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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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용 목사님

마태복음 6장 33절

설교요약 :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소원"
2019년 3월 10일 주일예배
미가서 6 : 6 - 8 ; 마태복음 6 : 33

지방 소도시에서 목사님이 어느 집사님 일터에 들렀더니 그분이 이렇게 부탁하더랍니다. "목사님, 요즘 손님이 너무 없는데 손님이 많이 오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그 말에 목사님은 몹시 당황했습니다. 그분은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분인데, 손님이 많이 오려면 사람들이 많이 죽어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하나님! 아시지요?"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중심의 소원을 갖습니다.


어느 교회 청년들이 기도회를 갖는데, 전도사님이 말했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기도는 너무나 이기적인 욕심에 매여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자기 영역을 넘어서서, 부모님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도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차례대로 기도하는데 한 자매가 이렇게 기도하더랍니다. "하나님, 저는 그동안 너무 저 자신만 위해 기도했습니다. 오늘은 부모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제 부모님께는 무엇보다 좋은 사위가 필요합니다. 좋은 사위를 맞아 딸이 행복한 것을 보게 하옵소서." 때로 우리의 기도까지도 얼마나 이기적인지 모릅니다.


아주 별 볼일 없는 미식축구 선수가 있었습니다. 나오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선수인데, 꼭 빠지지 않고 나와있습니다. 실력도 없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선수인데, 어느 날 시즌 마지막 큰 게임에 자기를 뛰게 해달라고 조르자, 코치가 어이가 없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경기인데 그런 말을 하느냐?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전반전 내내 코치에게 조르는데, 전반전 게임이 너무 안 풀려 상대편에게 형편없이 지고 있다가 하프타임이 되었습니다. 이젠 도저히 역전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이 선수는 아직도 자기를 뛰게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코치가 "에라 모르겠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 어차피 진 게임이니 들어가라"며 승낙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친구는 들어가자마자 전설의 스타처럼 뛰며 경기장을 누비는데, 팀 전체가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움직입니다.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경기가 종료 몇 초 전 상대방의 패스를 가로채어 터치다운하여 역전시켰습니다. 팬들의 함성에 경기장이 떠나갈 듯 했습니다. 선수들이 너무 기뻐하며 이 선수를 헹가래치며 들어옵니다. 흥분이 가라앉고서 코치가 묻습니다. "난 지금껏 이런 엄청난 플레이는 본 적이 없다. 도대체 어찌된 일이지?" 그러자 그 선수가 이런 말을 합니다. "감독님, 지난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앞을 못 보는 맹인이어서 내가 경기에서 뛰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젠 돌아가셔서 하늘나라의 하나님 곁에 계십니다. 아버지가 보는 첫 번째 제 게임인데, 제가 어떻게 그냥 뛰겠습니까?" 천국에 계신 아버지께 보여드리려는 그의 열망이 그토록 멋진 경기로 승리하게 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으로 이런저런 소원을 품고 살아갑니다. 이 소원을 이루려고 하나님을 찾기도 하고, 또 헌신과 봉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원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시면, 가장 간절한 소원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내 소원을 아뢰기에 먼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인가? 내 소원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효자란 자기 뜻보다, 부모의 뜻을 헤아려 그 뜻을 이뤄드리는 자입니다.


내 소원보다 하나님의 소원을 먼저 생각해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크고 높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9). 인간의 생각은 이기적이고 속된 것이 많지만, 하나님의 뜻은 거룩하고 완전하며 고귀합니다. 우찌무라 간조의 [연말]이란 기도입니다. "나의 요구를 다 물리치시고, 나의 소원을 다 파하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신 것을 감사합니다. 만일 내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면 나는 거만해지고 밉살스러운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아무 소용없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의 소원보다 하나님의 소원이 더 높고 귀함을 알고 하나님의 소원을 먼저 생각하는 경건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더 선하고 지혜롭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엡3:20)라고 말했습니다. 강철왕 카네기가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서 어머니가 물건을 사는 동안 앵두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가게주인이 "너 앵두 먹고 싶은 모양인데 한줌 집어먹으렴"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카네기는 가만히 있자, 어머니가 "아저씨가 집어먹으라 하셨으니 한줌 먹으렴"하고 말하는데도 카네기가 가만히 있자, 주인이 한 움큼 앵두를 집어 카네기에게 줍니다. 그제야 카네기는 인사를 하고 받자,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왜 집어먹으라고 할 땐 가만히 있다가 아저씨가 집어주니까 냉큼 받았니?" 카네기가 말합니다. "할아버지 손이 내 손보다 크잖아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우리 손보다 크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소원이 내게 이뤄져야 내 소원도 이뤄집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때, 나의 소원도 이뤄지리라 말씀하십니다. 패트라는 여자가 우울한 얼굴로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2년 전 선교사로 헌신했지만 결혼이 더 급하다는 생각에 신랑감을 찾느라 2년 동안 교사로 지냈는데, 알맞은 남자가 없어 답답하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소원을 이루려면 먼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어렵지만 순종하여 아프리카 기니아에 선교사로 갔는데, 그 밀림 속에서 훌륭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인 미가서는 죄악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그리고 범죄한 백성들이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보여주는 예언서 중에 백미로 평가됩니다. 미가가 예언하던 때는 히스기야 왕이 남왕국을 통치하던 주전 700년경이었습니다. 이때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침략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데, 그런 때에도 이스라엘은 온갖 사회적인 부패와 부조리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이런 때 미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면서, 메시야 왕국의 도래를 통해서 유다와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죄악은 첫째, 백성들의 우상숭배였습니다.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미1:7). 당시 백성들이 섬기던 우상들은 다 부서질 것이며, 우상에게 드린 제물이나, 우상이 준 재산인 '음행의 값'은 불살라질 것이고, 그들이 섬겼던 모든 우상들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한 사마리아의 함락(B.C.722-721)으로 모두 훼파 당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둘째, 지도층들의 불의와 약자에 대한 수탈이었습니다. 3장 1절입니다.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미3:1-3). 가장 정의로워야 재판관과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백성들의 가죽을 벗기고 고혈을 짜는 일을 서슴지 않는 불의를 행하였습니다.


셋째,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과 형식적인 종교였습니다.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미3:11b). 당시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백성들을 바르게 살도록 교훈하기보다 자신의 삯을 위해,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악과 타협하며 편안하게 살도록 가르쳤습니다. 시대를 파악하고 세상의 죄를 고발하여 회개하도록 깨우쳐야할 선지자들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자기 안일을 위해 평안을 예언하였습니다.


이때 미가는 마치 이스라엘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의 변명을 대신하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경멸하시는 행위인지 지적합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6:6-7). 당시 백성들의 제사는 죄를 무마하기 위한 뇌물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여기 언급된 '일 년 된 송아지'는 번제에 가장 많이 사용된 적절한 제물입니다. 그리고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은 하나님의 관심을 얻고자 드리는 수많은 희생제물을 말합니다. '맏아들'은 이방인들이 신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치는 최상의 희생제물이었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것은 의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드리는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헌신 없이 제물을 뇌물처럼 바치던 당시 백성들의 위선적인 행위를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사1:11-13). 종교개혁자 칼뱅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제물을 바치게 하는 목적은 외형적인 의식을 보시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 바치는 것을 통하여 회개와 믿음과 진실성을 갖게 하시려는 것이다." 백성들은 죄를 회개하여 속죄의 제물로 예물을 드리고, 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정성을 바쳐야했는데, 당시 백성들은 진정한 회개 없이 온갖 불의와 죄악을 답습하면서 가지고 있는 부에다가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 감사와 정성이 없이 예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하시고서, 저들을 향한 당신의 소원을 세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먼저, 정의를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미6:8). 오직 정의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또 10절과 11절 말씀입니다. "악인의 집에 아직도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미6:10-11). 저울이란 공정의 상징인데, 두 개의 다른 추를 몰래 숨기고 물건을 살 때와 팔 때, 바꿔썼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매사에 공정하고 바르고 분명하게 공의를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20여 년 전, 외국에 가서 열심히 공부한 어느 음악가가 실력을 인정받아 국내 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입시지도도 했는데, 웬일인지 학생들은 거듭 낙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몰라 몹시 의아해했는데, 입시는 실력만으로 붙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불행한 것은 한국의 음악교수의 90%가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기독교가 이런 잘못된 관행과 부패에 대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다는 염도가 3.5%인데도 바닷물의 부패를 막는데, 한국에 크리스천은 20%나 돼도, 세상의 부패를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예수는 가는 곳마다 혁명을 일으켰는데, 요즘 크리스천들은 가는 곳마다 커피를 마신다"고 하여,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변화를 일으키고 역사를 새롭게 하셨는데,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편안히 잡담이나 즐긴다고 지적했습니다.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는 노예제도가 성경적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노예제도 폐지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는 원래 목사가 되려고 했지만 존 뉴턴 목사의 권유로, 정치인으로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국회에서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노예제 폐지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40년을 꾸준히 노력하여, 끝내 이뤄냈습니다. 미국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으로 노예제가 폐지됐지만, 영국은 이렇게 한 사람의 노력으로 정의가 실현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영국 사회를 보면 노예제 폐지는 요원한 것이었습니다. 영국 경제제의 근간에는 노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식민 통치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던 시대에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윌버포스는 노예와 이해관계를 가진 정치와 경제계의 거물급 인사들로부터 살해위협을 받곤 했는데,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노예제 폐지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런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현실의 벽은 직접적인 성격 때문에 사실보다 높아 보이게 마련이다." 우리는 죄악이 횡행한 시대 속에서 악은 도무지 제거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 속에도 주님의 빛이 들어오면 그 악도 안개가 사라지듯 순식간에 힘을 잃게 됩니다. 악은 금세 걷히게 되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가 불의를 안개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이 땅에 차고 넘칠 것입니다.


다음으로, 인자(仁慈)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인자를 사랑하며", '인자'란 히브리말로 '헤세드'로서 절대적이고, 창조적이요 능동적인 사랑이요, 한마디로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큰사랑'입니다. 그런데 공의를 이루면서 또 인자를 이루려면 자기 희생 없인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공정한 법과 공의를 세우면서, 아울러 자기 희생을 통해 사랑과 인자를 나타낼 때, 이 땅의 백성으로서도 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천국 백성으로서도 합당하게 행하는, 공의도 실현하고 인자도 이루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성장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해 매진한 결과, 지난 반세기동안 세계에서 유례 없는 경제성장을 통해 세계경제 10위 대국이 되었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은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익부빈익빈으로 자살율이 빠르게 증가하여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자살율 1위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소득이 늘어나는데도, 노인 빈곤율이 높고, 자살율이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승자 독식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부는 경쟁에서 이긴 일부에게만 돌아가고, 경쟁에서 낙오한 패자들은 한계상황에 내몰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뉴욕에는 존 F 케네디 공항 외에 '라구아디아' 공항이 있습니다. 이 '라구아디아'란 이름은 뉴욕시민이 아주 사랑했던 시장의 이름입니다. 그가 뉴욕시장이 되기 전, 뉴욕 즉결 심판부 판사로 한 사건의 재판을 맡았습니다. 이 재판에서 가게에서 빵을 훔친 한 노인이 법정에 섰습니다. 눈물이 글썽한 노인이 말했습니다. "사흘을 굶었습니다. 그때부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라구아디아 판사는 근엄한 표정으로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신의 사정이 아무리 딱하더라도 이 절도죄는 벌금 10달러에 해당합니다"며 10달러 벌금형을 내리면서 그는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더니 방청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돈은 이 뉴욕 안에 배가 고파서 빵을 훔치는 가난한 사람이 있는데도, 그 동안 내가 너무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은 죄에 대한 벌금입니다. 이 돈으로 이 노인의 벌금을 내가 내겠습니다. 여기 계신 신사숙녀 가운데에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이 있다면, 이 모자에 돈을 담으십시오"하며 모자를 벗어서 법정에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즉석에서 47달러가 모여서 이 돈을 이 가난한 노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이제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결코 남의 물건을 훔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구아디아의 명 판결은 뉴욕 시민들에게 알려져 그는 뉴욕시장에 당선이 되었고 그 이름을 기념하여 뉴욕에 있는 국제공항 이름을 라구아디아 공항이라고 이름지은 것입니다.


끝으로,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c). 참된 신앙생활은 예배당에 한번 모여 드리는 예배를 통해 입증되지 않고, 생활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가정과 직장생활에서 드러납니다. 간혹 교회에선 열심히 봉사하는데, 정작 가정과 직장에선 전혀 믿음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송아지를 드리고, 심지어 맏아들을 바칠지라도 생활 속에서 공의와 인자가 없으면 하나님은 기뻐 않으시고, 삶 속에서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실천하기 위해서도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씀을 통해 은혜를 공급받아야만 합니다. 때로 정의감과 이웃에 대한 긍휼이 일어나다가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적 결심이나 의지만으론 지속할 수 없는 그 연약성에 있습니다.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정신 없이 뛰어다니던 윌리엄 윌버포스에게 어느 전도부인이 "윌버포스씨, 지금 당신의 영혼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윌버포스는 깜짝 놀라며 "나는 하마터면 내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뻔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냉혹한 심판자로서의 정의를 주장하거나, 정의가 사라진 값싼 온정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고, 그 정의나 사랑을 지속할 의지도 동력도 얻지 못해 이내 중단돼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있고 싶어서'라는 이유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메리 가디너 브레이너드는 "나는 빛 가운데 홀로 걷기보다 차라리 어두움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몰간 목사님이 수마트라에서 선교하는데 처음에는 도무지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몰간 목사님은 두 주일 동안을 산에 올라가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금식기도를 마친 다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산에서 내려와 집에 돌아오니까 부인이 새파랗게 질려서 하는 말이 '사랑하는 딸이 지금 열병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몰간 목사님이 자기 딸이 누워 있는 침상에가 보니 몸이 불덩이가 되어 있고, 의식을 다 잃고 금방 숨이 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몰간 목사님은 두 주간 동안의 금식기도의 피곤도 다 잊고 바로 서재에 들어가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몰간 목사님의 심령에 부딪쳐 옵니다. "몰간아! 너는 네 딸, 죽어 가는 네 딸 하나 때문에 마음이 그렇게 아픈데, 병들고 못 먹고 죄로 죽어 가는 전 세계의 인류를 바라보는 아버지로서 내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느냐!" 몰간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즉시 아내에게 이 말씀을 이야기하고, 죽어 가는 딸은 다 잊어버리고 큰 민족으로부터 작은 민족, 문명인으로부터 야만인들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인류를 앞에 놓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사이에 날이 샜고, 기도를 마친 다음에 '이제는 사랑하는 딸이 세상을 떠났겠지'하고 딸이 누워 있는 침상에 와 봤더니, 열이 다 식고 깊이 잠이 들었는데, 얼마 후 잠에서 깨고 나니까 사랑하는 딸이 깨끗하게 나아서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내 소원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 이태리의 위대한 철학자요, 신학자입니다. 그의 저작인 [신학대전]은 교회사와 신학사에서 잊혀질 수 없는 걸작입니다. 한 번은 아퀴나스가 깊은 기도에 잠겼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아퀴나스야, 네가 나를 위하여 수고를 많이 했다. 또 네가 한 일은 모두 잘하였다. 이제 내가 네 소원을 들어주고 싶구나.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말하라." 주님께서 아퀴나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때 아퀴나스는 더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즉시, 이렇게 아뢰었다고 합니다. "주님, 제가 원하는 것은 오직 주님입니다. 주님만을 더 충만히 갖기 원합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입니다." 우리의 가장 간절한 소원은 과연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셔서 의로운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 날마다 우리와 동행하도록 어떤 방법으로든 효과적으로 역사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링컨은 평생 이 소원을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있음으로 해서 이 세상이 더 좋아졌다는 것을 보는 일이다." 아무 생각 없이 시대의 풍조를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마태복음 6장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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