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2 138회
“주님은 왜 세상에 오셨나?”
2021년 12월 12일 주일예배
누가복음 19 : 1 - 10 ; 시편 108 : 24 - 25
예수님 당시 과도한 세금을 걷는 세리는 사람들로부터 큰 미움을 받았는데,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삭개오는 여리고에서 세리장으로 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시자 사람들이 몰려나와 인산인해를 이뤘는데,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볼 수 없어 체면 불구하고 돌무화과나무로 기어올라가서 예수님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이 그 곁을 지나가시다가 돌무화과나무 위의 삭개오를 알아보시고 친히 그의 이름을 불러주신 뒤, 그의 집에 친히 찾아오셔서 그의 집에 묵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를 경원시하고 멸시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하시고,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며,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 천사가 요셉에게 말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여기서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계시하는데, 이 ‘예수’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표현이고,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 혹은 ‘예수아’로서,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매우 광범한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천사가 전한 구원의 의미는 일반적인 위기에서 구출이란 의미보다, 근본적인 인간 존재의 구원을 나타내는 말로서,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가난으로부터의 구원도 아니고, 정치적인 구원이나, 어떤 억압으로부터의 구원도 아니고, 사회적인 불평등으로부터의 구원도 아닌,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바로 구원으로서 그가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9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버려지고 증오의 대상이었던 삭개오를 공동체로 복귀시켜 형제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며 삭개오의 믿음이 참된 믿음임을 인정하십니다. 당시 종교적 복권은 곧 정치, 사회적 복권과, 전인적 구원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며, 삭개오처럼 버려진 자를 찾으러 오셨음을 밝히십니다. 잃어버리고, 소외되고 비뚤어진 인간을 당당하고 품위 있게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19:5). 그러자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눅19:6), 즉시 나무에서 내려와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들입니다. 그는 자기 혼자 주님을 영접하여 자신만 구원받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예수님을 온가족이 믿고 구원받도록, 주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들여, 모두가 함께 예수님을 영접하게 했던 것입니다.
성탄절하면 징글벨, 크리스마스 캐롤, 산타클로스, 선물, 백화점 세일, 크리스마스 카드, 좀 고상한 사람은 구제나 자선냄비 등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탄절은 아닙니다. 성탄절은 한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단순히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날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사건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신 신이 모든 것으로부터 제약받는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이 성탄으로, 이것이 가장 큰 사랑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시자, 삭개오가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19:8). 주님의 파격적인 은총을 받은 삭개오는 욕심이 사라져, 누구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십일조가 아닌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예수님은 무조건 삭개오에게,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며, 그에게 사랑을 선포하시자, 이 절대적인 사랑을 받은 삭개오는 주님이 “네 이웃에게 네 재산을 나누어 주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음에도, 스스로 이웃을 위해 재산의 절반까지라도 나눠주겠다며, 이웃에 대해 닫힌 마음을 열었던 것입니다.
삭개오는 돈을 밝히던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돈에서 마음이 떠났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이런 변화가 우리 안에서 일어납니다.
우리 주변에는 남을 짓밟고 일어서면 그것으로 성공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면 생각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음이 비어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변화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면 그들도 삭개오처럼 변화되고, 그들을 통해 한국 사회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복음으로 변화되어, 가정에 주님을 모시고 이 사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어야합니다. 우리가 바로 되면 가정과 세상이 바뀝니다. 성탄절은 우리 주님이 오신 날입니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시118:24-25). 새롭게 주님을 우리 심령과 가정에 모셔, 세상을 변화시켜 나갑시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