다.
둘째, 소망으로 인한 인내입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5:11). 그리스도인의 인내는 체념적 인내가 아닙니다. 소망 없는 인내는 고역입니다. 본문에선 농부의 인내를 배우라고 말씀합니다. 농부는 추수를 바라보며 묵묵히 참는 것은 절대로 허무하거나 막연한 인내가 아닙니다. 주께서 욥에게 보여주신 결말을 볼 때, 인내하는 자가 복됩니다.
셋째, 사랑으로 승리하는 인내입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9절). 서로 원망하면 인내가 무너집니다. 서로 원망하지 않는 것이 곧 사랑으로 승리하는 ‘인내’입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그의 모든 허물과 잘못까지도 감싸주며 견뎌낼 수 있게 해줍니다. 세상이 달라지거나,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 변화되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이 변화되고, 내 마음속에 진정한 사랑이 일어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기도의 응답은 사랑으로 통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먼저 사랑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인내의 길과 결과를 보여줍니다. 첫째, 농부의 모습을 예를 듭니다.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7절). 이스라엘에선 10월 하순부터 11월 상순 사이에 내리는 이른 비가 흙을 부드럽게 하고, 3월에서 4월 사이에 내리는 늦은 비가 곡식을 자라게 합니다. 농부들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며 오랜 건조기를 참아냅니다. 무엇이 이 어려움을 견디고 수고의 땀을 흘리며 기다리게 할까요?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귀한 열매 때문입니다. 농부는 추수를 믿고 기다리면서 일을 합니다. 우리의 고난은 가을의 추수처럼 끝내 보상이 있습니다.
둘째, 선지자들의 본을 배우라고 합니다.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10절). 선지자의 고난은 고난 당하는 자에게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 아무 고난이 없으리라는 미신을 버려야합니다. 우리가 주님 뜻대로 살지라도 마귀가 역사하는 이 땅에는 여전히 고난이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고난받을 때 항상 기적이 일어나 저들을 보호했던 것이 아니라, 더러는 죽기도 했습니다. 고난 중에 기적적으로 우리가 구출 받는 것도 감사하지만, 우리가 고난 당하면서 죽을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더러는 죽었고, 더러는 보호받았으나, 모두 주님의 뜻을 따라 믿음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셋째, 욥의 모습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욥의 인내를 들었고”(11절), 욥이 얼마나한 고난 속에서 어떻게 참았는가를 배우라고 합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재물과 건강과 자녀들을 잃었습니다. 그 때 욥은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13:15)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난하주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송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고난을 이깁니다. 하나님은 아시고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믿고 참아 견딥니다.
11절에서 인내의 복을 말씀합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인내의 복이 무엇입니까? 인내는 자신을 이겨냈다는 승리감으로 자신으로부터 성원을 받게 하고 인정받게 합니다. 이것이 인내가 주는 큰복입니다. 반면에 인내하지 못하면 전혀 자신을 믿을 수가 없어서 인격 자체가 초라해지고 비참해집니다. 인내하면 원수에게도 승리하여 인내하는 자가 끝내 이기게됩니다. 인내함으로 믿음과 축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 끝까지 인내함으로 믿음을 지켜내어, 구원을 성취하도록 합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