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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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용 목사

마태복음 27장 27~32절

설교요약 :

“이 사람이 졌던 십자가의 의미”
2022년 4월 10일 주일예배
마태복음 27 : 27 - 32 ; 시편 126 : 5 - 6

사람이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좋으련만, 왜 때론 억지도 필요할까요? 그 이유는 인간에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인식의 한계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라고 기도하신 것은 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 무서운 죄인 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사랑의 한계입니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장담하고서도 주님을 부인하여 달아나 버립니다. 그리고 의지의 한계입니다. 바울은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7:18)고 고백했습니다.

본문 32절의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을 끌고 가던 군병에 의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올라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 순간 구레네 시몬은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치밀어 올랐을 것입니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마27:32)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지만, 고통이 따르기에 누구나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구레네 시몬 뿐만 아니라 오늘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도 억지로 십자가를 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담 없이 교회에 나오고 싶은데 마지못해 일을 맡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왜 이런 ‘억지’가 필요할까요? 첫째,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오직 주께서 명하신 대로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둘째,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기에,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육체의 고난을 당하셨다면,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육체의 고난을 감수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 자에게는 보상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막15:21)이라고 했습니다. 루포는 선교사가 되어 곳곳을 다니며 복음 전하다가, 나중엔 그 어머니와 함께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로마 교회에선 시몬의 아내인 루포의 어머니가 온 교회가 존경하는 교회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롬16:13)고 말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구레네 시몬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는데, 자기가 십자가를 져드린 그 분이 바로 메시야란 사실을 깨닫자, 그는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어 주님 십자가를 진 사실을 간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부활을 만방에 전하는 전도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은 그대로 이뤄져야합니다. 어떤 땐 감사로, 어떤 땐 억지로라도, 주님의 뜻만은 이뤄져야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30:15-16). 인간에게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선택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악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이젠 선을 행할 수도 없이 악에 고착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사66:3-4). 인간이 거역하여 불순종하면,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유혹과 진노를 택하여 주심으로, 이제는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자녀들에게는 때로 은혜에 따라 강권적으로 이끄십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4a)고 말했습니다. ‘강권하다’는 헬라어 ‘쉬네케이’는 ‘둘러싸고 밀어낸다’, ‘붙든다’는 뜻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이뤄짐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당신의 사랑 때문에 우리를 강제적으로 다루십니다. 창세기 19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창19:16). 여기 롯과 그 가족들의 ‘손을 잡아 인도했다’는 말은,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손길입니다. 만일 이런 은혜가 없었다면 롯도, 우리도 모두 사단이 잡아당기는 손에 의해 멸망으로 끌려갔을 것입니다. 이것이 불가항력적인 은혜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울며 억지로라도 씨앗을 뿌리면 훗날 알찬 결실을 거둘 것입니다. 정녕 주께서 갚아주시고 큰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27~32절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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