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을 살리려고

2022-07-17 127회

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

마가복음 2장 1~12절

설교요약 :

“한 생명을 살리려고”
2022년 7월 17일 주일예배

마가복음 2 : 1 - 12 ; 전도서 4 : 9 - 10

예수님 당시, 팔레스틴의 가버나움에 중풍에 걸려 반신불수로 병석에 누워서 지내야만 했던 환자가 있었습니다. 이 중풍병자는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도 예수님께 나아가 병 고침을 받고 싶지만, 꼼짝할 수 없는 반신불수의 병자였던지라 안타까움에 혼자서 눈물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네 사람의 이웃이 찾아와서는 그를 침상 채 메어들고는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데려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일입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들었는지 예수님께 나아갈 길이 완전히 차단되었던 것입니다. 낙심천만해 있는데, 한 사람이 “지붕으로 올라가자!”하더니 지붕을 덮고 있는 흙과 집, 석회, 판자, 기와 등을 떼어내고, 막 드러난 들보 안으로 그 환자를 달아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저들의 이 모습을 보시고 큰 감동을 받고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5절)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작은 자’란 호칭은 매우 다정한 표현으로, 예수님은 참된 믿음을 지닌 자들을 어린 아들처럼 여기셔서, 중풍병자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 간절한 모습을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먼저 병의 원인인 죄를 사하여주셨고, 그 다음에 죄의 결과인 중풍병까지 치유해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먼저 사죄의 은총을 베풀어주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해주셨고, 그 후에 그의 간절한 소원이었던 중풍병을 치료해주심으로, 그의 영혼과 육체를 모두 살려주시는 전인적인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여기서 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와 그의 영혼과 육체를 모두 낫게 한 네 사람에겐 어떤 믿음이 있었습니까? 첫째, 중풍병자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병들어 제 몸 가누지 못하면, 몸에서 냄새나고, 질병으로 일그러진 모습 때문에, 가깝게 지내던 사람도 멀리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중풍병으로 반신불수가 된 이 환자에게 마음이 끌려 ‘저 사람도 예수님께만 데리고 가면 낳을 수 있을 텐데’하는 생각으로, 그에게 찾아가 그를 예수님께 침상 째 메고 갔던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없고, 이해하고 용납해주는 이가 없으며, 내 편이 되어주는 이가 없다 싶을 때, 사람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립감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극도의 파괴적인 반응으로 나타나, 살인과 방화, 강도, 강간 등으로 자기의 소외 받은 감정을 이웃과 사회를 향해 앙갚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어로 ‘동정한다’는 말을 컴패션(Compassion)이란 단어를 씁니다. 여기서 ‘콤(Com)’이란 말은 ‘같이’라는 뜻이고 ‘패션(passion)’이라는 말은 ‘정열’, 혹은 ‘고통’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컴패션(compassion)’은 ‘같이 고통한다’는 ‘동정(同情)’으로, 같이 느끼고, 같이 아파하는 마음입니다. 나는 건강해도 저 사람이 병들었으면, 저 사람의 병을 내 병처럼 고통스러워하고, 나는 배부르지만 저 사람이 배고플 때 나도 배고픈 것처럼 느끼는 감정입니다. 나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지만, 아직 예수 믿지 않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보면, 그가 받을 형벌을 내가 당하는 듯, 견딜 수 없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한 영혼을 예수님께 인도하게 됩니다.


둘째, 저들에겐 서로 협력하여 하나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등에 들쳐업기도 좋은데, 몸이 꼬부라져 버린 이 환자는 업거나 안을 수도 없어, 침상 채 들고 예수님 계신 집까지 데려가야 하는데, 이 일은 혼자선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 네 사람이 힘을 합쳐 침상을 들게되니 넉넉히 옮기게 되었습니다. 서로 형편과 사정이 다르지만, 이 불쌍한 환자를 예수님께 데려가는데 한마음이 되어 협동하니, 능히 옮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 중에 키 큰 사람은 자기 몸을 좀 낮춰야했고, 키가 작은 사람은 보다 높이 들어야했습니다. 또 키 큰 사람은 성큼성큼 가는데, 키 작은 사람은 아장아장 걸으니 서로 보조를 맞춰야 했습니다. 이렇게 서로를 배려하며 높이와 속도의 조화를 이뤄야만 환자를 옮기 수 있었습니다. 함께 일하려면 이렇게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셋째,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난관을 극복하는 인내가 있었습니다. 이 중풍병자를 침상 채 매고, 예수님 계신 집까지 왔지만,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있어 도저히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메어 갈 수 없자, 궁여지책으로 옥상에 올라가 지붕을 뚫고 환자를 예수님 계신 방으로 달아 내렸는데, 지붕을 뜯을 때 집주인이 어떠했겠습니까? “내 집 다 부순다!”고 소리치며, 못하도록 막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이런 말에 개의치 않고, “걱정 마세요. 집은 우리가 다 고쳐주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지붕을 뚫고는 이 사람을 예수님 계신 곳으로 달아 내렸던 것입니다. 집보다는 한 생명이 더 귀하다는 생명에 대한 존중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4:9-10). 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우리 모두의 힘이 모아지길 소망합니다.

마가복음 2장 1~12절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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