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주님이 아십니다

2020-02-16 342회

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

베드로전서 5장 10절

설교요약 :

"오직 주님이 아십니다"
2020년 2월 16일 주일예배
욥기 23 : 10 - 17 ; 베드로전서 5 : 10


어느 신학교 시험시간에 신학생들이 시험 치르는데, 어느 신학생은 공부를 했지만 답이 하나도 생각나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너무 고민하다가 그래도 백지는 낼 수가 없어, 시험지 맨 끝에다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정답을 아십니다. 그리고 저는 그 정답에 동의합니다." 시간이 끝난 후 교수님은 시험을 채점한 성적표가 나눠주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100점, 너는 빵점." 하나님은 시험문제뿐만 아니라, 내 모든 사정까지 아신다고 인정하십니까?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때는 하나님께서 내 사정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시는 듯 침묵하실 때입니다. 고난 중에 힘들 때 무슨 말씀이든 해주시면 그런 대로 마음을 다스리며 견뎌낼 것 같은데, 아무 말씀도 없으시면 더욱 견디기 어렵습니다. 여류작가 박완서씨는 남편이 죽었을 때만 해도 반야심경 해설 테이프를 들으며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들이 죽었을 때는 그렇지 못했다고 합니다. 카톨릭 신자였던 그녀는 자기 아들의 생명을 앗아간 신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며, [한 말씀만 하옵소서]란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저 만만한 건 신이었다. 온종일 신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 번 고쳐 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마지막 극치의 살의(殺意), 내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나는 신의 생사를 관장하는 방법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고, 특히 그 종잡을 수 없음과 순서 없음에 대해선 아무리 분노하고 비웃어도 성이 차지 않지만, 또한 그런고로 그분을 덧돌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직 그분만이 생사를 관장하고 있다고 신의 권위를 믿고 있었고, 불쌍하게도 깊이 공구(恐懼)하고 있었다"라고 고백합니다. 한참 후에야, 사람의 죽음에 대해 아무 말씀 없으신 그분의 전능하심 앞에 무릎을 꿇었고, 결국 고난을 감당하기로 했다며 말합니다. "제 자신의 경우 고통은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더불어 살 수 있게는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 속에도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일본의 기독교문학가 엔또 슈샤쿠의 [침묵]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인 농부 두 사람이 예수 믿는 신앙을 절대 버릴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죽게 됩니다. 밀물이 들어오는 바닷가의 십자가 형틀에 두 농부의 몸을 비끄러매 놓고 물이 점점 차 오르면 끝내 죽게 해놓고서, 예수님을 부인하라고 협박합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이제 물이 점점 목으로 차 올라오자 네덜란드 신부가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이여, 저들을 도와 주시옵소서. 어찌하여 침묵하고만 계십니까?"하고 울부짖는데,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옵니다. "나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저들과 고통을 함께 하고 있느니라."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성경에 나타난 욥처럼 많은 고난을 당한 사람은 없는 듯 합니다. 그처럼 억울하고 그렇게 극심한 고통을 당한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크나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욥은 모든 고난 당하는 자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을 정리해 보면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망라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그는 재산을 잃는 경제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욥의 재산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마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욥1:3). 이렇게 큰 부자가 스바와, 갈대아 사람들이 와서 그 많은 재산을 약탈해갑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남은 재산을 살라버려 일순간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평생 애써 모아 놓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잃었을 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둘째, 가족을 잃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욥에게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었는데, 어느 날 형제들이 맏형의 집에서 잔치하던 중, 갑자기 대풍이 몰아쳐 집 모퉁이를 치자 집이 무너져, 그 자식들이 한꺼번에 몰살당하고 맙니다. 여러 자식 중 하나만 잃어도 부모는 십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하고 슬피 눈물짓는데, 욥은 모든 자식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욥이 고통 속에 신음할 때,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욕을 남긴 채 집을 나가 버림으로 욥은 혼자 남게 됩니다.


셋째, 욥은 자신의 건강마저 잃었습니다. 욥은 온몸에 심한 종기가 나서 기왓장으로 긁고 잿더미에 뒹굴게 됩니다. 너무 괴로워서 나중에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19:26). 욥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생의 의욕을 잃고, 모든 것이 끝났으니 이제 몸이 썩어진 후에 육체를 떠나 하나님을 뵈올 것이라며 생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넷째, 그의 친구들로부터 정죄를 당합니다. 욥의 세 친구가 욥이 어려운 일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위로하러 찾아왔다가, 너무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못하고 옆에 앉아 일주일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욥의 곁에서 울던 친구들이 욥이 탄식하는 말을 듣더니 참으로 기가 막힌 말을 합니다.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욥4:7)라며, 지금까지 누구보다도 의롭게 살면서 경건을 생명처럼 지켜왔는데, 욥을 죄인으로 매도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은 주님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는 생각입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라게 하시며 마른 검불을 뒤쫓으시나이까"(욥13:24-25). 모든 사람이 비난해도, 하나님은 나의 무고함을 아시고 나를 인정하시며, 내게 향한 주님의 사랑을 확증할 수만 있다면 믿음으로 견뎌낼 수 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내 죄를 가지고 하나님이 내게 화살을 쏘는 것만 같고, 나를 미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욥은 '어째서 나를 버리시고, 어째서 나를 대적으로 삼으십니까?'며 몸부림칩니다. 하나님도 자기를 버리셨다는 소외감과 절망에 몸서리칩니다.


욥은 그토록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나님께서 결국 다시 크게 보상해주시는 그 날까지 왜 이 고난을 당해야하는지 모르며 고난을 당했습니다. 어떤 때는 너무 괴로워서 자기 생을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아이를 배었다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욥3:3),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욥3:11-12)하며, 어머니가 자기를 젖 먹여 길러주신 것까지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끝내 믿음으로 승리합니다. 그 모든 고난을 딛고 일어서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직접 뵙게 되고, 잃었던 모든 것들을 다 회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이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욥기 마지막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그 후에 욥이 백 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욥42:12-17). 참으로 아름다운 해피엔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욥이 이렇게 승리할 수 있었던 그의 믿음의 자세는 무엇일까요? 첫째, 그는 견딜 수 없는 고난 중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고통이 너무 심하고 점점 가중되어갈 땐, 자기 생명을 저주하고, 차라리 죽기를 구하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줄을 놓지 않습니다. 고난 속에서 때로 불평도 원망도 했지만, 그래도 그는 하나님과 씨름을 계속합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며 아내마저 떠나고, 친구들조차 그를 정죄하지만, 그래도 그는 끝까지 하나님께 매달린 것이 믿음으로 승리하게 한 비결이었습니다.


간혹 보면 처음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듯 하다가 믿음을 저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모든 일이 잘되고 편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듯 하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어려움이 찾아오면 '에이, 예수 믿어도 소용없구먼!'하고는 하나님을 떠나버리는 경우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경우는 어떤 어려운 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매달려 문제를 해결하여 모든 일이 잘되니까, 이제는 하나님 없이도 문제가 없겠다 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욥은 처음 동방의 의인으로, 큰 부자였을 때도 하나님을 경건히 섬겼을 뿐만 아니라, 지금 말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승리케 했던 비결입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5:11). 우리에게도 이런 욥과 같은 끈기와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대기업 취업을 앞두고 있던 '임철희' 씨는 인천 가좌제일교회 믿음 좋은 '교회 오빠'로서, 하나님께 1만 명을 전도하겠다고 서원했는데 2009년 9월 스물 일곱 청춘에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내 수금은 통곡이 되었고 내 피리는 애곡이 되었다'(욥30:31)고 탄식하며 날을 지샜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늘 웃는 얼굴에 따뜻한 손으로 교인들과 악수하며 복음과 구원, 천국을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어느 날 강단에서 처음으로 고백합니다. "다섯 살 장애아들을 잃은 적 있습니다. 지금도 그 사망진단서를 버리지 못하고 가방 속에 넣고 다닙니다." 목사는 눈시울이 젖는 것을 참으며 "지금도 가난한 나라에선 마실 물이 없어 죽어 가는 어린 생명들이 갈급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고 설교했습니다. 어머니는 목사의 고백에 '쿵'하고 가슴이 무너지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아들이 교통사고로 숨진 4개월 뒤인 2010년 1월, 아들의 소원대로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1시간 떨어진 레가스피(Legazpi)라는 산 속에 거주하는 400여명 주민을 위한 '철희의 우물'을 조성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그 아들의 기도제목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둘째, 욥은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고난을 하나님은 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게 왜 이런 고난이 찾아왔을까?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는 자기가 당한 현실의 의미를 묵상하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욥은 자기가 겪고 있는 고난을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하나님은 자신을 다 알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아시는 것일까요?


먼저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 허물과 잘못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는 아무런 비밀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지식 안에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모를 때는 사랑하다가, 알고 나면 미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우리는 내 약점을 아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서로 모든 약점과 비밀을 다 알면서도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참된 사랑이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허물과, 내 죄까지 다 아시면서 사랑하십니다.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4). 내가 흙덩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고 그런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대학에 다니며 한 남자를 만나 여러 해 동안 뜨겁게 연애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첫사랑의 남자가 그만 결혼을 며칠 앞두고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다가 한참 지난 후에 다시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이 남자는 너무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그 남자의 호의에 '지난 날 다른 사람을 사랑했던 과거를 털어놓을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행여 이로 인해 이 사랑이 깨어질까 두려워 차마 고백을 하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10여 년을 행복하게 살았는데, 남편은 이 여인을 변함 없이 사랑해주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을 때마다 '내게 엄청난 과거가 있는 줄도 모르고 저렇듯 나를 사랑하는구나'하는 생각에 더욱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이 사랑이 깨지더라도 고백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남편 앞에 과거를 털어놓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다정히 웃으며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허물을 몰라서 모르는 척하시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 앞에 비밀이란 없습니다. 다만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진실을 찾기를 기다리고, 언젠가 깨끗한 마음으로 고백하기를 기다리실 뿐입니다. 몰랐다면 나만 몰랐지, 하나님께서는 내 모든 지난날을 아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내 고난의 현실도 아십니다. 우리는 고난 당할 때,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나의 이 어려운 사정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말씀합니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시94:9).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사40:27). 하나님은 나의 실패, 질병, 고통, 모든 역경까지 다 아시며, 그분의 나를 위한 섭리 안에 내가 있습니다.


의사였다가 기독교 작가로 변신한 크로닌 박사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광산촌에서 의사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광산촌에는 억울하게 오해를 받고 그곳으로 쫓겨온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쫓겨온 데다가 월급마저 아주 적었지만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항상 생글생글 웃으며 여유 있고 자신 만만하게 일했습니다. 그리고 병원 진료시간이 끝났는데도 제일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더 하곤 했습니다. 그런 간호사의 모습을 본 크로닌 박사는 안쓰러워서 간호사에게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가진 가치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그것을 아실 텐데 말이야." 이 간호사는 이 말을 듣자마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간호사의 답변은 신앙적으로 헌신되어 있지 않던 크로닌 박사의 마음에 화살처럼 꽂혔습니다. 그녀의 그런 마음이 불편한 환경에서도 당당하고 빛나는 삶을 살게 한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모든 고난을 아신다면 이겨낼 길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전개될 미래도 아십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욥은 현재의 고난뿐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모든 상황도 하나님은 다 아시기에 "그런즉 내게 작성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14절)고 말합니다. 부모가 어린이 손을 잡고 길을 나서면, 아이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부모가 좋은 데로 데려가리라 믿기에 아무 걱정 없습니다. 욥은 말합니다. "오직 주님은 내 운명을 아시고 최선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자신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 부스가 80대에 들어선 어느 날 의사의 진료를 받고, 그가 곧 눈이 멀게 된다는 사실을 그의 아들 브램웰이 아버지께 알려드리자, 아버지가 묻습니다. "그래, 내가 앞을 못 보게 된다는 말이냐?" "네, 아버지 아무래도 그 경우를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부스는 잠깐 침묵이 흐르다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네 얼굴을 다시는 못 보겠구나?" "네, 이 세상에서는 못 보실 겁니다." 다음 순간 노병의 손이 침대 커버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 아들의 손을 꼭 쥔 채로 아주 평온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최선의 길을 아신다! 브램웰, 지금까지 나는 이 두 눈을 갖고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왔다. 이제는 두 눈이 없는 채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셋째, 욥은 자기가 겪고 있는 이 고난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b). 욥은 두 가지 고백을 합니다. 먼저는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고난을 '단련'이라고 말합니다. '심판'과 '단련'은 다릅니다. 심판은 내가 과거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이라면, '단련'은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나를 훈련하시는 교육적인 행위로서, 사랑에 기초합니다. 또 하나의 고백은 이 단련을 거친 후엔 순금 같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결코 오늘의 고난이 고난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하나의 훈련이요, 이 시련의 과정이 마치면 하나님은 나를 순금처럼 빚으시리라고 고백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 방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이렇듯 방탕한 생활을 하던 중, 어느 날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로 가겠노라고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완강하게 이를 만류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끝내 자신의 뜻대로 로마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그의 어머니는 몹시도 괴롭고 걱정스러웠습니다. 화려한 도시 로마에 가면 더욱 방탕해질까봐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에 가서 유명한 밀라노 감독 암브로시우스를 만나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서른 세 살에 기독교로 개종하고, 뒤에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되는 역사가 이뤄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을 몰라서 그를 로마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그의 앞길을 아시고 로마로 보내신 것입니다.


욥은 이 고난이 유익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나를 단련하신 후에 순금과 같이 나오리라.' 이 모든 사건을 통해 훈련받아서 금과 같이 나올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때로 괴로움 당할 때, 아무 의미 없는 고난 같으나, 내가 아직 교만하고 아직 나약하기에 이 고통이 필요합니다. 그 고난을 겪은 후에 순금과 같이 변화되어 비로소 새사람이 되고 복된 사람이 됩니다. 나는 모르나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리처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1948년 루마니아 비밀경찰에 의해 투옥되어 20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하면서 신앙을 버리게 하려는 공산당국에게 엄청난 고문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옥에 갇힌 지 수년 동안 일절 면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는데, 한번은 가족 면회를 허락하겠으니 집에다 엽서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면회 날이 되자 면도도 하고 새로 나온 내복도 입고 마음이 들떴지만,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았습니다. 보낸 엽서가 아내의 손에 들어가지도 못한 사실을 알지 못한 그가 혼자 남아 있는데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이제는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방송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는 끝내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몇 년 동안 아내와 아이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아이처럼 들떴는데,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다니!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내게 관심이 없다.' 다음 날 다시 방송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죽었다. 하나님은 없다." 그는 그 말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믿음을 지켰는데, 하나님 이게 뭡니까?' 그런데 그 순간 배교의 때가 이를 것이라고 한 성경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여인들도 나처럼 이렇게 절망스러웠겠지! 하지만 그들은 울면서도 예수님의 무덤을 떠나지 않았다!' 그 순간 범브란트 목사님은 모든 절망과 혼돈 속에서 자신의 판단까지 하나님께 다 맡겼습니다. '하나님, 저는 그냥 울기만 하겠습니다. 무덤 곁에서 울던 여인들처럼!' 얼마 후에 그는 감옥에서 풀려났고 루마니아에는 다시 기독교 부흥의 때가 찾아왔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아버지가 들려주는 장작을 두 팔로 받아 부엌으로 옮기자, 이웃집 아저씨가 그것을 보고는 "조그만 체구에 너무 많이 들고 가는구나. 무겁지 않니?" 하고 묻습니다. 아이가 대답합니다. "아니요, 내가 얼마나 들 수 있는지 아버지가 잘 아시거든요." 여러분,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이 시련은 하나님은 몰라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 능력의 한계와, 나의 약함도 아시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내게 유익하고 내게 필요한 것임을 잘 아셔서 감당할 만큼의 시련을 주십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오직 주님이 아신다'는 이 믿음 안에 참 평안과 능력과 지혜가 있습니다. 아시는 주님이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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