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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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용 목사님

사도행전 11장 19~26절

설교요약 :

"이 이름에 합당한 자세"
2019년 6월 23일 주일예배
사도행전 11 : 19 - 26 ; 시편 20 : 7


한 남자가 늙은 갑부에게 어떻게 돈을 많이 벌었는지 물었습니다. "1932년, 사회적으로 엄청난 공황이 있었고, 내 손엔 딱 10센트가 있었다네." "난 10센트를 가지고 사과 한 개를 사서 하루종일 그 사과를 닦고 광내서 그 날 저녁 20센트에 팔았다네. 다음날도 20센트로 사과 두개를 사서 닦고 광내서 저녁에 40센트에 팔고 말야. 이렇게 한달 동안 사과를 사고팔고 했더니 수중에 백 달러가 들어왔다네." 젊은 남자는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으며 묻습니다. "그래서요?" 그러자 노인이 대답합니다. "그때 우리 장인이 백만 불을 유산으로 남기고 죽었어." 결국 유산 때문입니다.


짐 스토벌이 쓴 [최고의 유산 상속받기]란 책에 실린 실화입니다. 백만장자 레드 스티븐슨은 세상을 떠나기 전 고문변호사 해밀턴에게 유언장을 작성해서 맡깁니다. 변호사는 자손들을 모아놓고 유언대로, 아들에겐 석유가스 회사, 딸에겐 살던 집과 목장 등, 모든 자손들에게 유산을 골고루 분배하는데, 제이슨이란 손자에겐 유산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이슨은 돈을 물 쓰듯 쓰며 감사 따위는 전혀 모르고 살아온 천방지축 망나니로 할아버지 속을 썩였던 손자였습니다. 유산을 못 받은 제이슨은 분노와 경멸로 "그 짠돌이 영감탱이가 나한테는 한 푼도 안 남겨 주다니.."라고 소리치고 나가려하자, 변호사는 "잠깐만! 여기 자네 이름의 유언장이 있다네"하고는 비디오 테이프를 꺼내 틀자, 할아버지가 화면에 나타나 말합니다. "제이슨, 난 지금까지 행복을 돈으로 살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이렇게 죽을 나이를 되서야 행복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속에 있다는 걸 깨달았단다. 안 된 일이지만 내 가족들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밑바닥까지 떨어졌어... 솔직한 마음으론 전부 총으로 쏴 죽이고 싶지만 변호사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충고하기에, 인생이 뭔지 모르는 불쌍한 인간들에겐 먹고 살만큼 돈을 주기로 했단다. 하지만 제이슨 너는 어딘가에 희망의 불씨가 있다고 생각해서, 너한텐 돈 뭉치를 주어 당장 백만장자로 만드는 일은 않기로 했다. 앞으로 일년간 매월 1일에 변호사를 만나면 네게 매번 과제를 하나씩 줄 테니 네가 이 과제들을 잘 소화해내면 너는 내가 남긴 최고의 유산을 차지하게 될 거다. 그러나 만일 네 성질대로 참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면 당장 모든 걸 멈추고 너한텐 한 푼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제이슨은 길길이 날뛰었지만 '최고의 유산'을 얻으려면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12가지 과제가 제이슨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그 12가지는 일, 돈, 친구, 배움, 고난, 가족, 웃음, 꿈, 나눔, 감사, 하루, 사랑이었는데, 그것을 다 이루었을 때, 그에게는 10억 달러가 넘는 자선기금재단까지 주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최고의 유산을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당신의 이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 받고(요일2:12), 그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받으며(행2:21), 그 이름으로 기도하여 응답 받습니다(요14:14). 그리고 아무런 가치 없던 인생이 그 이름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인'이란 천국의 '로열 패밀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처음 성경에 등장합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6). '그리스도인'이란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뜻의 '그리스도'(Christ)와, 라틴어로 '무엇에 속했다'는 'ian'이 합쳐진 합성어로서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불리게 됐을까요? 본문에는 그리스도인이란 호칭이 어떤 경우에서 붙여지게 됐는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19절에 보면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서 기독교인에 대한 대대적인 핍박이 가해지자 당시 예수님을 믿던 사람들은 중대한 선택과 결단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 모진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에 안주하며 편히 살 것인가?'하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믿던 사람들은 사랑하는 주님을 결코 버리거나 떠날 수가 없어서 갖은 고난과 박해를 무릅쓰면서도 주님께 대한 신앙을 고수하였습니다. 그러자 더욱 박해는 심해졌고, 예수께 대한 신앙을 고수한 채,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살 수 없게 되자, 저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아무런 대책이 없이 자기가 살던 삶의 터전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모험을 요구하는 일입니까? 신앙 하나 포기하면 그만이었지만, 저들은 주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을 결코 포기할 수 없어, 정든 고향, 안정된 삶의 터전, 함께 정을 나누며 살던 이웃들을 버려 두고 어딘지도 모르는 미지의 땅으로 흩어져 피난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수리아의 수도로서 지중해 연안에 있는 인구 50만의 대도시인 안디옥에까지 오게 됩니다. 이들은 피부색이 다르거나 얼굴 모습이 다른 것도 아닌, 같은 유대인들이었기에, 기독교 신앙 하나만 포기하면 얼마든지 그대로 예루살렘에 머물러 살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믿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포기할 수 없어서, 갖은 환난을 당하며 뿔뿔이 흩어져 마침내 낯선 이방 땅인 안디옥에까지 피난외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에 대한 사랑이 없이 어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저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인하여 어떤 어려움까지도 기꺼이 감수하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즘처럼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할 때, 교회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 내 명예나 체면에 썩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처세에 능한 현대인들 중에는 무교회주의적인 자세로 교회를 멀리하거나, 비록 교회는 출석하지만 가급적 교회 일에 무관심하며 거리를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긴 해도 교회에 소속감을 갖지 않고, 예배는 참석하지만, 축도가 끝나기도 전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지혜로운 교회생활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믿음이 자라지 않고, 주님께 대한 사랑이 가벼워 신앙의 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확신이 없고 아무런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위해 고난 받으면서도 더욱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에게 붙인 것이 아니라 안디옥에 살고 있었던 불신자들이 당시 신자들을 보면서 "저들은 예수 때문에 그토록 고난을 받고 흩어져 여기까지 왔으면서도 또 다시 소리 높여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보니, 저들은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가보다"며, 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이 붙여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본문 이외에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베드로전서에도 나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6) 당시 '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와 유사한 이름이었습니다.


고 이중표 목사님의 [하늘을 품은 마음]이란 글입니다. - 시골에서 목회할 때입니다. 동네에 자수성가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는 신앙생활을 했지만 그는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그가 교회에 출석하여 첫 예배를 드린 후 심방을 갔습니다. 예배를 마치자 그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예수를 믿는데 비용은 얼마나 듭니까?" 나는 그에게 되물었습니다. "비용이 어느 정도면 믿으시겠습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담배 값 정도면 믿겠습니다." 나는 반색하며 말했습니다. "담배 값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러자 그는 1년치 담배 값을 계산해 그것을 주일헌금과 감사헌금으로 나누어 드렸습니다. 1년이 지난 후 세례를 받으라고 권했더니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세례 받으면 십일조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그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십일조를 드리려면 수확의 십일조를 드려야합니까? 순익의 십일조를 드려야합니까?" "둘 다 십일조입니다. 편한 대로 하세요." 그는 쌀 두 가마니를 십일조로 바치고 세례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해 그는 쌀 열 가마니를 십일조로 드리기에 물었습니다. "요즘, 예수 믿는 비용이 많이 올랐네요?" 내 질문에 그는 놀라운 대답을 했습니다. "목사님, 예수를 믿어도 이제부터 비싸게 믿기로 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게 모든 것을 주셨는데 나는 싸구려로 믿으려고 했습니다. 고귀하신 분을 비싸게 믿는 게 당연하지요."


둘째,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행11:19-20). 이들은 환난 때문에 흩어져 낯선 안디옥까지 왔습니다. 멀리 낯선 땅에 온 사람들의 최우선 과제는, 그곳에서 안정된 삶을 위해 정착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성도들은 환난 때문에 흩어져 멀리 낯선 곳에 와서 집 장만하고 정착하는 일보다도 먼저, 주 예수를 전파했습니다. 사도행전 26장에서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전도하자, 아그립바가 말합니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26:28). 여기서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이란 말과 일치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성경은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눅6:45)고 하여, 사람들은 마음속에 가득한 것을 입술로 말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의 입에서 자주 반복되어 나오는 말이 그의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전도하면 "당신이야 팔자 좋고 살 만하니까 예수 믿으라고 하지, 나 같은 사람이야 먹고살기 힘들어 한가하게 예수 믿을 수가 없다"는 대답을 듣습니다. 그러나 1세기의 성도들은 그 환난 중에도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발걸음 닿는 곳마다 전파했습니다. "주 예수를 전파하니"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로구나!"라고 별명 붙였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전하여 사람들을 구원하고 그들의 삶을 바꾸는 것이 최고의 관심이었습니다.


1894년 백령도 출신 당상관이었던 허득은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인 황해도 소래교회가 마을을 바꾸고 변화시킨 소식을 듣고 감명을 받아 스스로 성경을 구하여 읽기 시작합니다. 1898년 9월 그는 마을 사람을 모두 모아놓고 자신이 깨달아 알게 된 성경 이야기를 하며 함께 예수 믿자고 설득하자, 동리 사람들이 박수치며 만장일치로 예수를 믿기로 결의합니다. 그 날부터 저녁이면 이 섬사람들은 사랑방에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하다가, 마침내 1898년 10월 9일 황해도 소래교회 서경조 장로와 연락하여 백령도 중화동교회를 창립합니다. 1900년 11월 8일엔 언더우드 선교사를 초청하여 세례문답을 받고 허득을 위시한 7명이 세례 받습니다. 그 후 백령도는 전라도 증도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범죄율이 적은 섬, 주민 4,000명 중 약 80%가 예수를 믿고, 이웃이 서로 돕고 섬기는 낙원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변화의 출발점에 허득이라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허득은 1902년 6월 3일 자손들을 모아놓고 '예수 잘 믿으라'고 유언한 내용이 교회 앞마당 비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입니다. 23절에서 바나바가 말합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믿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행11:23). 바나바는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머물러 있습니까? 이 바나바의 인격에 대해 24절에 말씀합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24절). 바나바는 주님의 마음을 품었고, 그의 삶은 주님의 삶을 방불케 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문서에는 '그리스도인'이란 말을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뜻과 함께 '작은 그리스도'라는 의미로도 쓰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이웃은 우리를 통해 작은 그리스도를 느끼고 있을까요? 우리가 증거하는 복음에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있습니까? 아니 우리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고난을 다룬 에미 카미켈의 책에 의미 있는 예화가 나옵니다. 그가 인도의 대장장이에게 "당신이 금을 연단할 때, 이것이 순금이 된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대장장이는 "금 속에서 내 얼굴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연단합니다. 불순물이 섞여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방법은 그 속에 비치는 내 얼굴이 얼마나 정확하게 잘 보이느냐를 가지고 결정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인격에 주님의 형상이 보이고 있습니까?


브라질의 성자로 불렸던 미국 선교사 멜랜드 내외는 평생을 깊은 산골에서 선교하면서 네 번이나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곳 주민인 풀리오 인디언들은 처음 멜랜드 내외를 '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그들을 무기로 괴롭혔던 그 '백인'들을 부르던 증오에 찬 명칭이었습니다. 그 후 멜랜드 내외는 의료봉사로 주민들의 병을 치료하는 헌신적인 생활을 하자, 그를 부르는 명칭이 '존경하는 백인'으로 바뀌었습니다. 멜랜드 내외는 풀리오 인디언들의 언어를 열심히 배워 10년 후엔 그들과 다름없는 유창한 말을 구사하고 생활도 그들의 풍습대로 살았더니 그들은 멜랜드 내외를 '백인 인디언'으로 불렀습니다. 어느 날 부상당한 인디언 소년의 발을 씻어주는 모습을 보고 인디언들이 "인디언의 발을 씻는 백인을 보았는가? 이 사람들은 하늘이 보내준 사람이다"며 그때부터 멜랜드 부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개독'이라 욕하는데, 이 말은 '개신교'와 '기독교'를 합성한 말로, 믿는 자들을 욕하는 호칭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2:2)는 말씀처럼, 믿는다는 사람들이 분열과 싸움을 일삼고,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주님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간디의 말입니다. "I like Christ. but, I don't like christian. because they are not like Christ."(나는 그리스도는 좋아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단코 우리 주님을 욕되게 해선 안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란 이름과 함께 교회에선 '집사'나 '권사', '장로', '목사'라는 이름도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호칭뿐 아니라, 우리의 정체이기에 이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첫째, 우리에게 주어진 이름의 의미를 알고 그 이름 값을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눅8:30). 원래 '시몬'이었던 그의 이름을 '반석'이란 뜻의 '베드로'로 부르시며, 그의 믿음 위에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신 대로 예루살렘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름 값'이란 '이름에 알맞은 행동이나 그 평판 때문에 치르는 대가'인데, 우리는 우리의 이름 값을 다해야 합니다.


모루드개 햄이라는 별로 이름 없는 시골 전도자가 복음을 전하는데,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안 모이면 설교자는 힘이 빠지기 쉬워 이 사람도 그냥 적당히 설교하려는 유혹이 들었는데,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야, 최선을 다해야 해. 비록 적게 모였지만 이 사람들 중에서 이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놀라운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그는 "하나님, 오늘의 설교가 누군가의 마음에 부딪쳐 그에게 영향을 끼치게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 증거하자, 한 학생이 자기의 삶을 주 앞에 바치겠다고 헌신했는데, 그가 바로 빌리 그래함입니다.


둘째, 우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6). 마귀는 어떻게든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내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서울시가 지난 6월 5일 사회복지시설에 대해 '종교행위 강요 특별신고센터'를 열고, 오는 7월 31일까지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 사회복지시설에 '종교행위 강요 특별신고센터'를 운영한다고 밝혀 많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시설은 6.25 전쟁 이후 어려운 국민들을 위해 선진국의 구호금을 받아 종교단체들이 운영해왔는데, 이 시설에 서울시에서 얼마간 지원하면서, 본래 종교법인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지우려고 종사자들의 종교행위를 단속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학교 상담교사가 학생인권조례의 '종교 강요 금지' 규정을 들어, 어머니가 교회에 가자고 했다고, 아들에게 어머니를 경찰에 고발토록 했습니다. 이런 불신의 세상에서도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합니다.


셋째, 우리에게 귀한 이름을 주신 주님께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1-2). 우리에게 주어진 이 이름으로 구원받았고, 이 이름으로 기도하여 하늘의 능력과 보화를 얻게 되고, 이 이름으로 마귀와 대적하여 승리하며, 이 이름을 가지고 장차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뵙게 되었기에 '그리스도인'이란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복된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충성과 헌신을 주님께 바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알렉산더 황제 밑에 알렉산더라는 이름의 병사는 문제 많은 생활을 하여 알렉산더란 이름에 욕을 돌렸습니다. 황제가 이 소문을 듣고, 병사 알렉산더에게 말했습니다. "네 이름이 알렉산더이냐?" "네" "황제인 내가 네게 명령한다. 네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네 생활 태도를 바꾸도록 하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잘못된 행실을 하면, 그리스도께서 욕을 먹는다는 사실입니다. 에라스무스는 "터키인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한다면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선교초기에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는 한 마부가 자신이 모시는 왕손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마부가 왕손을 모시고 지방에 내려가게 되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부가 왕손에게 복음을 전하며 "나리, 예수님을 믿으시지요"하고 권했습니다. 그러자 왕손이 어이없다는 듯 이렇게 비아냥거렸습니다. "야, 이놈아, 네까짓 상놈이 예수 잘 믿으면 누가 양반이라도 시켜준다더냐?" 이에 대한 마부의 대답은 우리에게 잊지 못할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나리, 예수님을 믿는 도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예수님을 더 잘 믿으면 마부노릇을 더 잘해야합죠."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제가 이렇게 예수님을 잘 믿는데, 언제 왕손 시켜줄 것입니까?"하고 따지진 않습니까? 참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잘 믿으면 마부 노릇을 더 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 가정과 직장과 교회를 위해, 마부노릇을 더 잘하면 내 자녀와, 내 남편과, 아내가, 왕손대접을 받게될 것입니다.


미국 텍사스에 한 교회 앞마당에서 유전이 발견되었습니다. 엄청난 유전 가치가 있는 그 마당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를 의논하던 교회는 유전 이익 배당금이 줄어들까 봐 더 이상 교인들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망했고, 교인들도 불행해지고 말았습니다. 위대한 교회는 은과 금이 남아도는 교회가 아니라, 전도와 선교를 위해 모든 은과 금을 사용하고 스스로 가난해 지고, 다만 예수님의 이름만 가득한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오직 구원이고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위기 속에서도 우리 성도들이 예수의 이름을 붙들면 일어설 것입니다. 우리 가정도 우리 사업체도 예수의 이름을 붙들면 힘있게 일어설 것입니다. 주인 되신 분이 친히 주님의 이름을 위해 사는 그 가정과 사업과 공동체를 책임져주지 않겠습니까?


다윗은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20:7)고 고백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서 그 분이 더 위대해지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 분을 섬기면 우리가 오히려 위대해진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마음으로 주님을 따를 때, 우리를 '그리스도인'라는 가장 존귀한 이름을 주실 것입니다. 이 이름의 의미를 바로 알고, 이 이름에 합당하게 살며, 이 영광스런 칭호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1장 19~26절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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