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6 168회
"그리하여 믿는 자가 되라"
2020년 4월 26일 주일예배
요한복음 20 : 24 ∼ 31 ; 이사야 7 : 9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뉴욕에서 전도집회 하는데, 한 기자가 "당신이 전도집회를 하고 다니는데 하나님이 계심을 증명해 보라"고 당돌히 요구하자 목사님은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답니다. "내게 하나님을 증명하라고요? 나는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아침에도 나는 그분과 30분이나 대화를 나누고 왔는데요." 누가 제게 '당신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라'고 한다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입니까? 같이 살고 있는데 무슨 증명이 필요합니까? 체험은 논리를 초월합니다.
1979년 12월 11일 이미 추워가기 시작한 북유럽 오슬로공항에 인도 의상 사리를 걸치고 샌들을 신은 키 작은 여인 마더 테레사는 인간이 주는 가장 영예로운 상인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비행기에서 내렸습니다. 그녀는 노벨 수상식의 하이라이트인 수상소감 연설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마음에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만나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도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주고받는 미소 중에도 계십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 연설하기 세 달 전인 9월에 자기 영적 지도자인 고해신부 마이클 반 데르 피트(Michael van der Peet)에게 편지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은 신부님에게 특별한 사랑을 갖고 계신 듯 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침묵과 공허함만 가득합니다. 저는 눈을 뜨고도 (그분을)보지 못하고 귀를 열어 듣고자 하나 (그분 음성을)듣지 못하고 있으며 기도하고자 혀를 움직이지만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 믿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제 마음 깊은 곳엔 온통 공허와 어둠뿐입니다. 제안에는 해답 없는 의문이 너무나 많이 살고 있습니다. 제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이 두 가지 테레사의 모습 중에 어떤 것이 진짜 그녀의 모습일까요? 둘 다 그녀 모습이라 여겨집니다. 마더 테레사는 임종의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주여, 이제 당신이 확실히 보입니다!"
저도 지난 두어 달 남짓 제 나름의 회의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의 비난과 주위의 압력이 교회에 밀려오던 때, 모든 한국교회는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때 회중예배를 계속한 교회는 성도들이 '왜 그렇게 반사회적이냐?'는 비난이 있었고, 회중예배를 중단한 교회는 '왜 이렇게 믿음이 없느냐?'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정부에서 요구하는 모든 방역조치를 철저히 이행하면서 조심스럽게 예배드리는 것을 반사회적이라고 매도하는 것도 부적절하고, 교우들의 안전과 교회의 덕을 위해 온라인예배로 전환한 것을 믿음 없다고 판단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저는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고, 매주마다 '어떤 말씀을 전해야할까'에 대해 많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힘써왔던 해외선교며, 농어촌교회 후원과 사회봉사, 그리고 영세 교회들에 대한 염려도 있었습니다.
선교학자 노만 그럽(Norman Grubb)이 '세상은 언제든지 교회에게 박수치지 않는다'고 말한 대로, 세상의 교회에 대한 비난은 그러려니 했으나, 일반 신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지난 주 보낸 자료를 보니, 개신교인들에게 코로나19에 대한 한국교회 대응능력에 대한 질문에 '대응을 잘하고 있다'는 59%였고, 한국정부가 '대응을 잘하고 있다'는 73%의 응답을 보여, 개신교인들이 한국교회보다 정부 대응력을 더 높게 평가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전염병문제를 가지고 교회와 정부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아무튼 이 시대 한국 개신교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선 교회보다 정부를 더 신뢰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우리의 이성과 상식은 세상의 여론과 사람들의 주장을 경청해야 하지만, 우리 믿음의 절대기준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바란 광야에 이르렀을 때,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했는데, 열 지파의 정탐꾼은 돌아와서 가나안정복은 불가하다고 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13:30)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저는 요근래 한국교회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분명 오늘 한국교회는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저는 그것이 '약함'이지, '악함'이라고 생각진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가 마치 악한 세력처럼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데, '하나님은 왜 침묵하고 계실까?'는 생각으로 많이 염려하며 고민했는데, 지난주일 새벽 기독교방송에서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는 말씀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은 오늘의 이 위기를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앞날에 소망을 주실 것이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영원할 것으로 여겼던 신성로마제국이 야만인 오트족에게 함락되자 어거스틴은 '어찌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이 나라가 무너지고, 저 야만인들이 점령하게 되는가?'라고 고민하다 깊은 역사의 진리를 깨닫고 [신의 도성]에서 말합니다. "사람이 세운 이 세상 나라는 무너지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진다."
공생애 3년 동안 애써 키우신 12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는 등 완전히 오합지졸이 되어, 그들을 통해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통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해야할 큰 사명이 있었기에 주님이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하실 일은 '조직을 다시 강화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자격 없고 부적절한 사람은 제거하고 다른 사람으로 대치하여 조직을 살리는 일이 급선무라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찾아 조직을 강화하는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관심은 조직이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조직을 위해선 시원찮은 제자들을 갈아치우고 새 사람으로 세울 법한데, 주님은 자살한 가룟 유다 외엔 한 사람도 내치지 않으셨고, 어쩌면 유다도 자살하지 않았다면 그도 새롭게 변화시켜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고대기록에 보면 주님이 승천하시자 가브리엘 천사가 여쭙습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내 제자들에게 나의 메시지를 맡겼으니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것이다." 이 말씀에 놀란 듯 가브리엘이 묻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실패라도 하면 어쩔 셈입니까?" 주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계획은 전혀 없다. 나는 그들을 믿는다!" 주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믿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고 숨죽이고 있는데,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요20:19) 말씀하시고는,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십니다.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주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주님이 눈앞에 나타나시자 이 꿈같은 현실 앞에서 기뻐합니다. 그런데 그때 도마는 그곳에 없어서 부활하신 주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그가 돌아오니 제자들이 "우리가 주를 보았다"고 하자,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고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요20:25)고 잘라 말합니다. 도마는 실증주의자로, 예수께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하시자, 그는 유별나게 따집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요14:5). 이 질문이 있었기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14:6)는 그 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 주님이 유대로 올라가자고 하시자, 다른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하나이까?"(요11:8)하는데, 도마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11:16)하며 용기도 보였습니다.
여기서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요20:9)는 말씀대로, 주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이미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16:21). 주님의 부활은 구약에도 예언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님도 여러 차례 약속하셨는데(눅24:25-26), 도마는 이 말씀을 알지 못하여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음은,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요20:24). 도마는 개성이 강하고 유별나서, 다른 제자들은 모두 함께 모여있는데 혼자만 빠져나와 따로 개별행동 하였습니다. 요즘은 튀는 시대라서 다른 사람과 다르게 행동해야만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과 어울릴 줄도 알고, 공동체에 참여도 해야합니다. 도마는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을 때, 그만 빠졌던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습니다. 믿음을 위해 열심히 모여야합니다. 성도들도 누구나 사람이기에 모두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하나가 되어 열심히 모이다보면, 언젠가 주님이 그 공동체에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그래서 확고한 믿음을 얻게 될 날이 옵니다.
또 하나의 잘못은, 다른 사람들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20:25). 자기는 주님의 부활을 직접 뵙지 못했더라도, 다른 제자가 모두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25절)하면, 좀 미심쩍어도 '그런가 보다'해야 할텐데, 그는 내가 못 봤으니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대단히 과학적이요, 실증주의적인 자세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의 주장도 타당하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떻게 세상 모든 일들을 내가 다 경험해 볼 수 있습니까? 내가 경험한 일만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면, 남자나 미혼여성은 산부인과 의사는 못할 것입니다. 나는 아기 낳지 않고, 어떻게 다른 이의 아기 낳는 일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의심 많은 도마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이것은 분명 은혜입니다. 만약 주님이 그에게 찾아와 주지 않으셨다면, 다른 제자들은 모두 주님의 부활로 인한 감격과 기쁨과 확신에 젖어있는데, 홀로 이 사실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믿는 다른 제자들을 미신적이라고 비난하고 정죄하며, 자기 혼자만 정직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것처럼 착각하며 평생 불신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도마는 공동체가 모인 곳에 돌아왔을 때 부활하신 주님을 뵙게 됩니다. 주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도마와 다른 제자들이 함께 모인 곳에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6절)하시고 이어서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7절). 주님은 도마가 믿기 위해 제시한 전제조건에 대해 증명해 보일 용의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네가 네 손으로 못 박힌 내 손을 만져보고, 창에 찔린 내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 보아야 믿겠다면, 좋다. 그것이 네가 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는 조건이라면, 네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넣어 보아라. 그리고서라도 너는 믿음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믿음에 대한 세 가지 교훈을 주십니다. 첫째,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이것은 절대적인 명령으로, 의심에 대한 책망이 아니라, 굳건한 믿음을 갖길 바라시는 당부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믿음이기에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고 말씀하십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랍오니여!'하며 주님을 만지려하자 주님은 이를 제지하시며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요20:17)고 손대지 못하게 하셨는데, 도마에게는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까지 하시며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벤 부렌은 "예수 부활 이전에는 그리스도인이 없었다"고 말했는데, 부활하신 예수를 믿어야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그래야 나를 믿을 수 있고 남도, 세상도 믿을 수 있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도 믿게 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믿는 자가 되라."
둘째,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20:29). 여기서 주님은 도마의 믿음을 인정하시는데, 그러나 도마의 믿음은 본 것에 근거한 믿음이었습니다. 사람이 믿음에 이르는 과정은 두 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하나는 보아야 믿는 형태로서 이 믿음은 현상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모종의 이적을 요구하는 믿음입니다. 다른 하나는 어떤 기적적인 사건을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믿게 되었지만, 다음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직접적인 체험 없이도 기록된 성경과 성령의 감화를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당시 성도들의 신앙에 대해 이렇게 칭찬하였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9). 보고 믿는 일이 있지만 어떤 경우엔 믿음으로 보게 됩니다.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때로 보지 못하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 보상으로 믿는 바를 보게된다.'
셋째, 믿어야 생명을 얻게 된다고 하십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라면서, 믿어야할 이유는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믿지 않고선 결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곧 생명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심지어 성경은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고 까지 말씀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사7:9)고 하여, 믿지 않으면 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믿어야 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또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칼 바르트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주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부활 사건이 우리에게 믿음을 갖게 해줍니다. 내가 그를 믿는 것이 아니고 그가 나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부활 사건에서 믿음을 얻게 되어 이제는 모든 것을 믿게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어서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랑이나, 희망, 양심, 진리, 천국을 믿습니다. 독일 뮌헨 근교 다카우라는 곳에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 벽에 적혀 있던 글입니다. "나는 태양이 빛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사랑이 있음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 나는 영원한 평화의 그 날이 땅위에 오리라는 것을, 더딜지라도 그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믿어야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완전한 계시는 성경이기에, 이 성경을 믿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하기보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그 말씀을 알지 못했고, 믿지 못하여, 주님이 부활하셨음에도 처음엔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사람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그토록 약하고 잘 넘어졌던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며,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될 그를 끝까지 믿어주셨기에, 그는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악한 사람도 많고 거짓된 사람도 많아서 잘못 믿었다가 큰 낭패를 당하기에, 아무도 믿지 못하고 서로 의심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의심하다보니, 이젠 믿어야할 사람도 믿지 못하고, 사실도 의심하며, 하나님조차 믿지 못하는 병든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대표적인 CEO인 잭 웰치가 어렸을 때 장난이 심하고 공부를 잘 못하여, 모든 사람으로부터 꾸중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합니다. "내 어머니만은 늘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너는 다 할 수 있다고 나를 믿어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니라고 할 때에도 어머니만은 나를 믿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있습니다"고 말합니다. 단 한 사람이나를 믿어 줄 때 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한동대 기독교변증사역연구소장 김기호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타력권입니다. 또한 믿음은 기본적으로 기도와 성경말씀에 기초합니다. 자력권이 필요하지요. 핵심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며 결국 지옥에 떨어질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죄성을 인식할 때, 믿음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인 줄 바로 인식하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현자 정도로 이해할 뿐, 구세주로 바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톨스토이는 열여덟 살에 대학을 중퇴하고 전부터 믿어오던 기독교를 떠났습니다. 그는 러시아 최고 작가였지만 삶과 죽음의 신비를 풀지 못하고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 숲을 걷다가 믿음의 큰 변화를 경험하고 말했습니다. "지성으로만 어떤 대상에 접근하면 그 대상의 진정한 의미는 희미해진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모든 것에 활기가 스몄고 의미가 부여되었다. 하나님을 찾고서 비춰진 빛은 날 결코 떠나지 않았고, 내 내면과 주위에서 지금껏 일어난 생명보다 강했다." 그는 날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 내게 빛과 사랑을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이재철 목사의 [다 알지 못해도]라는 글입니다. 아들 승훈이가 어릴 때, 뜻하지 않게 승훈이를 데리고 미국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결정된 일이라 빨리 여권과 비자를 발급 받기 위해 사진을 찍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승훈이가 놀러가기로 한 날에 사진을 찍어야했는데, 행여 비자가 발급되지 않으면 승훈이가 실망하지 않도록 미국 얘기를 하지 않고 사진을 찍으러가자고 하자, 승훈이는 짜증내며 왜 자기 계획을 깨면서까지 사진 찍어야 하는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앞으로도 아빠가 가끔은 이유를 말할 수 없을지라도 그 일이 널 위해서임은 말할 수 있다. 생각해봐. 아빠가 이제껏 네게 무얼 하라고 한 것 중에 결과가 네게 좋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었니? 아빠를 믿고 같이 가서 사진 찍자. 이유는 곧 알게 될 테고 너도 굉장히 기뻐할 거야." 승훈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사진 찍었는데, 비자가 발급된 날, 승훈이는 여권을 보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할 상황에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더 좋은 계획이 진행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시인 나태주의 시 [예쁜 기도] 입니다. "다만/ 공손히 고개 숙인 이마// 다만/ 곱게 내려감은 눈썹// 다만/ 아멘으로 답하는 입술// 예쁘다/ 다만 예쁘다" 우리도 때로 도마처럼 의심이 밀려올지라도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믿음을 구합시다. 그 의심 많던 도마가 변화되어 복음을 전하다 순교까지 했습니다. 불신의 세상에서 하나님과, 성경말씀을 믿고 형제도 믿음으로 영접하면 우리는 천국을 누리게될 것입니다. 믿음은 울음으로 시작된 인생이 미소로 끝나게 하는 은총입니다.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