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9 155회
“그리스도인의 참된 기쁨”
2022년 6월 19일 주일예배
누가복음 10 : 17 - 24 ; 시편 4 : 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하라’고 보내셨지만, 이들이 돌아와 보고한 것은 전도했다던가, 불쌍한 사람 병 고쳐줬다는 말은 없고, “귀신을 명했더니 귀신이 항복하더이다”라는 신나고 흥미 있는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고 하시며 기뻐할 것과 기뻐하지 말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제자들이 기뻐했던 것은 ‘내가 무엇을 했다는 기쁨’이었고, 예수님은 18년간 귀신들린 여자를 깨끗이 고쳐줌으로써 여인이 병에서 놓여 고침 받은 일을 기뻐하셨습니다.
주님은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고 말씀합니다. 이 기쁨은 어떤 기쁨입니까? 첫째, 구원받은 기쁨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계20:15)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말합니다. 영혼이 구원받았다는 것은 절대적인 기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선택되어 우리 이름이 천국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기뻐해야 할 첫 번째 이유입니다.
제자들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는 말은 ‘내가 귀신을 쫓아냈다’는 것으로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겐 소유나, 깨달음, 인정받는 기쁨이 있으나, 이보다 더한 기쁨은 권세를 누리는 기쁨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돈벌려는 것도 돈 자체보다, 돈으로 누리는 권력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귀신이 항복했다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됐다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것’이란 구원을 뜻합니다. 하늘에 기록될 수 있는 그런 수고를 하는 복된 생애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는 기쁨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 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20:12). 여기 보면, 구원받은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고, 사람의 행위가 기록된 책도 있어, 우리가 주님을 위한 수고와 봉사가 책에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위한 수고도 특권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런 봉사는 고역이 아니라 은총이기에, 불평하거나 짐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감사하며, 하나님의 역사에 고용된 것을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역에 고용된 기쁨과 견줄 기쁨이 없습니다. 천한 자가 귀하게 쓰여지고, 헛된 생을 살던 자가 가장 고귀한 일에 부름을 받아 쓰여집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운다”(골1:24)며, 고난이 있을수록 기뻐했고, 어려움이 있을수록 감사했습니다. 이것은 업적도 실적도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께 충성이요, 자기 의나 선행이 아니라, 주님께 쓰여진다고 하는 그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 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6:10). 이런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내가 권능을 주었다”(19절)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권세를 입어 주의 사역에 동참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사람은 하나의 그릇인데, 이 그릇이 사람 살리는 구원의 역사에 쓰여질 때, 이 그릇이 비록 질그릇이라도 참으로 귀한 그릇이 됩니다. 지난날을 헛되이 살았더라도, 이제 하나님의 일에 보탬이 된다면,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셋째, 나의 수고와 봉사를 통해서 다른 이들이 행복하게 되는 기쁨입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셨다”(21절)고 했습니다. 주님이 수가성 우물가의 불행한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녀를 구원하셨는데, 제자들이 음식을 가져와 “랍비여 잡수소서”하고 말씀드리자, 주님은 시장하신 것도 잊으시고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요4:32)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의아하여 “누가 잡수실 것을 가져다드렸는가?” 생각하니,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라”(요4:34)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잡수지 않으셨지만, 한 영혼이 구원받은 사실로 인해 그토록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대체로 이기적이고, 육체적이며, 세속적일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기쁨은 왜 그렇게 순간적이고, 허무합니까? 소유의 기쁨은 더 큰 소유를 지향하여 고통으로 변하고, 성취는 더 큰 성취를 갈망하여, 그 성취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4:7). 벌써 한해의 절반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반년 동안 하늘에 기록될 만한 일을 얼마나 하셨습니까? 이제 남은 날들을 우리는 성령의 기쁨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