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

누가복음 19장 1~10절

설교요약 :

"이 사람처럼 변화되어야 합니다"
2020년 11월 22일 주일예배
누가복음 19 : 1 - 10 ; 이사야 12 : 1 - 3


어느 목사님이 갑자기 설교부탁을 받고 준비 없이 설교하다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키가 작은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너무 보고 싶어 뽕나무에 올라가서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교인들이 수군거리자 이 목사님이 잘못 말한 것을 깨닫고는 "그런데 삭개오가 그곳에 나타나 니고데모에게 말했습니다. '니고데모야 내가 올라갈 자리에 왜 네가 올라갔니? 빨리 내려와라.' 그리고 그는 그 뽕나무에서 예수님을 뵙고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자기 집에 모신 후에, 변화된 이야기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얘기입니다. 몇 해 전 여름, 자전거로 북악스카이웨이를 달리다 도로에 차에 치인 듯한 작은 동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끔직해서 그냥 지나치려는데 꿈틀거리기에 자전거에서 내려 살펴보니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돼 보이는 새끼 고양이였습니다. 목사로서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그 어린것을 안고 집에 왔더니, 아내는 기겁하며 어떻게 키우느냐고 난색을 표했고, 딸은 어느새 품에 안고 인터넷으로 새끼 고양이 키우는 법을 검색하더니, 고양이가 먹는 분유를 사서 주사기로 먹이고, 배변 훈련이 안 돼 옷에 묻는데도 이 작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애썼습니다. 고양이가 생기를 찾자 주둥이를 들이밀며 젖을 무는 모습에 이름을 '쥬디'라고 지었습니다. 얼마 지나자 쥬디의 장이 선천적으로 협착하여 배변을 못해 생명이 위험하여 거금을 들여 수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에서 왔으니 혹 문제가 있으면 억지로 치료하지 말고 자연으로 보내자고 제안했지만, 이미 정이 들어버린 아이에게는 마이동풍이었습니다. 쥬디는 날이 갈수록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외출하고 들어와 내가 왔다고 해도 아무 반응이 없는데, 딸은 현관문을 여는 즉시 '쥬디야 어딨니?' 외치며 찾습니다. 집에 홀로 두고 나오면 가족들은 모두 쥬디 걱정이고, 가족여행이라도 가려면 쥬디 걱정부터 합니다. 집에서는 웃는 일이 없던 딸이 매일 쥬디와 까르르 거리고, 아내 역시 너무나 즐거워합니다. 쥬디가 이 집에 온 후에 가족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집에 와도 이렇게 온 집이 변하는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후에 우리의 삶은 얼마나 바뀌었나요?


미국의 명설교가 캠벨 모건은 '설교자의 가장 큰 좌절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설교해도 감동이 없고, 오랜 세월 목회해도 변화 없는 교인을 볼 때 깊은 실망에 잠긴다." 교회란 예수 믿고 사람이 변화되는 곳입니다. 먼저는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의 변화로서,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할 때 얻는 구원의 선물입니다. 다음은, 땅의 것을 추구하던 사람이 하늘을 지향하는 사람이 되고, 그리고 이기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삶이 완전히 변화된 삭개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받으신 수난주간 직전 목요일쯤으로 여겨집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 동편 27km 지점으로, 유대에서 가장 비옥하고 부유한 국경도시로 헤롯의 왕궁이 있던 이곳은 '종려의 도시'로 불리며, 발삼(balsam) 향나무 숲과, 장미정원으로 알려진 곳인데, 요세푸스는 '신성한 영역', '팔레스틴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라 칭했고, 또 이곳은 길르앗 지방에서 유입되는 향유와 여러 가지 특산품에 대해 통관세를 징수하여 팔레스틴에서는 가장 큰 과세(課稅)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이곳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에게는 두 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의 세리라는 직업입니다. 2절에 보면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눅19:2)고 했습니다. 그의 이름 '삭개오'는 '청결한 사람' 또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과는 달리 그의 직업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 되는 매우 욕된 직업이었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세리장'은 세관의 우두머리로서, 세금 징수를 지휘했던 인물로, 로마의 막강한 공권력을 이용하여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하여 징수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은 각 총독 관할청마다 일정 세금을 부과했는데, 총독은 자기가 할당받은 것에다 30% 이상을 더 붙여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그러면 할당받은 세리장들은 거기에 50%를 더 붙여 세리들에게 할당량을 주었고, 세리들은 또 거기다가 30%를 더 붙여 백성들에게 세금을 징수했기에, 민족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은 세리를 몹시 싫어했습니다. 탈무드에 미워해도 괜찮은 사람의 첫째는 살인자, 둘째는 강도인데, 그보다 더 미워해도 괜찮은 대상을 세리라고 했습니다. 뱀하고 세리하고 만나면 누구를 먼저 죽여야 되는가 하면, 세리라고 탈무드에 써놓기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삭개오의 부모는 '부디 청결하고 의롭게 살라'는 마음으로 '청결한 사람'혹은 '의로운 사람'이란 뜻의 '삭개오'라는 이름을 지어줬으나, 삭개오는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고, 수치스러운 생활을 하여 그의 평판은 좋지 못했습니다. 그는 돈은 가졌지만 존경받는 사람이 되지 못했고, 도리어 사람들로부터 미움 받는 대상이었습니다. 그에겐 권력도 있었으나, 그는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물질적으로는 부러울 것이 없었으나,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콤플렉스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삭개오의 또 하나의 콤플렉스는 키가 작은 것입니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눅19:3). 사람이 체구가 당당하면,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외형만으로도 다른 이에게 위압감을 주는데, 키가 작으면 그의 됨됨이도 작은 것으로 오해되어 자칫 무시를 당하기가 쉽습니다. 나폴레옹, 박정희, 김용기 장로, 등소평 등, 모두 키가 작았는데, 이런 작은 키로도 위대한 삶을 살았지만, 인격보다는 외형에 집착하면 콤플렉스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콤플렉스를 가진 삭개오가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은총을 입게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사람취급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친히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19:5)고 말씀하시고, 그의 집에 찾아오셔서 그와 함께 묵어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두 그를 경원시하고 멸시했지만, 주님은 그를 향해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고 말씀하시며, 그의 집에 구원을 선포하시고, 나아가 멸시와 온갖 비난을 받는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삭개오가 예수님께로부터 이런 은총을 받게 된 요인이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삭개오는 모든 문제를 안고 예수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눅19:3-4). 삭개오는 예수님이 그가 살고 있는 여리고성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로 치부해버릴 수 있었으나, 그는 예수님을 직접 뵈러 갔습니다. 삭개오는 아마도 여리고 가까이에서 일어났던 소경 바디메오를 치유하신 소문을 듣고, 직접 예수님을 만나 뵙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예수님이 메시야라면 그분은 과연 나를 어떻게 대하실까, 다른 사람처럼 나를 냉대하시고 죄인이라고 책망하지는 않으실까?'하는 생각이 맴돌았을 것입니다. 어떻든 그는 예수님을 만나 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이 걸어가고 계신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데는 두 가지 장애가 있었는데, 하나는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군중들입니다.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신 소문에, 여리고의 많은 사람이 몰려와 예수님을 구경하려고 에워쌌습니다. 그런 군중 틈에 섞여 예수님을 뵈는 것은 삭개오로선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삭개오가 군중들 틈에 섞이면, 평소 그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으로 군중들은 삭개오를 옆에서 팔꿈치로 치거나, 발로 차거나, 밀어버릴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장애는 그의 작은 키였습니다. 고대 지중해 연안의 주민들의 신체적 조건을 기준으로 보면, '작은 키'란 신장이 150cm 미만이 되는 키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런 왜소한 키를 가지고 군중들 틈에 끼여들어 예수님께로 나아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 가는 길이 군중들로 막히고, 또 자신의 작은 키로 뒤에서도 예수님을 볼 수 없자,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뽕나무에 올라가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 나오는데 무엇이 가로막습니까? 삭개오는 예수님께 나가는 길이 군중들로 가로막히고, 작은 키로 예수님을 볼 수 없자, 나무에 올라가서라도 예수님을 뵈려고 했던 그 열의가 주님으로부터 은총을 입게 된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영국 클램팜에 화가요 작가인 샬롯 엘리옷(Charlott Elliot)이란 여인은 20대부터 촉망을 받았는데, 30대가 되어 갑작스런 병을 앓고서 매사에 반항적인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걱정되어 친구인 말란 목사(Dr.Malan)를 집에 초대하여 신앙이야기를 하자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만날 수 있느냐?'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했습니다. 그때 이 목사님의 한 마디는 '당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그분에게 오시오(Just as you are)'였습니다. 이 말이 화살처럼 가슴에 찔리자 그녀는 주님이 자기 마음을 만지심을 느끼고 무릎 꿇고 주님께 자신의 인생을 드렸습니다. 그녀는 붓을 들어 찬송을 작사합니다.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주 보혈 흘려주시고 또 나를 오라 하시니 주께로 거저갑니다."(찬282장). 이 찬송의 제목은 [Just as I am]으로 빌리 그래함의 집회마다 이 찬송이 수많은 영혼을 주께 나아오게 했습니다. 어떻게 주님께 나아올 수 있습니까? 그 대답은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십시오'입니다.


둘째, 삭개오는 자신의 부끄러운 삶 속에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 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눅19:5-6). 뽕나무에 올라가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간절히 바라보던 삭개오를 주님도 쳐다보셨습니다. 주님은 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의 모습이 이상하여 구경하신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예수님을 뵈려고 나무 위에 올라간 그 간절함을 아시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야 속히 내려 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19:5)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개별적으로 부르시며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여러 사람을 묶어 집단으로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대하십니다. 성 어거스틴은 주님의 사랑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되, 온 세상에 사랑할 사람이 나 한 사람밖에 없는 듯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아마도 하나님은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했더라도, 독생자 예수님을 나 한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게 하셨을 것이다."


주님은 삭개오에게 "네가 어떻게 민족을 배신하고,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 백성의 재산을 수탈하고, 사람들은 굶주리는데 너만 호의호식하느냐? 그러고도 무슨 낯으로 나를 보러왔느냐? 민족의 반역자, 돈만 아는 수전노야!"하고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지난 날 무슨 죄를 지었든,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고, 자신에게조차 소외된 채, 한 가닥 소망을 품고 나온 그의 간절한 마음을 아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자기를 나무라지 않고 집에 찾아오시겠다고 하시자, 삭개오는 기쁨으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혐오하고, 아무도 그를 사람취급 하지 않는데, 만왕의 왕되신 우리 주님이 그의 이름을 개인적으로 부르시며, 그의 집에 찾아가 함께 묵어주셨습니다.


오래 전에 고재봉이란 흉악범이 육군 중령의 일가족 네 명을 도끼로 쳐죽여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가 잡혀 교도소에 있을 때 얼마나 살기가 등등했든지, 아무도 그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간수나 형무소 전담목사도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성경책이 소포로 배달되자 재수 없다며 집어던졌습니다. 휴지가 귀하던 때라 성경책을 찢어 휴지로 사용하다, 도대체 무슨 글인지 궁금하여 읽어보니 예사 글이 아님을 깨닫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한 감방에 있던 이인수 대령에게 "대령님,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받아줄까요?"라고 묻기에 형목에게 전하니 형목이 "그럼요, 용서받고 말구요"라는 대답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하더니 2천 명의 죄수 가운데 1,800여 명이 예수 믿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은 내 공로 아니라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았네"라고 찬송하며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삭개오는 이웃을 향해 사랑으로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눅19:7). '세리'란 곧 '죄인'으로 여기던 때, 주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 함께 식사하시니, 그를 인정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져(눅5:29-30) 사람들이 모두 수군대자, 삭개오는 주님께 감사했지만, 한편 자기로 인해 주님이 비난받는 것이 송구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19:8). 자기도 예수님처럼 이웃을 향해 베풀면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이 삭개오에게 먼저, "네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남의 것을 착취한 것은 네 배로 배상하면, 너를 용서하고, 네 집에서 함께 유숙하겠다"고 하셨다면 이것은 은혜가 아닌 율법입니다. 주님은 무조건 삭개오에게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며, 그에게 사랑을 선포하시자 이 절대적인 사랑에 삭개오는 '네 이웃에게 네 재산을 나눠 주라'는 말씀이 없었어도, 스스로 이웃을 위해 재산의 절반까지라도 나눠주겠다며, 이웃에 대해 닫힌 마음을 열게 된 것입니다.


여기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은, '빼앗은 것이 없는데 만약 있다면'이 아니라, "빼앗은 것은 무엇이나"라는 뜻으로, '빼앗은 것'을 전제하고 '네 배로 갚겠다'는 말입니다. 어떤 신자가 "진정한 변화란 무엇입니까?" 묻자, 목사님이 대답합니다. "마틴 루터는 세 가지 변화를 말했습니다. 머리의 회심과 가슴의 회심, 돈지갑의 회심입니다. 머리의 회심이란 지적인 변화로서 복음의 세계, 진리의 세계를 깨닫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가슴엔 뜨거운 사랑과 정의가 있어 그것을 이웃에 실천해야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물질에 대한 변화로서, 물질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회심의 척도가 됩니다." 삭개오는 머리와 가슴과 돈지갑이 회개한 참된 변화였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참된 변화를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삭개오가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기에 주님이 자기 집에 오심에 그토록 감격했지,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도리어 귀찮아했을 것입니다. 교회는 마땅히 구제해야하지만, 구제만으로 할 일을 다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역에서 노숙자를 섬기는 목사님이 말합니다. "복음사역은 빵만이 아니라 주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하는 것이기에 거듭남을 목표로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복지단체와 교회가 구별되는 것이고, 복지사와 목사가 다른 것으로, 교회는 정부나 복지단체가 할 수 없는 치유와 거듭남을 목표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쥐꼬리만한 자기 의를 아직도 의지하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선행이나 윤리적인 자존심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감격이 없고 신뢰가 없습니다. 나의 어떤 최선에도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절망을 깨달아야, 비로소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깁니다. 나의 절망과 불가능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여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김씨 성을 가진 한 장로님은 의사로서 자수성가한 분인데, 그가 예수 믿고 장로까지 되었는데, 그분 마음속엔 늘 한가지 꿈틀거리는 생각은 교회에서 보면 '왜 좀 쓸만한 사람은 나오지를 않고 이렇게 너절한 사람들만 나왔나?'해서 늘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산상부흥회에 가보았더니, 천막 속에 수천 명이 울고불고 데굴데굴 구르며 통회자복하는 것을 보고 '어쩌다 이런 한심한 사람들만 모였나?'하는 마음에, 이런 인간들이 모이는 장소에 자기가 끼어있다는 것조차 부끄러워 혼자 하나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따로 멀리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저 멀리에서 한 사람이 오기에 유심히 보니까 세상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남루한 옷을 입은 거지로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병신인데 어찌나 불쌍한지 '세상에 저렇게 비참한 거지가 있느냐?'며 보는데,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길 "저것이 바로 너다!"고 말씀하더랍니다. 깜짝 놀라서 자세히 보니, 정말 자기 얼굴입니다. 그 순간 그는 거꾸러져서 참회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때부터 잠을 자도, 잠에서 깨어도, 먹어도, 쉬어도, 길을 가도 계속 눈물이 흐르는데 한달 동안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참으로 황송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한달 동안을 울고 보니 이제는 누구를 보아도 다 존경스럽고 누구를 봐도 자기보다 훌륭하다는 마음으로 80여 세를 살다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삭개오가 자기를 불러주시고 자기 집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고 변화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나 같은 죄인을 용납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의 그 절대적인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조차 자기를 용납할 수 없는데, 주님은 나를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중생도 불가능하지만, 이 은혜가 없이는 믿음의 성장도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누리며,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이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OM국제선교회의 볼레타 스틸 크럼리 선교사에게 사람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세 아이 중, 첫째 아이는 네 살 때 백혈병으로 죽었고, 둘째 아이가 열 여덟 살, 셋째는 열여섯 살 되던 해,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던 남편이 임파선 호지킨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57살 되던 해, 대만에서 흉악범에게 성추행 당하여 모진 아픔과 수치를 겪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말합니다. "죽어 가는 아들을 안고 몸부림치던 밤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남편이 숨 한 번 들이마시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던 그 밤에도 하나님은 찾아와 말씀해주셨습니다. 환난을 당하니 평소 건강할 때 상투적으로 들리던 말씀이 결코 거짓이 아닌 진리임을 알았습니다. 흑암을 비추는 빛이었고, 마른 입을 적시는 생수였습니다. 하나님은 남편과 자녀를 데려가 다시 돌려주지 않으셨지만, 말씀으로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구원을 생각하고, 언젠가 이 땅을 떠나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야만 합니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했던 분이 장로 된 다음, 하나님과 사람 앞에 바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기도하다 어렸을 때 이웃집 참외밭 서리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을 해결해야겠다 싶어 그 과수원에 찾아갔더니 주인은 돌아가셨고 두 아들이 살고 있는데, 한 마을이었기에 잘 아는지라 그 돈을 내놓고 받으라고 하니, 이 분이 화내며 "자네가 출세했다고 나를 괄시하는가? 어렸을 때 참외서리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 나도 이웃집 복숭아 서리했는데, 그 돈 가져와 잘난 체 하는가!"하며 호통치더랍니다. "그게 아니라 내가 예수 믿고 장로가 됐는데 지난날 잘못된 것을 생각하다 이게 생각나서 가슴 아파 가져왔으니, 제발 좀 받아주게." 사정하니 "알았네"하고 받더니, 다음 주일 오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자네 보내놓고 일주일간 왜 자네가 그렇게 했나 몹시 궁금했네. 그래서 자네가 믿는다는 예수가 누군지 오늘 교회에 갔다왔는데 들을만하더군." 그리고 그 가정 모두 교회 나간다고 하더랍니다.


주님은 삭개오를 향해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고 말씀하시며, 버려지고 증오의 대상이었던 그를 공동체로 복귀시켜 형제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사12:1). 이 노래가 우리 노래가 되어야합니다. 지금이 은혜 받을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10절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관련영상
51:34
신촌아름다운교회 주일예배
2012.04.08.
01:00:35
신촌아름다운교회 주일예배
2012.09.16.
01:10:31
등촌제일교회 주일낮예배
2020.04.12.
28:22
구리지구촌교회 초청설교
2013.03.26.
31:19
구리지구촌교회 주일설교
2012.02.19.
35:28
등촌제일교회 주일낮예배
2014.01.19.
32:09
구리지구촌교회 주일설교
2013.11.05.
29:39
구리지구촌교회 주일설교
2013.12.01.
38:22
구리지구촌교회 초청설교
2014.08.10.
23:16
신촌아름다운교회 새벽예배
2014.10.31.

© Copyright 2011 - 2024 쉐마TV. All Rights Reserved
Serviced by 루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