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

요한복음 7장 37~38절

설교요약 :

"너희는 이 절기를 지킬지니"
2020년 9월 27일 주일예배
레위기 23 : 33 - 44 ; 요한복음 7 : 37 - 38


제가 1970년대 군 생활을 했는데, 조치원 제 32사단에서 신병훈련을 받았습니다. 뙤약볕 연병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고된 훈련을 받다가, 10분간 휴식시간이 되면 조교들은 훈련병들을 불러내어 노래를 시켜 울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조교들이 훈련병에게 부르도록 지명한 노래가 '울려고 내가 왔나'라든가,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였습니다. 마음 약한 훈련병 중에는 이 노래를 부르며, 힘든 훈련의 고달픔과, 고향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노래부르다 철없이 울곤 했습니다.


이번 주 목요일은 우리 민족 최대명절인 추석입니다. 여느 해 같으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민족 대이동이 이뤄질텐데, 세계적인 팬데믹인 코로나19로 인해 추석귀성이 금기시 되는 분위기입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수도권 출향인에게 고향행 자제를 호소하는 서한을 보냈고, 전남도도 도민과 향우회에 호소문을 냈습니다. 전남 보성에서는 '고향의 안전을 지키는 아버지, 어머니 일동' 명의로 "아들, 딸, 며느리야!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안 와도 된당께"라는 현수막을 걸었고, 전남 완도는 "얘들아 이번 벌초는 아부지가 한다. 너희는 오지말고 편히 쉬어라잉", 제주도 서귀포시는 "삼춘! 이번 벌초 때는 내려오지 맙써!"라는 문구를 내걸었습니다. "아범아! 추석에 코로나 몰고 오지말고 용돈만 보내라" "아들아! 명절에 안 와도 된다. 며늘아! 선물은 택배로 부쳐라"라는 당부도 있습니다. "올해말고 오래 보자꾸나" "이번 추석은 오지 마라.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단다"라는 경구도 나붙었고, 정세균 총리를 끌어들여 "이번 추석엔 총리를 파세요. 정 총리가 그렇더구나. 추석에 가족들이 다 모이는 건 위험하다고…. 힘들게 내려와서 전 부치지 말고 용돈을 두 배로 부쳐다오"라는 재치 있는 글도 등장했습니다. 이런 구수한 사투리에 자식 걱정이 듬뿍 담긴 익살스러운 글귀들을 대하면 마음은 더 안쓰럽고 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식들의 귀향을 말리는 내용의 현수막 가운데 최고 압권은 충남 청양에 이 달 중순부터 등장한 문구 "불효자는 '옵'니다"입니다. 이 말은 우리나라 100대 가요에 드는 노래로, 진방남 원로가수가 처음 부른 뒤, 내로라 하는 가수들의 앨범에 거의 다 수록된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노래제목을 패러디 하여, '귀성이 곧 불효'라는 뜻으로 뒤틀어, 너털웃음과 눈물 그렁거리는 얼굴과 함께 넣어 만든 현수막인데, 도시에 떨어져 사는 자식들이 보고싶으면서도, 코로나 때문에 오라고 할 수도 없는 심란한 고향의 부모의 복잡한 마음을 담아내,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 대히트작품입니다. '이번 성묘는 고향의 가족들만 가기로 했다. 숭조(崇祖), 효(孝)보다 건강이 우선이다'며 자식들의 귀향을 말리는 부모들이 계시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은 부쩍 커버린 손주들이 보고 싶어서도 은근히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절기 중에 시기나 추수와 관련된 것을 보면, 우리의 추석과 가장 유사한 절기는 초막절입니다. 우리는 민속 명절인 추석을 맞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신 그 의미를 생각하고자합니다. '초막절'(The feast of booths)을 '장막절'이라고도 하고, 히브리어로는 '쑤콧'이라 불렀습니다. 초막절은 유월절, 오순절과 함께 구약의 3대 절기 중 하나로서 '초막절'은 '여호와의 절기'(레23:39; 사21:19), 또는 그냥 '절기'(왕상8:2)라고 불렀는데, 절기중의 절기였기 때문입니다. 가을 축제인 초막절은 유대력 티슈리월 15일에 시작하여 일주일간 지켰는데, 양력으로는 보통 9월인데, 첫날은 일이 철저히 금지된 휴일로 지켰습니다.


초막절은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출애굽한 후에 40년 간의 광야생활을 기념하는 종교적인 요소와, 둘째는 올리브와 포도 등을 추수하는 수장절(The Feast of In gathering ;출23:16b, 34:22b)로 지키는 농경적인 요소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일년에 세 번 추수를 하는데, 이스라엘의 3대 명절이 이 추수기와 맞춰져있습니다. 먼저, 누룩 없는 떡을 먹는 '무교절' 혹은 '유월절'은,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역사적 의미인데, 겨울보리를 거두는 봄 추수와 관련이 있고, 다음으로 '맥추절' 혹은 '칠칠절'은,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은 역사적 사건과 여름보리와 밀을 거두는 여름추수와 연관이 있고, '수장절' 혹은 '장막절'은,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의 역사적 사실과 올리브와 포도를 거두는 가을추수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런 절기를 지키는 의미는 첫째, 옛날 고생하던 때를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지난날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말씀이 여러 곳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신32:7). 특히 과거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신24:18).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신24:22).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천막생활 했습니다. 천막생활이라면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캠핑하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양이나 소가죽으로 된 천막은, 뜨거운 햇빛이나 바깥의 찬바람 정도나 막아줄 뿐, 그 안에 어떤 편의 시설도 없이, 한 가족이 한 천막 안에서 40년 동안을 생활했으니 그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고생 끝에 가나안 땅에서 집 짓고 살게 됐는데, 그리 화려한 집은 아니지만, 수시로 천막을 걷었다, 쳤다 하는 번거로움이 없고, 쉽게 찢어지거나 헤어질 염려 없는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됐다고, 옛날의 그 고생하던 때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임금이 거대한 궁전을 건축했습니다. 그 궁전의 방 하나에는 언제나 임금이 직접 잠근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는데, 임금은 꼭 하루에 한 번씩 그 방에 들어가서 얼마 동안 시간을 보냈습니다. 임금 외엔 누구도 그 방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그 방에 무엇이 있을까? 얼마나 대단한 것들이 있기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할까?' 모두가 궁금해했는데, 종 하나가 잠겨진 방문 틈으로 안을 몰래 들여다봤습니다. 그런데 그 방에는 금은보화나 값진 것은 하나도 없고, 임금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입던 목동의 낡은 옷 한 벌이 걸려있을 뿐이었습니다. 지난날 어려웠던 때를 잊지 않으려는 왕의 깊은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지난날 비참했던 때에 대한 기억을 너무 쉽게 잊기에 오늘에 대한 감사가 없고, 또 역사의 교훈을 얻지 못해 잘못된 실수를 반복합니다. 초막절을 지키는 뜻은 과거 광야에서의 어려운 때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어려웠던 어제를 생각하고 오늘을 감사해야합니다.


둘째, 고난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라 하십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5: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신15:15).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잊고, 제 힘과 능력으로 어려움을 헤쳐온 것처럼 생각한다면 얼마나 고약합니까? 지옥의 심층부에는 자기를 키워 준 시이저를 배신한 브루터스와,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가 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노비신분에서 벼슬에 오른 인물하면 대개 장영실만 생각하지만, 노비출신으로 8도 관찰사를 모두 역임하고, 형조판서까지 오른 '반석평'(1472~1540)이란 조선 중종 때 문신이 있습니다. 그는 본래 노비였는데 주인이 그의 노비문서를 불살라 면천해주고, 반씨 집안에 수양아들로 보내 신분세탁을 통해 과거시험을 치러 당당히 급제하여, 정2품 형조판서까지 올랐습니다.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에 의하면 반석평은 옛 주인 아들 이오성이 거지꼴로 다니는 모습을 보자 타고있던 가마에서 내려와 절을 합니다. 이것은 그의 신분세탁이 드러날 위험한 일이었는데, 반석평은 도리어 왕에게 자기 본래 신분을 아뢰고 벼슬을 내놓으려했지만, 왕은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 그를 가상히 여겨 몰락한 이오성에게도 벼슬을 내려 복권해주었습니다. 반석평이 훌륭한 것은 노비신분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높은 벼슬에 오른 것보다도,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할 줄 아는 모습입니다. 반석평은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었음에도, 노비에서 풀어준 은혜를 잊지 않고 가마에서 내려 옛 주인에게 절했던, 참으로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반석평은 UN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의 직계조상인데, 국왕을 보필하는 재상까지 되었습니다.


셋째, 수확하여 거둘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 말씀입니다.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출23:16b). 한 해 농사를 지어서 이를 수확하고, 수확한 농산물을 창고에 저장하고 나서 하나님께 수확을 거둘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하여 드리는 추수감사의 축제가 곧 수장절인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올해도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직장 생활을 통해서 필요한 물질을 거두게 하셨고, 가정 생활을 통하여 평안과 사랑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 생활을 통해 우리 심령에 신령한 은사들을 거두게도 하셨습니다. '배은망덕'은 인간이 짓는 죄 가운데 가장 기분 나쁜 죄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결실의 계절에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만으로가 아니라, 우리에게 베푸신 각양 은사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런 명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제 친구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성도들이 드린 헌금봉투 중에 '밀린 십일조를 드립니다'는 글과 함께 드려진 헌금이 있더랍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도, 또 그 다음 주에도 계속 같은 내용의 십일조가 드려지기에, 목사님은 누가 어떤 연유로 이렇게 헌금을 하는지 궁금했는데, 몇 주일 후에 한 여집사님이 목사님께 찾아와 그 십일조에 대한 사연을 이야기하더랍니다. 이 집사님의 아들이 중학생인데, 어느 날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하나님께 많은 것을 받기만 했지, 하나님께 마땅히 드리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 깊이 뉘우쳐지더랍니다. 자기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용돈이나 세뱃돈 등 받은 것만 대충 계산해도 약 1,200만원 정도가 되는데, 그것을 지금까지 하나님께 십일조도 드리지 않고 자기가 쓰거나 또 통장에 넣어놓고 있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어떻게든 먼저 하나님께 빚진 것부터 갚자'는 생각에, 자기 통장에 있는 돈에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밀린 십일조 120만원을 한꺼번에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자기 잘못에 대한 뉘우침이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쉽게 잊혀질 것 같아, 이 학생은 매주일 25,000원씩, 일년 52주일 동안 계속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들의 이 모습을 보며, 자신도 그 동안 제대로 십일조 생활을 해오지 못해온 것에 대해 크게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남편이 정형외과 의사라서 수입은 많은데, 믿음이 아직 십일조 할만한 신앙은 되지 못해, 남편 수입에서 십일조를 못하더라도, 자기에게 주는 생활비에서 십일조는 하기로 작정하고, 밀린 십일조로 3백 만원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 학생은 밀린 십일조 120만원을 한꺼번에 드릴 수도 있는데, 매주 25,000원씩 52주면 130만원인데, 10만원을 더 드리면서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매주 드리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한 나름의 지혜와 결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초막절을 어떻게 지켜야합니까? 첫째, 하나님을 위해 절기를 지키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 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레23:33-34). 자칫 이런 절기를 사람들의 사람들만 위한 잔치로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명절에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간혹 이런 명절이나 절기가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리는 일은 뒷전으로 미루고 사람 찾아다니며 즐기는 일에 분주한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먼저 하나님께 이런 명절과 좋은 절기를 주시고, 우리에게 생명과 가정과 물질의 축복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열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번제와 소제와 회생제물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드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제물 외에 또 너희의 모든 자원제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레23:37-38). 하나님께 번제와 소제와 희생제와 전제로 절기를 지키라고 하십니다. 은혜를 은혜 되게 하기 위해 내가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예물로 감사해야합니다. 마음으로만 감사하면 하나님께서도 마음으로만 축복하실 것이고, 입술로만 감사하면 말씀으로만 축복하실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물질로 감사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물질과, 생활로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오늘로부터 딱 61년 전인 1959년 9월 27일, 그 날도 주일이었습니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국빈으로 미국을 방문한 소련수상 흐루시초프에게 아침에 전화했습니다. "오늘 주일이니 나와 함께 교회에 갑시다." 흐루시초프는 역시 거절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먼저 '미안하다'고 하고 '한 시간 반만 기다려달라'한 뒤에, 예배가 끝나자 곧바로 흐루시초프 수상을 만났습니다. 아이젠하워가 "한 시간 반 동안 무엇을 하셨습니까?"하고 묻자, 흐루시초프는 "내가 먼 길을 찾아왔는데도 교회에 가는 아이젠하워의 핑계가 무엇일지 생각하고 있었소"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국빈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둘째, 쉬면서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39, 40절에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 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레23:39-40)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동안 농사짓느라고 수고하고 애썼으니, 이제 쉬면서 하나님 앞에 나와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일만 하는 일 벌레로 만드신 것이 아니고, 또 하나님께 제사만 드리는 제사의 도구로 삼으신 것도 아니라, 쉬는 것도 원하십니다.


[예수전]의 작가인 르낭이 절묘한 필체로 예수님의 일상을 이렇게 그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 이처럼 완벽하고 조화된 풍성한 삶의 모본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는 열심히 일하셨다. 그러나 그는 적절히 쉬셨다. 그는 일할 때와 쉬실 때를 아셨다. 그는 열중할 때와 관조 할 때를 아셨다. 그는 즐거워할 때와 슬퍼할 때를 아셨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를 아셨고, 홀로 있을 때를 아셨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 즐거워하셨다. 그러나 그는 홀로 있을 때도 여유로우셨다. 그에게는 언제나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즐겁게 그를 따라 다닐 수가 있었다. 그가 있는 곳에 잔치가 있었다. 그가 있는 곳에 웃음이 있었고, 그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 순간 조용히 다시 자신의 침묵의 성소로 돌아오셨다. 그는 자주 하늘을 응시하셨다. 그리고 자주 그는 들판을 내다 보셨다. 그의 눈길은 숲과 산에 머물러 있었다. 겟세마네동산 가는 길, 포도원 밭길, 기드론 시냇가, 이 길은 언제나 예수의 산책로요, 기도의 오솔길이었다. 그는 확고하셨으나 부드러우셨다. 그는 천천히, 단호하게 십자가를 향해 걸어 가셨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내 사명을 이루었다고 고백할 수가 있었다. 그의 삶은 충만한 생명 그 자체였다." 예수님께도 이런 여유가 필요했다면, 피곤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겐 얼마나 더 필요하겠습니까?


셋째, 이웃과 더불어 함께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23:42-43). '이스라엘에서 난 자'란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다 함께 모일 것을 말씀합니다. 그동안 흩어져 살아온 백성들이 명절을 맞아 함께 모여 이스라엘 공동체를 확인하고 서로 친교와 우의를 다지듯이, 우리는 추석을 맞아 흩어졌던 가족들이나 혹은 친척과 같은 혈연관계, 그리고 함께 같은 마을에서 자라고 따뜻한 인정을 나눴던 마을 사람들과도 따뜻한 우의와 정감 있는 문안과 인사 등 아름다운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추석은 흩어진 가족이 모여 조상과 만나는 종적연계의 명절이지만, 옛날 추석은 종적연계뿐 아니라 마을사람끼리 정을 교류하는 횡적연계의 명절이기도 했습니다. 추석송편을 빚을 때 쓰는 솔잎은 마을에 늙거나 병들어 생활력 없는 홀어미, 홀아비나, 부모 없는 고아에게 맡겨서, 솔잎을 대가로 얼마간 송편과 추석음식을 보내주었습니다. 또 추석을 전후하여 벼 베기 위해 논물을 빼려고 논 가장자리에 도랑을 파는 도구칠 때,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을 시켜, 배때기에 누렇게 약오른 살찐 미꾸라지 잡아 신세진 동네 어른들을 모셔다 추어탕 한 그릇씩 대접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일제 초기, 우리나라 촌락의 생계조사를 보면, 자급자족 못하는 농촌가구가 73%나 됐어도 각박하지 않았던 까닭은, 이런 복지민속의 관행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집 앞에는 그의 소유인 작은 공터가 있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그 공터에 쓰레기를 버렸습니다. 쓰레기장이 되어 버린 공터는 악취가 풍겨났습니다. 부자는 돈을 들여 쓰레기를 치우고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고 써 붙였으나 며칠 못되어 또 쓰레기가 쌓였습니다. 팻말의 강도를 높여 벌금을 내게 해도 쓰레기는 계속 쌓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에서 늙으신 아버지가 이 아들집을 찾아왔습니다. 노인은 쓰레기 때문에 연신 불평하는 소리를 듣더니 공터의 팻말을 뽑아 쓰레기와 함께 태워버리고 철조망도 걷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삽과 괭이로 공터를 다듬더니 무엇인가 정성껏 심었습니다. 공터가 깨끗해졌습니다. 며칠 지나 비가 내린 뒤 다시 며칠이 지나자, 그 공터에는 새싹이 돋아났고 이내 싱싱한 시금치가 자랐습니다. 노인은 다시 팻말을 세웠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조금씩 뜯어 가십시오.' 사람들은 더 이상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노인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시금치 철이 지나거든 철에 따라 꽃을 심으려무나. 쓰레기를 치우는 것보다 돈도 덜 들 것이다." 공터에는 이후로 파란 금잔디가 덮이고, 채송화, 봉숭아, 백일홍 등 갖가지 꽃들이 피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오랜만에 부자에게 칭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자는 이후로 이웃들과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주변에 불평과 불만의 쓰레기들이 자꾸만 쌓여가고 있다면 이제는 방법을 바꿔보십시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믿음의 씨앗', 이웃에 대해 너그럽게 베푸는 '사랑의 씨앗', 그리고 비록 현실이 암울하고 답답해도 앞으로 베푸실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고 스스로 즐길 줄 아는 '소망의 씨앗'을 심어보십시오. 금새 악취 나는 쓰레기는 사라지고, 향기 만발한 아름다운 화원이 펼쳐질 것입니다.


추석을 맞아 결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쉬울 땐 하나님을 찾아 기도도 하고, 찬송을 하다가도, 막상 아쉬움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합니다. 인간은 고마운 일을 감사할 줄 알 때, 비로소 인간입니다. 은혜를 입고도 감사할 줄 모른다면 인간이 아닙니다. 이현주 목사의 [밥 먹는 자식에게]라는 시가 있습니다.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 봄에서 여름 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 온 쌀인데/ 그렇게 빨리 삼키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게여..."


예수님께서 초막절에 말씀하십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 하나님은 늘 세상에서 피곤하고 목마르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런 즐겁고 복된 명절을 주셔서, 하늘의 은총을 되새기게 하시고,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십니다. 가족 간 친교와 모처럼 휴식을 통해, 심령 깊은 곳에서 은혜와 사랑의 생수의 강이 흘러나시길 기원합니다.

요한복음 7장 37~38절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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