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8 104회
"교회 일꾼이 된 사명"
2019년 12월 8일 주일예배
골로새서 1 : 21 - 29 ; 시편 101 : 6
l0년째 백수건달로 빈둥빈둥 지내던 남편이 밖에서 급히 뛰어들어오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기뻐해 줘! 드디어 내가 아주 괜찮은 일자리를 하나 찾아냈어!" 그 말을 듣고 아내가 놀라서 "정말이에요? 이젠 우리 가족 안 굶게 됐네." 아내는 감격하여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하는 말이 "여보. 죄송해요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는 것도 모르고 당신을 게으름뱅이라고 해서..." 그러자 남편이 아내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말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기뻐하는 걸 보니 나도 몹시 기쁘구려. 당신 그럼 월요일부터 출근하는 거지?" 누구 일자리를 찾았다는 건가요?
여러분,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든다는 브랜드 '3M'의 뜻을 아십니까? 이 회사 정식명칭인 'Minnesota Mining and Manufacturing Company'(미네소타 광업제조사)라는 이름에 'M'이 3개 들어있어 '3M'이랍니다. 이 이름으로 생긴 에피소드도 많습니다. '3M'의 'M'을 상품규격으로 오해하여, 예전에는 '3M'이 플로피디스크도 만들었는데, 제품에 적힌 '3M'을 회사이름이 아닌 용량으로 오해하여 '왜 3MB가 아니고 왜 1.44MB냐'는 항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또 '3M'이 파는 테이프에 적힌 '3M' 로고를 '3미터'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를 역이용하는 회사도 있어, 전선, 테이프 등을 만드는 회사가 규격을 3미터로 만든 다음 '3M'이라고 크게 표기하여, '3M' 제품처럼 보이게 했는데, 실제로 3미터이니 제재할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3M'은 사람이 일하는 목적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3가지 'M'자로 시작하는 단어로, 그 첫째는 '머니'(Money), '돈'입니다. 먹고사는 육체적 필요를 위해 돈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일하는 이유입니다. 둘째는 '민잉'(Meaning), 즉 '의미'입니다. 요즘은 인간의 편리와 생산의 극대화를 위해 그동안 사람 손으로 하던 일들이 기계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서울 최초의 경전철 우이신설선 전동차는 열차 운행부터 출입문 개폐까지 자동으로 작동하는 무인열차인데, 실제로는 기관사자격증을 가진 안전요원이 고장이나 사고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기관사로 일하다 퇴직 후 안전요원이 된 A씨는 "열차운행부터 출입문 개폐까지 기계가 다 알아서 하고 문제가 생기면 보조하는 역할이라, 아무 노동의 보람이 없다"며, "기관사 시절엔 승객들이 최대한 편안히 이용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운전하며 소소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며 허탈해합니다. 인간이 도리어 기계의 부속품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미션'(Mission), 곧 '사명'입니다. 미국의 교육학자 '파커 팔머'는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하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나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위해 일해야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골1:25). 그는 자신을 '교회의 일꾼'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교회의 일꾼'이란 성직자를 뜻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일꾼이란 '종(從)', 혹은 '노예'를 의미하는 말로서, 헬라어로 [디아코노스](diakonos)라 하여, 여기서 '집사'를 뜻하는 영어의 'deacon'이라는 말이 유래했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의 일꾼'이란 성직자나 교회의 특별한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교회에서 일하는 모든 일꾼들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교회의 일꾼 삼아주신 것에 대해 큰 감사이 있었기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라고 말합니다. 전에 교회를 핍박하던 자신을 교회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데 대해 큰 감격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교회의 일꾼된 것은, 자기 능력이나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엡3:7). 교회 일꾼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주님께로부터 직분을 맡는다는 것이 어떤 사람에겐 부담스럽고 귀찮은 일로 여기겠지만, 어떤 사람은 나에 대한 하나님의 신임과 기대, 그리고 은총과 배려임을 알고 한없는 영광과 특권으로 여깁니다. 서울 정신여고 교목을 지낸 김천수 목사님은 초등학교 다닐 때, 분단장도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부르시더니, 다른 친구와 함께 학교에서 꽤 먼 선생님 댁에서 풍금을 가져오라고 시키더랍니다. 그때 선생님이 자기에게 심부름시켜준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초등학생으로선 제법 무거운 풍금을 쉬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들고 왔다고 합니다.
바울은 23절에서 자신을 '복음의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골1:23b). 그런데 25절에선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골1:25)며, '교회의 일꾼'이라고 하여, '복음의 일꾼'이 곧 '교회의 일꾼'임을 말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교회의 일꾼 되기를 피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복음의 사역은 언제나 교회를 통해 이뤄집니다.
바울은 자신은 '교회의 일꾼'이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이유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나타내며, 또 이 교회를 통해서만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 땅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께 충성하기를 원한다면, 마땅히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일꾼이 되어 충성해야만 합니다. 리빙스턴이 '세계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는 쉬우나, 내 곁에 있는 형제 하나를 사랑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듯, 그리스도를 사랑하기는 쉬우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며 섬기기는 어려워하는데, 교회를 위해 일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이 교회의 일꾼된 이유와 일꾼으로서 사역의 내용과, 일꾼의 자세를 배우고자 합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이 교회의 일꾼된 것은 하나님의 경륜으로 된 것임을 밝힙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골1:25). 여기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이란 말을, 개역 성경에서는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경륜'이란 [오이코노미안]이라 하여, 집안의 관리자나 청지기를 뜻하기도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만물을 위해 모든 일들을 계획하고 지배하며 관리하신다'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교회 일꾼 된 것은 자기 생각이나 소원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해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교회를 핍박하고 잔해하던 사람으로,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어오려고 가다가, 그는 그 도중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 후,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경륜 속에 있는 자신을 깨닫고, 자기 생애를 재해석하였습니다. '내가 왜 하필이면 이방 땅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을까?' 여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가 되게 하시려는 오묘한 경륜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내가 왜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는가?' 이것도 역시 많은 지성인들에게 복음 전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건강하지 못한 것도, 겸손히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만 의지하게 하기 위한 사랑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세계적인 전도자인 무디(Moody)는 초등학교 교육밖에 받지 못했고, 교회학교 생활도 엉망이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을 찾기 위해 창세기부터 침을 묻힐 정도라서 성경학교 입학도 거절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 교육이 미흡하고 학교생활을 계속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무디는 친구들로부터도 "너처럼 희망 없는 사람이 과연 어디에 사용될까? 네가 우리의 친구라는 것이 부끄럽다"며 따돌림당했습니다. 그래서 무디는 늘 고독하여, 그 시간들을 하나님께 드리며 미욱하나마 겸손한 마음으로 매일 기도드렸습니다. 결국 무디는 세계적인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작고 미미한 것을 놀랍게 사용하십니다. 무디는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은 존재로 비쳤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희망의 재료'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고, 이만큼이나마 봉사하게 된 것도 사람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 과정에 어떤 질병이나, 혹은 사업의 실패, 또는 원치 않는 사고까지도, 하나님께서 우리로 교회의 일꾼 되게 하시려는 깊은 섭리일 수 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 영국 에포드(Epworth) 마을에 한 집이 불이 나 교회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목조건물이 삽시간에 불길에 싸이고, 부모는 정신 없이 아이들을 헤아리니 한 아이가 없는데, 2층 창문에서 비명이 들립니다. 그때 두 남자가 한 사람 어깨로 올라가 그 아이를 꺼내자마자 2층이 무너져 그 아이를 구했습니다. 그 아이가 존 웨슬리로, 도덕적으로 부패한 19세기 영국을 구출한 감리교 창설자입니다. 웨슬레는 "그 날 죽음을 각오한 인간 사다리가 없었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라며, 뜨거운 지옥 불 속에 들어갈 사람들을 구출하는 교회의 일꾼으로 살았습니다.
다음, 바울이 교회의 일꾼이 된 목적은 그리스도의 사람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28절입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1:28). 바울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는 것이 그의 일꾼이 된 목적임을 밝힙니다. 우리는 자칫 일의 목적을 잊고 그냥 타성적으로 일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 아무 생각 없이 나왔다 돌아가고, 주님을 위해 봉사한다 하면서도 자신의 생각대로 일하다,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내고, 모든 것을 때려 치기도 하고, 어떤 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그리스도만을 나타내려는 본래의 목적을 잊었거나, 아예 이에 대한 의식이 없이 자기 주장대로 일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 저널리스트 말콤 머거리치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을 이렇게 풍자합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간다. 왜 가는가? 아마도 교회에 가기 위해 가나 보다. 사람들은 예배를 드린다. 왜 드리는가? 아마도 예배드리기 위해 드리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기도한다. 왜 기도하는가? 아마도 기도하기 위해 기도하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성경을 공부한다. 왜 공부하는가? 아마도 성경공부하기 위해 하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봉사한다. 왜 하는가? 아마도 봉사하기 위해 하는 모양이다." 아무 생각과 목적 없이 그저 타성에 젖어 형식적으로 교회 다니는 신앙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본문 27절은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1:27)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영광의 소망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무엇을 전해주면 사람들이 참으로 행복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돈입니까, 쾌락입니까, 명예입니까? 이런 것들은 사람들에게 잠시 잠깐은 어떤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내 다시 목마르게 되고, 더 큰 갈증에 사로잡히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내일에 대한 소망을 주며, 영원한 구원을 주십니다. 우리는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교회의 일꾼된 사람이 그리스도를 바로 알지 못하거나, 주님과 바른 관계가 이뤄지지 않다면, 얼마 안 가서 낙심하고 실망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대륙의 전도책임자로 있을 때, 그는 가끔 전도를 희망하는 후보자를 면접했습니다. 한번은 후보자 한 사람을 만나 "왜 당신은 해외 선교사로 가기를 원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선교사 후보자는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 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가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밖에서 타락하고 있기 때문에 선교사로 나가기를 원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때 허드슨 테일러는 말하기를 "그 모든 동기들은 좋지만 시험과 시련 그리고 고생, 심지어 죽음의 순간을 당할 때, 그것은 당신을 구하지 못합니다. 단지 한가지 동기가 당신을 어려운 시험과 시련에서 견디게 해줄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다면 이제 그를 위해 일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일꾼의 자세는 고난까지도 감수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1:29). 그리스도의 일꾼은 힘을 다해 수고하는 자입니다. 때로 이 일을 하다보면 고난과 핍박도 있지만, 이 고난까지도 도리어 기뻐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감수합니다. 바울은 2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여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의 불충분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이 땅에서 생명을 구원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이루는 데 따르는 희생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안도현의 시 [연탄 한 장]입니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삶이란/나 아닌 그 누구에게/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붙었다 하면/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생각하면/삶이란/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엄동설한, 자신을 불태워 따뜻이 방을 데워주고, 하얀 재가 된 연탄재가 깨트려져 눈 내려 미끄러운 빙판길에 고마운 길을 내주었습니다. 이 시대는 실용주의 철학으로 교회마저 쉽고 편하게 다니려할 뿐, 기꺼이 고난받으려는 사람이 적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 자기 몸에 채우려합니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 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여러분, 무엇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 고통이나 희생과 수고가 없이 그저 편하게만 사는 것이 인생의 지혜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고전15:58). 생애 마지막 날에 진정 헛되지 않은 삶은 주님의 일에 힘쓰는 삶입니다. 음식은 아무리 먹어도 배를 채우지 못하고, 물질은 아무리 가져도 만족을 모릅니다. 출세를 위해 평생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도 더욱 공허와 고독만 남습니다. 칙센트 미하이 교수는 [사람이 가장 불행할 때는 언제인가?]를 묻고 '만날 사람이 없는 것과, 할 일이 없을 때'라고 했습니다. 주님께 가까이 나와, 보람된 일을 해야합니다.
주님을 위해 교회의 일꾼이 되어 봉사할 때, 얻는 유익이 많습니다. 먼저, 영적인 건강과 믿음의 성장을 가져옵니다. 우리 몸이 열심히 일하고 운동해야 건강한 것처럼, 봉사 없이는 믿음은 결코 자라지 않습니다. 봉사는 성숙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봉사를 통해 믿음이 성숙해갑니다. 우리가 때로 말씀을 듣고 은혜 받고, 기도하며 성령의 큰 감화를 받더라도, 이것이 구체적인 봉사를 통해서 헌신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철부지 색시가 시집가서 가정 돌보며,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철들고 어엿한 어른이 되는 것처럼, 봉사를 통해 믿음이 성숙하게 됩니다.
또 봉사를 통해 주님의 더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며, 주님의 능력과 함께 하시는 사랑도 체험할 수 있지, 아무 일 없이 빈둥거리기만 하면, 주님의 은혜나 능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혹시 주님을 위해 봉사하다가 때로 힘들고 마음 상하고 지쳐서 낙심했던 때가 없었습니까? 그때 여러분이 체험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가까이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며, 함께 해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과 정욕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은 감히 체험해 보지 못했던, 주님의 임재와 그 자비로운 손길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주를 위해 헌신하는 일꾼들에게 주시는 최대의 축복이요 보상입니다.
그리고, 봉사와 헌신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축복과 상급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하나님의 상급은 충성한 자에게 주어집니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암 부스는 매우 병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청년기에 그가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이런 몸 상태로 계속 과로하면 1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휴식이 최고의 묘약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윌리암 부스는 그 말에 크게 위축되지 않고, 그 대신 규칙적인 생활과 약자들을 돕는 봉사활동에 전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주위의 우려를 말끔히 씻고 83세까지 장수하였습니다. 봉사는 장수(長壽)와 건강을 선물합니다. 봉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누리게 됩니다.
교회에는 세 부류의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부류는 교회를 다니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출석은 하지만 예수님이 누구시고 그 분이 세상을 향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며, 자신에게 어떤 뜻이 있으신 지 관심 없습니다. 이들은 고상하고 착하게 살며 남에게 피해만 안주고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부류는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만 하는 사람입니다. 이분들은 예수님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성경지식도 꽤 있어서 질문하면 설명도 술술 합니다. 그런데 인격이나 삶에 변화가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5년 전 모습과 지금 모습에 별 차이가 없습니다. 세 번째 부류는 예수님을 바로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주님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며 구원의 감격을 잊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란 사실이 너무 감사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삽니다. 자신만 알던 사람이 이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을 실천하면서 '세상에 보냄 받은 예수님의 제자로써 내게 할 일이 있다'며 사명을 찾아, 그 책임을 완수하고자 합니다. 이런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김대조 목사의 책 [일어서고 싶다]에 실린 글입니다. - 얼마 전 프랑스에 사는 한 형제와 통화하는데 참으로 가슴 아프면서도 도전이 되었다. 서른한 살인 그는 혈액암에 걸려 5개월 시한부선고를 받았다. 그는 트위터에 그때그때 자신의 심경을 올렸다. 참기 힘든 육체적 고통이 몰려와 구토하는 지경에도, 정신이 돌아오면 손가락에 온힘을 쏟아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마지막 순간까지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리라. 다만 내 영혼이 은혜를 입어 이 땅에서 주를 위한 남은 사명이 있는지 깊이 여쭤볼 것이다. 세상에 속한 것이 헛되다는 증거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니 정치도, 경제도, 스포츠도, 연애사도 모두 딴 세상 이야기가 된다는데 있다. 모든 관심의 초점은 지금 내가 주님께 속했는가,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대한 검증뿐."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평가다. 세상의 그 무엇이 아무리 좋다해도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집중해선 안 된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때 내 인생은 역전된다. 비록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인생의 목적을 향해 하나님께 집중하고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반드시 우리 인생은 역전되고 회복될 날이 올 것이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주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일꾼을 필요로 합니다. 찬양대, 교회학교 교사, 예배위원, 주방봉사, 단기선교사, 그리고 성전을 꾸미고 관리하고, 교인들을 수송하는 봉사자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눈과, 입과, 팔과 발이 되어,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합니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시101:6). 하나님은 오늘도 사람을 찾으십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쓰시옵소서!"하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충성된 일꾼이 될 때, 여기에 보람도 상급도 넘치게 될 것입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