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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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용 목사님

에베소서 4장 11~16절

설교요약 :

"그리스도를 향해 자라십시오"
2018년 8월 5일 주일예배
에베소서 4 : 11 - 16 ; 사무엘상 2 : 26


어느 기자가 장수마을에 가서 연세 많으신 어르신에게 "장수 비결이 뭡니까?" 고 묻자, 그 어르신이 대답합니다. "안 죽으니깐 오래 살지!" "그럼 불편하신 것이 뭐 있나요?" "젊은 여자를 보면 무서워. 그리고 기저귀를 차고 자야 맘이 편하고, 자식들 이름도 가끔 잊어버려. 또 자식놈하고 같이 있으면 누가 아비이고 누가 자식인지 헷갈리는 사람이 있어." "그럼 좋은 점도 있나요?" "누구 옆에서도 방귀를 맘대로 뀔 수 있어. 다른 사람 장례에 안 가도 되고, 하루 하루가 보너스야."


모든 일에 장단점은 다 있습니다. 요즘 111년 만에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으로 어제까지 온열질환자 2,800명에 이르고, 사망이 35명으로서, 벌써 작년 사망자 11명의 세 배가 넘었습니다. 뜨거운 기온으로 콘크리트가 팽창하여 도로의 균열이 생기고, 농작물이 메마르고, 폐사한 가축 피해만도 230만 마리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폭염에도 몇 가지 이로움도 있습니다. 올해는 폭염으로 '여름철 불청객'인 모기가 크게 줄었습니다. 그리고 장마철엔 빨래가 마르지 않아 퀴퀴했는데, 요즘은 빨래가 금방 마른다고 좋아하는 주부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뜨거운 태양은 식물의 왕성한 성장을 유발합니다. 교회 강단의 관상수가 잘 시드는 것은 햇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 사막에 물을 끌어다 오렌지 농장을 만드니, 햇볕이 따가워 오랜지가 그렇게 달고 맛있고, 또 그 뜨거운 햇빛 때문에 병충해도 없어서 농약도 뿌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렌지 농장단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뜨거운 햇빛도 떠오름을 감사해야 합니다. 영국의 한 크리스천이 [태양이 뜨지 않던 그 날]이란 에세이를 썼습니다. "새벽 6시, 태양이 떠오를 시각인데 어찌된 일인지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 단 한줄기의 빛도 보이지 않는다. 아침 7시, 세상은 여전히 캄캄하다. 8시, 9시, 11시를 지나 정오가 되었지만, 칠흑 같은 어둠만이 계속될 뿐이다. 새들도 노래하지 않는다. 한밤중에 울어대는 부엉이만이 간간이 정적을 깨뜨리고 있다. 이미 저녁 7시가 되었다. 낮의 어두움이 이 저녁까지 이어지고 있다. 취침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잠자리에 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더러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멀찌감치 통곡하는 소리도 들리고, 말할 수 없는 불안 속에서 몸을 떠는 사람들도 보인다. 밤이 깊었다. 그리고 다시 새벽 무렵이 되었다. 과연 다시 새벽이 올까? 사람들은 다시는 빛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의 미칠 것만 같다. 그러나 새벽 6시경, 한줄기의 빛이 정말 오랜만인 듯 동편 끝에서 비쳐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 지구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목청 높여 소리 지른다. '오, 신이여! 새 날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하고."


그리스도인은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엡4:13)고 권면합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에까지 자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성장목표입니다. 거듭난 신자는 자라기 마련이고, 자라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쓰시기에 합당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뉴맨 목사님은 "성장은 생명의 유일한 증거다"라고 말했습니다.


본문 14절은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한다'고 했는데, 어린아이란 어떤 모습입니까? 영어에서 'childlike'하면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깨끗하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childish'하면 유치하고 어리석다는 나쁜 뜻으로 사용됩니다. 본문 14절은 '어린아이'에 대해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새번역 성경에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어린아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먼저, 자기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 일곱 살과, 다섯 살 된 두 아이가 어머니 생일날이 되자 각자 어머니께 선물을 드린다고, 저금통을 깨뜨려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나갑니다. 어머니는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큰아이는 그래도 생각이 있어서 어머니가 아침마다 바르는 것을 보고 루즈를 하나 사왔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이는 장난감을 사 가지고 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게 제일 좋아 보이니까, 어머니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미숙입니다. 어머니를 위한다면 어머니가 기뻐하는 것을 사야 할텐데 이 아이는 자기중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어린이 장난감을 어머니께 사드린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유혹에 약한 것입니다. 무엇을 사주고 조금만 잘해 주면 이것이 옳은지 그른 지 모르고 따라가기에, 유괴를 당하고, 악에 빠지기 쉽습니다.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이단에 빠지는 사람을 보면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어린아이들과 같습니다. 기성 교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미성숙한 사람들이 많이 빠집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란 성경을 잘 알지 못하여 분별력이 서지 못하여 누가 유혹하는 대로 그냥 따라갑니다. 그래서 성경 읽고 바른 교훈을 배우며, 기도를 통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쉽게 요동합니다. 14절 하반 절에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린아이는 끈기가 없어 쉽게 변덕을 부립니다. 마음이 어린 사람은 직장생활도 끈기 있게 하지 못하고, 조금 어려움이 오면 금방 사표를 내고 직장을 때리 쳐버립니다. 교회도 한 곳에서 꾸준히 다니지 못하고, 이곳 저곳으로 수없이 옮겨 다니며, 누가 알아주면 교회를 나오다, 알아주지 않으면 금방 옮겨버립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흔들리거나 요동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꾸준히 신앙생활 합니다.


현대 교회의 비극은, 개인의 안일과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 신앙의 성장을 기피한 채, 유아기적 신앙의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으려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점입니다. 교회에서 아무 책임도 맡지 않으려 하거나, 직분을 맡더라도 책임이 적고 가벼운 일을 맡아, 직분에 따른 헌신이나 봉사를 기피하고, 또 성숙한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경건 생활도 외면하려는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자리에 머물려는 신자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신자들일수록 영적인 성장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 육체적 건강이나 외모, 자녀들의 진학 문제, 그리고 세상에서의 어떤 직위의 상승, 경제적 증가 등, 이런 현실적인 성장에 대해서는 남다른 열망과 관심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공부하는 것이 귀찮고, 성숙한 이 사회의 시민으로 자라 국민 된 책임을 지는 것이 싫어, 공부를 멀리하고 도덕과 교양의 훈련을 기피한 채, 그저 놀기만 하고, 쾌락을 즐기는 데만 관심을 갖으면서, 지적으로나 인격적인 성장을 거부한다면, 이것을 괜찮다 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녀가 자라야할 때 자라지 않아 몸이 갓난아기 그대로거나,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아 지적으로 모자라는 것을 원할 부모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영적 성장엔 무관심한 채, 세속적인 성장만 바란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교인들 가운데 아직 거듭나지 못한 채, 세속적인 목적으로 나오는 교인들을 풍자하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감투 쓰기를 좋아하는 교인은 '감투교인'이라 부르고, 심방 가서 끌고 나와야 나오는 교인은 '인력거교인'이라고 하며, 뒷자리에서 팔짱 끼고 설교나 비평하는 교인은 '시험 채점관 교인'이라 하고, 이 교회, 저 교회 왔다갔다하는 교인은 '유람선 교인'이랍니다. 한 가정에서 혼자만 대표로 나오는 교인은 '국회의원 교인'이고, 이성을 만나러 나오는 교인은 '데이트 교인'이며, 배우자감 찾아 나오는 사람은 '뚜쟁이 교인'이라고 한답니다. 이런 사람은 참 교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자기 중심적이 아닌,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어린아이의 특징은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지만, 장성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고,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 전체의 덕을 더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게 좋은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것, 내가 불편하더라도 남에게 편리한 것을 택할 줄 압니다. 질투의 노예가 되지 않고, 상대방이 나를 미워해도 사랑으로 응답할 줄 압니다. 나 자신만 알고 내 좋을 것만 찾던 아이가 자라서 성년이 되면, 이제는 다른 사람의 입장도 살피고, 다른 이를 위해 배려할 줄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 해질 무렵, 어느 여인이 산에 올라 낙조를 바라보며 자신이 지내온 삶을 돌이켜 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이제까지 살아온 과정에서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생각했습니다. 어린 소녀 시절, 아침마다 아버지에게 물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빠, 오늘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시겠어요?" 그러다가 꼬마 숙녀가 되었을 때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오늘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스무 살이 넘어 어엿한 성인이 되었을 때, 그녀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위하여 무엇을 해 드릴까요?" 우리는 자신만 생각하던 데서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자로, 받는 자에서 베푸는 자로, 섬김을 받는 데서 섬기는 자로 성숙해가야 합니다.


둘째, 사람이 성숙하게 되면 자기가 맡은 일이나,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유치한 사람은 좋은 일이 있으면 나서고, 힘든 일이 있으면 뒤로 빠집니다. 모든 것을 나를 위해서 할 뿐이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이나,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서 내가 나서거나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모든 일에 내가 책임감을 가지고 '이 일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상황에서 나의 할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자기가 감당해야 할 부분에 자기 역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누가 가장입니까? 그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가장입니다. 누가 회사의 주인입니까? 끝까지 그 회사를 책임지는 사람이 그 회사의 주인입니다. 모든 일에 책임 질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성숙한 사람입니다.


셋째, 성숙한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의 한계 밖의 일까지도 합니다. 내가 해야 할 의무,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책임지고, 내가 감당해야 할 분량 밖의 것까지 감당하고, 수고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합니다. 부모님들은 자식을 이것저것 다 해줘서 결혼시켜놓고도, 친정에 오면, 더 못해줘서 간장, 고추장에, 참기름, 메주, 된장까지 보따리, 보따리 싸서 보내주며, 그래도 무엇인가 더 못해줘서 아쉬워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할 일 다 했으니, 더 이상은 모른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일 다 하고도, 더 못해서 늘 아쉬워하고, 내가 사랑할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도 사랑합니다.


본문 15절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성장의 목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완전한 사람이 없기에 오직 그리스도를 목표로 자라가야 합니다. 독일 라벤스부룩 수용소 벽에는 나치의 살인적 만행을 겪은 누군가가 이런 글을 써놓았습니다. "오, 주님, 선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만 기억하지 마시고 악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도 기억하소서.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가한 고통 일체를 잊지는 마옵소서. 그 대신 이러한 고통 때문에 우리가 맺은 열매들, 우리의 교제, 서로에 대한 충성, 겸손, 용기, 관대함을 기억하소서. 이 같은 고난으로부터 성장한 마음의 위대함을 기억하소서. 핍박한 자들이 주님 앞에서 심판 받는 날, 우리가 맺은 모든 열매로 그들을 용서하소서." 바로 앞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는 광경을 망연자실 바라봐야 했던 죽음의 공포에서도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한 그 사람은 참으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음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습니까? 첫째, 식물이 자라기 위해 수분과 영양의 공급이 있어야하듯, 우리 영혼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야 합니다.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는 말씀대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성장하지, 말씀이 없으면 성장은 불가능합니다.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예배가 끝나면 다 잊어버려 기억이 없다고 걱정해도, 콩나물을 기를 때 콩나물 시루에 물을 가득히 부어도 구멍으로 물이 다 새나가지만, 그 물을 통해서도 콩나물이 자라듯, 다 잊혀버리는 듯한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의 믿음은 자라갑니다.


2천년 기독교역사 속에서 교회가 놀랍게 부흥하고 성장할 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힘있게 선포되었고, 또 이 말씀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람들이 점점 말씀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잃어가기에, 예배만 시작되면 '설교가 언제 끝나나?'하고 연신 시계만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지루하게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합니다. "여자의 치마 길이와 목사의 설교는 짧을수록 매력이 있다." 또 부흥강사들은 "설교를 짧게 하는 목사는 복이 있나니, 다시 청함을 받을 것이요."라고 산상수훈의 '팔복'을 패러디해서 농담하기도 합니다.


둘째, 햇볕을 받아야 식물이 광합성작용을 하여 자라듯,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자랍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1:29). 하나님과 깊은 기도를 통해 은혜를 듬뿍 받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은 날마다 새 힘을 얻지만,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면 우리 믿음은 시들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분당의 아파트들은 입주한지 20년이 지나면서, 점차 건물이 낡아지고 퇴색하여 재건축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20년 세월이 건물을 퇴락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도로변이나 주택단지에 심은 나무들은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건물이나 나무에게나 똑같은 20년 세월이지만, 생명이 없는 건물은 20년의 세월이 점차 낡고 퇴락시켰고, 생명을 가진 나무는 20년 동안 무성하게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과 교제 없이 연조만 보내면 점차 시들어가고, 말씀과 성령을 통한 교제를 갖으면, 그 흐르는 시간을 통해 더욱 성숙하여 믿음의 깊이를 더해 가게 됩니다.


셋째, 성도간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합니다. 초대교회가 그토록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던"(행2:46) 때문입니다. '사람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결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에서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성도간의 교제를 통해서 믿음이 성장합니다. 사람은 어떤 사람과 사귀느냐에 따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키 큰 나무숲에 서니 내 키도 한층 커 있었다'는 말처럼, 우리가 적극적으로 경건한 성도들과 교제함으로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코이의 법칙'이 있습니다. 관상어 중에 코이라는 물고기는 작은 어항에다 기르면 5-8cm밖에 자라지 않지만,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으면 15-25cm까지 자라고 강물에 방류하면 90cm에서 120cm까지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물고기지만 어항에서 기르면 피라미 만하게 자라고, 강물에 놓아두면 대어가 되는 신기한 물고기를 두고 사람들은 '코이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자기 자신이나 가정에만 갇혀 있으면 작은 존재가 되지만, 천국을 품은 성도들과 교제하면 천국의 재목으로 자랍니다.


넷째, 봉사와 헌신을 통해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엡4:15). 봉사는 성숙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봉사를 통해 믿음이 자랍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은혜 받고, 기도와 성령의 감화를 받아도, 이것이 봉사를 통해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운동을 해야 몸이 건강해지듯, 봉사를 하면서 더 큰 은혜를 체험하고, 더욱 깊은 믿음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마치 철부지 색시도 시집가서 남편을 섬기며, 자식을 낳아 기르는 중에 철이 들고, 그러면서 어엿한 어른으로 성숙해 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에 대한 봉사를 통해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다섯째, 우리가 겪는 고난도 우리의 믿음을 성숙하게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합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우리는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되며, 믿음이 굳건하게 되고, 우리의 자리를 견고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이 고난을 통해서 더욱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보리 이삭이 잘 자라면 한 포기에 450알이 열리는데, 처음 돋아난 줄기는 그렇게 많은 낱알을 떠받칠 수 없어 80알 내지 90알 정도가 열립니다. 그래서 농부는 보리가 싹을 내면 발로 밟아주는데, 이 때 허약한 싹은 꺾여집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는데 전보다 더 강한 줄기가 됩니다. 그래서 몇 100알이 열려도 문제가 없습니다. 보리 싹을 밟는 것을 불쌍하다고 여겨 밟아주지 않으면 보리는 쓰러지고 맙니다.


미국 동부의 메이저 건축설계회사 팀하스의 설립자 하형록 회장은 1991년 심장이식을 기다리다 옆 병실 생면부지 여인에게 심장을 양보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이 결정을 내린 후, 기적적으로 다른 심장을 이식 받았습니다. 그 이후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자 어려운 형편의 이웃부부가 거금을 주어 그는 틈틈이 돈을 모아 돌려주니 그 부부는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려운 이웃을 열심히 도왔는데, 그리고 나면 반드시 다른 곳에서 1억 원, 5억 원씩 들어왔습니다. 이런 체험이 반복되면서 그와 그의 직원들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손해보는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워런 버핏이 '열정은 성공의 열쇠이지만, 나눔과 희생은 성공의 완성이다'고 한 말처럼, 그에겐 성장과 행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책 [페이버](Favor)에서 참 희생은 승리의 지름길임을 말합니다. "나보다 더 큰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먼저 생각하며 하나님이 지금 내게 원하시는 선택이 무엇인가만 생각했다. 나는 언제든지 이웃을 위해 손해보고 희생할 수 있을 만큼 강하며 이웃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을 만큼 강하다. 내 삶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이며 하나님 안에서 나는 지극히 평안하다. 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큰 페이버다. 이 모든 것은 한 여인에게 심장을 주었던 일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을 희생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도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야 하겠습니다.


여름철은 무덥고 습기가 많아 후텁지근하고 끈적거려, 인간의 체질에 가하는 하나의 시련입니다. 그러나 모든 식물은 이 더위와 습기 속에서 성장합니다. 이 여름이 견디기 힘들다고 서늘하기만 하면 모든 식물은 성장을 멈추고 아무 소용없는 쭉정이가 됩니다. 뜨거운 폭염도 성장에 필수적이라면, 우리의 고난까지도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합니다. 사랑을 받으려는 사람은 말이 많고, 사랑을 주려는 사람은 말을 많이 듣기에, 성숙한 엄마와 진짜 애인과 하나님은 말하지 않고 들어준다고 합니다.


인도의 힌두교 신자였던 여인이 복음을 깨닫고 예수를 믿게 되자 그녀의 남편은 심한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사역하던 한 선교사가 그녀에게 "남편이 화내고 핍박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말합니다. "저는 그 날 음식을 더 맛있게 요리합니다. 불평을 쏟아 놓으면 집안을 더 깨끗하게 청소하고, 욕하면 더 부드럽게 대합니다. 때리면 다가가서 때린 손이 아프지 않았냐고 위로해줍니다." 선교사의 권고에도 끄떡 않던 남편은 아내의 변화된 모습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삼상2:26). 우리 신앙도 어린 사무엘처럼 자라갈 때, 하나님께 은총을 받고 사람들로부터도 귀중히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는 안일한 가운데 머물지 말고, 열심히 말씀과 기도, 그리고 교제와 봉사를 통해 우리 믿음을 키워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되어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 풍성한 은총을 누리시길 빕니다.

에베소서 4장 11~16절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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