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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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용 목사님

로마서 8장 31~39절

설교요약 :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2018년 9월 2일 주일예배
로마서 8 : 31 - 39 ; 이사야 41 : 10


한 성도가 복권을 샀는데, 그게 당첨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복권을 찾아가지를 않자, 복권을 판매한 회사에서 조사해보았더니 시골에 사는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알면 혹시 충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되어 교회 목사님께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목사님이 그 사람에게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두려워말 것을 당부한 다음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사실은 당신이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더니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실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니, 그 돈이 없을 때는 마음이 편안했는데, 돈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온갖 염려들이 찾아와 마음의 평화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미안하지만 목사님이 그 상금을 맡아주시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자 목사님은 그 자리에서 쇼크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세상일은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일 때가 많습니다.


지금부터 100년 전에 미국에서 백만장자가 지금 억만장자보다 숫자가 적었을 때입니다. 지금은 10억 달러 부자도 많은데, 당시는 백만장자가 열 손가락 안에 들던 때, 'millionaire'라는 말이 미국에서 가장 큰 부자라는 말로 통할 때는 한 사람의 한 달 생활비가 10달러 내외였습니다. 그 때 한 백만장자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에게는 50만 달러가 잔고에 있었습니다. 미망인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이 돈을 아껴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7년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남은 재산을 조사해 보니, 그동안 3만 달러를 쓰고 은행 잔고에 47만 달러가 남아있었습니다. 이 분이 3만 달러가 줄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 때부터 '이 돈이 다 떨어지면 내가 얼마나 비참해질까?' 고민하다가 그만 자살했습니다. 실화입니다. 돈을 가진 사람의 첫 번째 염려는 '이것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나?'입니다. 어느 장로님은 서울 시내에 빌딩을 수십 채나 가진 분인데, 그 분이 언젠가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자기는 불자동차 소리만 나면 가슴이 덜컹 한다고 하더랍니다. 행여나 자기 빌딩에 화재가 나지 않았나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돈만 있으면 걱정 없을 듯 하지만, 도리어 걱정이 더 많아집니다.


여러분, 돈만 많고 사회만 안정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아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사회보장제도가 가장 잘 갖춰진 저 북유럽에도 자살율이 높고, 아시아에서도 가장 잘사는 일본의 자살율이 높은데, 도리어 가장 경제적으로 어려운 방글라데시나 부탄 사람들의 만족도가 제일 높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문제는 믿음입니다. 세상일이 얽히고 설켜 무엇 하나 편안한 일이 없이 복잡한 듯 하지만,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염려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인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로, 기독교 신앙의 구원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기록한 말씀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성경 66권이 모두 사라진다 하더라도 이 로마서 한 권만 있으면,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는 문제에 있어서 아무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에 대영제국박물관 관장은 그 박물관에 소장한 문화재가 인도라는 나라 전체와도 바꿀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런데도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 친필 원본 한 장만 가져오면 그 박물관과 바꾸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신학자는 "우리가 성경을 다이아몬드 반지에 비교한다면, 로마서는 그 반지 중앙에 박힌 다이아몬드에 해당되고, 그 중에 로마서 8장은 다이아몬드의 가장 빛나는 끝 부분에 해당된다"고 말할 만큼 오늘 말씀은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라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는 성도들을 아무도 대적할 수 없음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라며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승리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세상 그 누구도 우리를 해할 자가 없고, 또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과 같은 숱한 고난과 역경이 우리에게 몰아닥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살고 있는 성도는 끝내 승리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일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을 정리해 보면,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지난 과거의 문제로서 죄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는 지난 과거에 이미 우리가 범한 과오와 잘못입니다. 둘째는 오늘 현실의 문제로서 우리 생활 속에 이런 저런 필요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환난이나 핍박이나 전쟁이나 위험한 일 등 미래에 대한 불안의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하여 우리에게 확실한 약속을 주십니다. 첫째, 우리의 지난날의 죄에 대한 사죄의 선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본질적인 고민은 내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오늘 죄인으로 살아가며, 또 앞으로도 계속 죄를 지으리라는 이 죄의식에 사로잡힙니다. 이런 우리를 사단은 '너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의심하게 하며, 우리를 낙심케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절)라며,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33절)이시라고 선언합니다. 심판주 되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셨는데 누가 감히 송사 하느냐,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셨는데, 누가 감히 나를 죄인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나는 자격이 없으니 아버지가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못났으니 어머니가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말씀 같이, "누가 정죄하리요?" 사랑한다는 데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사랑을 받았기에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으며,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의를 행한다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또 죄를 지었다고 하나님이 버리실 것이라고 눈치보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 실수했다고 도망가고, 조금 선한 일 했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래도 저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어느 가정에서 동생인 꼬마가 자꾸만 말썽을 부리자 형이 나무랍니다. "너 정말 그렇게 못되게 놀면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시지 않는단 말야." 동생이 주춤하자, 저 만치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아버지가 두 아이를 불러 타이릅니다.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너희들이 좋은 아이가 되면 기쁜 마음으로 사랑하고 못된 아이가 되면 아픈 마음으로 사랑한단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족할 때에도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변함 없이 사랑하시므로 나를 나도 나를 정죄하지 않고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이렇게 확증되는데, 본문에서는 세 가지로 확증하고 있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34절). 첫째,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대신 죽으시는 투자를 했으므로 절대 양보하지 않으십니다. 둘째, 우리 의를 위해서 살아나셨습니다. 즉, 부활하신 것입니다. 셋째, 오늘도 계속적으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내편에 계시고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오늘도 나를 위하여 기도하시는데, 감히 누가 나를 정죄하며 심판할 것입니까? 이 믿음이 우리의 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됩니다.


둘째, 오늘 우리 현실의 문제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32절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여기서 '모든 것'은 마태복음 6장에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1-32)고 하신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등 우리 현실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으로 이 땅에 살아가기에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하고, 입어야 합니다. 이런 현실적 문제가 우리에게 염려가 되지만, 이럴 때마다 "외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이가 어찌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하는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외아들이라는 말은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식을 하나둘만 낳는 현대인들에겐 외아들이란 대단하지 않지만, 옛날 아들을 낳지 못하면 쫓겨나던 때는 외아들은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셨다는 의미는 하나님 당신 자신보다 더 귀한 것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최대의 복음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외아들을 아끼지 않고 주신 하나님께서 그 무얼 아끼시겠습니까? 그 귀한 딸도 주었는데, 그까짓 씨암탉 한 마리 아까워서 못 잡아 주시겠습니까? 만약 지금 내가 받지 못했다면, 그것도 나에 대한 사랑입니다. 철없는 어린아이에게 칼을 줄 수 없는 것처럼, 주어서는 안 되겠기에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외아들까지도 주셨는데 무엇이 아까워 안 주시겠습니까? 이 엄청난 사랑을 깨닫는 순간에 다른 시시한 문제들은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미 주셨고 또 주신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인 윌버 체프만 목사님이 목회하던 교회에 어떤 교인의 아들이 13세 에 가출하여, 그 아버지가 이 아들을 무려 18년 동안 찾다가 그 아들이 31세 되었을 때, 여행을 하던 중 필라델피아 역에서 나가다 보니까 어떤 청년이 와서 구걸합니다. 남루한 옷차림에 눈동자는 마치 마약 환자와 같이 초점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가 이 분에게 "25전만 주세요"하며 구걸을 하는데, 딱 본 순간 그가 자기 아들인 걸 알았습니다. "야, 너 톰 아니냐? 나 아빠야." 그러나 이 청년은 초점 잃은 눈동자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저씨, 25전만 주세요." 이 아버지는 아들을 덥석 안고 소리쳤습니다. "25전이 문제가 아니야. 내가 네 아버지야, 아버지란 말이야. 내 집이 네 것이고, 내 돈이 네 것이며, 내 농장이 네 것이야. 내 모든 것이 다 네 것이란 말이다. 가자, 집으로. 그리고 나와 함께 같이 살자."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충만으로 우리를 채우시길 원하시는데 우리는 인생의 어떤 거리에서 25전을 구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내 것이 다 네 것이야. 내 부요가, 내 평안이, 내 은총이, 내 능력이, 내 임재가, 내 사랑이 다 네 것이야. 집에 가자. 나와 함께 지내자." 하나님의 것이 다 내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7-11). 세상의 악한 자도 제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왜 좋은 것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오늘의 문제에 대한 해답입니다.


셋째, 앞으로 닥칠지 모를 환난이나 위험에 대한 보호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앞날에 어떤 환난이 있을는지, 곤고나, 핍박이나, 혹은 기근이 있을는지, 어떤 일들이 있어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앞날에 대한 막연한 불안 가운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의 줄이 든든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과 나 사이의 사랑의 줄을 단단히 붙잡으면, 환난이나 핍박이 있어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기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8-39절).


내일을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우리를 든든히 지켜줄 가장 확실한 보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강도와 살인 납치 폭력 등의 위험으로 인해 사람들은 전전긍긍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전에는 가히 상상치도 못한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위험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보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신변 안전을 위해 사설경호를 의뢰하지만 열 명의 경찰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자연재해와 사건사고에 대비하여 보험을 듭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아이러니컬한 것이 바로 생명보험입니다. 생명보험을 들면 내 생명에 대한 보장이 돼야 할텐데, 내 생명은 보호해 주지 못하고, 나 죽고 나서 다른 사람이나 편하게 해 주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진정한 보장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습니까? 바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과 같은 위험 가운데서도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고 확실한 보호를 약속하십니다. 미국에 수잔 앤더슨 부인이 시력이 나빠 수술을 받았다가 그만 잘못되어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실명된 아내를 남편이 아내의 직장까지 매일 함께 출퇴근을 시켜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아내에게 "언제까지나 내가 당신을 데리고 다닐 수 없고, 당신도 언제까지나 날 의지할 수가 없으니까 이제부터는 당신 혼자 출근하시오." 아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남편의 말에 수긍은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엔 섭섭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혼자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부딪치기도 하고 때로는 서러워서 눈물도 흘렸지만, 조금씩 적응이 되고 익숙해져 갔습니다. 그렇게 혼자 다니기 시작한지 보름쯤 지난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버스 운전사가 "부인은 참 좋겠네요. 아주 훌륭한 남편을 두셨군요. 매일 한결같이 부인을 보살펴 주는군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까, 남편은 아내가 버스를 타면, 같이 타서 뒷자리에 앉고, 아내가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본 뒤에 자기 직장에 출근했던 것입니다. 아내에게 혼자 가라고 했지만 혼자 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늘 지켜보았던 남편처럼, 하나님도 언제나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격이 있다 없다 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 사랑을 과연 받을 자격이 있겠는가?'하는 염려가 생길 때마다,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나를 구원하신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37절).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이 가장 확실한 보장입니다.


아일랜드에서 어느 신부가 시골 교구를 심방하던 중 길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감동 받은 신부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아주 가까우신 분이시군요." 그러자 기도하다 말고 올려다본 그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럼요, 그 분이 저를 얼마나 좋아하시는데요." 이런 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가 어디서 기도하든 이런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바라볼 때의 그 심정을 밝게 갖고 사는 이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님 능력을 믿고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살아갑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해나가다 보니 반대도 많고 배신하는 사람도 많아, 이런저런 근심걱정에 잠을 이룰 수 없어, 하루는 잠자리에서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 세상이 제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까? 이 교회가 하나님 것입니까 재 것입니까? 만일 당신의 세상, 당신의 교회라면 당신이 돌보십시오. 저는 잠을 자겠습니다. 하나님, 잘 부탁드립니다. 당신 것이니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 우리의 인생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어린아이 같이 깨끗하고 단순한 믿음의 자세가 우리에게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사야서 말씀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 있는 유다백성들에게 이렇게 약속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그런데 이어지는 14절에서는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라고 말씀했습니다. 버리지는 땅 위를 기어다니며 사람의 발에 짓밟히는 가장 미약하고 천한 것인데, 버러지처럼 천하고 나약한 야곱을 하나님께서 구속하셨습니다. 야곱은 본래 간사한 사람이요 죄인임에도 그 지렁이 같은 야곱을 구원하여 이스라엘을 삼으십니다. 부끄러움에 처했던 그 민족을 높여 오늘과 같이 위대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현실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은 세계 어느 곳이건 자유로이 왕래하며 정착하여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도 세계 도처에 퍼져 살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중국사람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중국 음식점이 생기고, 일본사람이 사는 곳에는 호텔과 백화점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면 한국사람이 사는 곳에는 무엇이 생깁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한국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어디나 교회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유럽이나 미국 같은 곳에서도 이제 한국선교사를 요구하고, 복음을 역수입하여 그곳에 와서 선교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사명이 있기에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버리지 않으시고 당신의 뜻을 위해 이 민족을 크게 쓰실 것입니다.


이인희 씨가 쓴 [가치로의 산책]에 실린 글입니다. - 딸아이가 20개월쯤 되었을 때 함께 산책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뛰며 달리던 녀석이 얼마 후 두 팔을 벌리며 제게 달려와서 안아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뛰어다녔기 때문에 이내 지쳤던 것입니다. 아이의 상황이 충분히 이해되었기 때문에 쉽게 안아줄 수도 있었지만, 갑자기 그 이유를 아이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아이는 다리가 아파서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나름대로 타당한 근거였기 때문에 아이를 안아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이러한 질문법이 아이의 창의적 사고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의적으로 먼 산책 코스를 잡아 아이가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했습니다. 아이는 힘들 때마다 안아 달라고 요청했고, 저는 그때마다 새로운 이유를 요구했습니다. 아이는 "비가 와서", "바람이 불어서", 심지어 "밤이라 무서워서"라는 상황에 적합한 근거와 이유를 제시했고, 저는 흐뭇한 마음으로 아이를 안아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먹기 전 아이와 산책을 하다가 아이는 더 이상 적당한 이유를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몸을 돌려 안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이전과 동일하게 "왜 아빠가 인진이를 안아주어야 하지?"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고민에 빠진 딸을 보자 순간 딸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지만, 더 큰 가치를 얻기 위해 딸에 대한 연민의 정을 억눌렀습니다. 한참 지난 후 아이는 울상이 되어 입을 삐죽거리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빠가 날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이 한 마디에 아이는 웃었고, 저는 울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는 단 한가지, 그분이 먼저 나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안아주십니다.


불행이나 고통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불쑥 우리에게 찾아와 삶을 혼란에 빠뜨리지만, '불안이 노크할 때 믿음으로 응답하며 나아가면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하면,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35절), 무엇이든지, 어떤 환경이든지, 모든 고난을 믿음으로 다 극복하고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장 31~39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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