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9 53회
"그리스도인의 최우선 관심"
2019년 6월 9일 주일예배
사도행전 1 : 4 - 8 ; 스가랴 4 : 6
파리채를 들고 어슬렁거리는 남편에게 아내가 "뭐 하느냐?"고 묻자 남편이 파리 잡는다고 대답합니다. "그래, 파리를 잡기는 했수?"라고 아내가 물으니, 남편이 "응. 수컷 셋하고 암컷 둘을 잡았지"라고 대답하는 말에, 아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라고 의아하여 묻자, 남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파리 셋은 맥주 깡통에 있었고, 둘은 전화기에 있었거든." 파리도 각기 자기가 관심 있는 곳에서 노는가 봅니다.
현대인의 최대관심은 '건강'일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경제'이고, 세 번째는 '어떻게 인생을 즐기느냐'는 '쾌락'으로 여겨집니다. 여러분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원태연의 시집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 생각을 해]가 베스트셀러였는데, 내겐 저 사람이 최선인데, 나는 저 사람에게 차선인 듯 싶어 서글퍼질 때가 있습니다. 미국의 격언에 '차선은 최선의 최악의 원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다 더 중요한 차선에 집착함으로 가장 중요한 최선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워렌 버핏의 전용기 조종사로 10년 넘게 일한 '마이크 플린트'가 어느 날, 자신의 경력과 목표에 대해 버핏과 이야기하는데, 버핏이 말합니다. "자네 목표가 무언가? 가장 중요한 목표 25가지를 적어보게." 플린트가 몇 분 안에 목록을 완성하자 버핏이 "25가지를 다 적으면,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에 동그라미를 쳐보라"고 하자, 플린트는 이내 5가지 목표에 동그라미 치고 말했습니다. "아! 이제 제가 당장 해야할 일이 뭔지 알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5가지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럼 동그라미를 치지 않은 나머지 목표들을 어떻게 할건가?" "5가지 목표에 시간을 투자하고 나머지 20가지도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노력해 이루어야지요." 버핏이 말합니다. "자네는 지금 실수하는 거야. 자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5가지 목표를 전부 달성하기 전까진 나머지 20가지 목표에는 관심도 기울여선 안되네." 우리에게 때로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빌 하이벨스는 그의 책 [인생경영]에서 '믿는 자의 우선순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온갖 부류의 사람, 활동, 업적, 책임 따위에 자신을 아낌없이 후히 내어준다. 시간과 정력과 창의력과 관심을 교육, 직업, 친구, 가족, 쾌락 등에 쏟아 붓는다. 여러분은 어떤가? 하나님과의 관계는 딴전인 채 더 큰 곡간을 짓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다 쏟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람들이 인생의 혼란과 공허 속에 무의미와 영적 기갈로 시달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삶의 질서가 깨진 때문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그의 책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원수는 죄가 아니라 충분치 못한 차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시인 괴테의 말대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어집니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소원과 관심사가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이 땅에서 40일 동안 계시다가,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감람원에서 하늘로 승천하시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1:6). 이 제자의 질문은 '이스라엘의 독립과 해방의 때가 언제냐?'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 하에 있었기에, 이 외세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이룰 수 있는 때가 언제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이런 현실과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 갖는 것이 잘못일 수는 없습니다. 외세의 지배 하에서 압박 받고 있던 민족의 해방과 자유를 기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국민의 염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를 잃은 억압과 설움에서도 '나라의 회복'이라는 희망만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엔 민족의 영광과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과 같은 그런 시절을 다시 오게 하실, 종말론적인 메시아의 나라가 오기를 간절히 빌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셔서 많은 이적을 보이시며, 많은 권능을 행하시고, 말씀을 들려주시고, 권세 있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모습에 저들은 놀랐습니다.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오병이어의 권능을 지닌 그 메시아가 이제 정말 메시아의 왕국을 이루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나라를 회복해주시리라고 믿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리라 기대했고, 왔다고 믿었고, 그리고 그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입니까? 그 메시아가 십자가에 달려 죽고만 것입니다. 그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저들의 실망은 컸습니다. 주님께 민족해방에 대한 꿈과 기대를 걸었으나, 그들의 꿈과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자 저들의 꺼졌던 희망은 다시 살아납니다. 메시아께서 죽음까지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으니, 더 큰 기대와 희망을 갖게 되었고,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바로 지금이야말로 저분이 메시아의 나라를 이루실 때'라고 생각하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바로 직전에 주님 앞에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합니다. "주께서 이스라엘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이 얼마나 절실하고 간절한 질문입니까? '주님의 십자가 승리로 이후에는 아무런 고통이 없고, 가난이 없고, 전쟁이 없는, 이러한 메시야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라는 소망을 가지고 따랐던 제자들이었기에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는 물음은 어쩌면 당연한 관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비단 예수님의 제자들만의 질문이나 소원이 아니라, 당시 팔레스타인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의 관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질문과 요청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먼저,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갖는 관심 그 자체를 책망하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주께서 이스라엘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묻는 질문에 대해,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1:7)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너희는 이런 세속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나 생각을 갖지 말아라"라고 금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저들이 가져야할 우선적인 관심이 다른 데 있음을 말씀하셨지, 이런 문제에 관심 갖는 것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백성으로서,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일입니다. 자기 나라의 안위와 민족의 앞날에 대해 관심 갖고 염려하는 것은 너무나 타당한 일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세상 나라의 회복' 같은 것에 대해선 간여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고 말씀하심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며 섭리하심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칫 하나님은 이 세속의 일에 대해선 관여하지 않으시고, 저 천상의 문제나, 사람들의 영혼에 대해서만 관심 갖으신다고 오해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민족들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민족들을 널리 퍼지게도 하시고 다시 끌려가게도 하신다"(욥12:23)며, 나라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오늘이 현실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바른 자세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이어서 주님은 제자들이 관심 갖고 추구해야할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십니다. 제자의 질문에 대해 주님은,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7-8)고 말씀하십니다. 국가를 사랑하고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일은 중요한 일인데, 주님은 이 땅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것보다도 더 크고 위대한 목표를 주십니다.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염원하는 일 보다도 더 소중한 새로운 목표를 제자들에게 부여하십니다.
'민족주의'가 좋은 것 같으나, 이것이 잘못되면 악마적인 힘을 드러냅니다. 70년 동안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이전에 인류 전쟁은 이 민족주의가 만들어냈습니다. 2차 대전은 게르만민족이 우월하고, 태평양전쟁은 일본인이 더 위대하다며 일으킨 전쟁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은 자기 민족만 위하는 민족주의에 의해 일어납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싸운 크리미어전쟁 때 나이팅게일은 국적을 넘어서 어느 나라든지 부상당한 사람은 누구나 치료하다 간첩과 매국노로 몰리며, 많은 고통을 겪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애국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의가 먼저요, 진리가 먼저요, 평화가 먼저요, 사랑이 먼저지 애국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기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당부를 하십니다. 3절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이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이란 요한복음 14장에서 약속하신 성령에 대한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요14:16). 이어 주님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
1700년대 프랑스는 혁명과 반혁명이 계속되며 수많은 사람들이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편안한 가정이 없었고, 편안한 사회가 없었고,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이 불란서는 피로 뒤덮였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대 영국도 부패하기는 프랑스 못지 않았는데, 영국이 달랐던 것은 존 웨슬리, 위필드 같은 사람이 시대에 대한 부담을 안고 그런 부패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혁명이 아닌 부흥을 통하여 영적 각성이 이루어졌고 그들은 시대를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굉장한 사회 운동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시대의 상처를 안고 기도하며 복음으로 조용한 빛을 발했을 때, 그 빛은 그 시대에 놀라운 변화와 부흥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최우선적으로 지향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성령을 받아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D.L 무디는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내 모자 밑에 있는 이 사람이다." 이게 문제고, 저것이 문제인 듯 싶어도, 내 자신이 가장 크고 심각한 문제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일이 다 편안해도, 나의 마음에 은혜가 떠나면 모든 것이 다 못마땅하고, 모든 일이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내가 먼저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서, 우리의 마음을 성령께서 다스려주셔야만 합니다.
내 생각도, 내 주장도, 내 목적도, 방법도, 전부 성령이 주도하셔야 예수도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또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도 성령으로 가능합니다. 베드로가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장담했으나 세 번이나 부인했는데, 성령충만하자, 담대히 수천 명 앞에서 설교했고,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지혜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이 그를 지배하신 때문입니다. 쳄버스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모방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성령이 충만함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흉내를 낼 수는 있지만, 성령의 다스림 속에 있지 않으면, 인간적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제임스 W. 골의 책 [주 임재에 사로잡히다]에 실린 글입니다. - 나는 인구가 3백 명이 채 안 되는 미주리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집에는 상수도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동네 공동펌프에 가서 손으로 펌프질을 해서 물을 퍼왔다. 그런데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땅 깊은 곳에 있는 그 지하수는 언제나 차갑고 시원했다. 나는 그 펌프가 냈던 끽끽거리는 소리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물이 철썩거리며 물통에 담기던 모습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여러 면에서 우물과 같다. 우리 각 사람의 깊은 곳에는 '샘'이 있다. 거기에서 '생수'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것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영혼 깊은 곳에서 물을 길어 물통을 가득 채울 때, 그것은 우리를 새롭게 하고 우리에게 새 힘과 새 생명을 줄뿐만 아니라 그것을 함께 나눈 모든 사람에게도 동일한 유익을 준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영혼을 잠잠하게 할 때, 나는 내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물통'을 내려놓게 된다. 그러면 주님은 그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주신다. 나는 그 물통을 다시 들어올린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의 물이 나의 영혼을 촉촉이 적시며 또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영혼도 적신다. 외부로 가기 위해 나는 먼저 내면을 향해 가야한다.
둘째는, 권능을 받아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우리 각자가 권능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경제가 어려워지고, 물가가 올라간다고 모두들 아우성이지만, 아무리 물가가 올라가도 내게 돈만 많으면 문제될 바가 못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취직이 어렵다고 걱정이지만, 이런 때에도 자기 실력만 충분히 갖춘 사람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내가 이런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도리어 이런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서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게 그런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민족의 앞날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내가 먼저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도 나 자신이 능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 미국 텍사스 주에 예이츠풀이라는 사람이 목장을 운영하면서 부채에 시달리다, 그 빚을 갚지 못해 목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가족들의 의식주도 해결할 수 없이 정부보조금으로 근근히 살아가던 어느 날, 석유회사에서 나온 지질 조사단이 그의 목장에 석유가 매장돼있을 것 같다며 시추작업허가를 요청했습니다. 예이츠는 별 기대 없이 허락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루에 8만 배럴의 석유가 나왔는데 금액으로는 하루에 250만 달러, 약 30억 정도의 돈인데, 약 30년 동안 석유가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이츠는 이제껏 석유로 출렁이는 호수 위에 살면서도 가난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이 시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자신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엄청난 능력을 모르고, 하루하루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선민이란 특권과 유대인이라는 편협한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전 세계를 품고, 모든 열방에 복음을 선포하는 증인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처음 제자들은 민족적 장벽을 넘지 못하고, 예루살렘 안에만 갇혀, 자기들끼리만 사랑하며 믿으려했으나,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내리신 핍박으로 저들을 사마리아와 안디옥, 소아시아 지역과 지중해연안과, 저 로마와 아프리카에까지 쫓겨나서, 저들로 하여금 땅 끝까지 찾아가 증인이 되도록 몰아가셨습니다.
6.25 공산침략을 막아낸 맥아더는 매우 선교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후 일본에 대한 최고 관심은 일본의 복음화였습니다. 1947년 당시 일본 내 선교사의 수가 315명이었는데 맥아더는 미국 교계에 직접 호소하여 1950년 일본에 선교사가 2,500명이 됐고, 록펠러재단에 부탁하여 일본에 기독교대학을 세우게 했으며, 약 1,000만 권의 일본어성경을 전해지게 했습니다. 그가 한국전 참전을 결심하며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또 하나의 전쟁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 작은 한반도 땅에 하나님의 의를 전할 수 있다면 기꺼이 저를 써 주소서." 1950년 9월 29일 수도 서울 회복환영행사에서 "이 행사에 요구하실 것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주기도문을 함께 드릴 것을 제안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까? 첫째, 회개할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칼 힐티는 "인간의 모든 행동 중 진솔한 회개야말로 가장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회개를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불순종했던 것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죄악을 청산할 때 우리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성령을 받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10:44).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말씀을 증거할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려오신 것입니다. 성령충만 받으려면 예배에 열심히 참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에 빠지지 말고 나와서 말씀을 듣는 중에 우리는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기도할 때 성령충만 받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1:14). 오순절에 제자들이 모여 뜨겁게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은 한 개인에게도 임하지만, 공동체가 모여 함께 기도할 때, 더욱 놀랍게 임하십니다. 성령을 주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지만, 모여 기도하는 일은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함께 모여 뜨겁게 기도하는 곳에, 성령이 임하십니다.
송준기 목사의 [끝까지 가라]는 책에 실린 글입니다. - 우리는 금요일 밤 막차를 타고 홍대에 도착하여 무작정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전도방법은 정해지지 않아 누군가는 악기, 누군가는 솜사탕기계를 끌고 나왔다. 카드를 들고 전도하거나, 본인이 작곡한 힙합음악이나, 사영리, 팔찌, 주사위, 그림책, 달고나 등 다양했다. 우리는 먼저 모여서 노래한 후에, 흩어져서 개인전도를 하며 밤새 홍대를 누볐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자 사람들이 우리를 '개나 소나'로 불러 '개나 소나 전도팀'은 밤거리의 이목을 끌었다. 새벽 3시에 춤추며 찬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불신자들이 자주 질문했다. "아니, 술도 안 먹었는데 왜 이렇게 기뻐해요?" 술 취한 자와 성령에 취한 자, 죄인들과 은혜 받은 죄인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춤우며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주로 클럽 거리에서 전도했는데, 클럽 앞에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손님들이 자꾸 우리 쪽으로 오자, 손님을 빼앗긴다고 클럽관계자가 우리에게 떠나라고 하자 그들에게도 복음 전했다. 얼마 후, 업주들이 우리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하기 직전 클럽에서 거리에 틀어놓은 시끄러운 음악이 동시에 꺼지는 것을 알았다. 언제부터 우리가 나타나면 거리의 음악이 다 멈추면서 경찰이 바로 출동했다. 한 번은 경찰관이 춤판을 저지하며 개나 소나 멤버 한 명에게 엄하게 물었다. "당신들은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여기 대표자가 누구요?" 춤추며 찬양하던 그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우리의 대표자요? 당연히 예수님이지요!" 경찰은 어이없다는 듯 또 다른 멤버에게 물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장난하나! 여기 연장자가 누구요?" 그 사람도 망설임 없이 답했다. "연장자는 당연히 예수님이지요!" 질문한 경찰은 주의를 준 후에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옆에 서 있던 다른 경찰관은 두 번 연속으로 "예수님이 우리의 대표"라고 대답했던 전도자를 글썽이는 눈빛으로 한참 쳐다보다가 떠났다. 아마도 크리스천인 듯했다.
제자들의 관심은 항상 이 땅에서 출세하고 성공하고, 잘살게 되는 것을 꿈꿨으나 주님의 관심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처음 외치신 말씀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4:17)는 말씀이었고, 이 땅을 떠나 승천하시는 자리에서도 복음전파를 통해 이 땅에 천국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성령 받아 중생하고 증인이 될 때 비로소 이뤄질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말합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이스라엘의 회복은 사람의 힘이나 능력이 아닌 오직 성령으로 이뤄집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충성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 땅을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을 우리의 관심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