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

이사야 32장 9~11절

설교요약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2020년 12월 6일 주일예배
고린도후서 7 : 8 - 11 ; 이사야 32 : 9 - 11


아들 때문에 몹시 속썩이는 한 아버지가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 때문에 속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네." 이 말을 듣자 친구가 말합니다. "이 사람아, 그런 자식을 가만두나? 내 자식이라면 패 죽였을 거야." 그러자 속썩이는 자식을 둔 아버지가 말합니다. "나도 자네 자식이었으면 패 죽였을 거네." 내 자식이 아니라면 굳이 속썩일 일도 없습니다. 문제는 사랑하는 내 자식이기에 걱정도 되고, 속도 썩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염려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아무 근심걱정이 없길 소원합니다. 그러나 술 마시면 시흥이 절로 나서 시를 썼다는 당나라 시인 이백은 술로도 달랠 수 없는 근심을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칼을 들어 흐르는 물을 내리쳐도 물은 끊이지 않고 계속 흐르며, 잔을 들어 술 마시며 걱정을 씻으려해도 걱정은 더욱 쌓여만 가네." 어쩌면 우리에게 근심걱정은 끊일 새가 없고, 또 어느 정도의 근심과 스트레스는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느 돈 많은 사람이 무인도를 사서 이상향을 만들고자, 토끼, 다람쥐, 사슴들을 넓은 들과 숲 속에서 마음껏 뛰놀게 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후 그 동물들의 뜀박질이 예전 같지 않고, 털도 윤기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상히 여긴 주인이 동물학자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늑대 한 쌍을 가져다가 풀어놓으시오." 그 때부터 무기력하고 힘없이 돌아다니던 동물들이 힘차게 뛰어다녔고, 무인도는 활력이 넘치는 섬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동물도, 적당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해야만 더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해병대 구호 중에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차라리 즐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차라리 믿음으로 감당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인도에 머물렀던 영국인들은 객지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골프장을 만들었는데 훼방꾼이 나타났습니다. 골프장 주변에 살던 원숭이들이 필드에 떨어진 공을 집어 엉뚱한 곳에 던져놓곤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원숭이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담당을 높였지만 효과가 없자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것은 바로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였습니다. 이 규칙은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 공을 원숭이가 잡아서 홀에 넣어 주는 행운을 맛본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홀 가까이 날린 공을 원숭이가 집어다 물 속으로 빠뜨리는 불운을 겪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행운과 불운 사이를 이리저리 오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차피 벌어진 일을 한탄하기보다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자리에서 경기를 계속하여 그 순간을 즐겼습니다. 그들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필드에서 배웠던 것입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처럼, 먹고 배부르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잠만 자는 동물보다, 그래도 근심하며 고민하는 인간이 낫습니다. 아무 걱정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인간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파스칼의 말도 어쩌면 '인간은 많은 생각과 근심 속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인간이기에 지난날을 돌이키며 후회도 하고, 또 앞날을 내다보며 염려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근심 없는 사람도 없고, 근심 없는 시간도 없습니다.


미국 콜롬비아대학 총장을 지낸 니콜라스 머레이 박사는 사람들을 문제를 '책임지는 소수의 사람'과, '수수방관하는 다수의 사람',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관심조차 갖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으로 나누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세상은 악한들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보고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잘못을 알지만 내 한 몸 편하겠다는 생각으로 외면하며 강 건너 불 구경하듯 관심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늘 어지럽습니다.


근심걱정은 무익하고 해로운 것이지만, 바울은 도리어 근심의 유익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7:10).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을 나눕니다. 본문의 배경은 바울이 세운 고린도교회에 부도덕한 사건과 분쟁이 생기자,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한 끓어오르는 사랑으로 저들을 책망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권면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저들이 이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역반응을 보이면 어쩌나?'하고 근심 걱정을 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책망과 권면을 듣고, 자신들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성결함과 진실을 되찾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이 모습을 보고 한편으로는 기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저들을 너무 마음 아프게 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에 저들을 위로합니다. "너희는 나의 책망을 듣고 근심했을 텐데, 내게도 역시 근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이고, 그 근심이 오히려 회개를 이루고 구원을 이루었으니 도리어 잘된 일이다." 근심하게 된 원인은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그 근심의 결과는 아름다운 것이었기에, 저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근심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근심했으며, 그 근심의 결과가 어떠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앨빈 매가리(Alvin E. Magary)는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좋은 충고이나, 예수께서 자신에 대해 근심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임을 주목하라. 남의 안녕에 대해 근심하는 사람들에게가 아니다. 남의 안녕에 대해 더 근심할수록 자신의 안녕에 관해서 덜 근심하게 된다." 우리의 근심은 근본적으로 자기 욕심에 근거한 것이 아닌, 이웃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생각하는 믿음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무엇입니까? 첫째, 내 영혼을 위한 근심입니다. 성경은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히3:12),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약4:9)라고 하여 생각 없이 희희낙락하기보다, 차라리 애통하며 근심함으로 영혼이 깨어 있을 것을 교훈합니다. 우리는 세상일에 대해서는 초연해야 하지만,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민감해야 합니다. 물질적인 가난보다도 영적인 가난을 인해 근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때로 몇 푼의 돈을 잃으면 밤잠 못 자며 근심하면서도, 믿음이 떨어지고, 하나님과 멀어진 일에 대해선 태평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잘했는데 사업이 번창하자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생활도 봉사생활도 점점 소홀하더니 교회에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찾아가자, "목사님, 제가 요즘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사람 만나야지요. 이곳 저곳 출장가야지요. 사업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교회에 못 나가더라도 목사님께서 이해해주십시오."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이 집사님 손을 잡고 "집사님,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하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집사님이 사업이 잘 되는 바람이 너무 바빠서 교회 나올 새가 없습니다. 사람 만나기 너무 분주해서 하나님께 기도할 여유가 없고, 세상일에 쫓겨 하늘나라를 위해 봉사할 겨를이 없습니다. 이렇다가 믿음을 잃어버려 영원한 생명을 잃을까 걱정이오니, 이 집사님 사업이 너무 잘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는 일이 너무 형통하여 기도 없이도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때로는 어려움도 주셔서 하나님 앞에 겸손히 기도하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했더니 이 집사님이 "목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아무리 바빠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발 그렇게 기도하지는 말아주십시오"라고 매달리더랍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롬8:6)이란 말씀처럼, 육신을 위한 근심은 세상 근심이나, 영혼을 위한 염려는 우리를 영원히 살리는 생명을 위한 근심입니다.


둘째, 이웃과 이 사회를 위한 근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지 않는 동족을 이스라엘을 염려하며 이렇게 탄식합니다.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1-2). 사람들은 '남의 죽음이 내 고뿔만도 못하다'고 할 만큼 이기적이라서, 내 문제는 그토록 염려하지만, 남의 일에 대해선 무관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나의 편안함만으로 희희낙락할 수만 없고, 다른 이는 고통 중에 있는데 내겐 문제가 없다고 해서 혼자서만 유유자적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영혼과, 이웃의 어려움과,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염려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기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 염려했는지 그의 눈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렘8:18, 20).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사32:9-11).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유다 여인들이 풍족한 수확의 기대와 즐거움에 도취되어 닥칠 재난을 예상치 않고 춤추며 즐기는 저들을 '염려 없는 딸들, 염려 없는 여자들, 안일한 여자들'이라며, 장차 닥칠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기한이 이르지 않을 것'을 인해 "당황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고 훈계하였습니다.


요즘 가난을 모르는 세대는 부모가 "돈 좀 아껴 써라"하면 "그까짓 돈 몇 푼이 얼마나 대단해서 그러느냐?"고 하지만, 돈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지금도 주위엔 돈이 없어서 굶고, 헐벗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돈을 절약하여 선한 데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내 돈이니 내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누구보다 꼼꼼하게 살림을 잘하는 주부가 있었는데 어느 날 유난히 노랗게 시든 파를 많이 사 온 것이었습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시든 파를 사 오자 딸이 물었습니다. "엄마, 오늘은 왜 시든 파를 사왔어?"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시장 입구에서 본인이 농사지은 것들을 팔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시는데 요새 많이 편찮으셨나봐. 며칠만에 밭에 나가보니 파들이 다 말랐다지 뭐니." 시든 파라도 팔러 나오신 할머니를 본 엄마는 돌아가신 시골 할머니 생각난다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웃의 어려움을 걱정하며, 그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근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3-28).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선 근심과 염려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현실과, 하나님나라가 침해되는 현실에 안타까움과 근심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온유하신 분도 성전이 소와 양과 비둘기 팔고, 돈 바꾸는 강도의 굴혈이 된 것을 보시고 견딜 수 없는 의분에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소와 양떼들을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상을 엎어버리시고, 무섭게 저들을 책망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전에 대한 불타는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학교에 다니는 한 개구쟁이에게 어머니는 매주일 아침이면 500원 짜리 동전 두 개를 주며, 하나는 헌금하고 하나는 과자를 사먹으라고 했습니다. 그 주일에도 동전 두 개를 손에 쥐고 교회로 신나게 뛰어가다 그만 동전 하나를 떨어뜨렸는데, 때구루루 굴러서 하수구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 아이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돈아! 안녕, 다행히 내 돈은 손에 있네!" 교회에서 헌금시간에 가만히 있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이유를 묻자, 아이가 대답합니다. "내 돈은 여기에 있는데, 하나님의 돈이 하수구에 빠져버렸어요." 이런 아이에겐 하나님의 돈만 하수구에 빠집니다.


필립 얀시는 자신의 책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IVP)에서 어떻게 그가 교회 회의론자에서 옹호론자로, 구경꾼에서 참여자로 바뀌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판적 소비자정신으로 교회를 대하며, '내가 무엇을 얻었는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셨는가'라는 생각으로 예배를 드렸다며 말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주된 이유는 즐거움을 제공하거나 약한 모습을 받아주거나 자존감을 세워주거나 우정을 북돋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그 일에 실패하면 교회는 실패한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한 교회도 있지만 복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세상을 썩지 않게도 하였고, 사람에게 수많은 세균이 있듯 교회도 세균이 득실거릴 수 있지만 교회는 여전히 세상에 띄워진 노아의 방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고린도교회가 사도 바울의 편지를 받고 거룩한 근심을 하였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후7:11).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의 편지를 받고, 그 잘못된 것에 대하여 심각성을 진지하게 의식하고 그것을 바로잡고자 '간절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들의 입장을 탄원하는 '변증'을 하였고, 바울의 명예를 실추시킨 그 적대자들에 대하여 '분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두려워'할 줄 알게 되었고, 복음을 전해준 바울을 '사모하게' 되었고, 회개와 성결의 실천을 위한 '열심을' 품었고, 바울을 공격한 자들을 공의의 입장에서 '벌하게' 되었고, 지난 잘못을 회개함으로 '깨끗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한 근심의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보니, 이제는 그분의 사랑에 대해 성도로서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송구한 마음을 갖게 되고, 주님의 뜻에 따른 근심도 하게된 것입니다. 우리는 걱정이 없기만을 바라지말고 차라리 옳은 일을 위해선 걱정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다보면 세상의 시시하고 쓸데없는 걱정으로부터는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큰 걱정을 하게 되면 작은 걱정은 없어진다"고 합니다. 사실 아직도 우리에게 걱정거리가 많은 것은 그만큼 시시한 걱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과 통증으로 3층 다락방에서 꼼짝 못하고 사흘 동안 고통스러워하다가 의사 친구에게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빨리 오지 않자, 쇼는 신경질이 나면서 더욱 몸이 아팠습니다. 그때 누군가 밑에서 계단을 황급히 뛰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친구는 왕진가방을 들고 단숨에 3층을 뛰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다락방 문을 왈칵 밀고 들어서는 순간, 이 의사는 숨을 훅 몰아쉬더니 비명도 못 지르고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화들짝 놀란 버나드 쇼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친구의 심장에 귀를 대어보고, 눈을 뒤집어 보고, 허리띠를 풀고, 인공호흡을 하고, 정신 없이 주무른 끝에 친구가 눈을 떴습니다. 친구가 살아났다고 환호하는 쇼에게 친구가 일어나며 말합니다. "나는 가보겠네. 왕진비 내놓게." "이 사람아, 정신 차려! 쓰러진 건 자넬세. 내가 인공호흡까지 해서 자넬 살렸네." "그런가? 자네가 병을 고쳐달라고 했지? 그런데 내가 쓰러지니까 자네는 놀라서 자네 병을 잊고 내게 매달렸지? 이게 바로 내 치료법일세. 친구야! 인간은 큰 문제에 매달리면 시시한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니네. 이제 자네 병은 다 나았으니 왕진비나 두둑이 내놓게." 보다 중요한 일에 매달리면 시시한 걱정은 사라집니다.


바울은 자신이 매맞고 옥에 갇히고 굶고 헐벗었던 일보다, 자신이 사랑한 교회를 더 염려했습니다. 진실한 성도라면 자기 사정 못지 않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염려할 줄 알아야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 중직이면, 자신의 사정뿐이면 한번 예배에 빠질 수 있어도,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내가 예배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시험 들지 않을까, 내 자리 지키지 않으면 예배시간에 그 자리 비어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차마 예배에 빠지질 못합니다. 언젠가 교회의 어떤 문제로 선배 목사님과 의논하는데, 그분이 대뜸 "그까짓 무시해버리게. 걱정할 것 없네"라고 말하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 일이 아니라면 저도 걱정하지 않지만, 우리 교회 일인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가 있습니까?" 내 일이 아니면 쉽게 '그까짓 것, 무시해 버리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내가 책임질 문제라면 쉽게 덮어버릴 수 없고,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몸부림쳐야만 할 일입니다.


우리는 내일에 대한 염려로 오늘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오늘 산을 오르는 이에게 내일 산 너머가 보이는 법입니다. 일본 교세라 창립자이며 명예회장으로 일본 경영자로 최고 존경을 받는 이나모리 가즈오는 말합니다. "나는 장기적인 경영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다. 내일 일은커녕 오늘 일조차 제대로 예측 못하는데 10년 후가 보일 리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기 위해 늘 노력해왔다.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면 내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일 염려는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내일은 주님이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34).


2010년 7월, 가이드포스트에 실린 메리린 무어 젠슨의 [호주머니 안의 사랑]이란 글입니다. 친구와 함께 분주한 도심의 차 세워둔 곳으로 걸어가는데, 우연히 어느 젊은 여인과 마주치게 되었다. "선생님, 제발 부탁입니다. 돈 좀 주시겠어요? 아이들 먹일 우유를 사야하거든요."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나, 저런! 이 사람 말이 사실일까? 눈빛을 보니 미심쩍은데, 마약에 취해 있는 것이 아닐까? 돈을 주면 이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아니면 오히려 해가 될까?" 나는 주저하며 이렇지도 저렇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는 벌써 지갑을 꺼내 달러 몇 장을 끄집어내었다. "여기 있습니다. 우유 사는 데 쓰세요. 아주머니 드실 고기도 좀 사시고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십니다." "그 돈으로 마약을 사지 않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지?" 친구를 따라 주차해 둔 곳으로 가면서 내가 물었다. "나도 몰라. 하나님만 아시지. 중요한 건, 저 분이 그 돈으로 무얼 하느냐가 아니잖아. 내가 내 돈을 어디에다 쓰느냐가 중요한 거지." 나는 친구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외출할 때마다 외투 주머니에 적은 액수의 지폐 몇 장과 잔돈을 조금씩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것으로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야." 내 작은 선물이 한 영혼이라도 구할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건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그렇지만 아마 내 영혼을 살리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과의 나의 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도종한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근심은 누구나 있지만, 문제는 무엇을 근심하느냐 입니다. 가치 있는 일을 근심할 때, 다른 문제는 주님이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사야 32장 9~11절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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