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2 53회
"부모를 공경하며 기쁘게 하라"
2019년 5월 12일 어버이 주일
잠언 23 : 22 - 26 ; 골로새서 3 : 20
초등학생들에게 "5복이 뭐냐"고 물었더니 별의별 이상한 답이 다 나왔는데, 그 중에 가장 웃기는 답은 [초복] [중복] [말복] [8,15 광복] [9,28 수복]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서삼경 중 [서경]에 있는 '오복'을 기본으로 인정하여, '수(壽)', '부(富)', 육체적, 정신적 건강인 '강녕(康寧)'과, 남에게 선행을 베풀어 덕을 쌓는 '유호덕(攸好德)', 그리고 천수를 다하는 '고종명(考終命)'을 '오복(五福)'으로 칩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서울의 모 일류여자대학에서 "오복에 하나를 더해 6복으로 하면 무엇으로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의 1위가 '조실부모'로서, '부모는 재산만 남겨놓고 빨리 죽으라'고 했다고 모 일간지에 소개되었습니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습니다.
2017년 말, 어머니가 자신에게 잔소리를 한다는 이유로 흉기를 휘둘러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 이야기가 기사화 되었습니다. 아들은 직장을 다니지 않고 잦은 음주로 어머니와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사건 당일 아들은 어머니의 잔소리에 격분해 나무의자와 흉기를 휘둘러 어머니를 살해했습니다. 아들의 칼에 찔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숨져가며 어머니가 아들에게 한 마지막 말은, "옷 갈아입고 도망가라"였습니다. 사랑 받을 자격도 없는, 인간이길 포기한 듯한 살인마도, 그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아들'이었나봅니다. 무모할 정도로 조건 없는 어머니의 사랑에 가슴이 저립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뿐인 자식을 위해 평생 모은 돈을 써버린 할아버지 노후는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몇 푼 안 되는 노령연금으로 친구들 만나기도 어려워 자주 외출도 못합니다. 오래 전 이민간 친구가 잠시 귀국하여 한번 만나 회포를 풀고 싶은데 할아버지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범아, 혹시 10만원 빌릴 수 있겠니?" 아들은 한숨을 쉬며 말합니다. "아버지, 손자가 내년이면 학교 들어가요. 애들에게 쓸 돈도 모자란 것 아시잖아요." 아들은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며 아버지 요청을 거절하고 출근해버립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려 외출하게 해드렸습니다. 아들은 그 날 회사에서 좋지 않은 일로 기분이 언짢았는데 집에 오니,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밖에서 흙장난을 하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거실에서 돌아다녀 더욱 짜증났습니다. "여보, 애가 이렇게 더러운데 왜 아직도 씻기지 않았어?" 아내가 태연하게 말합니다. "아들 애지중지 키워봤자, 어차피 나중에 제 자식 돌보느라 우리한텐 신경도 안 쓸 거예요. 그런걸 보고 배우며 자라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저도 이젠 애한테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살려고요." 남편은 아침에 자신이 아버지께 했던 일이 기억나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부모님께 하는 모습을 자식들은 그대로 보고 배우며 자랍니다.
오늘 말씀은 부모에 대한 세 가지 효도의 자세를 말씀합니다. 첫째는, 부모님의 말씀을 청종하라고 하십니다. 22절에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했고, 사도 바울도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3:20)며, 효도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립니다. 효도하면 지혜로워지고, 효도를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어집니다. 유대인이 세계적으로 강인하고 우수한 이유는 전승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도 잘못한 일이 있을 때 "너는 나처럼 하지 말아라"하는 뼈아픈 부탁을 하는가 하면, 잘한 일에는 "나를 따르라"하고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가르칩니다. 자식이 부모의 교훈을 그대로 받아들여 거기에서 출발하면, 그는 인생을 2학년부터 시작하지만, 반면 부모 말씀을 거역하여, 부모가 도박으로 망했을 때, "제발 도박을 멀리하라"고 권면할 때, 그 말씀을 듣지 않으면, 그는 결국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경공부 교재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저술한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나는 세 살 짜리 아이를 둔 한 부부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부모가 '이리 온'이라고 말할 때, 그 아이는 언제나 불순종하듯 반대편 방향으로 뛰어가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책망을 하기는커녕 '허허, 아주 귀엽죠?'라고 말했습니다. 하루는 그 아이가 앞마당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대문은 열려 있었고 아이는 두 대의 차가 주차된 사이에서 뛰어 놀았습니다. 차가 오는 것을 본 엄마가 '얘야, 이리 온!'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웃으면서 평상시대로 반대편 방향으로 뛰어가 막 달려오는 차 앞으로 뛰어들어 그만 현장에서 즉사하였습니다. 그것이 제가 처음으로 집례한 장례식이었습니다."
우리가 부모 말씀을 청종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부모의 인격(personality) 때문이 아니라, 권위자의 위치(position)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든 권위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13:1). 우리가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은 부모의 인격을 존중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그분을 존경한다, 않는다를 떠나서, 그분이 내 부모라는 사실과, 그 위치를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존경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권위자를 통해서 우리를 성숙시키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벧전2:18)고 했습니다. 직장이나 가정의 까다로운 분에게도 성경은 '순종하라'고 했는데, 그 이유를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벧전2:19)고 했습니다. 부당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윗분의 권위를 존중하여 참고 순종하면 아름다운 일입니다.
셋째, 부모가 내게 지시하는 명령이나 금기의 근본동기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히12:6). 부모님의 책망이 적절치 않는 경우에도 잊지 말 것은, 그 동기는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혹시 부모가 자녀에게 교회 나가지 말라고 막기도 하지만, 그것도 성적 떨어질까 봐 염려 때문이지, 부모가 마귀라서 자식 구원받지 못하게 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럴 땐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부모의 염려가 기우임을 입증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망치와, 어머니라는 정을 통해서 자식을 깎고 다듬어서 빚으시는데, 이를 거부하게 되면, 자녀는 아름다운 보석이 될 수 없습니다.
아기를 빼앗은 악어가 그 어머니에게 문제 냈습니다. "내가 아기를 잡아먹을지, 안 잡아먹을지 맞히면 아기를 무사히 돌려주지." 그러자 아기엄마가 대답합니다. "오, 너는 내 아기를 먹어버리고 말 거야." 아기는 무사히 살까요, 죽을까요? 만약 잡아먹으려 한다면 어머니 말이 맞기에 무사히 돌려줘야 하고, 어머니 말을 틀리게 하려고 잡아먹지 않으면 그냥 살게 됩니다. 어머니의 사랑에는 지혜가 있습니다.
둘째,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22절). 사랑도 그 대상에 따라 구분되는데, '인애(仁愛)'는 나보다 낮은 처지의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고, 친구나 부부처럼 동등한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친애(親愛)'입니다. '공경(恭敬)'은 윗분을 우러르고 높이는 '경애(敬愛)'로서, 감사와 존경으로 응답하는 사랑입니다. 어떤 랍비가 어머니와 둘이서 길을 가고 있는데 길에 돌이 많고 울퉁불퉁하여 걷기가 매우 힘들자, 랍비는 어머니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자기의 손을 어머니의 발 밑에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공경입니다.
성경은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자식은 돌로 쳐죽이라고까지 엄히 말씀했습니다.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신21:18, 21). 옛날 우리나라도 자식이 부모를 때리면, 파가(破家) 저택이라 하여, 집을 헐고 그 터에 연못을 만들만큼 아주 엄격했습니다.
[어느 엄마가 아들, 딸에게 준 글]입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언젠가 우리가 늙어서 약하고 지저분해지거든 인내를 가지고 우리를 이해해 다오. 늙어서 우리가 음식을 흘리면서 먹거나 옷을 더럽히고, 옷도 제 손으로 잘 입지 못하게 되면, 네가 어렸을 적 우리가 먹이고 입혔던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미안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조금만 참고 받아다오... 늙어서 우리가 말을 할 때,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더라도 말하는 중간에 그만하라고 하지말고 끝까지 들어주면 좋겠다. 네가 어렸을 때 좋아하고 듣고 싶어했던 이야기를 네가 잠이 들 때까지 셀 수 없이 되풀이하여 들려주지 않았니? 훗날에 혹시 우리가 목욕하는 것을 싫어하면 우리를 너무 부끄럽게 하거나 나무라지는 말아다오. 수없이 핑계를 대면서 목욕을 하지 않으려고 도망치던 너를 목욕시키려고 따라다니던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니? 혹시 우리가 새로 나온 기술을 모르고 무식하거든 전 세계에 연결되어 있는 웹사이트를 통하여 그 방법을 우리에게 잘 가르쳐다오. 우리는 네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는지 아느냐? 상하지 않은 음식을 먹는 법, 옷을 어울리게 잘 입는 법, 너의 권리를 주장하는 방법 등... 점점 기억력이 약해진 우리가 무언가를 자주 잊어버리거나 말이 막혀 대화가 잘 안될 때면 기억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좀 내어주지 않겠니? 그래도 혹시 우리가 기억을 못해내더라도 너무 염려하지는 말아다오. 왜냐하면 그 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너와의 대화가 아니라 우리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이고, 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네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또 우리가 먹기 싫어하거든 우리에게 억지로 먹이려고 하지 말아다오. 언제 먹어야 하는지 혹은 먹지 말아야 하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단다. 다리가 힘이 없고 쇠약하여 우리가 잘 걷지 못하게 되거든 지팡이를 짚지 않고도 위험하지 않게 걸을 수 있도록 네가 직접 내 옆에서 도와줄 수 있겠니? 네가 뒤뚱거리며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우리가 네게 한 것처럼 네 손을 우리에게 빌려다오. 그리고 언젠가 나중에 우리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우리에게 화내지 말아다오. 너도 언젠가, 왜 우리가 그런 말을 하게 되는지 이해하게 될 테니 말이다. 노인이 된 우리의 나이는 그냥 단순히 살아온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 있는가를 말하고 있음을 이해해 다오. 비록 우리가 너를 키우면서 많은 실수를 했어도 우리는 부모로써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과 부모로써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너에게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언젠가는 너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한다...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네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너를 사랑하고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단다." 우리가 자랄 때 부모님이 우릴 어떻게 기르셨는지 잊지 말아야합니다.
셋째, 부모님을 기쁘고 즐겁게 해드려야 합니다. 25절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학자들은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다섯 가지 요소를 말했습니다. 첫째, 의미 있는 접촉(meaningful touch)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자주 뵈고 손을 잡아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뉴욕대학의 돌로레스 크리저 박사는 사람의 손은 감촉을 느낄 수 있는 기관이 5백만 개나 있는데, 서로 손을 마주잡으면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의 산소 운반작용을 크게 촉진시키는 재생의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두 환자에게 적용하여, 한 환자의 가족에게는 자주 환자를 어루만져주도록 하고, 다른 한 환자 가족에게는 만지지 말도록 했더니, 가족들이 어루만져준 환자는 그렇지 못한 환자보다 배나 회복이 빠르더라고 했습니다.
둘째, 말하는 것(spoken word)입니다. 사람은 말을 해야합니다. 말을 못하면 살 수 없습니다. 부모님도 말을 하고 싶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어 고독합니다. 자식들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간 한 할머니는 말을 못해서 그만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습니다. 아들 며느리는 바빠서 얼굴조차 볼 수 없고, 손자손녀들은 "Don't speak Korean!" 한국말을 못하게 하여 졸지에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하루종일 입 한번 뻥긋 못하고 있다가 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하여 병실 밖에 있는 나무하고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제 친구 목사님이 어느 교인 가정에 심방 갔더니, 할머니가 혼자 계시는데, 치매에 걸렸는지, 머리에 비린내나는 새우젓을 올려놓고 양지바른 곳에 앉아 계시기에 이유를 묻자 "아무도 가까이 오는 사람이 없어, 파리라도 가까이 오게 하려고 새우젓을 머리에 발랐다"고 대답하더랍니다. 부모님을 말 못하는 벙어리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큰 불효인가를 알아야합니다. 갓난아이는 발에 힘이 있고, 소년들은 무릎에 힘이 있고, 장년들은 허리에, 노인은 입에 힘이 있기에 노인은 계속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데 이런 노인들의 말이 잔소리처럼 들려도 잘 들어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셋째, 높은 가치를 인정해 드리는 것(expressing high value)입니다. 무슨 말이라도 하시면 "참 귀한 말씀입니다"라고 치켜드려야 합니다. 옛날 얘기는 말라느니, 주책이라느니 해선 안됩니다. 귀담아 들어보면 실제 귀한 말씀입니다. 또한 존재의 가치를 인정해드리고, 할 일을 드려야 합니다. 어느 가정에서 늙으신 어머니를 위한답시고 '이것도 하지 마세요, 저것도 하지 마세요'하며 아무 것도 못하도록 했더니 "나보고 죽으라는 것이냐?"하고 섭섭해하시더랍니다. 적당한 일을 부탁하여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드려야 합니다. "이 일은 어머니가 꼭 해주셔야 합니다. 아버지가 우리 집에 꼭 계셔야 합니다"라며, 존재의 가치를 갖게 해드려야 합니다.
넷째, 미래의 소망을 그리게 해드리는 것(picturing special future)입니다. 예수 믿도록 해드려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드려서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는 존재로 모실 때, 으뜸의 효자가 됩니다. 그럴 때 노후에 마음에 안정되고 내일에 대한 소망으로 삶의 여유를 갖게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이름으로 좋은 일을 합니다. 부모님의 이름으로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할 때 부모님은 기뻐하십니다. 이렇게 저 영원한 미래를 보실 수 있게 해드려야 합니다.
다섯 째, 순종(active commitment)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순종케 하는 자로 하여금 생의 영역이 넓어지게 합니다. 부모님의 뜻이 자녀와 손자손녀에게로 까지 확산되어 가는 것이 삶의 보람이요, 건강의 비결입니다.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감옥입니다. 내 말을 자식이 듣고, 그 자식이 또 자식에게 전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도 네 자식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 뜻을 이어가는 것이 영역의 확산으로 부모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성경은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3)고 약속합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기 어머니로 모시고 한평생 공경하며 섬겼더니 그는 먼저 인격 성숙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한은 그 별명이 '우레의 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그 성격이 급했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면서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실 때, 사람들이 영접하지 않으니까, 요한과 야고보가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9:54)라고 말할 만큼 과격한 모습을 보였는데, 요한이 사랑의 서신인 요한일서를 기록할 만큼 그는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그는 장수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은 모두 일찍 순교했으나 사도 요한은 백세가 다되도록 오래도록 살아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기 어머니처럼 모시며 섬겼습니다. 지금도 에베소에는,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살았다는 집을 산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60세에 에베소로 마리아를 모시고 가서 백 세가 다 되도록 장수하면서 예수님 대신에 마리아에 대한 효도를 다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요한에게 장수의 축복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는 땅에서 잘되는 축복도 받았습니다.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가이오를 향하여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삼1:3-4)하였고, 또 요한이서에서도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요이1:4)라며, 성도들과 그 자녀들이 진리 가운데 행하는 모습을 보며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보면 밧모섬에서 주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하늘의 영광과 장차 되어질 역사에 대한 신비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로 볼 때 사도 요한은, 성도들이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목회적 보람과 함께, 주님의 신비한 계시를 통해 천상의 비밀을 깨닫는 목회자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미국의 중, 고등학교에서 부모 공경을 가르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인물이 조지 워싱턴대통령이라고 합니다. 워싱턴은 젊었을 적에 바다를 벗삼아 세계를 항해하는 멋진 선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원으로 취직해 먼 뱃길을 떠날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찾아가 작별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들과의 이별이 아쉬워 슬피 우는 어머니를 보고 워싱턴은 마음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내 꿈 때문에 어머니의 눈물이 흐르게 할 수는 없다" 그때 어머니가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의 앞길이 평탄하리라.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실 것이다" 결국 효자 워싱턴은 '선장'대신 '대통령'이라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을 땅에서도 잘되게 해 주십니다.
서울여대 '사랑의 엽서' 공모 대상작인 어머니의 위암 판정 소식을 듣고 썼다는 글 [어머니]입니다. - 나에게 티끌하나 주지 않는 걸인들이 내게 손을 내밀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전부를 준 당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나한테 인사치레 밥 한번 사준 친구들과 선배들이 고마웠습니다. 답례를 하고 싶어 불러냅니다. 날 위해 밥을 하고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당신이 감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은 드라마 속 배우들 가정사에 그들을 대신해 진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일상에 지치고 힘든 당신을 위해 진심으로 눈물 흘려 본 적은 없습니다. 골방에 누어 아픈 당신을 걱정은 제대로 해본 적은 없습니다. 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당신에게 잘못은 셀 수없이 많아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제야 조금 알게 돼서 죄송합니다. 아직도 전부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 부모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다, 어머니가 암에 걸리니 그제야 무심했던 걸 깨닫나봅니다.
[행복한 데이트]란 글입니다. - 결혼 20주년 되는 어느 날 아내는 내게 놀라운 제안을 했습니다. "당신에게 세상에서 최고 멋진 여자와 데이트할 기회를 드릴게요. 단, 저와 지켜야할 약속 몇 가지가 있어요." 뜻밖의 제안에 놀란 내게 아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습니다. "첫째, 어떤 일이 있어도 밤 10시 전에 데이트를 끝내선 안돼요. 둘째, 식사할 때 그녀의 이야기를 한마디도 놓쳐선 안됩니다. 셋째, 극장에서 그녀 손을 꼭 잡아줘야 합니다." 그렇게 몇 가지 당부를 들은 나는 설렘을 안고 데이트 장소로 갔습니다. '어떤 데이트지? 누가 나올까? 아내가 꽃단장하고 나오는 건 아닐까? 아니면 우리 딸? 아니면 미모의 다른 여성?' 넥타이를 고쳐 매며 기다리는데, 저기서 우아한 검정원피스를 입고, 곱게 화장한 한 여인이 다가왔습니다. "아니, 네가 웬일이냐?" "어머니는 여기 어쩐 일이세요?" 당황하면서도 어리둥절했던 우리 모자는 금세 아내의 마음을 알아채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되신 지 10년 되신 어머니를 위해 아내가 준비한 이벤트였습니다. 그 날 저녁, 나는 아내와의 약속을 성실히 지켰습니다. 식사시간 내내 어머니는 즐겁게 이야기하셨고, 영화를 보는 내내 어머니 손을 잡아 드렸습니다. 그렇게 10시가 넘은 시간 어머니 집 앞에 모셔다드리고 돌아서는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오늘밤은 내 결혼식 날 빼고, 칠십 평생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단다. 가서 꼭 전해줘라~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이야." - 참으로 지혜롭고 착한 며느리입니다.
이우걸 시인의 시 [어머니] 입니다. "아직도 내 사랑의/주거래 은행이다//목마르면 대출 받고 정신 들면 갚으려 하고/갚다가/대출 받다가/대출 받다가/갚다가..."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잠23:25-26).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