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4 72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라!"
2018년 11월 4일 주일예배
고린도전서 15 : 1 - 10 시편 103 : 1 - 5
어느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훈계를 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잔뜩 인상을 쓰고 있더랍니다. 선생님이 그 학생을 보고 화가 나서 물었습니다. "야 임마, 너 불만 있냐?" 그랬더니 그 학생이 하는 말이 "아니요, 담배도 있는데요"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여러분들은 요즘 살아가시면서 불만이 있습니까, 감사가 있습니까?
고훈 목사님의 시집 [목자의 휘파람 소리]에 보면 이런 목회 우화가 실렸습니다. "늙으신 여성도 한 분이 동태 다섯 마리 머리에 이고 목사 대접하려 사택으로 가는 길에 강도에게 머리를 각목으로 맞고 가방을 빼앗기고 기절을 했습니다. 자녀들 병원으로 달려와 깨어나길 기다리며 큰 시험 왔습니다. 목사가 원망스럽고 하나님도 원망스러웠습니다. 다시는 교회 못 나가시도록 해야겠다고 결심들 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이 계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일주일만에 깨어나 눈물 흘리신 성도님은 자녀들 손잡고 그래도 동태 다섯 마리가 각목을 대신 맞아 주었기에 내 머리가 부서지지 않고 이제라도 깨어날 수 있었다고 주님 은혜를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깨달으면 감사입니다./못 깨달으면 원망입니다./당신이 통치하시는 동안/감사치 않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아무 일에든지/그래도 감사한 것이/깨달음의 절반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보면 모든 일이 감사하기만 할 뿐입니다.
영국에서 세계적인 종교학자들이 모여 여러 비교종교에 대한 포럼을 갖고 패널들이 토의하는 종교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때 기독교 차례가 되자,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제기됐습니다. 한 학자가 말하기를 "아마도 그것은 '성육신'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이야말로 기독교의 가장 독특성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반대하기를 "물론, 성육신은 기독교 신앙의 독특한 요소들 중의 하나인 것은 사실이지만, '신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나타났다'는 이런 얘기는 다른 종교의 경전에도 없지 않아 있다"는 반론이 제기됐습니다. 그러자, 또 누군가가 "아무래도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은 부활에 있지 않겠느냐? 부활신앙이야말로 기독교의 독특성이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또 누군가가 "그런데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얘기는 다른 종교의 경전에도 종종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 평신도 신학자요 문학가였던 C. S 루이스 교수가 벌떡 일어서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기독교의 독특성은 은혜입니다." 이 '은혜'라는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학자들이 동의했다고 합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사랑을 말합니다.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받아 마땅한데 오히려 하나님이 그들을 받아주시고 용납하고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에 사도 바울의 위대한 간증이 나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10절). 그는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말합니다. "나는 죄인의 괴수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사람인데도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다." 여러분, 이런 감격과 기쁨을 맛보았습니까?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깨닫고 보면, 내 지식도, 건강도, 그 무엇도 은혜 아닌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워싱턴 링컨 기념관 앞에 가면 한국전쟁 기념 공원이 있습니다. 그곳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6.25전쟁시에 유엔군 사망자수가 628,833명이고 그 중에 미군이 54,246명입니다. 행방불명 된 자가 유엔군은 470,267명이고 미군이 8,177명입니다. 포로 된 자가 유엔군은 92,970명, 미군은 7,140명으로서 이 숫자만 보더라도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와 상관없는 나라 군인들의 희생을 통해 우리나라가 공산침략으로부터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이, 어찌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를 보십시오. 세계교회역사 속에서 한국만큼 급속한 복음화를 이룬 나라가 없습니다. 이것도 또한 이 민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남북 대치로 인하여 우리 민족이 예수님을 쉽게 믿을 수 있게 되었음을 우리는 부인하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이 나라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깨달은 은혜란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 믿게 된 은혜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15:8). 바울은 본래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며 예수 믿는 자를 죽이고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가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 하늘로부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는 주님의 음성에 엎드러집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하고 묻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말씀에 그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자신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믿게 해주신 것이 너무나 크신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믿음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마지막 임종의 순간 '믿는다'고 한 마디만 해도 좋을 텐데, 그 결정적인 순간에도 "안 믿어!"하고 숨을 거두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의 길을 찾고자 일평생 고행해도 참된 진리와 생명의 길을 깨닫지 못한 채 죽어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믿음을 갖게 해주신 사실을 생각하면, 이 얼마나 크신 은혜를 우리가 받았습니까?
[열혈청년 전도왕]을 쓴 최병호 씨의 간증입니다. "예수님을 믿든 안 믿든 사람은 다 죽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와 영혼이 분리됩니다. 영혼과 분리된 육체는 썩어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영혼은 예수님을 믿든 안 믿든 영원히 살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기쁨과 즐거움과 영광이 가득한 천국에서 살게 되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구더기도 죽지 않는 영원한 고통의 공간이 지옥에 갑니다. 그러니 예수님 믿고 아름다운 기쁨이 가득한 천국에서 영원히 살기 바랍니다." 수업 시간이 다 됐다는 종이 울렸습니다. 전도사님은 나가셨고, 저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아, 전도사님이 말씀하신 게 거짓말이 아니라 다 사실인 것 같아.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어.' 저는 당장 전도사님이 계신 교목실로 달려갔습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전도사님 말씀이 다 거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죽음에 대해 들으니 그 모든 이야기가 사실로 여겨집니다. 저는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교회 가자는 아이들을 구박도 했는데 이런 저도 예수 믿으면 지옥에 안 갈 수 있나요?" 그랬더니 전도사님이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럼, 지금 당장 예수 믿으면 돼. 자, 기도하자." '아, 나도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구나.' 새로운 사실에 눈뜬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감격에 겨워 울고 웃었습니다. 전도사님을 따라 교회에 나가기로 약속하고 교목실을 나오는 순간, 저는 손목에 차고 있던 염주를 빼버렸습니다. 한순간에 '휙'하고 염주를 빼버렸던 그때의 짜릿한 감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사랑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었고, 지금도 이 믿음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지, 성령의 감동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불신 가운데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주신 은혜임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고난과 실패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와 믿게 되었다면, 이것까지도 은혜였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일꾼이 된 것이 곧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전15:9). 자기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하던 자요, 도저히 하나님의 일꾼이 될만한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자기를 포로 삼으셔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사실을 생각할 때, 여기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늘나라 군대는 지원병은 없고 징병만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불러 세우신 자만이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음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무언가 복되게 할 일이 있고, 또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사도 바울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셨다"고 자기가 인정받은 것에 감사하며, 능력을 주셨음에 감사하며, 그리고 일할 기회를 주셔서 일하게 하심에 감사했습니다.
뉴욕에 있는 '언약의 집'이라는 크리스천 자선단체는, 버림받거나 집을 뛰쳐나온 청소년들을 선도하며, 그들에게 구직 신청서를 작성하는 방법, 면접을 보는 방법, 직장에서 지켜야 되는 기본 규칙 등을 가르쳐 직업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일년 내내 무보수로 일주일에 4시간씩 자기들의 시간과 지식을 바칩니다. 거기에서 봉사하려고 집에서 1시간을 운전해 왔다는 자원봉사자에게 어떻게 그런 훌륭한 봉사를 하면서 사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참으로 좋은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로 좋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 사람은 백만장자도 아니었고, 대기업의 사장도 아니라, 한 평범한 시민이었으나 그는 자기의 삶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봉사하면서도, 그렇게 봉사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면서 그것을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셋째, 바울은 고난과 수고도 은혜로 알았습니다. 바울은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고 말합니다. 여기 '수고'라는 말은 헬라어의 '에코피아사'란 단어로 '지치다', '열심히 일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온갖 고난과 수많은 역경을 겪었었습니다(고후11:23a-27). 그런데 이렇게 숱한 고생을 하며 주를 위해 수고한 것까지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며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은혜를 많이 받았기에 만에 하나라도 보답할 수 있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주시는 은혜를 거저 받기만 하려니 염치가 없어서도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우리도 무언가 주님을 위해 수고를 하고 희생을 해야 천국에 가서 좀 체면이 있지, 한평생 공짜로 겨우 턱걸이해서 천당에 가면 주님 앞에서 미안하지 않겠습니까?
성 크리소스톰의 일화입니다. 그가 법으로 금한 복음을 증거한다고 체포되어 감옥에 갔을 때,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복음화 하라고 이곳에 저를 파송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다 결국 사형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또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순교라고 했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의 반열에 동참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크리소스톰에게 교수형이 집행되려는데 갑자기 사형 중지령이 내렸습니다. 그때도 크리소스톰은 눈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종에게 할 일이 더 남아있는 것입니까?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살아도, 죽어도 감사하는 마음, 이것이 은혜를 아는 자의 마음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알고 은혜로 된 자신을 알았을 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자 그는 스스로 겸손하였습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b). 바울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겸손해 합니다. 바울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3:5-6)라는 자랑과, 당대 최고의 지성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자 이런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자 그는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9-10). 아무 자격이 없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사도로 삼아주신 것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허만 슈타인의 시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인간 최상의 저주는 마음 속에 받은 은혜가 기억되지 않고 감사를 빼앗긴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한량없는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항상 우울한 심정으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찬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고, 이는 저주받은 인생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이 은혜를 알았기에 로마 옥중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고 권면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환경과 조건을 초월한 절대적인 은혜에 대한 감사가 바울의 삶 속에 넘쳤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자 자기 사명을 알았습니다. 바울이 회심하기 전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메섹을 향해 길을 가다가, 하늘로부터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음성을 듣고는 "주여 뉘시이니까?"하고 묻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그는 즉시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행22:10)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할 일을 찾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게 되자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고전9:16)이라며, 감사와 기쁜 마음으로 주를 위해 충성을 다했습니다. 성서학자 고델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빚진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것은 많은 빚을 졌다는 말입니다. 복음은 하나님 편에서 거저 주신 은혜요, 우리 인간 편에서는 빚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수록 빚진 자의 심정도 깊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기 위해 어떤 신앙의 자세가 필요합니까? 첫째,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 안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무엇보다도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이 은혜로만 참된 행복을 누립니다. 이 은혜의 삶은 내가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수고하고 애쓰지만 우리에겐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시인은 이렇게 찬양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103:1-2). 이 시인이 제일 먼저 감사한 것은 '모든 죄악을 사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지금 이대로 죽어도 감사 외엔 할 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작사한 '존 뉴턴' 목사님은 본래 목사님이 아니라, 노예를 사고 파는, 노예상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이 잘못되어서 자기가 노예가 되어 한동안 배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는 작은 신앙 책자를 읽던 중 큰 깨달음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지금 노예로 이렇게 매여있지만, 육체적인 노예보다 더 비참한 것은 자기가 죄악의 노예가 되어 죄에 끌려 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깨닫자, 그는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하고 기도하는 중에, 복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힘이나, 노력이나, 결단으로는 풀어버릴 수 없는 죄악의 사슬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 흘려주심으로 자신의 죄를 담당하시고 죄 사함을 주셨다는 이 복음을 깨닫는 그 순간, 마음속에 놀라운 자유가 임하자,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그가 펜을 들어 작사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든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다" 그리고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 은혜를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 이 은혜를 이웃에게 나누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진정한 축복은 아브라함을 향해서 이렇게 선포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너로 복을 주고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복으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이 같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족장들이 아브라함을 향하여 "아브라함이여, 당신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가 보았노라. 우리가 그 혜택을 같이 입었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혼자만 복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가 아무리 사업을 잘 해도 상대편 회사가 부도나면 그 회사 수표를 가진 내 회사도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면 모두 평안합니다.
국민일보 2014년 3월 11일자 [이태형 칼럼]에 실린 C자매 이야기입니다. - C자매는 40년 가까이 자신의 영혼의 선장은 '오직 나'였다. 전형적인 '강남 스타일'인 그녀는 열심히 일하고 저녁이면 청담동 일대를 누비며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며 독신을 고집했다. 요즘 말하는 '카르페디엠(이 순간을 즐겨라)'은 그녀의 모토였으나 인생은 언제나 '카르페디엠'식으로만 살아지는 게 아니었다. 2012년 10월, 그녀는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전 해부터 가슴에 통증이 왔지만 애써 무시했으나 8㎝의 암덩어리는 유방을 넘어 폐와 뼈까지 전이됐다. 담당의는 치료가 더 이상 의미 없다고 했다. '너는 집에 가서 유언하라. 네가 살지 못하리라'는 음성을 들은 히스기야처럼 그녀는 한순간 죽음을 준비하는 말기암 환자가 됐다. 이전에 지속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 준 한 언니는 늘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어.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해"라고 말했다. 그것이 성공이요, 행복이며 정답이라고 했다. 애써 그 이야기를 무시했었다. 암에 대해 의사는 포기했지만 언니는 단호했다. "너, 죽지 않아. 반드시 살아. 죽어도 살아. 부활의 주님을 붙잡기만 하면…." 다른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언니는 교회 공동체와 함께 생면부지의 C자매를 위해 중보기도에 들어갔음을 알려줬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고?' 기도의 효능을 믿을 수 없었는데 변화가 생겼다. 1, 2차 항암치료를 받을 땐 죽을 것같이 힘들었는데 3차 항암치료는 별 무리 없었다. '기도의 힘인가?'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토요일, 언니가 출석하는 지방의 교회 찬양예배에 나갔다. 2시간 넘는 예배가 견디기 힘들었다. 목사님 설교도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도망치듯 서울로 돌아오며 인생의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생각에 '한번만 더 가보자.' 다음날 주일예배에 참석하러 버스에 올라 그 교회가 발행한 소책자를 폈다. 부활책자로 가장 큰 죄는 피조물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란 내용이었다. 책자를 읽으며 갑자기 자신이 주인 되어 살았던 것이 가장 큰 죄란 사실이 '믿어'졌다. 은혜였다. 예배당에 들어가니 먼저 와있는 성도들의 뒤통수에서 환한 빛이 보였다. 그 순간, '아, 여기가 내 집이로구나.' 어젠 그렇게 들어오지 않던 목사님의 말씀이 콱콱 마음에 박혔다. "부활의 주님을 믿고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인생의 정답입니다." 풀리지 않았던 인생의 의문점이 한순간 해결됐다. 정답을 찾은 그때, 암이 저주가 아닌 선물이며, 죽음은 절망이 아닌 부활의 소망으로 전환됐다. 암이 아녔으면 부활의 주님을 찾을 생각조차 못했었던 그녀에게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현존하는 실재가 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은 깨닫고 보면 모두 기적이고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기뻐하며 감사할 줄 앎으로 은혜로 은혜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고통이 산으로 막혀와도 삶은 하나의 큰 축복이요 선물임을 다시 알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참으로 깊이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주여 감사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