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8 84회
“이 여인의 아름다운 헌신”
2018년 3월 18일 주일예배
마가복음 14 : 1 - 9 ; 잠언 8 : 17
한 남자가 기도원에 들어가 쉬지 않고 기도한지 삼 년 째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네 정성이 갸륵하여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노라.” 그러자 남자가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저택을 주십시오.” “알았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멋진 자동차를 주십시오.” “알았다.”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최고의 여자를 주십시오.” 그러자 남자의 앞에 수녀복을 입은 테레사 수녀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최고 영향력 있는 여자는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일 것입니다. 그녀는 지난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세실 B 드밀 공로상을 받고 남긴 인상적인 수상연설로 일약 차기 대통령후보로 떠올랐는데, 2020년 대선 출마 여부를 묻자 “하나님께 ‘내가 대선에 나가야 한다면 알려달라’고 기도했는데, 아직 응답을 받지 못했다”며, “나한테 선거운동 자금으로 10억 달러(1조 800억 원)를 주겠다는 부유한 지인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지독히 가난한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할머니 손에서 자라면서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14세에 미혼모가 됐는데, 아이가 2주 만에 죽자, 그 충격에 가출하여 마약 복용으로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살았습니다. 당시 그녀는 살려는 의욕이 전혀 없어, 107kg의 뚱뚱한 몸매였는데, 이런 기구한 삶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믿음으로 변화된 친아버지와의 재회였습니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매주 책을 읽게 했고, 성경을 읽고 암송하는 훈련도 시켰습니다. 그녀는 열아홉 살에 네쉬빌 TV방송국에 흑인 여성 최초로 뉴스앵커로 발탁됐고, 3년 후엔 좀 더 큰 볼티모어 TV방송국 6시 뉴스앵커로 진출했으나 그녀의 뉴스 전달이 너무 감정에 치우친다며 아침방송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로 좌천시켰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대 이상으로 성공하여, 그녀는 이제 전 세계 132개국 1억 4천만 시청자를 웃기고 울리는 ‘오프라 윈프리 쇼’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그녀는 그 바쁜 중에도 매일 감사 이유 5가지를 찾아 [감사 일기]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 이웃과 나누고 있습니다. 2004년에 그녀는 시청자들에게 ‘형편이 어려워 고물차를 바꾸지 못하는 사람에게 새차를 선물하겠다’고 광고한 후, 사연을 보낸 사람 중 2백 76명을 초청, 그 중 11명을 선정하여 시가 3천만 원 가량 되는 GM의 폰티악 G6를 선물해 사람들을 경악시켰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265명에겐 작은 상자를 주며 “그중 한 상자에 마지막으로 드리는 12번째 자동차 열쇠가 들어있다”며 동시에 개봉하게 하자, 방청석 곳곳에서 또 다시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든 상자에 새 자동차 열쇠가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오 맙소사!’ ‘믿을 수 없어!’를 외치며 흥분했고, 윈프리는 마이크를 들고 펄쩍펄쩍 뛰며 “모두 차를 받았어요!” (Everybody get the car!)라고 외치며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간 멋진 여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오프라 윈프리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한 여인이 나옵니다. 본문 1절에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란 말씀을 보십시오. 유월절은 유대력으로 니산월 14일과 15일에 해당하는 날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전날 밤, 죽음의 사자가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쳤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 그 재앙을 받지 않은 것을 기념한 날입니다. 그리고 무교절은 니산월 15일부터 21일까지 기간으로 급히 애굽을 빠져나오던 때, 1주일 동안 무교병을 먹었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유월절과 무교절’이라고 부른 것은 유월절부터 시작하여 무교절까지 8일간 절기를 지킨 것에서 비롯되어 하나의 절기처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예루살렘 근교인 베다니에 살고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지고 있었습니다. 여기 ‘나병환자 시몬’이란 이름은 아마도 그의 별명으로 보이는데, 만약 그가 지금도 나병환자라면 유대의 결례법상 이 집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나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식사한 것을 보면 그는 지금 완치됐는데, 아마 일전에 예수님으로부터 나병을 고침 받은 긋으로 보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나병환자 시몬은 나사로의 아버지나, 또는 나사로 자신, 혹은 마르다나 마리아의 남편 등으로 추정되는데, 그 확실한 증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한 여자’라고 기록된 사람이 누군지, 마태와 마가는 익명으로 했는데, 요한복음에선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로 밝혔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마리아의 이름을 익명으로 감춘 이유를 성서학자들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기록될 당시는 마리아의 가족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알려지면, 이 일로 인해 유대인들에게 당할 보복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자 이름을 감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이 기록될 때는 이미 그 가족이 생존해 있지 않아서 마리아라는 이름을 언급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기에 그녀의 이름을 기록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높은’, 혹은 ‘쓴 것’이란 뜻의 이름인 마리아는 나사로와 마르다의 동생으로 일찍 부모를 여의고, 베다니에서 살며 예수님께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히말라야산맥이나 인도에서 나는 ‘매우 값진 순전한 나드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부어드렸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풍습은 귀한 손님이 방문하면, 손님 머리에 이 향유를 바름으로 손님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갖췄는데, 마리아는 향유가 담긴 옥합의 목을 깨뜨려 주님께 이 향유 전부를 부어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향유의 값이 무려 삼백 데나리온이라고 5절에 말씀합니다. 데나리온은 로마의 화폐단위로서 1데나리온은 당시 장정의 하루품삯에 해당하는 가치로서, 3백 데나리온이면 장정이 거의 1년 동안 일해서 벌 수 있는 액수로서 상당한 고액의 돈이었습니다. 이렇게 비싼 향유를 마리아가 지니고 있었던 것은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의 혼수를 위해 마련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리아에게 화를 내며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막14:4-5)하며 마리아를 책망하였습니다.
본문엔 ‘어떤 사람들’이라 기록되었지만, 마태복음에서 ‘제자들’로, 요한복음에선 ‘가룟 유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 일행의 회계역할을 맡았던 가룟 유다가 큰소리로 마리아를 책망하자, 다른 제자들도 이에 동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자들 생각은 그렇게 큰돈을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데 썼더라면 좋았을 것을, 예수님 머리에 부어 낭비했다는 책망이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책망은 일면 합리적인 주장이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의 발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 30냥에 자기 스승을 팔아먹은 가룟 유다가 3백 데나리온 어치 향유를 주님께 부어드린 마리아를 비난한 것은 그 주장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옳다해도 그의 속셈은 파렴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주님은 항상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며, 저들을 돕고 사랑할 것을 명하셨기에, 성도의 일차적인 사랑과 섬김의 대상은 먼저 하나님입니다. 첫째 되는 계명을 묻는 질문에 예수님은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2:29-31)하신 것을 보면, 이웃 사랑보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앞서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머리 위에 3백 데나리온 어치의 향유를 한번 부어드리고 나면, 그것으로 다 없어져버리는데, 장정의 1년치 임금이나 되는 그 비싼 것을 부어드린 것은 어찌 보면 분명 낭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앞둔 시간입니다. 인류를 위해 대신 죽으시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향유를 부어드린 이 행위는 매우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이 행동을 두둔하며 칭찬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책망에 죄송하여 ‘혹시라도 주님께 누를 끼쳐드리지 않았나?’하며 몸둘 바 몰라하는 마리아를 향해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녀의 행위에 최상의 의미를 부여해주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위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동참한 일로서, 당신이 기뻐 받으시고 영원히 기억할 만한 아름다운 일로 간주해주십니다. 제자들이 말한 ‘가난한 자를 돕는 일’은 언제나 할 수 있는 윤리적인 선행인데 비해,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행위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왕 되신 예수님의 즉위식이며, 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죽음을 위한 장례의식이라고 신앙적인 차원으로까지 귀하게 그 가치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는 말씀에서, 우리 번역은 ‘좋은 일’이라 했는데, 대부분의 영어 번역은, ‘아름다운 일’(A beautiful thing)로 번역했습니다. ‘저가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며, ‘그는 힘을 다하여’(8절)행한 아름다운 일일뿐만 아니라, 이 일은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으로까지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단지 손님접대 차원을 넘어 메시야의 장례를 위한 신앙적 차원으로 인정하십니다. 나아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9절)하심으로 이 일은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에 기여한 사건으로, 이 사건 자체가 복음의 내용이며, 이 일은 어디서든지 복음과 함께 소개되어 기념되리라는 최고의 축복으로 보답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이 헌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감동시킬 만큼 아름다운 헌신이 되었을까요? 첫째, 몸과 마음으로 드린 헌신이었습니다. 본문은 단순하게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라고 기록했지만, 요한복음에는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12:3)고 말씀합니다.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 드린 것은, 가장 겸손한 태도요, 예수님을 극진히 높인 최고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여인의 가장 귀한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닦아드린 최상의 헌신이었습니다.
가난과 전염병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에 시달리던 지난 1912년,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푸른 눈의 간호사가 찾아왔습니다. 독일에서 태어난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간호학을 공부하고 안락한 삶을 뒤로한 채 32살 처녀 몸으로 조선에 온 것입니다. 조선에 도착한 그녀는 조랑말을 타고 자주 전국을 순회하며 한센병 환자를 포함해 온갖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돌보고 다니며, 자기 이름도 갖지 못하고 ‘큰 년’, ‘작은 년’, ‘지리산 댁’ 등으로 불리던 수백 명의 여성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순회할 때마다 온몸에 들러붙은 이를 잡느라 밤을 지새우는 것이 그녀의 삶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보건의료시설은 매우 열악하여, 그녀는 광주제중병원을 중심으로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가난한 여인들의 교육에 힘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의 수양딸 13명과 나환자 아들 1명 등 14명의 아이를 입양해 기르기도 했습니다. 한센인을 돌보고 고아들을 자식 삼아 살던 그녀는 정작 자신은 끼니를 제때 챙겨 먹지 못할 정도로 궁핍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돕기 위해 자신의 생활비마저 쪼개어 쓰며 22년의 세월을 조선에 헌신했습니다. 그녀는 항상 말했습니다. “내일 나 먹기 위해 오늘 굶는 사람을 그대로 못 본 척 할 수 없으며, 옷장에 옷을 넣어놓고서 당장 추위에 떠는 사람을 모른 척 할 수 없습니다.” 평생을 누렇게 바랜 옥양목 저고리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는 소박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사치로 생각했던 그녀는 먹을 것을 줄여가며 모으고 모아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결국에 그녀는 영양실조로 5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장기마저 의학 연구용으로 기증했습니다. 그녀가 남긴 것은 걸인에게 나눠주고 남은 동전 7전, 강냉이가루 2홉, 그리고 반쪽 짜리 담요 외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죽자 천여 명에 달하는 장례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애통해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어머니’라 부르며 함께 애곡했습니다. 푸른 눈을 가졌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어머니로 살다간 그녀는 서서평(엘리자베스 쉐핑) 선교사입니다. 평생을 가난한 자, 병든 자를 위해 헌신한 봉사와 사랑과 섬김의 삶이었습니다. 그녀의 이런 헌신적인 삶은 이 땅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해져 복음을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둘째, 마리아는 최선의 것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었다”(8절)고 하십니다. 마리아는 그녀가 지닌 최상의 것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풍습에 혼수품의 가장 중요한 것이 옷과 향유라고 하는데, 아마도 마리아의 어머니가 딸들에게 혼숫감으로 이 향유를 물려준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결혼하게 되면 이것을 가지고 가라며 남겨주신 귀한 유산이며, 그녀의 앞날 모든 희망과 꿈이 담긴 어쩌면 그녀의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그녀의 유일한 보화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부은 향유는 그녀가 가진 것 중의 가장 귀한 것으로, 지고의 사랑을 예수님께 드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15년 3월 21일, 국민일보에 [엄마의 눈물, 마르지 않는 샘이 되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는(딤후2:22) 청년이었습니다.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는(잠22:6) 어머니였습니다. 2009년 9월 22일, 그 청년이 스물 일곱 청춘에 교통사고로 죽자 어머니는 혼절했습니다. “내 수금은 통곡이 되었고 내 피리는 애곡이 되었구나”(욥30:31)라고 탄식하며 날을 지새웠습니다. 한 목사가 있었습니다. 늘 웃는 얼굴에 손이 참 따뜻했습니다. 교인들과 악수를 나누며 복음과 구원, 천국을 이야기했는데, 어느 날 강단에서 처음으로 고백합니다. “다섯 살 장애아들을 잃은 적 있습니다. 지금도 그 사망진단서를 버리지 못하고 가방 속에 넣고 다닙니다.” 목사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참으며 ‘생명을 살리는 물’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지금도 가난한 나라에선 마실 물이 없어 죽어 가는 어린 생명들이 갈급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말에 어머니는 ‘쿵’하고 가슴이 무너지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어머니는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며, 하나님 원망도 했으나, 아들을 떠나보내기로 하고, 아들의 뜻에 따라 필리핀에 우물 파주기에 나서 아들 이름을 딴 ‘철희의 우물’이 용솟음치게 했습니다. 그러자 감동 받은 교회 교인들도 그 사역에 동참하여 2015년 3월 21일에 81번째 우물을 팠습니다. 죽음은 기적을 낳고, 기적은 생명수를 퍼 올립니다.
셋째, 마리아는 최선의 때에 주님께 헌신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오시기 전부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시고, 이 일을 위해 비장한 결심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눅9:51)고 했고,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하실 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26:38)고 제자들에게 부탁하실 만큼 몹시 마음이 괴로우셨는데, 제자들은 서로 자기가 더 높아지려고만 했지, 아무도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는 제자가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가시밭의 백합화처럼 아름다운 헌신이 있었습니다. 만약 마리아의 이 헌신마저 없었다면,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신 주님의 마음은 얼마나 더 외롭고 참담하셨겠습니까? 예수님으로선 가장 고독하고 힘드실 때, 마리아가 위로를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초기, 갈릴리에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크신 능력을 행하실 땐, 그토록 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따랐지만, 지금은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살벌한 분위기에서 제자들마저 하나 둘 떠나갔는데, 나약한 여인이 예수님이 가장 외롭고 힘드실 때, 최상의 사랑을 드림으로 주님께 크나큰 위로와 격려를 드렸습니다.
시카고의 한 교회에서 한 가난한 여성이 예배 중에 헌신의 감동을 느끼고 무언가 하나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곧 그녀는 자기의 손에 있는 결혼반지를 빼어 헌금쟁반에 올려놓았는데 그 모습을 한 집사가 물끄러미 지켜봤습니다. 예배 후, 헌금 계수하며 재정위원들이 목사님께 그 반지를 돌려주자고 하여, 목사님이 그 여성을 불러 말했습니다. “성도님의 마음과 사랑은 이미 다 받았습니다. 이 반지는 그냥 도로 가져가 주세요.” 그때 여인이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그 반지를 도로 가져갈 수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교회에 드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 말에 목사님은 전율하는 감동을 느꼈고, 교회에 엄청난 회개의 바람이 불었답니다.
‘기회’를 영어로 ‘Opportunity’라고 하는데, 이 말은 ‘Ob + Portu’(앞에서 + 항구)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배들은 항구 가까운 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파도가 몰려오기를 기다려 항구로 진입하는데 한번기회를 놓치면 다시 파도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파도가 몰려올 그때를 놓치지 말고 응답하여 감사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릴 생각은 했더라도 ‘다음에 좀더 여유가 생기면 하지, 지금은 내게 이것밖에 없는데’하고 미뤘다면, 그 이틀 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영영 기회를 놓쳤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최선의 때 최상의 헌신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이로 인해 주님께 그토록 큰 위로와 기쁨을 드릴 수 있었고, 주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은 결과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그 아름다운 헌신도 함께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박은희 씨의 [어머니의 기도가 빚어낸 하나님의 가능성]이란 간증입니다. 오랫동안 친구들과 함께 돈을 모은 일이 있었다. 졸업하면 목돈이 필요할 것 같아 적금 들었는데, 당시로선 거액인 30만원을 4학년 때 받았다. 난생 처음 큰돈을 수중에 쥐게 되자 기도부터 나왔다. “하나님, 이 돈을 어디다 쓸까요? 어떻게 할까요?” 마치 아버지에게 여쭙듯 그렇게 기도하는데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의 심정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물질의 옥합을 깨뜨려 사랑하는 예수님 앞에 드리라는 신호였다. 동시에 미아리에 사시는 어떤 목사님 한 분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아, 그분에게 드리라는 건가요?” 나는 당장 미아리로 향했다. 숨을 헐떡이며 미아리 언덕을 올라가는데 내가 만나려는 목사님의 사모님이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게 아닌가. 사모님은 나를 보자 인사를 건넸다. 어디 가시느냐는 나의 물음에 “방 보러 다녀. 방을 얻어야 하는데 쉽지가 않네. 돈이 부족해.” 사모님의 말씀에 나는 얼른 품안에 있던 돈을 꺼내드렸다. “이걸로 방 얻으세요.” 한 뭉치의 돈을 선뜻 건네자 사모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냥 드리는 거예요. 저 적금 탔거든요. 근데 이 돈, 목사님 드리라고 해서요.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그런 분이셨다. 가난을 모르고 살아서 자기 혼자만의 행복감에 도취되어 살 수도 있는 한 청춘을 붙드셔서 섬김의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하시는 분, 그런 멋진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다. 나는 그 하나님으로 인해 내 청춘의 시기를 더욱 풍요롭게 보낼 수 있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로잡아 주셨기에 나는 그 방향을 따라 살며 누구보다 풍성한 청춘기를 보낼 수 있었다. 별 걱정 없이 대학 생활했던 거나, 그런 생활 가운데 절약해서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은 목적을 따라 내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리아는 행복한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 소박한 마음으로 가지고 있던 가장 소중한 보물인 옥합을 깨어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렸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한 일이 되었고, 이로 인해 예수님을 그토록 기쁘게 하여,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이야기가 함께 전해지는 가장 아름다운 헌신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비난했지만, 예수님은 그녀의 이 아름다운 헌신을 받으시며, 그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칭찬해주셨습니다. “아무 것도 희생하지 않고,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믿음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에겐 어떤 희생이 있습니까?
스펄전의 기도입니다. “주님, 내 몸의 살 중 단 한 점이라도 주를 위해 찢어지길 싫어하는 살이 있다면 그것을 도려내 주소서. 내 혈관에 흐르는 피 중 한 방울이라도 주를 위해 흘려지길 거절하는 피가 있다면 그것을 쏟아버려 주소서. 나는 주의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주님께 기억될 헌신이 있어야겠습니다.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