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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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용 목사

디모데후서 3장 13~17절

설교요약 :

"구원에 이르게 하는 말씀"
2020년 9월 13일 주일예배
디모데후서 3 : 13 - 4 : 2 ; 시편 119 : 73 - 74


이런 말이 있습니다. "깨달음 없는 종교 믿으나마나. 진실 없는 친구 사귀나마나, 자기 희생 없는 사랑하나마나." '깨달음 없는 종교 믿으나마나'가 마음에 닿습니다. 인도의 뉴델리 간디 기념공원 '라즈갓'(Raj Ghat)에는 일곱 가지 사회악에 대한 경구가 새겨져있다고 합니다. "원칙 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 노동 없는 부(Wealth without work), 양심 없는 쾌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 인격 없는 지식(Knowledge without character), 도덕성 없는 상업(Commerce without work), 인간성 없는 과학(Science without humanity), 희생 없는 예배(Worship without sacrifice)" 여기서도 '자기 희생 없는 예배'라는 말이 우리의 마음을 찌릅니다.


지난 8월 29일 목회데이터연구소로부터 '종교(인) 및 종교인과세 관련 인식조사'란 글을 이메일로 받았습니다. 거기에 보면 천주교와 불교인은 '온화한(각 34.1%·40.9%)', '따뜻한(29.7%·27.6%)' 같은 긍정적 이미지가 우세했지만 개신교인에 대해선 '거리를 두고 싶은(32.2%)', '이중적인(30.3%)', '사기꾼 같은(29.1%)'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였습니다. 그리고 곧 다음포털 메인 화면에 이 기사가 실리더니,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카톡으로 다시 이 기사가 언론에 보도된 것을 자랑스럽게 소개했습니다.


요즘 우리는 기독교가 세상으로부터 얼마나 혐오와 비난의 대상이 되고있는지 언론에서 매일 접하며, 참담함으로 '정말 교회가 잘 처신해야하겠다'는 생각이 절절하면서도, 언론의 폐해를 크게 우려합니다. 첫째는 일부분만 보고 전체로 판단하는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일부 교회에서 코로나19 감염이 일어난 건 사실이지만 교회가 코로나19 확산의 주 요인은 아닙니다. 그런데 방송은 코로나 확산을 보도할 때, 먼저 교회부터 언급하면서 교회가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으로 인식케 합니다. 오래 전 일본TV에서 '이것이 미국이다'는 제목으로 뉴욕의 슬럼가를 보여주었는데, 그곳이 미국인 것은 사실이나, 그곳이 미국 전체를 대표할 수 없듯, 일부 교회에서 코로나확진자가 생겼다고, 한국교회를 코로나19확산의 진원지로 모는 것은 잘못입니다.


다음은 '낙인효과'(Stigma Effect)입니다. 한번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면 그 부정적 인식이 계속 이어지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WHO가 '코비드19(COVID19)'라고 명명했지만 영어권에서 '우한 플루(Wuhan Flu)'라고 부르자 중국이 발끈했고, '우한 폐렴'을 쓰지 말자던 정부는 '대구 코로나'라고 했다가 대구 사람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미국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는 처음 범죄한 사람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으면, 범죄자란 정체성으로 재범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이중적인', '사기꾼' 같은 보도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되어, 얼마 전 교회 앞에서 생수를 나눠주던 우리 교회 권사님 두 분이 지나가던 행인으로부터 봉변을 겪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편향성의 문제입니다. 외눈인 한니발 장군은 보는 쪽에 따라 소경으로도, 그리고 정상인으로도 보이는데, 한국교회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병존하지만, 유독 나쁜 점만 보도하는 것은 편집자의 편향입니다. 요즘 한국교회에 대한 보도를 보면, 그리스도인조차 '교회가 과연 세상에 필요한 것인가?'하는 회의가 드는데, 정말 교회가 그렇게 악한 존재일까요? 장애인을 위해 재판까지 하며 '밀알학교'를 세우고, 전 세계에 구호활동을 해온 홍정길 목사는 기독교가 끼친 영향을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을 기본 삼아 이상적인 사회에 근접한 국가를 이룬 나라들은 일부 유럽국가들과 미국으로, 이들은 루터파와 칼빈파, 개혁주의 교회와 청교도 신앙을 바탕으로 이뤄진 나라들은, 몇 백 년에 거쳐 발전하며, 때론 전쟁의 큰 고통도 겼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마음에 품고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었다. 그들이 염원했던 국가의 모습은 이런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정치이다. 미국이 독립할 때, 유럽 많은 나라들은 왕이 없는데 어떻게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미국 청교도들은 독립전쟁에서 승리하자, 인류 최초로 혈통에 의한 세습이 아닌 투표로 제한된 임기의 대통령을 세웠다. 초대 대통령에 조지 워싱턴이 당선되고, 두 번째 임기 말에 사임의사를 밝히자,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며 대통령 자녀가 이어받거나, 아니면 크롬웰처럼 당신의 대까지 만이라도 다스려달라고 하니 워싱턴은 이렇게 대답했다.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장로교회 헌법은 임직 기간이 3년으로 장로나 목사가 투표로 위임되면 3년 후 재투표를 하듯, 대통령 임기도 그래야 합니다." 당시 미국교회의 전통을 정치에도 적용하여 초대대통령 워싱턴은 대통령직을 두 번 하고 물러나, 자유민주주의 미합중국이 시작이 되어, 대표적인 민주주의국가가 되었다.


둘째, 경제이다. 누가복음 12장의 '진실한 청지기'란 '맡은 자'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내 것으로 여기지 않고, 맡기신 이의 일을 해야한다. 세상은 장사하여 이윤을 남기면 그 돈은 자기 것이다. 재리에 밝은 세계3대 상인은 중국상인, 아라비아 상인, 인도상인인데, 이들은 장사수단이 매우 뛰어났을 뿐 아니라, 돈버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여 그 나라들은 수학이 발달했는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에 비해 네덜란드 개혁교회 청교도들은 돈버는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모든 돈이 내 것이 아닌 청지기자세로, 수익의 사용처도 기록하여 재물을 바르게 사용했다. 그러자 유럽의 많은 부유한 상인들이 이들의 투명한 경영자세를 보고 재산을 맡겨 투자하는 일이 일어났다. 모든 것을 기록하여 투명하게 하니 사람들이 신뢰했고, 이 신뢰는 어떤 재산보다 큰 자산이 되어서,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가 모여들어 세계를 관리하는 나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것이 막스 베버(Max Weber)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에 기록되었는데, 네덜란드인들의 철두철미한 청지기정신은 오늘 세계자본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셋째, 인권이다. 이전 세계는 노예의 나라들로 존재했었다. 우리나라만 해도 조선 시대 전 국민의 40퍼센트가 종의 신분이었다. 노예는 물건처럼 사고 팔았고, 주인의 어떤 학대도 문제되지 않는 물건에 불과한 소유물이었다. 비인간적 학대로 얻게 된 노예의 노동력으로 영국은 근대산업사회의 시작인 산업혁명 시대를 열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를 식민지배하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이때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노예제도는 하나님 말씀과 전혀 일치하지 않음을 깨닫고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자, 그는 국익을 생각지 않는 매국노로 매도되어 수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1789년 윌버포스가 노예제도 폐지를 하원에서 역설하고, 갖은 노력 끝에 1807년에 노예무역 폐지법안이 통과되고, 1833년 7월 26일, 모든 노예를 1년 내 해방하는 결정을 병상에서 듣자, '주여, 이날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며 울면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1863년 1월 1일, 링컨은 노예제도 폐지를 결정하는 선언문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내 평생에 이 선언서에 서명한 것보다 더 옳은 일을 한 것이 없습니다. 지구상에서 노예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음이 선언된 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 신실한 사람들의 헌신된 생애를 통해서 역사를 발전시켜왔습니다. 이것은 어떤 정치적인 노력으로 통해 이룬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이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갖게 된 결과입니다. 우리나라도 그 반상의 차이가 심하던 때, 김제 금산교회의 부호였던 조덕삼이 그의 마부였던 경남 남해 출신의 이자익을 전도하여, 그가 먼저 장로로 피택되자, 그 결정은 하나님의 뜻이라며, 받들어 섬김으로 반상과 지역차별 철폐에 앞장섰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지막 편지인 오늘 말씀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에 대해 간곡히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딤후3:13)라 하여, 당시 디모데가 처한 그 시대 상황은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사람들이 득세하던 시대였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전망도 매우 어둡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14절 첫머리에서 '그러나'라는 접속사를 통해, 악한 사람들은 계속 악해질 것이고, 속이는 사람들은 계속 속일 것이지만, 바울은 디모데가 타협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이 시대의 탁류를 거절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너는 잘 배워서, 그 말씀 가운데 거하고, 그리고 그 말씀을 잘 전파하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면 왜 그 말씀을 배우고 말씀 가운데 거해야합니까? 첫째,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3:16a).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는 말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기로 된 것처럼(창2:7) 성경 역시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음을 뜻합니다. 세상 모든 책은 사람의 생각에 의해 쓰여졌으나, 오직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둘째,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 성경의 목적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는데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모든 책들은 세상 지혜를 가르쳐주지만,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에 이르게 하는 구원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셋째,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b-17). 성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만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의로 교훈하여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시켜주는 책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어릴 때부터 올바르게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처럼 성경은 우리를 올바른 인격과 가치관과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교육하고 훈련하는 데 유익한 책입니다. D. L. 무디는 '성경은 정보를 위한 책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책이다'라고 말합니다.


프랑스 영인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에 약 230년 전 반란이 일어났다가 진압되어, 9명의 프랑스인과 6명의 타히티 원주민 남자와 12명의 타히티 여자들이 반란에 가담한 죄로 1790년에 핏캐인 섬으로 영구 유배되자, 그들은 그곳에서 양심과 윤리와 도덕도 없이 살다가, 10년 후 한 프랑스 남자와, 한 원주민 남자, 원주민 여자 몇과, 어린아이 몇 명만 남고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남자가 다 낡은 성경 한 권을 발견하고는 성경을 읽기 시작하고,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810년에 그 섬의 인구가 배 이상으로 늘어났는데, 그 섬은 낙원으로 변했습니다. 그 섬은 도둑이 없고, 감옥이 없고, 위스키가 없는 섬이 되어, 주민들은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즐거움 삼고, 온 섬이 주일을 성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믿음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첫째, 배우라고 말씀합니다. 14절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15절에는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 하여, '성경을 배우라!'는 명령을 알게 됩니다. 현대 교회의 비극은 성경이 없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신학자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손에서 성경이 멀어져 있는 비극을 보며 [왜 성서가 교회 안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라는 책을 썼습니다. 성경이 세계 최고 베스트셀러인데도, 가장 읽혀지지 않는 책이 되었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평신도에게 성경을 읽게 하지 않았지만, 개신교는 적극적으로 평신도들에게 말씀을 읽도록 하여, 영국에서는 복음이 인쇄술을 통해 빠른 속도로 국민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두란노에서 발간한 [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 윌버포스]에 보면 이 시기에 '모든 농부들의 서재에 5억 부의 복음을 인쇄한 소책자가 보급되었고, 이 복음은 국민생활 구석구석에서 더러움을 몰아내자, 사람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과거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잔인하고, 떠들썩하고, 난폭하고, 노골적이고, 살벌했던 국민들이었는데, 복음이 전파된 이후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절제되고, 예의 바르고, 질서정연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얌전한 민족으로 바뀌었다. 복음주의는 영국인의 인격의 토대가 된 반석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또 영국에 16세기에 복음이 들어가자 17세기부터 대대적인 교육개혁이 일어나 세계 역사상 어느 국가나 종교도 '모든 국민을 교육'한 적이 없었는데 영국은 전 국민이 받도록 교육체제가 바뀌었습니다. 초등학교와 대학교가 이 때부터 영국전역에 생겨났습니다. 영국에서는 인쇄술이 모든 국민들에게 성경과 교과서를 보급하는 선한 목적으로 사용되어 영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다른 나라는 선교사가 들어가 성경을 번역하고 가르쳤는데, 우리나라는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인 1882년 중국 심양에서 스코틀랜드 선교사 로스와 맥켄타이어가 조선 사람의 도움을 받아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번역하여 출판했고, 24년 후에 신약성경이 번역되고, 그 후 30년 후 구약이 번역되어 신구약합본이 1938년에 출판됐는데, 선교사가 들어온 것은 1885년입니다. 어떤 분은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 지금까지 기독교가 안 들어왔다면 지금 한국의 문화나 정치, 사회 환경이 기껏 태국이나 미얀마 정도 밖에 더 됐겠느냐?' 합니다. 성경이 이 땅에 들어와 한글이 보급됐고, 이로 인해 캄캄한 영혼을 깨우쳐, 한국은 많은 고난에도 이만큼 우뚝 서게되었습니다.


둘째, 말씀에 거하라고 하십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절). 배워 확신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 가운데 거하라고 가르칩니다. '거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머문다'는 뜻으로, '배워서 확신한 그 교훈 위에 견고하게 머물며 그 말씀대로 살라'는 말씀으로, '적용하라'는 뜻입니다. 현대 교육에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에 머물고 만다는 것입니다. 지식은 축적되지만, 무엇을 위해서 교육을 받고 있는가를 모르는 현대 교육의 비극이 세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인격적인 '결단'이 필요한데, 이 결단은 머리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머리'와 '가슴'의 거리는 불과 3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예수님을 머리로만 아느냐 아니면 가슴에 모셨느냐의 차이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합니다. 무디는 자신의 인생과 모든 사역이 성경의 원칙에 의해 움직이길 원하여, 그의 성경은 구절마다 'T. P'라는 이니셜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글자의 뜻을 묻자, 그는 'Try(실행했더니), Proof(증명됐다)'라는 뜻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말씀을 읽을 때 눈과 머리로만 읽지 않고 가슴과 몸 전체로 읽었으며, 말씀은 그의 삶을 능력으로 이끌었습니다. 무디 자신 혼자만 성경을 사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경대학과 기관들을 세워 하나님의 사람들을 배출해냈습니다.


존 워너메이커가 사업가로서 60년을 맞은 기념행사에서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회장님이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무엇입니까?" 그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10살 때 2달러 75센트를 주고 산 예쁜 가죽성경이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는데, 그 성경이 나를 만들었습니다." "성경만 구입하면 성공할 수 있나요?"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실천해야지요.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쁘게 일하다보면, 성공은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있습니다." 워너메이커는 인생의 매순간에 말씀을 실천하며 꿈을 성취해나갔습니다.


R. A. 토레이는 말합니다. "성경에 많은 번역이 있는데,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번역은 내 삶으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다." 말씀과 삶이 일치될 때, 우리는 진정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하면서도 말씀을 의지하지 않으면, 결국 물이 없어 메마른 나무처럼 믿음이 시들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따라 살 것인가, 세상풍조를 따라 살 것인가, 말씀에 대한 자세가 운명을 좌우합니다.


셋째,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말씀전파는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지만, 전도를 하면 먼저 내 믿음에 확신이 생깁니다. 누군가가 무디(D.L.Moody)에게 "성경을 읽다가 깨달아지지 않고 의심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다른 사람 같으면 '기도하시오'라고 대답할텐데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의심이 생기고 깨달아지지 않으면 성경책을 놔두고 뛰쳐나가 전도하고, 지나가는 손수레라도 밀어 주라. 무슨 일이든 찾아서 봉사하고 전도하고, 돌아와서 성경을 읽으면 해석이 될 것이다." 참 귀한 교훈입니다. 행하지 않기에 이해가 안 됩니다. 내가 들은 것은 곧장 실천해야 합니다.


미국에 잭 하일스라고 하는 전도를 많이 하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 목사님이 한번은 이른 아침에 어떤 식당에 갔는데 얼마나 종업원이 불친절하던지 항의하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잠시 기도하는데 갑자기 '그녀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평소 5불이면 될 팁을 10불을 놓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막 식당에서 나오는데 그 종업원이 쫓아 나오면서 "손님 팁은 10불이 아닌데 잘못 놓고 나오신 것 아닙니까?"하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하일스 목사님이 "아니, 팁입니다. 당신 얼굴이 힘들어 보여 용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자, 갑자기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하더라고 합니다. "제가 오늘 아침 많이 무례했지요, 죄송합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사실은 제가 어제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습니다." 그 날 하일스 목사님은 그녀와 함께 기도하고 복음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든 기회를 선용하여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1900년대 강화 북부마을에 종순일이라는 돈 많은 유학자가 전도를 받고 신앙생활하며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때 마태복음 18장의 임금님에게 1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 빚진 자가 빚을 갚지 않는다고 옥에 가두었다가, 임금님이 알고 그 사람을 다시 잡아다 감옥에 가두었다는 말씀을 읽다가 큰 충격을 받고 며칠 동안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기도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놓고 있었는데, 이 말씀을 자기에게 하시는 말로 받게되자, 그는 자기에게 빚진 사람들을 다 불러모았습니다. 빚쟁이들은 빚을 갚으라는 줄 알고 모두 떨고 있고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나는 마태복음 18장 말씀을 읽고 충격을 받았소, 여기 무자비한 종이 바로 나 자신인 것을 알았소, 나는 오늘 부로 여러분의 빚을 모두 탕감하기로 하였소"하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빚 문서를 모두 불태워버렸습니다. 그는 또 마태복음 19장 21절의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읽고 자기의 재산을 처분하여 강화주변에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강화도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던 날 밤,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 고종황제가 침전 밖을 향해 화급하게 외친 말은 '밖에 기독교인 누구 없느냐?'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교사 언더우드가 급히 궁궐로 달려왔고, 곧 이어 헐버트가 뒤따라와 그 날 밤을 함께 지새웠습니다. 에비슨은 고종의 요청으로 황제의 신변을 지키며 먹는 음식마다 독이 있는지를 살폈고, 언더우드의 부인 릴리어스 호튼은 독살을 두려워하는 고종에게 음식을 조리하고 공급했습니다. 당시 고종의 안위를 지킨 사람들은 언더우드와 헐버트, 에비슨, 릴리어스 등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순번을 나눠 불침번을 서며 고종을 호위했던 것이 당시 불행한 황제가 가졌던 유일한 방패였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기독교인의 수가 인구의 1%도 안 되었을 때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오늘도 세상은 참된 그리스도인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세상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을 찾고 계십니다. "밖에 기독교인 누구 없느냐?"


C.J. 매허니(Mahany)는 '우리의 감정이 최종 권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권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시대 성도들이 세상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사기꾼 소리를 듣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 말에만 귀를 기울이거나, 하나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그 말씀을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각성하고 하나님 말씀에 가까이하며 그 말씀을 준행할 때, 우리는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시119:73-74). 말씀을 배우고 행하며, 그 말씀을 전하여, 믿음의 확신으로 세상을 밝게 비춥시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디모데후서 3장 13~17절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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