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8 76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십니까?”
2021년 2월 28일 주일예배
빌립보서 4 : 1 - 9 ; 시편 4 : 6 - 8
그리스도인은 그 모습이 어떠해야 할까요? 본래 모습이야 하나님이 지으셨으니,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그의 표정과 인상은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표정은 어떤 표정이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본문에서 말씀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첫째 스스로 기뻐하며 사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절)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기뻐할 상황이 못 되면, ‘기뻐하고 싶어도 기뻐할 수 없지 않느냐’는 이의가 제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거듭 기쁨을 고백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기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적인 이유를 떠나 그리스도인만이 갖는 신비한 기쁨이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라고 하박국 선지자의 노래처럼,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세상 것을 다 잃을지라도 주님 안에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 안에 있기에 기뻐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이 너무 크고 귀하기에 이를 인하여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 받고 그 은총 가운데 살아가는 기쁨이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둘째, 오늘도 주님 안에서 하늘의 축복과 그 돌보심 받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것으로 그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아니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며 한없는 은혜와 축복을 베푸시고, 또 모든 위험에서 지켜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누리는 성도들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큰 기쁨을 누립니다.
셋째, 내가 주 안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고, 나를 통해 하늘의 뜻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8)고 고백합니다. 또 빌립보성도들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드릴지라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이웃에게 관용을 베푸는 너그러운 모습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4:5). ‘관용’이란 말의 헬라어 [에피에이케스]는 ‘인내, 부드러운 마음, 또는 절제’라는 뜻인데, 한 마디로 ‘덕(德)’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이에게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관용’이란 ‘옳은 일보다도 더 큰 어떤 것’인데, 사람들이 흔히 ‘이것이 정당하다’고 말하지만, 모든 일이 정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정의보다 더 큰 덕(德)이 있어야합니다.
관용의 소극적인 의미는 다른 사람의 허물이나 약점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마땅히 처벌하고 응징해야하지만, 그의 허물과 잘못을 덮어주고, 용납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관용의 적극적인 의미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고 그를 세워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잘못을 모른 척하고, 허물을 덮어주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적극적으로 그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가 바로 서도록 어떻게 해줘야할 것인가를 찾아서, 그를 위해주는 것이 관용의 참뜻입니다. 상대방을 너그럽게 용납하는 것만이 아닌 그를 세워지기까지 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이에게 이처럼 관용해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께서 가까우니라”(빌4:5). 주님 뵐 날이 가깝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대로 관용을 베풀어야합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2:13)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도 다른 이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긍휼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경건한 모습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우리는 염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잊은 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주 안에서 기뻐하고, 이웃에게 관용하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우리의 현실은 염려하고 탄식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믿음으로 스스로 기뻐하며, 이웃에게 너그럽게 대하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인간의 계산과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감싸주심으로, 참된 평화를 누리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꽃은 향기로 말하듯, 그리스도인들도 참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기쁨은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것’이라는 샘 스톰스의 말처럼, 오늘 현실이 어둡고 암담해도, 주님 안에서 기쁨과 관용과 기도의 삶으로 참된 성도의 모습을 드러내며 살아가십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