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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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용 목사님

빌립보서 4장 1~9절

설교요약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2018년 4월 8일 주일예배
빌립보서 4 : 1 - 9 ; 느헤미야 8 : 10


어느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외식을 몇 번이나 하느냐?"라고 묻자, 가장 많은 대답은 일 주일에 한 번 외식한다고 했고, 다음은 일 주일에 두 번 외식한다거나 2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손을 들지 않는 학생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있기에 선생님은 그 학생에게 "너는 외식을 얼마나 자주하기에 그렇게 좋아서 웃음을 참지 못하니?"라고 묻자, 그 학생이 일년에 딱 한 번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래? 그런데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니?" 그러자 그 학생이 대답합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년에 한 번 외식할지라도 그 날이 오늘이면 기쁠 수밖에 없듯이, 성경은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시118:24)고 했기에, 우리도 오늘이라는 날을 기쁘게 맞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흔히 '기가 막히면 죽는다'고 말합니다. 동양의학에서 '기'(氣)란 '생물이 살아 움직이는 힘'으로, '기진(氣盡)하다'는 말은 기운이 다하여 움직일 힘이 없어진 것이고, 또 기가 끊어지면 '기절'(氣絶)이라고 하여, 의식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기'가 충만하여 뿜어 나오면 가장 건강한 상태로서, '기쁨'은 '기가 뿜어 나오는 것', 즉, 생명력이 넘치는 상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지, 만일 기가 뿜어 나오지 못하고 막히면 병들어 죽고 맙니다.


미국의 유명한 경영 컨설턴트인 데일 카네기가 한창 활동하던 시절 대공황이 닥쳤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힘들어하는데 그의 상황도 날로 악화되어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는 아무 희망이 없어 강물에 투신하려고 강으로 향하는데, 한 남자가 부르기에 뒤돌아보니 두 다리를 잃은 사람이 바퀴 달린 판자에 앉아 미소지으며 "연필 몇 자루만 사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카네기는 주머니에서 1달러 지폐 한 장을 꺼내주고 다시 강으로 걸어가자 그는 열심히 바퀴 달린 판자를 굴리며 소리쳤습니다. "이봐요, 선생님! 연필을 가져가셔야죠." 카네기는 고개를 저으며 "난 이제 연필이 필요 없어요"라고 대답했지만, 그는 카네기를 따라와 연필을 가져가든지 아니면 돈을 도로 가져가라고 말하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카네기는 그 남자의 연필을 받아든 순간, 자살하려던 마음이 말끔히 사라져버렸습니다. 훗날 카네기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 당시 나는 살아갈 희망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두 다리가 없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그를 보면서 나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났다고 해서 지나치게 비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험한 길을 지나면 결국 평지는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기쁨만 잃지 않으면 모든 역경은 반드시 이겨내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뻐야만 행복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반박을 하기도 합니다. 첫째는, 기뻐할 처지가 돼야 기뻐할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기쁜 처지가 되면 기뻐하라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뻐할 것이 아니냐는 주장입니다. 둘째,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인간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은 결코 기뻐할 수 있는 일들만 상존하지 않고, 기뻐해야 할 일과 고통스러운 일이 엉켜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기뻐만 할 것이냐는 반론입니다. 셋째, 기뻐하는 것이 반드시 미덕일 수만은 없다는 주장입니다. 슬퍼할 일로 차 있는 현실에서 남이 우는데 내가 기뻐하는 것은 오히려 삶을 조롱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학자 폴 틸리히는 '기쁨'과 '즐거움'을 구별하면서, 그 '기쁨'은 '슬픔'의 반대개념으로 '슬픔'과 '고통'도 구별합니다. 그래서 기쁨은 고통과 상충되지 않기에 사람은 고통이 있어도 기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인이 해산하는 것은 분명 즐겁지 않고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고통을 겪기도 하는데, 사랑의 고통은 즐거움을 빼앗을 수는 있지만, 기쁨을 빼앗지는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내 중심을 쏟아바칠 수 있는 대상이나 가치를 찾을 수만 있다면 언제나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이면서 [기쁨의 서신], 혹은 [희락의 복음]이라고 부르는데 불과 4장밖에 안 되는 짧은 서신 안에 '기쁨' 혹은 '기뻐하다'라는 단어가 16회 이상 반복되어 나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의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는 참된 기쁨을 누리고 있었고, 이뿐 아니라 감옥 밖에 있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혀 고생하면서도 감옥 밖에서 별탈 없이 지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뻐하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스스로 모든 환경을 초월한 절대적인 기쁨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처한 상황을 초월한 절대적인 기쁨의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8). 자신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고, 또 주변에는 바울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그는 기뻐하였습니다. 비록 바울에 대한 시기와 그를 견제하려는 질투로 전도하고 있지만, 전파되는 분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바울은 자신이 오해를 받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그의 삶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의 이유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기에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자기는 어떤 오해나 불이익을 당해도 좋다는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는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빌립보교회에는 기뻐하기 어려운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빌립보교회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든지 부딪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 첫째는 불편한 인간관계입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4:2)라고 사도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자주장사를 하는 여자 사업가 루디아를 통해 바울이 세운 교회로, 여성 주도적인 교회였기에 바울이 옥에 갇히기만 하면 '얼마나 춥고 배고플까, 얼마나 불편할까?'하는 생각에 따뜻한 사랑을 베풀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단점도 있었으니 그것은 여성들의 약점인 질투입니다. 사랑과 질투는 종이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빌립보교회 안에서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여인 사이에 알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사를 경쟁적으로 하고 질투하고 시샘하다 보니 그만 교회가 화목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가 되지 못하여 바울의 마음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함께 지내면서 하나되지 못하고 서로 으르렁대며 다툰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닌데, 서로 입장과 생각기 다르다보니, 사소한 일로 시기하고 다투면서 갈등을 겪을 때, 서로가 괴롭고 힘들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면 모두 기쁨을 잃고 원망과 불평만 터져 나와 서로 헐뜯고 비난하면서 피차에 상처를 주고받게 됩니다. 그러면 공동체의 평화가 깨어져 기쁨과 감사가 사라진 채, 원망과 짜증만 늘어나 서로 다투고 싸우다가 헤어지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함께 지내긴 하면서도 등을 돌리고 못 본체하며 혐원시하고 지내려니 괴롭기가 짝이 없습니다. 빌립보교회는 그토록 사랑이 많은 교회였지만, 교회 안에 성도간에 갈등으로 시기와 질투가 있다보니까 기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유명한 배우가 기차여행을 하는데 중년 여자 둘이 그를 알아보고는 수다를 떨며 귀찮게 하자, 그는 어떻게 이 지겨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궁리합습니다. 때마침 기차가 터널로 들어갔는데 전등이 켜지지 않아 캄캄했습니다. 그 참을 이용해 그는 손등을 입에 대고 요란스럽게 키스 소리를 냈습니다. 열차가 터널에서 나왔을 때 두 여자는 말도 없이 쌀쌀한 표정으로 서로 노려보더랍니다. 이런 질투심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를 증오하며 마음에 기쁨을 잃고 갈등과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두 번째는 염려하게 되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권면한 것은, 분명 저들에게 염려할만한 사정이 있는 듯 합니다. 그것이 외부의 박해이든지, 아니면 경제적인 어려움이든지, 육체적인 질병이든지, 저들은 염려되는 상황에 처한 것으로 보입니다. [염려]란 헬라어로 '메림나오'인데, 이 말은 '갈라버린다'는 '메리조'와 '마음'이란 '누스'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염려'란 '우리들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염려'란 우리 인간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 상하게 하고, 이로서 인간을 약하게 하며, 인생의 실패자로 만들어 불행에 빠지게 하는 무서운 악이요, 우리 신앙을 타락시키는 원수입니다.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마음이 불안해 지고, 근심과 염려에 빠져 그의 삶에서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면 바울은 이런 인간관계의 갈등과, 염려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빌립보교회에게 어떻게 기뻐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까? 첫째, 성도의 사랑으로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사랑으로 인한 기쁨과 함께 그들을 뜨겁게 사랑하였기에 1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1:8).


그래서 바울은 이런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2절). 이렇게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는 것은, 지금 저들은 마음이 하나되지 못하고 서로 뜻이 갈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자기 주장만 하지말고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서로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이렇게 당부합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5절). 여기 '관용'이란 '덮어 주다'는 말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춰내거나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덮어 주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에게 기쁨이 가장 쉽게 깨지는 때는 바로 인간관계가 깨질 때입니다. 그렇게 기분이 좋다가도 누군가 내게 좋지 않은 말을 한마디하면 내가 손해보거나, 몸이 아픈 것도 아닌데, 마음이 상해서 속이 끓어오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쁨을 누리기 위해선 화목한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특히 성도의 교제가 바로 될 때, 우리는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떤 이가 말했습니다. '기뻐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기쁨이 온다' "I am joy, because I love you." 우리에게 기쁨이 없다면 그 이유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면, 우리 마음에 기쁨이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터득해야 할 사랑의 기술 중 하나는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입니다. 인생의 큰 기쁨도, 큰 아픔도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다가옵니다. 우리를 세우는 사람도, 우리를 무너뜨리는 사람도 가까운 데 있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쓰러뜨리거나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쓰러뜨리는 사람도,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는 사람도 모두 가까운데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때론 천국도 되고 지옥도 됩니다. 가까운 사람이 보낸 눈빛 하나에 하늘을 날기도 하고, 그가 던진 말 한마디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가까운 사람끼리 서로 사랑하고 웃으며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간절히 사랑했기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라"(빌2:17)면서, 그들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칠지라도 기뻐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 이런 사랑의 교제가 있는 곳이 참된 교회입니다.


헝가리 선교사로 제스윗 신부인 하바스(Fr. Havas)는 1936년 중국에 가서 일본군대의 침략, 공산세계를 모두 겪었습니다. 1925년 공산정권에 체포되어 2년 동안 옥살이와 심한 고문을 당하며, 죽는 것을 바랄 만큼 날마다 고통으로 연명했습니다. 그가 석방되어 고국에서 첫 주일예배를 드릴 때 "천국이 따로 없다. 하나님의 전이 천국이다. 믿음의 형제자매가 마음껏 소리지르며 찬양할 수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과 참된 교제가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은혜로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본문 4절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절). 바울의 기쁨의 원인은 주님의 은혜로 인한 기쁨이었습니다. 주님 안에서만 진정한 기쁨과, 진정한 행복이 가능합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는 자신을 생각합니다. 지금 자기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이 모든 것을 주님이 다스리신다면 자신은 지금 주님 안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면서, 이 기쁨을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도 함께 누릴 것을 권면합니다.


바울은 질병 가운데서도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이렇게 기뻐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9-10). 그는 약함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고함이 있었지만 이를 통해 더 큰 주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기에 도리어 기쁨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분이 나의 죄를 용서하셨고,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고, 또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며, 이 세상 떠난 후 천국을 예비해주셨고, 또한 이 땅에서 삶의 의미와 존재 이유를 가지고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참으로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예수님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적인 모든 좋은 조건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오직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였습니다.


로버트 리드(Robert Reed)는 중풍으로 양손을 뒤틀려 있고, 그의 발은 사용할 수 없어 혼자 샤워할 수 없고,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양치질, 머리 빗기, 속옷을 갈아입는 일상적인 일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질병은 그가 운전을 하는 것, 자전거를 타는 것, 산책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대학에 입학하여 라틴어를 전공하여 졸업하는 것에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졸업 후 성 루이스 주니어 칼리지(St. Louis College)에서 가르치고 다섯 번에 걸친 단기 선교를 가는 열망을 막지 못했으며, 결국 포르투갈로 선교사 나갔습니다. 그는 1972년 홀로 리스본으로 이사하여 한 호텔을 정했는데, 그 호텔의 레스토랑 오너는 가장 바쁜 시간을 피하여 그가 음식 먹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는 포르투갈 어를 배우고 공원에서 6년 간 전도지를 나눠주며 약 70명 정도를 그리스도께 인도했는데, 그 중에는 그의 부인이 된 로자가 있습니다. 한번은 리드가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이 자기와 같이 휠체어를 타고 전도지를 돌리며 많은 청중들 속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내 삶에 기쁨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소유했다."


셋째, 염려가 찾아올 때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6절). 우리의 기쁨을 빼앗는 원수는 우리를 얽매고 있는 염려입니다. 그런데 그 염려들이 정말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갈 만큼 심각한 일들일까요? 어니 젤린스키는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에 대한 것이다. 나머지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이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염려하는 것들을 살펴보면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될 일을 끌어안고 염려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곧, 우리가 감사를 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바로 챙길 줄 알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염려와 걱정이 밀려올 때, 모든 부정적인 생각을 물리치고 일단 하나님께 감사하며 아뢰면, 상상치 못할 평안과 기쁨이 우리 마음에 샘솟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의 기쁨은 우리 생활을 바꾸어 우리 삶을 승리로 이끌어 가는 놀라운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어느 교회의 사모가 위뿐만 아니라 식도와 장(腸)까지 암이 퍼져 수술도 불가능했습니다. 고통스렀던 개척교회 시절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원망스러워 죽을 때까지 입을 다물기로 했습니다. 남편의 은사인 감신대 고(故) 윤성범 학장의 권고로 노트에다 감사한 일들만 적어 보았습니다. 죽었어야 할 날이 훨씬 지났으나 사모는 오히려 더 건강해졌습니다. 감사와 기쁨이 암세포를 죽이고 새 삶을 가져온 것입니다.


헬렌 켈러는 듣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는 3중의 고통을 겪었지만 설리번 선생의 도움으로 마음의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설리번 선생이 헬렌 켈러와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선생님, 갈색이 어떤 색깔이에요?" "헬렌의 머리 색깔과 같단다." "제 머리 색깔이 아름다운가요?" "헬렌의 마음처럼 아름답고 곱단다." 설리번 선생님은 상상력과 마음의 눈으로 주변의 세계를 따뜻하게 감지하는 법을 가르치자 헬렌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느끼는 기쁨의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고백한 기쁨은 그녀의 자서전인 [마이 스토리]에서 "나는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행복했습니다"라는 구절이 계속 반복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녀의 자서전의 절정을 이루는 부분을 보면 아주 감동적인 글이 있습니다. "내가 사흘만 눈을 떠 볼 수 있다면, 첫째 날 나는 내 인생에 참된 사랑을 일깨워 준 고마운 사람들을 먼저 만나서 그들의 얼굴을 정말 오래오래 지켜보고 싶다. 그 다음은 천진 난만한 아기들을 보고 싶고, 그리고 내게 더없이 신실한 친구였던 개 라이오네스의 모습을 보고 싶다. 저녁 무렵에는 숲 속을 거닐고 싶다. 둘째 날에는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동트는 광경을 바라본 다음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하고 싶다. 그 곳에서 인류역사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싶고 위대한 미술작품이나 조각품을 감상하고 싶다. 저녁에는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춤을 보고 싶다. 그리고 셋째 날에는 일찍 일어나 동트는 새벽의 여명을 한 번 더 지켜보련다. 그 다음에 거리로 나가 사람들이 걷는 모습,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행복한 사람들의 표정도 보고 싶고 또 고통스러운 아픔의 표정도 보고 싶다. 그 후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뉴욕 시내를 구경할 것이다. 가난한 슬럼가도 가보고 싶고 또한 아름다운 공원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 셋째 날 저녁에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은 극장에 가서 희극을 관람하면서 한없이 웃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웃음과 기쁨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영국 브리스턴의 조지 뮬러는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고아원을 세우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돈 한푼 없이 하나님의 도움만 의지하고 시작한 고아원이 후에 다섯 개의 큰 고아원을 이뤘고, 1만 명 이상의 고아를 보살피며 그들을 위해 거의 1백만 파운드의 돈을 지출했습니다. 돈 한푼 없이 시작하여 이러한 큰 일을 벌인 그는 걱정도 몹시 컸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날마다 해야 하는 첫째 가는 나의 사업은 주 안에서 내 영혼이 기쁨을 얻는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서 참으로 요구되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참된 기쁨입니다. 느헤미야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저런 염려되는 일들이 많다고 여겨지십니까? 이런 중에도 성도의 교제를 소중히 지켜갑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염려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며, 그분의 은혜 안에 살아갑시다.

빌립보서 4장 1~9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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