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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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용 목사

마태복음 5장 5절

설교요약 :

"온유한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2019년 11월 24일 주일예배
시편 37 : 1 - 11 ; 마태복음 5 : 5


사업이 어려워진 김 사장은 집에 가면 아내에게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그래도 조용히 받아주는 아내가 고마우면서도, 한편 궁금한 생각이 든 김 사장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싸움을 걸어도 한번도 화를 안 내던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러자 아내가 조용히 대답합니다. "화날 때는 변기를 닦아요." "변기를 닦는 게 도움이 돼?" "그럼요, 당신 칫솔로 닦거든요."^^ 화내봤자, 자신만 손햅니다.


스티븐 코비 박사는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명 중에 한 사람으로, 어려운 일 당할 때 지혜롭게 처신할 수 있는 명쾌한 지침을 제공해주는 전문가입니다. 그는 '인생의 10%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로 결정되고, 남은 90%는 자신의 반응에 따라 결정된다'는 [90대 10의 원리]를 말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10%는 전혀 통제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갑자가 고장나는 것이나, 비행기가 연착하여 모든 일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은 어쩌지 못하는 10%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반응하는 나머지 90%는 스스로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신호등을 조작할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통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과 아침식사를 하는데, 딸이 커피를 쏟아 아빠의 양복을 더럽혔다면, 그 일을 바꿀 수는 없으나, 그 일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다음에 일어날 일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빠가 화내고 욕하며 딸을 혼내자, 딸이 웁니다. 아빠는 급히 옷을 갈아입었는데, 딸은 울고 아침도 못 먹고 학교 갈 준비도 못해서 스쿨버스를 놓쳐 급히 딸을 학교에 태워다줍니다. 서둘며 과속하다 경찰관에게 딱지를 떼였는데, 회사에 20분이나 지각해서 보니, 서류가방을 놓고 온 것을 깨닫습니다. 아빠의 하루는 엉망진창입니다. 저녁때 집에 가니 가족 모두가 불편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빠가 아침에 보여준 반응 때문입니다. 왜 나쁜 하루를 보냈습니까? 커피나, 딸이나, 경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화낸 때문입니다. 아빠는 아침에 딸이 쏟은 커피에 대해선 어떤 통제도 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반응은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럴 때 보였어야 할 반응은 이렇습니다. 커피가 양복에 쏟아져 딸이 어쩔 줄 몰라하면 다정하게 '괜찮아, 다음부턴 조심하면 돼!'라고 말하고, 차분하게 옷을 갈아입고 서류가방을 들고나오면, 딸은 통학버스에 오르며 손을 흔듭니다. 그리고 5분 일찍 회사에 도착하여 동료들과 반가운 아침인사를 나눕니다. 이 둘의 시작은 같았지만, 그 끝은 그 반응에 따라 너무 다릅니다. 인생의 10%인 일어나는 사건을 통제할 순 없으나, 나머지 90%는 자신의 반응에 따라 달라집니다. 화내지 말아야합니다. 세계에서 우리말로 등록된 질병이 '화병'인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최근 5년 간 화병환자가 약 1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본문 11절에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온유한 자'란 히브리어 '아바나'라는 단어로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을 잘 통제하는 모습입니다. 헬라어로는 '프라우테스'라는 단어인데, 사나운 야생마가 잘 길들어서 주인의 뜻에 고분고분 순종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온유는 세 가지 특성으로 설명됩니다. 첫째, '중용'의 뜻이 있습니다. 극단이 아닌 언제나 중용을 취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혼란한 것도 극단주의자들 때문입니다. 흑백논리, 폭력, 갈등, 조급함, 원한, 이런 것들이 전부 극단에서 비롯됩니다. 좀더 관대하게, 좀더 부드럽게 받아드려야 합니다. 둘째, 자제(self-control)입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제어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을 못합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온유입니다. 셋째, '겸손'의 의미입니다. 온유와 겸손은 쌍둥이로서, 손바닥의 안팎과 같습니다. 겸손이란 스스로 낮추는 마음이요, 온유는 스스로 높이지 않는 마음으로, 겸손이 소극적이면, 온유는 적극적으로, 억울하게 욕먹을 때 참는 것이요,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고 도리어 웃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여유로움과 부드러움이 온유로서, 위대한 능력과 인격의 힘입니다.


오늘 말씀은 먼저, 우리가 온유하기 어려운 상황을 말씀합니다. 1절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악을 행하는 자'란 '상하게 하고, 괴롭히고, 깨뜨리는 자'라는 뜻입니다. 또 '불의를 행하는 자'란 '불쾌하게 하며, 싸우는 자'를 말합니다. 괜히 나를 괴롭히고, 마음 상하게 하며, 시비를 걸어 불쾌하게 하고, 나와 다투고 싸우는 자로 인해, 우리는 불평하게 되고, 이런 자들을 투기하게 됩니다. 또 7절에선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에 대해, 이를 불평하게 되는 상황을 말하는데, '자기 길이 형통하다'는 말은 '그의 방식에 따라 번영하다'는 말로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데도, 성공하는 자를 말합니다. 또, '악한 꾀를 이루는 자'란, '그 성격이 수상하고 간교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자'를 말하는데, 이런 자들로 인해 불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불평하다'는 말은 원어대로는 '불타다, 뜨거워지다'는 뜻을 가진 말로서, 이처럼 부당하게 행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마음속에서 분노가 점점 끓어오르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살다 보면 예의 없고 말과 행동이 거칠고 경우에 맞지 않은 막돼먹은 사람에게 수모를 겪는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대하여 맹자(孟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내게 함부로 덤빌 때는 내가 사랑이 모자랐던가 아니면 예의가 모자랐던가를 살펴 고친다. 그런데도 다름이 없으면 스스로 충성됨이 모자랐던가를 반성한다. 그래서 잘못이 없다고 생각되는데도 함부로 덤비면, 이것은 새나 짐승 같은 것이다. 금수를 어찌 상대할 것이며, 또 어찌 나무라겠는가?" 자신을 먼저 살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마음에 분노를 품지 않고 온유한 자세를 지킬 수가 있을까요? 첫째,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시37:3). 여기서 '의뢰한다'는 말은 본래 '끈을 맨다'는 말로, "하나님과 나를 연결시키고 하나님에 의해 산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악하고 불의해도 하나님께 매여서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라'는 명령과 함께 '선을 행하라'고 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연결되면, 선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선을 행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때로 불의한 사람이 잘되는 것 같지만, 결국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기에, 하나님을 믿고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청교도 설교가 존 오웬은 온유한 인격이 되는 비밀을 말했습니다. "온유한 인격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정당한 반응으로만 만들어질 수 있다. 때로 내가 사람들에게 온유하게 행함으로 손해와 희생이 따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내 권리를 포기할 때, 주님은 내 삶을 책임져주신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는다." 온유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합니다.


온유한 자는 손해보고 빼앗기는 패배자로 보이지만, 성경은 온유한 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고 약속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기 종들과, 조카 롯의 종들 사이에 땅 문제로 갈등이 생기자, 롯에게 선택권을 양보하여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도록 기득권을 포기한 것은, 그에게 온유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롯이 선택한 소돔 고모라는 결국 불바다가 되고, 최후의 승리자는 온유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미움받고 노예로 팔렸으나, 그는 형제들을 원망하지 않고 자기 도리에 성실합니다. 다윗도 사울 왕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쫓겨다닙니다. 그러나 그는 신하된 본분을 다하며 왕을 용서합니다. 마침내 요셉은 총리가 되고 다윗은 왕이 되어 형제들을 섬기게 됩니다. 온유가 승리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재판 받으시며 십자가로 가시는 길에서 지속적으로 고난을 받으시며 일방적인 형벌을 감수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침묵으로 이 모든 상황을 수용하셨고 저항을 포기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허다한 인류가 그 앞에 머리 숙여 그를 왕과 하나님으로 경배합니다. 온유가 승리한 것입니다.


둘째,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4절).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모든 것을 의무로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고, 모든 것을 특권으로 여겨 즐기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공자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者不如好者 好者不如樂者)"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요 영광인데, 이것을 억지로 여길 수 있습니까?


센디 에즈린의 [손해 본 것은 없다]는 글입니다. "조그만 친절이라구? 흐음! 손해 볼 것은 없겠지.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손해 본 것은 없다. 아들의 도시락 가방에다 '너는 정말 특별한 아이다'라는 쪽지를 써넣었다. 손해본 건 없다. 슈퍼마켓에서 휠체어를 탄 여인을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손해본 건 없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보고 싶다고 말했다. 동생도 내가 보고 싶단다. 시장님께 정치를 잘해주셔서 고맙다는 편지를 보냈다. 손해본 건 없다. 양로원의 노인들에게 꽃을 사다드렸다. 손해본 건 없다. 병이 들어 누워 있는 친구에게 국을 끓여다 주었다. 손해 본 건 없다. 딸과 게임을 하고 놀았다. 나도 재미있었다. 슈퍼마켓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렸다. 손해본 건 없다. 비서에게 하루 유급 휴가를 주었다. 조금밖에 손해보지 않아다. 우리 집 개와 공놀이를 했다. 내 기분도 좋아졌다. 운전할 줄 모르는 이웃을 데리고 나가서 점심을 사주고 영화를 보여 주었다. 손해본 건 없다. 안마를 받았다. 구름을 탄 기분이었다. 조그만 친절이라구? 흐음, 올해 내내 이렇게 살아야겠는데." 이런 친절가지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자기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5-7절). 우리가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겪게 되면, 이것을 내가 혈기로 해결하려 하지말고, 공의로우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렇게 내 모든 무거운 짐과, 근심 걱정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의를 정오의 빛과 같이 나타내신다고 하십니다. 모든 억울하고 답답한 것들을 가장 완벽하고, 명쾌하게 밝히 드러내셔서, 나의 정당함을 밝혀주시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 내 스스로 내 정당함을 풀려고 애쓰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밝혀주실 것입니다.


코리텐 붐(Corrie ten Boom)은, 유대인들을 숨겨주다가 나치에게 체포되어 집단 수용소에서 무서운 고문을 당하고 살아난, 존경을 받는 크리스천 여성입니다. 한번은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 때문에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그 사람을 마음으로 용서했지만, 자기가 당한 일이 계속 생각나고 그에 대한 미움이 되풀이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두 주간이나 잠 못 자며 지내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사'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후에, 알고 있는 목사님을 찾아가서 상의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창 밖을 내다보며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종탑에는 종이 달려 있습니다. 그 종은 밑에서 줄을 잡아당겨서 칩니다. 교회의 사찰이 종을 다 치고 줄을 놓고 갑니다. 그렇다고 종소리가 금방 멈추는 것이 아니라 종은 계속 울립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점점 약해지고, 또 점점 드문드문 울리다가, 드디어 아주 멈춰버립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용서해주는 것도 마치 당기던 종의 줄을 손에서 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마음의 아픔이나 분노가 남아 있고 얼마 동안은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몇 번만 종소리가 더 난 다음엔 그 소리가 아주 멈출 때가 반드시 오기 때문입니다." 코리 텐 붐은 후에 말하길 그 목사님 말대로 자기에게도 몇 번의 종소리가 더 났지만, 결국 그 소리가 완전히 멈추는 때가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에게 온유해야 할까요? 첫째는 하나님께 온유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맞든지 맞지 않든지, 그대로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간혹 보면, 어떤 사람은 열심도 있고, 능력도 있고, 재능도 있는데 자기가 중심이 되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가 뭐라 해도 요지부동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큰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2:20-22). 하나님께 귀히 쓰여지는 그릇의 두 가지 특성은 '깨끗함'과 '온유함'입니다. 우리는 도덕적 깨끗함과 함께, 언제든 하나님 앞에서 '예'라 할 수 있는 '온유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금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칼뱅은 젊었을 때 조용히 공부하려고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그로 가던 중 제네바에 들렀습니다. 거기서 월리엄 파렐(William Farel)과 교인들로부터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시고, 이 도시를 바로잡아주십시오"하는 간절한 요청을 받습니다. 칼뱅은 공부할 것을 중단하고 그곳에서 3년 동안 열심히 일합니다. 매일 세 번씩 설교하며 정치가로, 종교개혁자로, 목사로, 제네바를 위해 정성을 다했습니다. 너무 열심히 일하다보니 부작용도 생겨, 3년 후 제네바의회는 칼뱅을 추방합니다. 그러자 그는 하던 일을 중단하고 스트라스부르그에 가서 조용히 연구생활을 했습니다. 칼뱅이 떠나자 제네바는 엉망이 되자, 의회는 다시 그를 모셔와야겠다고 결정하고 제발 와달라고 사정합니다. 웬만한 사람이면 '쫓아낼 땐 언제고 오랄 때는 언제냐?'며 안 가겠지만, 칼뱅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가야지요"하며, 온유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평생토록 복음 전하고 오늘 날 세계의 낙원인 제네바를 만들었습니다.


둘째로, 다른 이들에게 온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위험한 세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태계가 파괴되었다거나, 가공할 무기가 발명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바로 사람들의 마음 때문입니다. 그 기술과 그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사람 때문입니다. 옛말에 밤길에 제일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성이 한없이 포악해져서, 어떤 동물보다도 더 잔인해져가고 있습니다.


미우라 아야코 여사가 다니는 교회에서 한 동물원 원장을 초청하여 동물들의 특성과 수명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질문시간에 미우라 여사가 "동물이나 생물 중 어느 것이 빨리 죽나요?"라고 묻자, 동물원 원장이 대답합니다. "호전적이고 성질이 급하고, 덩치가 큰놈들은 빨리 죽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동물은 오래 삽니다. 또 곤충 중에도 투구벌레처럼 등딱지가 딱딱한 놈들이 빨리 죽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자들은 총칼로 죽었거나,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언뜻 보기엔 강한 것이 승리하는 것 같지만,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셋째로, 자기 자신에게도 온유해야 합니다. 자신 안에 끓어오르는 분노와 증오를 다스려야 합니다. 내가 부족하다해도 주님이 자신을 희생하시며 구원하신 자신을 괴롭혀선 안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누가 나를 사랑할 것입니까? 11절 말씀대로 '풍성한 화평'을 즐겨야합니다. 온유란 강하지만 부드러운 것이요, 높지만 스스로 낮추는 것이며, 능력이 있지만 상대방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존 파이퍼는 '분노는 기쁨과 감사, 희망과 온유, 동정과 친절한 마음을 마비시킨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엘머 게이츠 박사가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사람이 토해내는 숨을 액체로 냉각시키면 그 속에 침전물이 생기는데, 이 침전물 색깔이 숨쉬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달라지더랍니다. 화를 내면 밤색으로, 슬프고 아파할 때는 회색으로, 후회하며 괴로워할 때는 분홍색, 기뻐할 때는 청색으로 나타나더랍니다. 사람이 화낼 때 생기는 밤색 침전물을 쥐에게 주사했더니 불과 수분만에 죽더랍니다. 한사람이 한 시간동안 계속 화내면 80명을 죽일 수 있는 독소가 몸 속에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온유함을 버리고 화를 내면 자기 몸에 무서운 독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온유한 자가 받게 되는 복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땅을 사람의 마음으로 표현합니다(마13:4,19). 그래서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폭력적이고 살의가 가득한 사람은 다른 이의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만나면 마음의 문을 닫고 두려워하고 멀리합니다. 그러나 온유한 사람,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차지한 자는 복을 받고, 그러한 자가 진정으로 부유하게 됩니다.


또한, 땅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땅'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나라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창15:18)에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처럼 온유한 자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사66:22, 계21:1)에 들어갈 권세를 얻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기업으로 얻어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마음이 온유한 자에게만 임하고, 온유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으며, 온유한 자만이 기업으로 얻게 됩니다.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스티븐 코비의 [10대 90]의 법칙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일본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업인으로 존경받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파산으로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11살부터 자전거점포에서 심부름하면서 어머니가 보고 싶어 울면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쓰시타 전기회사를 설립하여 그 산하에 570개의 기업과 19만 명을 거느린 대사업가가 되었고, 마쓰시다 정경숙을 설립하여 수많은 인재를 양성했는데, 자신의 성공비결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늘이 주신 세 가지 은혜 덕분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집이 몹시 가난했던 덕분에 어릴 적부터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덕분에 항상 운동에 힘썼고 지금까지 건강하다. 세 번째 은혜는 초등학교도 못 다닌 덕분에 세상 모든 사람을 스승 삼아 열심히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10%에 해당하는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것, 건강이 약했던 것, 그리고 배우지 못했던 것에 대하여 원망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스스로 온유하게 자기 자신이 반응할 수 있었던 90%의 긍정적인 노력을 통하여 세계적인 기업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11:29)하신 말씀대로 성품이 온유했던 아브라함 링컨에게는 많은 동지가 있었지만 동시에 적도 많았습니다. 그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적 가운데 스탠톤(Stanton)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문을 통해 링컨을 '교활한 어릿광대'라고 욕했고, 연설에서 링컨을 '오리지널 고릴라'라면서 "여러분은 고릴라를 보러 아프리카까지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일리노이의 스프링필드에 가면 멋진 고릴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라고 까지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후에 링컨이 각료를 세울 때 그를 가장 중요한 국방장관에 임명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흥분하는 사람들에게 링컨은 조용히 "그 자리에는 그 사람이 적임자"라고 대답했습니다. 링컨이 암살되자, 스탠톤은 그의 시신 앞에 엎드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여기 세계가 지켜보았던 사람 중 가장 위대한 지도자가 누워있다"며 가장 슬퍼했다고 합니다.


채근담은 이런 지혜를 제공합니다. "공을 세우고 일을 이룬 사람은 대부분 열려 있고 원만하지만, 일을 실패하고 기회를 잃은 사람은 필히 집착하고 고집이 세다." (채근담 197). 사람들은 힘과 폭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도 끝내 강하고 사나운 것보다 부드러운 것이 차지합니다. 세계초일류회사 '마이크로 소프트'의 '마이크로'(micro)는 아주 작은 것, '소프트'(soft)는 부드럽다는 뜻으로, 세상도 강하고 딱딱한 것보다 부드러운 것이 이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온유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억울할 것이 없는 인생을 선사하실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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