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어야 거둡니다

2018-11-11 72회

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님

갈라디아서 6장 6~10절

설교요약 :

"심어야 거둡니다"
2018년 11월 11일 주일예배
갈라디아서 6 : 6 - 10 ; 전도서 11 : 1


어떤 사람이 복권이 당첨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1년, 2년이 지나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끈질기게 매달렸습니다. 드디어 10년 째 되던 날,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야, 복권이나 사놓고 기도하란 말이다." 복권도 사지 않고 당첨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처럼, 세상에는 아무 것도 심지 않으면서 복되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심어야 그것을 거두게 됩니다.


골프 천재 타이거 우즈는 1997년에 20세 나이로 세계골프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경기 모습을 비디오테이프로 보고는 스윙 폼이 좋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코치에게 스윙 폼을 바꿔야겠다고 말하자, 그것은 매우 어렵기에 앞으로 2년 간은 우승을 생각해선 안 된다고 합니다. 우즈는 당장의 우승을 생각하지 않고 스윙 폼을 고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어렵고 힘든 2년 동안의 교정훈련을 잘 견뎌내고 2년이 지난 1999년, 14개 세계대회에서 무려 10번의 우승을 거뒀습니다.


어떤 일도 심지 않고 거둘 순 없습니다. 주님은 달란트 비유에서 심지 않고 거두길 바라는 자를 '악하고 게으르며 무익한 종'이라고 책망하시며 그에게 준 것마저 빼앗아 열심히 일한 충성된 종에게 주셨습니다. 명심보감에 '종두득두요, 종과득과'(種豆得豆, 種瓜得瓜)라 하여 '콩 심은 데 콩 나고 오이를 심은 데서 오이가 난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창조원리는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게 되어있습니다. 뿌리지 않고 열매를 얻으려 하는 것은 결코 믿음의 자세가 아닙니다.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 러시아의 어느 시골 부유한 농부에겐 큰아들 세묜과, 둘째 타라스, 막내아들 이반이 있었습니다. 악마는 권력욕과 군사력에 집착하는 큰형 세묜에게 장군으로 둔갑하여 그를 속여 전쟁을 하게 하여 그를 파멸시키고, 둘째 타라스에겐 상인으로 둔갑하여 재산을 탕진하여 무일푼으로 만듭니다. 악마는 이반에게도 군대를 가지도록 유도하지만 이반의 왕국에선 모두 바보처럼 순박한 사람들이라 군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실패하고, 상인으로 둔갑하여 금화를 뿌리지만, 돈에 몰두하지 않아 실패합니다. 버틸 데가 없던 형들은 고향에서 묵묵히 일하는 동생에게 같이 살게 해달라고 사정하자, 이반은 한가지 조건을 말합니다. "이 마을과 우리 가정에선 한 가지 규칙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일을 많이 해서 굳은살이 박힌 사람이 식탁의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서, 제일 좋은 음식을 먼저 먹을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을 안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다 먹은 후에 남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형님들도 이 규칙을 지켜야합니다." 톨스토이는 이 이야기를 통해 심은 대로 거두며, 일한 대로 보상받는 것이 합당하다는 하나님의 나라의 윤리를 소개하였습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는 생각은 버려야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인과율(因果律)은 기독교의 진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비록 죄를 지어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셨기에, 우리는 모든 죄를 용서받고, 그 은혜 가운데 삶으로 죄의 결과와 상관없기에 인과응보는 기독교와는 관계없다'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절대 잊지 말 것은 인과응보의 원리가 없다면 기독교의 십자가도 없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불가불 살아야 할 사람이 죽어야 했습니다. 죄인이 구원받기 위해 의인이 죄인처럼 죽어야 했습니다. 죽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살 사람이 죽는 이 엄연한 이치가 공의요, 하나님의 진리임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공의와 사랑의 종말적인 만남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사랑한다고 거저 봐주고, 용서한다고 해서 거저 넘어간 것이 아니라, 값을 지불하고야 용서가 있고,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고야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오늘 7절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이 말씀은 첫째, 심어야 거둔다는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신다"고 했는데, 이 '업신여기다'는 말은 '바보 취급받다, 비웃음 당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시고 모두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세 가지 불가능이 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미워할 수 없다. 하나님은 심고 거두는 법칙을 어길 수 없다."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으로 하나님도 스스로 어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한다면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이치를 누가 모르랴만 이 진리를 거스르려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정당한 노력이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불로소득하고, 땀흘리지 않는 불한당(不汗黨)들 때문에 세상엔 사기와 도둑질이 끊일 새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서 보니까, 두 명의 시 공무원이 도로를 따라가며 일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둘이서 열심히 일하는 것에 상당히 감동 받았는데,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마침내 그는 공무원들에게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당신들 둘이서 매우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은 보았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한 사람이 구멍을 파고 나면 다른 사람이 곧바로 다시 그 구멍을 메우는 것 같은데요." 그러자 한 공무원이 설명합니다. "세 사람이 가로수를 심는 일을 하는데, 오늘 나무를 심어야 할 사람이 결근했거든요. 그래도 우리는 일을 해야하니까 하던 대로 한 사람은 구덩이를 파고, 한 사람은 구덩이를 메우고 있습니다." 나무는 심지 않고 구덩이를 파고 메우는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둘째, 심은 종류대로 거둡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8절). 사람들은 내가 뿌리지 않은 씨앗이 싹텄다고 말합니다. '내 수고는 선이었는데 왜 결과는 이 모양이냐?'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 우리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 이 환경, 내가 처한 처지, 내가 받는 대우, 이 모든 것이 내가 뿌린 바에 대한 결실을 거두고 있다는 진실한 자기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마음속에 무엇을 심고 무엇을 뿌립니까? 그것은 그대로 여러분의 생활 속에 열매를 맺게 되고 말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인격을 거두고, 인격을 심으면 인생을 거둔다" 또 "보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말하는 대로 행동하고, 행동하는 대로 습관이 이뤄지고, 습관이 이뤄지는 대로 운명이 결정된다"고도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동합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습관과 운명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사실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어느 노예가 주인의 밭에 가라지를 심고 있기에, 주인이 "왜 가라지를 심느냐?"물었더니 "밀을 거두려고 한다"고 대답합니다. 주인은 '미친놈'이라고 노하자, 노예는 정색하여 "당신이야말로 날마다 악을 심으며 행복을 거두려는 정신병자"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생애와 인격과 시간의 밭에다 선악간에 씨앗을 심으며 살고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악을 심으면서도, 선한 열매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스스로를 자기 자신을 속이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셋째, 심은 것에 비례하여 거둡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9:6)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산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여기서 '많이'라는 말에는 좀더 높은 차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고 덧붙였습니다. 여러분, 선행이란 어떤 것입니까? 이웃을 위해 내 희생이 따르는 봉사를 했을 때, 그것을 선행이라고 합니다. 내게 아무런 희생이 따르지 않는, 아깝지 않은 것 던져 주며 그것을 가지고 선행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손님과 나가서 한끼 식사 값도 되지 않는 푼돈을 드리면서 하나님께 구하기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 다윗과 같은 용기, 솔로몬과 같은 지혜와 부귀 영화'를 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진정 금생과 내세에 하나님의 값비싼 보상을 원한다면 거기에 부응하는 값비싼 희생을 먼저 하나님께 바칠 때, 이에 합당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어느 제과업자가 빵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그에게는 매일 아침, 버터를 만들어 공급해주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납품되는 버터를 보니 정량보다 조금 모자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며칠동안 납품된 버터를 저울로 일일이 달아보니 예상한 대로 정량에 미달되었습니다. 화가 난 제과업자는 버터를 납품하는 농부에게 변상할 것을 요구하며 법정에 고발했습니다. 농부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재판관은 농부의 진술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난한 농부에게는 저울이 없어서 버터를 만들 때 그 제과업자가 파는 1파운드짜리 빵의 규격에 맞춰 버터를 자르고 포장해서 납품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제과업자가 이익을 남기려고 그 1파운드 짜리 빵의 양을 줄인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이 농부는 줄여서 만든 빵에 맞춰 버터를 만들고 납품을 한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빵을 줄인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남을 헐뜯고 비난하고 거짓말하면, 그 비난과 헐뜯음과 미움과 증오, 거짓은 결국 자기에게 돌아오고, 선한 일도 자기에게로 되돌아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면 어디에 무엇을 심어야 합니까? 첫 번째 대상은 자기 영혼을 위해 말씀과 기도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본문 8절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로마서에서도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고 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위해선 하루 세끼 밥을 꼬박 챙겨 먹고, 철 따라 옷을 갈아입습니다. 건강에 좋다면 못 먹는 게 없고, 헬스다 등산이다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적인 취미에는 그토록 열심이면서도 우리 영혼을 위해선 무엇을 합니까? 성경은 교회에서 예배 때 외엔 아예 떠들러 보지도 않고, 기도는 식사 때만 형식적으로 하고, 교회에 나와 배우고 봉사하는 일엔 아무 관심도 없지 않습니까?


1세기 전에 활약했던 조지 뮬러는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평생토록 기도하면서 응답 받은 회수가 5만 번을 넘었다고 하는 가히 신화적인 사람입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뮬러 목사님, 어떻게 그런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그가 대답합니다. "나는 평생 동안 성경을 2백 번 읽었는데, 한 번도 싫증을 느낀 적이 없지요. 내가 성경을 읽지 않았던 3년은 잃어버린 시간이었습니다. 하루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영적인 활력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내 사역의 힘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조지 뮬러에게 영적인 활력소이며 삶의 길잡이요, 기도를 기도되게 만든 핵심이었습니다. 그의 성공적인 삶의 비결은 매일 말씀을 묵상한 결과였습니다. 성경은 그 가치를 알고 말씀 앞에 무릎꿇어 그 교훈을 영혼의 양식으로 받고 매일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풍성한 결실을 가져다줍니다.


두 번째는 이웃을 위해 사랑과 봉사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이웃에 대해선 몇 가지 대상이 나옵니다. 첫째는 가르치는 자입니다. 6절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좋은 일을 함께 나누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가르치는 자'란 말씀을 가르치는 주의 종들을 일컫습니다. 여기서 '좋은 것'이라고 번역된 헬라어의 '아가소이스'는 물질만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포함합니다. 내가 즐거울 때, 나를 가르치는 자와 함께 즐겁게, 내가 따뜻할 때는 그도 따뜻하게, 내가 편안할 때는 그도 편안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은 믿음의 가정들입니다. 1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마지막에 못박았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할 때에 해외 선교를 한다, 남을 돕는다, 문둥병자를 돌본다 하고 내세우지만, 우선 내 가까운 믿는 이웃들에게 먼저 할 것입니다. 내 이웃, 내 형제가 굶주리고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멀리 있는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고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족이란 반드시 자기 가정만을 의미하지는 않고 믿음의 가족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믿음의 가족들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어렵고 가난한 이웃들을 향하여 사랑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입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11:1). 흘러가는 물위에도 빵을 던지면 그것이 언젠가 보상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말씀입니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고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묵묵히 선을 행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19:17)고 했습니다. 묵묵히 선을 행해 나가면 그것이 언젠가 돌아옵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이웃뿐만 아니라 이성이 없는 동물에게라도 자비를 베풀 때, 보상으로 돌아옵니다.


이어령 교수가 어린 시절, 그의 집은 머슴을 여러 명이나 둘 정도로 상당히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1950년, 어느 달빛이 환하게 비치던 밤, 부스럭 소리가 나서 할머니가 무심코 창문 밖을 내다보니, 이웃집에 사는 가난한 농부가 쌀을 훔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보고는 머슴들을 불러서 일렀습니다. "이 서방, 김 서방 빨리 나와 봐요. 내가 저 김씨한테 오늘 낮에 쌀 몇 가마니 가져가라고 했는데 얼마나 바빴는지 저녁에 왔구먼. 혼자서는 못 가져 갈 테니까 자네들이 지게로 한 가마니씩 지어다 주게나." 쌀을 훔치러왔다가 들킨 김씨는 간이 콩알만 해 가지고 벌벌 떨고 있는데, 쌀을 서너 가마니나 더 지어다 주게 하니 얼마나 고맙고 죄송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몇 달 후에 6 25전쟁이 일어나서 부자들을 다 잡아다 인민재판에 넘겨서 죽이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때 쌀을 훔치러 왔던 김씨가 인민위원장이 되었는데 그가 이 교수님의 할머니만큼은 살려야 된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하여 가족 모두가 생명을 보존하였다는 것입니다. 선을 심어 생명을 구했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 충성과 감사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하나님은 심판주가 되셔서, 그가 행한 바에 따라 상선벌악 하십니다. 모든 씨앗은 심으면 언젠가 싹이 나고 자라서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는데, 특히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충성은 가장 아름다운 열매로 맺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이런 약속을 하십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7).


석유왕 록펠러(John Davidson Rockefeller)는 매달 십일조를 700만 달러, 약 80억 원씩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는 "만일 내가 처음에 교회에 갔을 때에 이 말씀을 듣고 그 당시 내 월급 6달러에서 십일조 60센트를 천국 밭에 심지 않았다면, 내가 오늘 70억 원을 십일조로 바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간증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하나님은 충성과 헌신을 심은 자에게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그러면 거두는 시기는 언제입니까?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오늘 선한 일을 하고 당장 내일 복을 받는다면 선한 일 하기가 쉽고, 또한 오늘 악한 일을 하고 당장 벼락을 받는다면, 그것이 무서워 누가 죄를 짓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보응의 지연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만홀히 여깁니다. 여러분, 농사는 봄에 심고 가을에 거두지만 하나님은 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라도 반드시 거두게 하십니다.


우리가 심는 것은 자유인데, 거두는 것은 필연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내가 밭에 콩을 심었는데 나중에 마음이 변해서 '제발 콩 말고 팥이 나와 주기를' 바란다고 해서 팥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콩을 심었으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콩을 거두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선한 종자를 심었으면 선한 열매를, 악한 종자를 심었으면 악한 열매를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 "예수 믿으면 제약도 많이 받는다는데, 그럴 바엔 좀 천천히 예수 믿고, 그 동안 먹을 것 먹고, 마실 것 마시고, 놀 때는 놀다가, 죽기 바로 며칠 전에 예수 믿으면 되잖아? 예수님 곁에 달렸던 강도처럼 말이야. 숨넘어가기 직전에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부탁합니다'라고 한마디했더니 천당에 갔잖아?" 여러분, 정말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심은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추수는 결코 이유 없이 이루어지는 우연한 결과가 아닙니다.


D.L 무디가 어느 날 너무 피곤해서 영국 웨일스지방으로 무작정 쉬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 무디가 온 것을 알고는 부흥회를 해달라고 간청하자 어쩔 수 없이 부흥회를 열었는데 놀라운 은혜가 임합니다. 무디가 뭔가 골똘히 생각합니다. "선생님, 무얼 그리 생각합니까?"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합니까?" "심지 않은 곳에서 거둘 수가 없고, 기도 없이는 부흥이 있을 수 없는데 우리가 기도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큰 부흥이 일어난 것이 이상합니다." 그 목사님이 말합니다. "기도요? 기도 같으면 염려 마십시오. 우리 마을에 17년 전에 척추장애로 전신불수가 되신 성도가 있는데, 이분은 몸을 꼼짝 할 수 없으니까 하루종일 누워서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그분은 10년 전에 무디가 미국에서 큰 부흥운동을 일으킨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 이렇게 작은 마을이지만 무디 선생을 보내주셔서 이 마을에 꼭 부흥운동을 일으켜주시옵소서'하며 십 년을 하루같이 기도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무디는 그러면 그렇지 하고는 그를 찾아갔습니다. 17년 전 전신불수가 된 사람의 방에 들어서자 은혜가 그 방안에 가득했습니다. 무디가 깜짝 놀라서 "형제여, 하나님의 웬 은혜가 이렇게 큽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나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해주십니다." "그래요? 그러면 사탄이 와서 까불텐데요." 영적으로 거인들끼리 얘기합니다. 그 기도하는 분이 "아 그놈 자주 오지요"하자 "와서 뭐라고 합니까?"라고 무디가 묻자 말합니다. "'세상에 나쁜 놈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네가 장애로 몸 하나 까딱 못하는 불치병을 앓아야 하느냐? 하나님이 널 사랑하지 않는 것 아니냐?'하며 꼬이다가 얼른 말을 바꿉니다. '하나님이 널 사랑해도 네 기도는 안 들어준다. 네가 17년 동안 얼마나 기도 많이 했느냐? 조금 기도한 아무개는 집도 고쳐주고 아들도 낫게 했는데, 너는 17년 간 기도했는데 고쳐주지 않는 걸 보면 하나님이 널 향해 귀를 닫으신 거다'며 속입니다." 무디가 묻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대답합니까?" "사탄아, 네 말 참 그럴듯하다. 그런데 십자가를 바라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란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에 내 속 사람은 강건해 집니다.


타고르의 [기탄잘리]입니다. "죽음이 당신의 문을 두드릴 땐, 당신은 무엇을 바치렵니까?/오, 나는 손님 앞에 내 생명이 가득 찬 그릇을 올리겠어요/나는 결코 빈손으로 그를 돌아가게 하지는 않으렵니다/나의 모든 가을날 여름밤의 모든 달콤한 포도의 수확을,/내 바쁜 생애의 모든 소득과 주워 모은 이삭들을/나는 그 앞에 내놓겠어요./나의 날이 끝나 죽음이 내 문을 두드릴 때엔." 우리는 죽음 앞에서 무얼 거두어 주께 바치겠습니까?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7). 이 말씀을 축복으로 받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6장 6~10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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