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26 951회
엘리후(1) 생명을 아끼시는 하나님
욥기33:9-18절
욥과 친구들의 논쟁을 지켜보던 엘리후가 입을 열었습니다. 연장자에 밀려서 입을 다물고 있던 엘리후는 진정한 권위가 연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에 있다는 전제를 달고 등장합니다. 엘리후는 38장부터 이어지는 하나님의 등장을 준비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욥으로 하여금 갑작스런 하나님과의 대면에 앞서 그가 미리 깨달아야 할 부분들을 점검하게 합니다. 그래서 엘리후는 유일한 중보이신 그리스도의 예표를 일정부분 반영하는 인물입니다.
엘리후는 먼저 욥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의 표상을 수정해 주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은 의롭고 잘못이 없는데 하나님이 부당하게 벌을 내리고 계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후는 전혀 다른 시각과 관점에서 하나님의 표상을 제시합니다. 우선 하나님은 생명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그나마 교만한데 고난마저 없다면 얼마나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를 높이며 살겠습니까? 오히려 그것이 패망의 선봉이기에 하나님은 때로 고난을 보내셔서 사람의 마음을 연단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을 허용하신 후에는 다시 싸매고 치료하시며 회복하시는 분입니다. 욕창이 낫고 새살이 돋으며 욥의 아내는 10년에 걸친 시간동안 욥을 지켜보며 새로운 가정의 어머니와 아내로 준비됩니다. 욥은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러한 욥을 계속 붙들고 계셨기 때문에 다시 회복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로움으로 하나님의 복을 좌지우지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 고난의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없듯이 오늘 내가 누리는 이러한 삶과 평안함 역시 말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오직 이렇게 고백할 뿐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로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욥입니다.
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거늘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