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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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용 목사님

요한복음 10장 14~15절

설교요약 :

2019년 6월 2일 주일예배
시편 23 : 1 - 6 ; 요한복음 10 : 14 - 15


사람이 개와 싸워서 안 되는 이유가 세 가지랍니다. 개랑 싸워서 이기면 개보다 심한 사람이 되고, 개랑 싸워서 지면, 개보다 못한 사람이며, 개랑 싸워서 비기면, 개 같은 사람이 되기 때문이랍니다. 사람을 개와 비교하는 것이 가장 큰 욕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개가 들으면 매우 기분 나빠할 욕이랍니다. 이화여대 명예교수 이근후 씨는 그의 책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에서 말합니다. "개들도 배우는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평생 배우지 못한다. 그들은 '바빠'와 '급해'를 입에 달고 정신 없이 달려간다. 가끔 앉아서 가만히 있는 것은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며, '개들도 배우는 이것'은 '쉼'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잘 쉬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라'면서, '매트 와인스타인'의 [우리는 개보다 행복할까?]란 책을 소개합니다. 매트 와인스타인은 개에게 가장 먼저 '앉아!'와 '가만있어!'부터 가르친다면서, 책의 목차만 봐도 개의 습성을 알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쉽게 용서한다, 진심으로 귀기울여 듣는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놓아버려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안다, 좋은 사람을 알아본다, 표면 아래를 볼 줄 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파악한다, 주어진 삶에 행복해한다,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려 애쓴다, 열린 마음으로 인사를 나눈다, 제대로 사랑할 줄 안다, 지금 곁에 있는 존재를 사랑한다, 진정으로 축하할 줄 안다, 변함 없이 용감하다, 상황을 헤아리는 섬세함이 있다, 인정이 많다, 삶과 죽음을 모두 소중히 여길 줄 안다." 어쩌면 사람보다 낫습니다.


그런데 개보다 모든 면에서 조건이 현저히 떨어지는 동물이 양인데, 양은 개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양은, 첫째, 방어능력이 없습니다. 개처럼 적을 물어뜯는 강한 이빨이나, 염소처럼 날카로운 뿔도 없어, 맹수에게 꼼짝없이 잡아먹힙니다. 둘째, 방향감각이 없고, 시력이 매우 약합니다. 그래서 양은 멀리 보지 못하여 종종 구렁텅이에 빠지고, 자기 집이나, 먹을 것을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이라고 말했습니다. 셋째, 양은 영리하지 못합니다. 동물의 지능순위를 보면, ① 유인원, ② 돌고래, ③ 고래, ④ 원숭이, ⑤ 코끼리, ⑥ 까마귀, ⑦ 앵무새, ⑧ 개, ⑩ 돼지인데, 양은 15위입니다. 이처럼 양은 개보다 지능이 훨씬 떨어지고, 가장 약한 동물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양이 그처럼 가장 약한 동물이지만 목자만 곁에 있으면 아무 것도 걱정할 것도 없고 문제될 것도 없습니다. 양에게 있어서 문제는 '얼마나 자신을 잘 지켜나가느냐, 어떻게 먹고사는 문제를 잘 해결하느냐'가 아니라, '목자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만 해결되면 양에게 있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인생의 목자만 바로 만나면 어떤 것도 문제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성경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는데, 기독교 2천년 역사 속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말씀이 시편 23편으로 이 말씀은 경건한 성도의 신앙고백이며, 아름다운 찬양의 시로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는 말씀입니다. 마이어(F.B. Meyer)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시편 23편은 사막의 오아시스이며, 험한 등산길에 있는 휴게소이고, 타는 듯한 한낮의 시원한 동굴이며, 고요하고 신성한 묵상을 할 수 있는 정자이며, 성경의 성전 가운데서 가장 거룩한 곳 지성소이며, 곤비하고 쉼이 없고 무거운 짐진 인생들의 평온한 안식처이다."


이 시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은총을 베풀어주십니까?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목자이십니다.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영어 성경(KJV)에서는 'I shall not want.' '나는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육체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언제나 이런저런 필요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자가 양의 먹이를 책임져주시듯,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면 우리는 더 이상 문제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목자십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연합군은 집 없고 굶주리는 아이들을 커다란 캠프에서 함께 살게 했습니다. 거기서 아이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보살핌도 받았으나 이상하게 밤이면 잠 못 이루고 불안해했습니다. 어느 심리학자가 아이들에게 침대에 들어가서 각자 손에 쥐고 있을 빵을 하나씩 나눠주었더니, 놀라운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아이들은 내일 먹을 것이 있다는 안도감에서 평안히 잠들었던 것입니다. 내일 먹을 것을 염려했던 이 아이들이 내일 염려가 해결되자 평안히 잠들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전쟁 고아들만의 문제겠습니까? 내일 먹을 것을 염려치 않아도 될 만큼 많이 가진 사람도, 자식 대에서 먹을 것까지 염려하느라 편히 자리에 눕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한 청년이 신대륙 아메리카에 가서 자기 꿈을 펼쳐보려고 수개월을 절약하고 저축해서 가까스로 미국에 갈 뱃삯만 마련하여 배를 탔습니다. 한 달이 훨씬 더 걸리는 긴 항해 동안 청년은 배고픔은 참으며 견디리라 생각하고, 건빵을 준비하여 하루 세 끼니를 건빵으로 때웠는데, 그것도 충분치 않아 날짜대로 분배하여 먹다가, 너무 배가 고파 한두 개씩 더 먹었더니 미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 떨어지자, 식당 매니저에게 찾아가 사정하며 먹을 것 좀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매니저가 그 말을 듣더니 말합니다. "젊은이가 낸 뱃삯에는 음식값도 포함돼 있으니 맘놓고 먹으면 되는 것이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예비해주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이십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2-3). 하나님은 양떼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뿐 아니라, 혹 양떼가 어리석어 잘못된 길로 갈지라도,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그 양떼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인생 길에서, 때로 실수할 때가 있고,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어도, 하나님은 당신의 양을 실수 가운데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의 양을 옳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성 어거스틴이 어느 날 설교하기 위하여 낯선 곳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길을 잘 모르기 때문에 안내자가 인도하는 대로 그 뒤를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안내자가 길을 잘못 들어서 다른 곳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길을 다 온 후, 안내자는 어이없다는 듯 당황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목적지가 아닌 곳에 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만 그 날은 설교를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뒤에 알고 보니 그가 목적한 곳을 만일 갔더라면 죽임을 당할 뻔했던 것입니다. 어거스틴을 반대하는 나쁜 사람들이 그가 그 길로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숲에서 몽둥이와 칼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길을 잘못 가는 바람에 어거스틴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내자의 머리를 혼동하게 하여 그 길을 못 가게 하신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그 후에 되어진 일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확실하게 보여주시며 알게 하시는군요."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양을 보살피시며 안전하게 인도하여 주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목자가 되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양떼가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그 양떼를 지켜주십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위험한 일을 겪으셨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선한 목자는 그 많은 위험에서 우리를 지금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자신은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고 그냥 잠들어버릴 때도,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121:3-4).


빈센트 필 목사가 어느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의사로 살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의사가 대답합니다. "제 인생을 변화시킨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10%밖에 없는 매우 허약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간호사들이 수술준비를 하는 사이에 나는 수술대 위에 있는 소녀에게 다가가자, 소녀는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저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합니다. 지금 기도해도 괜찮겠지요'라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나는 평소에 주님을 잊고 살아왔기 때문에 내 마음은 너무나도 괴로워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소녀는 '사랑이 많으신 우리의 목자 예수님,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오늘밤 이 어린양을 지켜주세요. 그리고 의사 선생님도 축복해주세요. 그분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녀의 기도야말로 나를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나는 그때 간호사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돌아서서 난생 처음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 하나님. 저를 용서하여 주시고, 이 소녀의 생명을 구하게 하소서' 결국 그 소녀는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우리의 목자가 되신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위험에서 지켜주시는 목자이십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은 이 땅의 위험에서만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은 비록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죽음까지도 두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고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는 약속처럼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임종 직전에 이 말씀을 암송하며 천국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암에 걸려 죽어 가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랑하는 아들 곁에서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결정적으로 선고받던 그 날부터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성경을 읽으면서 특별히 시편 23편을 즐겨 읽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길에 목자가 되시면 이 세상도 좋지만 우리 삶이 다하는 날 주께서 인도하시는 영원한 집을 향해 가는 일은 더 좋은 일이라고 아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 구절을 영어로 읽으면 꼭 다섯 글자가 됩니다. "The Lord is my shepherd." 특별히 네 번째, 반지 끼는 손가락을 꼽을 때는 아들의 손에 힘을 주면서 "하나님은 나의 목자가 되시고, 너의 목자도 되신다면 아무 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이 너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거야. 우리가 그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너의 목자로 신뢰하고 있을 것을 감사해야 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두 시간 후, 이 어린 소년은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차디차게 식어 가는 아들의 모습을 본 순간 어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들은 죽어가면서 자기의 오른 손으로 왼손의 네 번째 손가락을 꼭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The Lord is my shepherd." 이 어린 소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늘의 영원한 집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마지막 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계를 홀로 찾아갈 때, 우리의 목자 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15). 예수님은 우리에게 좋은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아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버리셨습니다. 목자는 양을 단지 재산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과 가족처럼 생각합니다. 여러분, 양이 목자를 위해 죽는 것은 이해되지만, 목자가 양을 위해 죽는다니요? 그러나 여기에 목자의 사랑이 있습니다. 너무너무 양을 사랑하기에 목자가 양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와 함께 생각할 것은 '선한 양'입니다. 우리가 좋은 양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모셔야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로 시작합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분은 나의 목자가 되시고, 나는 그의 어린양이라고 믿는 단순한 이 고백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본래 목동출신으로 목자가 있으면 양들이 얼마나 안전한가를 알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기쁘게 고백하였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지 않고, 자기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어 제 멋대로 살려하기에 위험과 허무한데 빠집니다.


일제시대 시골에는 교회는 있어도 신학을 공부한 교역자가 없어서, 영수(領袖)나 성경을 팔러 다니던 권서(勸書)가 목회자가 없는 교회에선 설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골교회에서 한 영수가 설교하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말씀을 전하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말씀을 오해하여 "여호와는 나의 목을 자르셔도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라고 설교했는데도 성도들은 은혜를 받더라고 합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순수한 믿음의 자세입니다.


둘째, 양은 목자의 음성을 잘 듣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고 말씀하셨습니다. 팔레스타인에 가보면 동산이 전부 하얗게 줄무늬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목자가 방울을 울리면서 앞서 가면 수백 마리의 양이 한 줄로 따라 지나가면 저절로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는 언덕 꼭대기로 곧장 올라가면 양들이 힘들까봐 비탈을 따라 옆으로 올라가기에 옆으로 줄이 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볼 때,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믿고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목동이 양을 훔친 혐의로 법정에 끌려왔는데 그 목동은 자기가 잃어버린 양이라고 주장합니다. 판사는 원고에게 양을 불러보라고 하여 원고가 양을 불렀으나 양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데, 피고에게 양을 부르라고 하여 피고가 양을 부르자 양은 반갑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이 목동이 주인임을 밝혀졌습니다. 우리는 참 목자 되신 주님의 목소리를 따릅니까, 아니면 사단의 목소리를 따릅니까?


셋째, 양은 목자의 집에 거해야 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기에 '여호와의 집'은, 양에게는 목자가 보살펴 주는 '우리'를 뜻한다면, 하나님을 목자로 모신 다윗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의미합니다. 그 성전에는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있기에, 그 집에서 영원히 살리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그 어느 곳이 이런 공급이 있고, 안식이 있고, 인자하신 사랑이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전에서만 이런 사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거주하는 백악관이 생긴지 2백년이 넘는 동안 40여 명의 역대 대통령이 이곳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백악관의 주인공들은 그곳에서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트루먼 전대통령은 이 집을 '호화로운 감옥'이라 했고, 포드 대통령의 부인은 '금붕어 어항'이라고 했습니다. 존슨 대통령 부인은 '도대체 숨을 곳이 없는 집'이라 했고, 레이건 대통령은 '장터'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백악관에 비교할 수 없는 집이 있어 이 하나님의 전을 '내가 영원히 거할 집'으로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전에 거해야 하겠습니다.


미국 큰 회사의 사장이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들어 정신과를 찾아가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치료에 진전이 없자 정신과 전문의는 그 사장에게 휴스턴에 있는 감리교의 찰스 알렌 목사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찾아온 사장의 이야기를 들은 알렌 목사님은 조그마한 종이에 처방을 써 주었습니다. "시편 23편을 하루에 다섯 번씩 읽으세요. 일어나자마자 한번, 아침 드시고 한번, 점심 드시고 한번, 저녁 드시고 한번, 그리고 주무시기 전에 한번 읽으세요. 잘 아시는 말씀이라고 빨리 읽지 마시고, 반드시 천천히 한 글자 한 단어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으셔야 합니다." 사장은 알렌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편 23편을 하루에 다섯 번씩 정독했습니다. 일주일을 계속하는 동안에 큰 변화가 왔습니다. 마음이 평안하니까 밤에 잠을 편히 잘 수 있었고, 밤에 잠을 잘 자니까 피곤이 덜해지고 의욕이 생기고, 식욕이 돋고, 확신이 생겨, 최종 결정을 해야 할 때도 힘있게 추진 할 수 있어 큰 회사를 잘 운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프란체스코 선교회에서 만든 전도지에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나는 길이니 나를 따르면 안전하리라/나는 진리니 믿을 수 있을 것이며/나는 생명이니 풍성한 삶을 얻을 것이라/나는 빛이니 일생을 지켜 줄 것이며/나는 목자니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리라/나는 전능자니 모든 창조물들을 다스릴 것이며 / 너를 지은 자니 변치 않고 사랑하리라/나는 친구니 너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내 말을 지키고 순종하면 영원한 행복을 누리리라." 인생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따라 살아갈 때만 가장 안전합니다. 맥스 루케이도는 말합니다. "목자되신 예수님이 당신을 아시고, 당신의 이름도 알고 계신다. 그리고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다."


작가 정연희 씨의 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의 주인공은 '맹의순'이라는 실존인물입니다. 맹의순 선생은 조선신학교를 다니던 20대의 피가 뜨거운 청년이었는데 6.25 당시 남하하다 공산군 간첩으로 오인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그는 이런 상황을 비관하기보다 수용소 내에 광야교회를 만들어 포로들을 섬기고 복음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그의 신분이 확인되어 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었는데 그는 자원해서 남아 수용소에서 가장 열악했던 중공군 포로 환자들을 섬기다가 자신도 병들어 세상을 떠납니다. 다음은 그의 장례예배 때 한 중공군포로의 추모사입니다. "맹의순 선생 영전에 드립니다. 평화의 왕자, 화평의 사도, 인애의 왕, 우리에게 사랑의 주인이셨던 맹의순 선생이 가시다니...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가 우리 병동을 찾아오던 초기에 우리는 그를 경멸했고 무시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온화했고 그의 행동은 희생과 헌신으로 여일했습니다. 선생의 한 손엔 성경책이, 그리고 다른 한 손엔 물통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선생은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를 골고루 만져주고 주물러주며 그렇게도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기도를 듣고 있으면 기승하던 고통이 스러지고, 신음과 함께 목이 타 잠 못 이루던 몸이 편안한 잠에 안기곤 했습니다. 겨울엔 따뜻한 물로 여름엔 시원한 물로 우리 얼굴을 씻어주고 손을 닦아주며, 때론 발도 씻겨주셨습니다...선생이 쓰러지던 그 마지막 날 밤, 마지막 환자를 다 씻기고 일어난 선생은 눈물 흘리며, 씻을 생각도 않으시고 시편 23편을 중국말로 더듬더듬 읽어주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 봉독하신 후 높은 곳을 바라보시며 다시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우리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따라 외웠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 말씀과 함께 마지막 환자를 씻겨낸 물통과 대야를 들고일어나시다 그대로 쓰러지셨습니다. 우리는 통곡했습니다. 염치없는 우리가 선생을 돌아가시게 했다고...우리는 통곡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맹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예수 안에 있어야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버려진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맹 선생과 함께 주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통곡합니다." - 거제리 포로수용소 중공군병동의 환자 일동. 이때 그의 나이 불과 26세, 진실로 그의 짧은 생애는 원수의 목전에서 베풀어진 은총의 삶이었습니다.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른 삶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목자로 삼고, 목자이신 주님만 철저하게 의존하며 따라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나의 목자로 모실 때, 주님은 우리의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고,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주시며, 모든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목자이신 주님의 보살피심 속에 살아가시기 기원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4~15절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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