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7 126회
“포도원에 심은 무화과나무”
2021년 11월 7일 주일예배
누가복음 13 : 6 - 9 ; 이사야 5 : 1 - 4
무화과나무를 심는 유일한 목적은 열매를 얻기 위함이기에,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다면 그 나무는 존재의 가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좋은 목적을 위해 많은 수고와 노력을 기울여도 아무런 결실이 없을 때 참으로 괴롭고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먼저, 주인으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았음에도 아무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과 이 무화과나무를 3년 동안이나 정성껏 가꾸었다는 것을 보면, 이 나무가 열매맺을 수 있도록 과원지기로서는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성을 쏟아부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는 동안에 회개할 것을 촉구하시기 위해 이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큰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특혜에도 이 무화과나무는 3년을 기다려봐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서 3년을 기다렸다는 말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어야 할 시기이면서, 하나님의 인내를 나타내는 어떤 한계의 시간입니다. 또 이 3년은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연상하게 하고, 성도들의 신앙의 연조를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기간입니다.
우리도 사실 많은 혜택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축복을 입고도 우리가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인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면 이제 하루 빨리 그 나무를 잘라내는 것이 그나마 손실을 덜 수 있는 선택입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는 과원지기의 중보로 찍혀지기 직전에 살아났습니다. 과원지기가 말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눅13:8-9). 이 무화과나무는 뭐라 변명의 여지없이 찍혀 불에 던져져버릴 절체절명의 순간에 과원지기의 중보로 살아납니다. 과원지기는 주인에게 무화과나무가 열매 맺지 못한 것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자기를 봐서 일년만 더 참아주시면, 일년간 더 수고하고 노력할 것을 약속합니다. 당연히 찍혀버려야 할 이 무화과나무는 중보자의 간구로 위기를 면하고, 죽음 일보 직전에서 살아났습니다.
이 과원지기는 오늘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총을 입고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해, 이제 진노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중보로 인해 이렇게 살아 남았습니다. 본문 바로 앞에 기록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들의 제물에 섞은 일이나,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열 여덟 명처럼, 우리도 회개치 않으면, 이렇게 망하리라고 경고하셨는데, 우리에겐 이렇다할 회개의 열매조차 없어서 이제 더 이상 기다릴 것도 없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찍어 불에 던져져야 함에도, 이렇게 살아 남은 것은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님의 중보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심판과 인간의 멸망 사이에서 인간을 대신하여 기도하십니다. 이 중보기도로 소망이 없던 무화과나무는 생명을 보존하게됩니다.
이제 무화과나무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눅13:9). 과원지기는 나무가 열매맺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줄 순 있지만, 열매맺는 것은 나무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회개하도록 기간을 연장해주고, 잘못을 깨우쳐 줄 순 있지만, 회개하고 안 하고의 결정은 각자의 개별적 판단에 따릅니다. 문제는 회개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유보하신 심판의 기한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기회조차 일어버리면 이제는 도끼로 찍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열매는 인격의 열매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성경에서 늘 강조하는 열매는 인격의 변화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이 변화돼야 할 인격은 성령의 열매로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5:22-23)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은 지 오래됐지만, 아무 인격의 변화 없이 옛날 성품 그대로라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습니다.
두 번째 열매는 생명의 열매로서 전도입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11:30). 우리가 예수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면, 우리를 통해 또 다른 생명의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고 유언하셨습니다. 나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구원받게 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 열매는 선한 일의 열매입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1:10). 우리를 선한 일 하도록 지어졌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2:10).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도 역시 선한 일을 하도록 구원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15:2). 포도원에 심긴 무화과나무처럼, 우리가 이렇게 주님의 은총의 자리에 있다면, 이 결실의 계절에 주께서 기뻐하시는 열매 풍성히 맺어, 더 복되고 귀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